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나얀™♡【여행】

그녀가 안아주던 날, 모텔에 가다

피나얀 2006. 12. 9. 21:16

 

출처-[오마이뉴스 2006-12-04 09:35]



[그 여자 김남희] "점점 자전거에서 내려오기 싫은데…. 어쩌지?"

 
▲ 비자나무 숲으로 가는 길.
ⓒ2006 김남희
"북제주군 조천의 비자숲은, 배배 꼬인 분재 같은 나, 끄덕하면 세상의 상처를 운운하는 나를, 그렇게 우람하고, 그렇게 팽팽하게 세워서는, 같이 간 너의 외로움마저도 푹 젖게 하고, 벌쭉 열리게 해서는, 온 숲이 한바탕 처녀매미로 찢어지게 하고는, 솨솨솨 그 숲바람 소리에 아득아득 자물 쓰게 할 숲이었지." - 고재종의 <비자 숲 바람소리> 중

'숲'을 모국어로 발음하면 입 안에서 맑고 서늘한 바람이 인다.

이렇게 말한 이 땅의 소설가가 있었다. 나는 지금 맑고 서늘한 바람이 이는 그 숲에 서 있다. 언제부터인가, 사람에게 위로받지 못할 때면 숲으로 갔었다. 말이 없이도 숲의 나무들은 벗이 되어주었고, 손이 없이도 나무들은 상처를 쓰다듬어 주었다. 나는 오래된 나무의 등에 기대어 잠시 흐느끼다 돌아섰었다. 그렇게 숲은 내 마음의 산소호흡기가 되었다.

한 편의 시 때문에 오래 품어온 제주의 숲이 있었다. '비자림'. 제주를 떠올릴 때면 나는 북제주군 조천에 있다는 비자림이 떠올랐고, 비자림을 기억할 때면 늙은 나무들이 따로 또 같이 서 있다는 그 숲에 일렁이는 바람을 생각하곤 했다.

가는 비가 흩뿌리는 아침, 비자나무들이 숲을 이루며 서 있는 곳으로 향했다. 숲은 두렵지 않을 만큼 어두웠고, 부시지 않을 만큼 밝았다. 그 숲에 늙은 나무들이 있었다. 300년에서 800년을 산 비자나무 2800그루. 나무와 나무들은 서럽지 않을 만큼 떨어져 있었다.

숲에는 우리뿐이었다. 몇 발자국 앞서 걷는 내 뒤로 이 남자는 우산을 들고 따라왔다. 나무와 나무 사이의 거리만큼이나 우리 둘 사이의 거리도 좋았다. 평소 나를 웃게 하던 그의 장난기가 잠든 숲의 고요를 깨면 어쩌나 했던 건 내 기우였다. 나만큼이나 이 남자도 숲에서 말이 없었다.

우리는 별말도 없이 그저 느리고 느린 발걸음으로 나무 사이를 걸었다. 그 사이 세 마리의 노루를 만나고, 길을 건너던 어린 족제비 한 마리와 오래도록 눈을 맞추기도 했다.

▲ 육지에서 끝난 가을이 제주에는 여전히 남아 있다.
ⓒ2006 김남희
늙어도 늙지 않는 나무들을 끌어안고 잠시 서 있을 때, 내가 아는 육지의 모든 숲이 떠올랐다. 울진의 소나무숲과 오대산의 전나무숲, 점봉산의 자작나무숲과 보길도의 동백나무숲, 그리고 안면도의 모감주나무숲까지. 숲의 성성한 기운으로 촉촉하게 젖은 내가 그를 돌아보며 말했다.

"상규야…."
"네, 선배?"
"더 이상 부족할 게 아무것도 없는데…, 단 하나가 아쉽다."
"씨, 그게 나라는 거야?"


눈치 빠른 이 남자, 말 안 해도 알 건 다 안다.

"나는 뭐 좋기만 한 줄 알아?"

항변하는 이 남자, 좀 더 놀리고 싶어진다.

"넌 지금 인생의 절정기 아니야? 그토록 흠모하던 나랑 같은 방을 쓰면서 다니고 있으니."
"선배가 오해하고 있는 것 같은데. 나, 더 이상 김빠 아니거든. 선배랑 다니면서 환상 다 깨졌어."


나는 목소리에 쓸쓸한 기운을 듬뿍 담아 대답했다.

"그래, 다들 그랬어. 내 실체를 알고 나면 다 떠나더라고."

마음 약한 이 남자, 벌써 수습 분위기에 들어가고 있다.

"선배, 농담이야, 농담. 사람이 뭐 농담 한 마디에 그렇게 예민하게 반응하고 그래?"

