한 사람에 ‘1,500,000’원이다. 0을 잘못 붙인 게 아니다. 블루트레인의 요금은 1백50만원. 명실공히 세계에서 가장 호화로운 열차 가운데 하나다. 오전 11시 케이프타운역을 출발, 26시간45분 뒤인 이튿날 오후 1시45분 프레토리아 역에 도착한다.
블루트레인 여행은 케이프타운 역 블루트레인 전용 대합실에서 출발한다. 19세기 유럽의 살롱을 옮겨놓은 것 같은 대합실에는 간단한 음료와 케이크가 준비돼 있다. 승객의 짐은 ‘버틀러’라고 부르는 승무원들이 열차에 미리 실어놓는다. 열차 출발 30분전 승무원들이 승객에게 인사를 하고, 탑승을 돕는다. 18량의 열차에 탑승하는 승객은 최대 82명, 승무원은 25명이다. 객차마다 3~4개의 객실이 있고, 객차 전담 승무원이 탑승한다.
객실은 달리는 특급호텔 수준이다. 길이 4m, 너비 2m의 객실마다 전용 욕실이 설치돼 있다. 욕실의 타일과 세면대는 모두 대리석. 특급호텔과 마찬가지로 샴푸, 로션 등이 비치돼 있다. 객실의 작은 옷장에는 블루트레인의 ‘B’자 로고를 새긴 가운이 걸려 있고, 금고가 놓여있다.
바깥 풍경을 내다볼 수 있는 넓은 창문 아래에는 탁자와 의자가 있다. 탁자 위 꽃병의 꽃은 생화. 옷장 위에 걸린 LCD 텔레비전으로는 비행기에서처럼 열차의 현재 위치를 확인할 수 있는 지도와 영화가 나온다. 열차 맨 앞에 카메라가 달려 있기 때문에 객실에서도 열차 전면의 풍경을 24시간 볼 수 있다. 110V, 220V를 모두 사용할 수 있는 콘센트도 있다. 야간엔 승무원이 벽에 세워진 매트리스를 끌어내려 의자를 침대로 바꿔준다. 룸서비스? 물론 된다. 객실 내의 전화기로 담당 ‘버틀러’에게 부탁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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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트레인’이란 이름이 붙게 한 독특한 코발트빛 외관 |
그래도 1백50만원은 비싸다. 블루트레인엔 금연 라운지 객차, 흡연이 가능한 클럽 라운지 객차, 식당차가 달려 있다. 식사와 음료수는 주류까지 모두 탑승요금에 포함돼 있다. 점심, 저녁, 이튿날 아침이 모두 코스요리다. 서너개씩 놓여있는 포크와 나이프는 반짝반짝 윤이 나는 은식기, 와인잔은 크리스털이다. 메뉴에 없는 채식주의자 요리를 시켜봤다. 금세 만들어 가져다 준다. 80여년의 역사를 가진데다 ‘서비스’로 승부하는 호화 열차답다.
블루트레인이 달리는 케이프타운에서 프레토리아까지 1,600㎞는 남아공의 주요 철로 중 하나다. 1869년 킴벌리에서 발견된 다이아몬드를 해안으로 실어나르기 위해 부설됐다. 와인을 만드는 포도밭을 지나, 열차는 카루 국립공원의 초원을 가로질렀다. 블루트레인뿐 아니라 ‘트랜스 카루’ 열차도 이 선로를 이용한다.
코뿔소며 코끼리가 뛰어나올 것도 같은데, 코를 차창에 붙이고 내다봤지만 동물들은 좀처럼 출몰하지 않았다. 이따금 화물열차가 긴 꼬리를 뿜으며 지나갔다. 마을도 좀처럼 나타나지 않았다. 대신 들판을 보랏빛으로 물들이며 사라졌다가, 이튿날 새벽 황금빛으로 떠오르는 태양은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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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루 국립공원의 전경을 보며 식사를 할 수 있는 식당차 |
블루트레인은 ‘제국의 영광’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가죽 장정의 책들이 놓여 있는 클럽라운지에서는 셜록 홈스가 파이프 담배를 물고 있어야 할 것 같고, 객실에서는 ‘80일간의 세계일주’의 영국신사 포그가 파스파르투와 블루트레인 로고가 박힌 카드로 포커를 치고 있을 것 같다.
