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나얀™♡【여행】

눈이 시리도록… 넓다

피나얀 2006. 12. 9. 21:39

 

출처-[세계일보 2006-12-08 09:30]




이곳이 도대체 호수인가, 바다인가.

 

지구의 담수 20%가 담겨 있다는 이 거대한 호수 앞에 서자, 걷잡을 수 없는 경외감이 밀려든다. ‘지구의 푸른 눈’, ‘시베리아의 진주’ 등 감탄 성격의 갖가지 수식어도 이래서 나왔을 것이다.

 

러시아 시베리아 남부의 바이칼(Baikal).

 

정설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지만, ‘한민족의 시원지’라는 주장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어 바이칼은 그 물리적 거리만큼 멀고 낯선 곳은 아니다. 바이칼 호수 박물관 방명록에 “바이칼 호수 물을 원 샷 !”, “나이에 놀라고 규모에 감동했어요” 등 한글 문구가 가득할 정도로 바이칼은 한국인에게도 제법 친숙한 여행지가 되고 있다.

 

# 수평선이 보이는 호수, 바이칼

 

바이칼 호수 면적은 3만1500㎢. 제주도를 17개 이어붙인 것보다 넓다. 초승달 모양인 호수 양끝을 이은 직선거리는 636㎞로 서울에서 부산까지 거리의 1.5배가 넘는다. 호수 어디를 가도 끝없는 수평선이 펼쳐지고, 30여개의 섬마저 둥둥 떠 있으니 어찌 호수라 여길까. 바이칼은 매년 2, 3㎝ 확장되고 있어 수백만년이 지나면 바다가 될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한겨울이면 끝이 보이지 않는 호수 전체가 견고한 빙판으로 변하고, 그 위로 차가 다닌다. 호수 남쪽에는 웅장한 하마르 다반 산맥이 버티고 있다. 몽골까지 뻗쳐 있는 이 산맥은 부랴트의 수도 울란우데에서 바이칼 남부 도시인 슬류댠카까지 호수와 평행선을 이루며 장관을 연출한다. 러시아횡단철도(TSR)가 바로 이 구간을 달린다.

◇바이칼 호수와 앙가라 강의 접경 도시인 리스트비얀카에서 바라본 바이칼 호수.

슬류댠카에서 만난 미국인 여행객은 “TSR를 타고 떠나는 바이칼 호수 여행의 백미는 ‘좌(左) 하마르 다반, 우(右) 바이칼’”이라며 “왼쪽으론 소나무·자작나무 숲과 함께 웅장한 산맥이 이어지고, 오른쪽엔 바이칼 호수가 펼쳐진다”고 말했다. 광활한 호수 전체가 붉게 물드는 바이칼의 낙조도 일품이다.

 

지는 태양을 품는 하마르 다반은 호수 남쪽 지역을 여행할 때 늘 바이칼을 따라다닌다. 마치 1727년 청과 러시아의 국경 협약인 캬흐타조약으로 러시아로 넘어간 옛 몽골 땅 바이칼을 그리워하는 듯….

 

# 샤먼 바위의 전설이 깃든 바이칼

 

최고 수심 1637m로 지구에서 가장 깊은 호수인 바이칼은 12월 말부터 얼어 4월쯤부터 녹기 시작하며, 6월 초가 되면 모든 얼음이 사라진다. 하지만 오래된 여행 서적을 뒤져보니 결빙, 해빙 시기가 다르다. 11월 중순부터 얼기 시작하고, 적어도 6월 말까지 빙판이 이어진다고 적혀 있다.

 

 지구 온난화로 광활한 빙판을 내달리는 트럭을 볼 수 있는 시기도 조금씩 짧아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호수 전체가 빙판이 돼도 호수와 앙가라강의 접경 지역은 얼지 않는다. 336개 지류로부터 물을 공급받는 바이칼은 오직 앙가라강으로만 물을 흘려보낸다. 한겨울에도 유속이 빨라 이곳만 얼지 않으며, 수온이 높아 하얀 연기를 뿜어댄다.

 

앙가라강이 겨울에도 얼지 않는 이유를 샤먼 바위에 얽힌 전설에서 찾기도 한다. 아들 336명과 아름다운 딸 앙가라를 둔 바이칼 신은 앙가라를 이웃 이르쿠트와 혼인시키려 했다. 그러나 앙가라는 예니세이라는 청년을 찾아 야반도주하다 바이칼 신이 던진 바위에 깔려 숨진다. 앙가라가 숨진 곳이 바로 샤먼 바위다. 앙가라가 지금까지도 청년을 잊지 못해 흘리는 눈물이 앙가라강이 됐고, 눈물이 계속 흐르기에 강이 얼지 않는다는 것이다.

 

2500만살이 넘은 호수의 중간 쯤에는 ‘샤머니즘의 성소’로 불리는 알혼 섬이 자리하고 있다. 알혼 섬에는 6∼10세기에 만들어진 고분과 벽화에 샤머니즘의 흔적들이 가득하다. 일부 학자들은 알혼 섬 인근의 유적과 언어 등을 연구해 ‘바이칼에 살던 사람들 일부가 한반도로 흘러들었다’고 주장한다. 한민족과 깊은 연관이 있을 수 있다는 남시베리아의 이 웅장한 호수 앞에 서니 잔잔한 감동이 밀려온다.

 

여행이 끝날 때쯤 몽골인 가이드 바트(26)씨가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 뭐냐”고 물어 “여행 내내 바다로 착각했는데 이제야 호수라는 사실을 깨닫고 놀라는 중”이라고 답했더니 한참을 웃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