 
▲ 걸음을 옮길 때마다 가을이 바스락거린다.
ⓒ2006 김남희
비자림에서 나와 다시 해안도로를 달렸다. 바다에서 돌아오는 고기잡이배들이 보였고, 바다는 자꾸 내 곁으로 밀려와 안겼다. 갈매기 몇 마리가 끼룩거리며 날아갔다.

월정 해수욕장을 지나고, 김녕 해수욕장과 함덕 해수욕장을 지나 자전거는 쭉쭉 나아갔다. 물빛이 고와서 가끔 자전거를 멈추기도 했다. 그 사이 하늘이 흐려지더니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바람이 거세졌다.

신기하다. 자전거를 타고 있을 때 바람은 늘 맞바람이다. 앞으로 나가려는 나를 뒤로 밀어내는 바람이다. 내 얼굴을 더듬고, 내 몸을 밀어대는 바람의 거친 손길이 나쁘지 않다. 거리의 불빛과 바다에서 밀려오는 비릿한 내음에 내 몸이 생생하게 깨어나고 있었다. 여전히 내 뒤에서 교통상황을 통제(?)하며 달려오는 이 남자에게 말했다.

"상규야, 너와 같이 올 수 있어서 참 좋아."
"선배, 갑자기 왜 그래?"


불빛 탓이었을까. 이 남자의 얼굴이 살짝 붉어진 듯 보였다.

나는 조금씩 자전거 위에 앉아 있는 시간을 사랑하게 되었다. 몸과 땅, 몸과 자전거 사이의 구체적이고 직접적인 접속이 좋아졌다. 자전거 위에서 내 몸은 예민했다. 눈으로 구별되지 않는 미세한 오르막과 내리막에도 몸은 깨어나며 반응했다. 나는 자전거가, 혹은 내 몸이 읽어내는 땅에 대한 그 생생한 구별이 경이로웠다. 자전거 위에서 나는 익숙한 것들을 새롭게 보는 연습을 하고 있다.

모슬포에 도착할 무렵, 어쩌면 나는 자전거 위에서 내려오기 싫을지도 모르겠다.

▲ 늙은 비자나무 몸에 손을 얹고 나무의 푸른 기운을 느껴본다.
ⓒ2006 김남희
▲ "푸른 바다 저 멀리 김남희도 넘실 거린다"
ⓒ2006 박상규
[그 남자 박상규] "12월의 첫날, 그녀가 나를 안았다"

 
▲ 피톤치드 향 가득한 산림욕을 즐기는 박상규.
ⓒ2006 김남희
빨래는 아침이 될 때까지 마르지 않았다. 나는 민박집 전기 난로를 이용해 내 속옷과 김남희의 양말을 말렸다. 김남희는 뒤돌아 앉아 송고할 기사를 최종 검토하고 있었다. 우리가 하룻밤을 보낸 방에 노트북 자판 소리가 작게 울렸다.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김남희는 갑자기 몸을 휙 돌렸다.

"오해하지 말고 들어. 넌 지금까지 무슨 힘으로 삶을 견뎌 왔냐? 별것도 없으면서, 그리고 기댈 곳도 없으면서 넌 참 긍정적으로 사는 놈 같아. 예쁘게 커서 참 다행이고…. 갑자기 널 한 번 안아주고 싶은데, 그래도 되지?"

나는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였다. 김남희는 나를 안았다. 그녀는 내 등을 작게 토닥였다. 나도 그렇게 해야 할 것 같아서 그녀의 등을 두드렸다. 잠시 후 그녀는 다시 원고 검토에 집중했다. 그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뜨거운 난로 앞에 앉아 김남희의 양말을 말리는 것뿐이었다. 그녀의 양말에서 하얀 김이 모락모락 피어났다.

12월 첫날, 낯선 여자의 품에 안기며 하루를 여는 게 나쁘지 않았다. 우리는 지금 비자림으로 달리고 있다. 중산간 도로에는 차가 없고 공기를 가르는 건 우리의 자전거뿐이다. 숲으로 향하니 가슴이 떨린다. 내 자전거 청구도 그 떨림을 느꼈는지 바퀴 회전이 이전과 다르다.

비자림은 그 이름이 풍기는 느낌대로 신비롭다. 수많은 비자나무는 마치 서로 합의라도 한 듯 바람이 자유롭게 드나들 만큼의 공간을 두고 땅에 뿌리를 내렸다. 비자나무 사이에는 아직 다 낙엽을 떨어뜨리지 못한 나무들이 잎을 붉게 물들이고 있다. 나무와 나무 사이에 난 작은 길에는 낙엽이 가득하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내 발밑에서는 이미 육지에서 끝나버린 가을이 바스락거린다.