식당차에서는 ‘인디애나 존스’에나 나오는 경쾌한 클래식과 함께 앤드류 로이드 웨버의 뮤지컬 음악이 흘러나온다. 승무원들은 낮엔 베이지색, 밤엔 검은색 유니폼을 입고, 모든 승객은 저녁식사 시간엔 타이까지 맨 정장을 입어야 한다. 그러고 보니 승객들도 실크 넥타이나 꽃무늬 프린트 카디건을 걸친 백발의 백인 노인들이다.
“물론 가격이 부담스럽지. 그렇지만 인생에 단 한번 할 수 있는 경험이잖아. 이 유명한 열차를 꼭 한 번 타보고 싶었어.”
블루트레인을 타기 위해 남아공에 왔다는 미국인 마거릿 돈은 “블루트레인은 교통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가 여행”이라고 말했다. 1950년대 콩고와 알제리에서 수년간 살았다는 그는 퇴직한 남편과 함께 아프리카를 다시 찾았다. ‘론리플래닛’을 들고 배낭여행하는 그에게 이 열차는 ‘일생의 로망’이었다. 1백50만원과 ‘일생의 로망’을 저울질하는 동안 열차는 프레토리아 역을 향해 들어서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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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바를 연상케 하는 클럽 라운지 전경 |
▶여행길잡이
◇항공편=남아공까지 직항편은 없다. 타이항공이 지난 10월말 요하네스버그로 신규 취항하면서 인천~방콕~요하네스버그 편을 이용할 수 있게 됐다. 인천에서 방콕까지 7시간40분, 방콕에서 요하네스버그까지 11시간5분 걸린다. 인천~방콕 직항편보다 타이베이를 경유하는 편이 방콕공항에서의 대기시간이 짧다. 방콕~요하네스버그 구간은 최신기종인 에어버스340-600기로 운항한다. 왕복 90만~1백52만원. 아시아나항공도 홍콩~요하네스버그 구간을 남아공 항공과 코드셰어로 운영한다. 요하네스버그~케이프타운 왕복은 남아공 항공(http://ww3.flysaa.com), 내이션와이드(www.flynationwide.co.za) 등을 통해 15만원 정도부터 구할 수 있다.
◇여행정보=남아공 화폐는 란드(R)를 사용한다. 국내에서 환전되지 않으며, 미국달러를 현지에서 란드로 바꿔야 한다. 1US달러=6.3R, 1R=152원 정도다. 전압은 220V지만 남아공에서만 통용되는 3핀 콘센트를 사용한다. 일반 멀티어댑터로는 호환되지 않는다. 호텔에서 220V용 2핀 어댑터를 빌릴 수 있다.
남아공만 다룬 국내 가이드북은 아직까지 없다. 케이프타운에 거주하는 장태호씨가 쓴 ‘당신의 아프리카에 펭귄이 방문했습니다’(종이심장)는 케이프타운 여행 에세이 겸 안내서. 문화체험서 큐리어스 시리즈로 ‘남아프리카공화국’편(휘슬러)이 나와 있다. 영문 가이드북으로는 론리플래닛의 ‘South Africa, Lesotho&Swaziland’이 참고할 만하다.
◇블루트레인=블루트레인 홈페이지(www.bluetrain.co.za)에서 예약할 수 있다. 프레토리아~빅토리아 폭포, 케이프타운~포트 엘리자베스 등 4개 노선이 있지만 현재는 케이프타운~프레토리아 왕복 노선만 2주 3회 운행한다. 11월 중순부터 이듬해 8월말까지는 비수기 요금이 적용된다. 디럭스 스위트 기준 1인 7,860란드(1백20만원 정도), 럭셔리 스위트는 1인 8,490란드다. 9월초부터 11월 중순까지 성수기 요금은 디럭스 스위트 9,695란드(1백50만원 정도), 럭셔리 스위트 1만4백70란드.
◇여행상품=아프리카 전문 여행사 에이엔에이투어(www.aat.co.kr)에서 블루트레인이 포함된 16일 상품을 판매한다. 빅토리아 폭포, 세렝게티 사파리, 블루트레인 탑승 등으로 구성돼 있으며 8백29만원부터. 빅토리아 폭포, 케이프타운, 선시티, 프레토리아를 둘러보는 8일 상품은 3백49만원부터다. 10인이상 출발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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