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경향신문 2006-11-23 09:57]
초원에 얼룩말과 기린이 뛰어놀고, 물동이를 인 흑인이 흰 이빨을 보이며 미소를 날려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왜? 아프리카니까. 그러나 서울에서 비행기로 꼬박 만 하루를 날아 케이프타운 공항에 도착하는 순간 ‘기대’는 산산이 무너졌다. 케이프타운은 유럽풍의 대도시였다. 이어 놀랐다. 케이프타운까지 오게 했던 ‘희망봉’은 아프리카 최남단이 아니었다. 놀랄 일이 또 있었다. 이 ‘행복한 도시’에서 식민지의 기억을 떨칠 수가 없었다.
◇ 케이프타운은 ‘아프리카’가 아니다
‘호주 시드니와 뉴질랜드 오클랜드를 절반씩 섞어놓은 도시.’ 그 말이 맞았다. 케이프타운은 아름다운 항구 도시였다. 5백여만명이 마천루 속에서 살아간다. 이어폰을 귀에 꽂은 이들이 아침 조깅을 하고, 애견 두 마리와 함께 해변을 산책한다. 야자나무 가로수 사이로 보이는 하얀 집들엔 보랏빛 꽃이 피어 있었다. 12사도 바위가 한눈에 들어오는 캠스비치는 지중해의 어느 해변이라고 ‘우겨도’ 믿어질 정도다.
케이프타운을 여느 유럽 도시와 달라 보이게 하는 것은 탁자 모양의 테이블마운틴이다. 항구에서, 해변에서, 시내에서도 어디서나 테이블마운틴이 보인다. 높이 1,085m, 길이 2㎞의 제법 길쭉한 탁자다. 정상이 잘려나간 것이 아니라, 5억여년 전 바닷속 땅이 솟아 올라와 만들어졌다. 302m 지점까지 자동차로 간 뒤 케이블카를 타고 1,067m까지 올라간다. 사진기를 든 관광객들이 자리 싸움을 하지 않도록 바닥이 360도 회전한다. 케이블카 구간을 걸어 올라오는데는 2시간30분 정도 걸린다.
테이블마운틴 정상에는 트레킹 코스가 만들어져 있다. 바람이 거세 채 무릎 높이까지도 자라지 못한 꽃과 나무들은 뾰족한 가시를 달고 있거나 잎이 딱딱하다. 테이블마운틴에서 발견되는 식물만 1,500여종. 남쪽 희망봉을 향해 뻗은 12사도 바위들까지 합치면 2,500여종이 서식한다. ‘탁자’의 갈라진 틈 사이로 ‘테이블보’라는 별명이 붙어있는 구름이 폭포처럼 쏟아졌다. 영화 ‘미션’의 주제음악이 울려퍼질 것 같은 이곳과, 고작 1,000m 아래의 조용한 항구가 과연 같은 도시가 맞을까.
◇ 희망봉은 아프리카 최남단이 아니다
희망봉은 케이프타운 도심에서 버스로 40분가량 걸린다. 페닌슐라 국립공원으로 들어서면 좌우로 디아즈 기념비와 다 가마 기념비가 나온다. 고등학교 세계사 교과서에 나온 대로 포르투갈 탐험가 바르톨로뮤 디아즈가 1487년 희망봉을 ‘발견’했고, 10여년 뒤(1498년) 바스코 다 가마가 희망봉을 돌아 ‘다 가서’ 인도 항로를 개척했다.
그러나 희망봉은 아프리카 대륙의 최남단이 아니다. 희망봉에서 남동쪽으로 200여㎞ 떨어진 케이프 아귈라스가 최남단. 희망봉은 또 ‘봉우리’도 아니다. 삐죽 튀어나온 반도의 끄트머리다. 희망봉 주변엔 끔찍할 정도로 바람이 거세 항해사들을 긴장시켰다는데, 그것만큼은 사실이었다. ‘희망봉(Cape of Good Hope)’ 팻말을 붙들고 기념사진을 찍는 관광객들은 바람에 견디느라 눈까지 질끈 감았다.
대서양은 희망봉을 돌아 인도양과 만난다. 희망봉에서 버스로 15분 거리의 케이프 포인트가 두 바다가 만나는 곳이다. 거짓말처럼 두 바다의 물빛이 다르다. 온도가 낮은 인도양은 검푸르고, 상대적으로 온도가 높은 대서양은 하늘빛이다. 바람은 몸을 가누기 힘들 정도로 불어왔다.
1647년 네덜란드의 한 선박이 테이블베이에 좌초한 것도 악천후 때문이었다. 그 때부터 유럽인들의 정착이 시작됐다. 내륙의 물자가 유럽으로 실려 나갔고, 많은 원주민들이 노예가 됐다. 아프리카에 있어 ‘희망봉’은 ‘절망봉’이었던 셈이다.
◇ ‘식민지 항구’에 흑인은 없었다
테이블베이의 워터프론트는 ‘대항해 시대’의 거점이었다. 유럽을 출발해 인도로 가던 배들은 여기서 물, 야채, 과일을 보충했다. 1870년대 킴벌리와 요하네스버그에서 각각 다이아몬드와 금이 발견되면서 워터프론트는 일약 세계적인 무역항으로 발전했다.
한때 흥성거렸던 항구는 이제 식당, 호텔, 쇼핑몰이 밀집한 관광 명소가 됐다. 넬슨 만델라가 27년간 감금됐던 로빈섬 행 배도 여기서 출발한다. 크림빛 창틀을 단 연두색, 분홍색의 건물들과 야자수 가로수 때문에 워터프론트 전체가 하나의 테마파크처럼 보였다.
해변을 따라 늘어선 노천 카페에서는 밤늦게까지 음악이 흘러나왔다. 인종차별정책인 아파르트헤이트는 1994년 공식적으로 철폐됐지만, 노천카페에 앉아 시간을 보내는 이들 중 흑인은 좀처럼 찾아보기 어려웠다. 식민의 시대에서 차별의 시대로, 다시 자본의 시대로 편입된 남아공에서 교육과 자본을 갖추지 못한 대다수 흑인의 삶은 고단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따금 흰 갈매기들이 종이비행기가 날듯 떼를 지어 밤하늘로 흩어졌다. 남위 34도. 북위 37도의 서울에서 적도를 기준으로 같은 거리만큼 내려왔다. 장구 모양의 오리온 별자리도 거꾸로 뒤집혀 있었다. 멀리서 뱃고동 소리가 울렸다. 이곳에 처음 발을 디뎠던 유럽인들도, 원주민들도 뱃고동 소리를 들으며 테이블마운틴을 올려봤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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