족히 500년은 살았을 법한 비자나무 하나를 안았다. 나무를 안은 건 나인데, 나를 위로하는 건 숲이다. 나는 왜 사람 사는 세상에서 쌓인 응어리를 나무들이 사는 숲에서 풀고, 사람에게 받은 나의 상처는 왜 사람이 살지 않는 숲에서 아물고 새살이 돋는 것일까. 그런 나를 비자림의 족제비가 오래도록 쳐다보더니 다시 숲으로 사라진다.

 
▲ "줄 맞춰서 앞으로!"
ⓒ2006 김남희
숲을 등지고 다시 바다로 가는 길. 김남희가 한층 '업' 됐다. 10월 하늘이 세수를 마친 물이라면 그건 분명 제주의 바다가 됐을 것이다. 제주의 바다는 연한 푸른빛이다. 그 바다를 오른쪽으로 끼고 달리며 김남희가 소리치듯 말했다.

"상규야, 너랑 함께 여행 오길 참 잘한 것 같애."

분명 좋은 말이다. 난 농담은 잘 받아치지만 좋은 말 앞에서는 언제나 버벅거린다. 김남희는 내게 몇 가지 더 제안했다.

"상규야, 내년 여름엔 우리 '제주 숲 기행' 하자. 그땐 텐트를 들고 오는 거야. 어때?"
"자전거 타고, 텐트랑 침낭 들고 다니면 좀 무거울 텐데."
"뭐 어때, 어차피 상규 니가 들 거잖아. 김빠면 그 정도는 해야 하지 않겠어? 그때는 '어색남녀'가 아니라, '수상한 남녀 제주도 숲 기행'으로 하자."


우리의 대화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야! 박상규, 나 내년 여행 마치고 올 때까지 휴가 쓰지 마라."
"나한테 선배가 그 정도로 비중 있는 인물이라고 생각해?"
"아니야?"
"내가 내년까지 애인이 없을 것 같아?"
"응! 장담한다."


제주 해안도로를 달리며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맞바람이 불어 우리의 전진은 더뎠지만, 늘어난 시간은 대화로 채워졌다. 오늘 하루는 제주에 내려온 후 가장 긴 거리를 달렸다. 제주시에 도착했을 땐 이미 캄캄한 저녁이었다.

▲ 오늘 우리가 머문 모텔방 풍경. 족구를 해도 될만큼 넓다.
ⓒ2006 박상규
김남희와 나는 오늘 하루 모텔에서 밤을 보내기로 했다. 다른 이유 때문은 아니다. 인터넷을 이용하기 위해서다. 매일 여행기를 쓰면서도 인터넷을 이용할 수 없어 많이 힘들었다. PC방에 들릴 때마다 많은 시간을 허비하는 것도 아끼고 싶었다.

우리가 잡은 모텔 방은 10평이 넘는다. 이전에 잤던 민박집에 비하면 족구 정도는 능히 할 수 있는 크기다. 침대는 두 개 있는데, 재밌게도 하나는 더블이고 나머지 하나는 싱글이다. 더블 침대는 두 사람이 각종 여러 가지 일을 기획하고 실천할 수 있을 만큼 크다. 침대와 침대 사이에는 원앙 한 쌍도 있다. 휴지 한 통도 '완비' 돼 있다.

나는 오늘 낯선 여자의 포옹으로 아침을 맞이했고, 저녁에는 그 여자와 함께 모텔에 왔다. 길가는 사람들 잡고 물어봐도 모두 나쁜 하루는 아니라고 말할 것 같다. 오늘을 보내고 나면 우리의 여행은 하루만 남게 된다.

그나저나 모텔 안이라서 그런지 오늘 글이 정말 안 써진다. 앞에 앉은 김남희 자판 치는 속도가 장난 아니다.

▲ 침대와 침대 사이 묘한 분위기를 풍기며 앉아 있는 원앙 한 쌍.
ⓒ2006 김남희
▲ 모텔이라서 그런가? 오늘은 더욱 글이 안 써진다.
ⓒ2006 김남희


덧붙이는 글


기자소개 : '이렇게 죽을 수도, 이렇게 살 수도 없는 나이' 서른넷에 방 빼고, 적금 깨 배낭을 꾸렸다. 인생의 전반전 마흔까지는 유목민으로 살겠다며 낯선 길 위에서 헤매고 있다. '진심으로 지극한 것들은 다른 길을 걷더라도 같은 길에서 만나게 되는 법'이라는 말을 되새기며 인연에 매이지 않는 법을 배우는 중. 아직도 격문에 고양되는 나이인지라 요즘의 좌우명은 폴 엘뤼아르의 '실수에 살고, 향기에 살고'이다. 인디언의 방식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싶다는 모진 꿈을 꾸며, 버리지 못한 것들로 가득 찬 배낭을 짊어지고 오늘도 끙끙거리며 길 위에 서있다. www.skywaywalker.com을 집주소로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