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매거진t 2007-01-02 08:00]
<거침없이 하이킥>의 호빵
참을 수 없는 허기짐 때문에 참을 수 없었던 적이 있다. 모든 것이 여유롭고 정상적인 때의 허기짐은 미식을 즐기기 위한 최적의 조건이 되지만 모든 것이 괴롭고 비정상적인 때의 허기짐은 스스로에게 동물이 아닌 인간이 맞느냐는 질문을 끊임없이 던져야 할 정도로 비참하기만 하다. 그런 질문을 던지는 와중에도 손은 먹을 것을 향하고 입은 쇠도 씹어 먹을 듯 우걱우걱하고 있으니 그 놈의 배는 왜 ‘이유를 불문’하고 ‘시도 때도 없이’ 고파오느냐는 말이다. 산 사람은 살아야 하니 먹을 수밖에
<거침없이 하이킥>의 나문희 여사도 주책없이 배가 고픈 사람. 친하게 지내던 친구 개성댁이 주검으로 발견되어 자리 펴고 누워 눈물을 흘리고는 있지만 며느리가 갖다놓은 호빵도 모른 척할 수는 없다.
눈물을 흘리면서도 가슴을 탁탁 쳐 가며 꾸역꾸역 호빵을 먹는 나문희 여사는 평범한 우리들의 모습. 아무리 깊은 슬픔에 잠겨 있다가도 먹어야 사는 우리의 인생을 보고 있자니 함께 들려오는 방청객의 웃음소리가 너무 밝아 오히려 더 서글프게만 느껴진다.
드라마 <파리의 연인>에서 회사 잘린 다음날 식탁에 앉아 ‘눈물은 아래로 흘러도 밥숟가락은 위로 간다’라며 밥을 먹는 강태영(김정은)도 그랬겠고, 조금 심하게 영화 <퍼니게임>에서 괴한들의 침입으로 모든 가족이 죽음의 공포에 시달리는 극한의 상황에서도 게오르그 씨가 주방으로 달려가 했던 일은 핸드폰으로 구조요청을 하는 것보다 빵을 먹는 것이었으니 죽음보다 앞서는 식욕 앞에, 나 스스로에게 느끼는 자괴감은 배고픔보다 더 참기 힘든 고통이 아니었을까 싶다. 아마 나문희 여사도 호빵을 다 먹고 난 뒤에는 더 슬피 울지 않았을까? 먹는다는 것의 서글픔, 그러나 행복함행여 무미건조한 듯한 하루 속에서 밥 한 그릇에 김치 한 보시기를 얹은 덤덤한 식탁을 받아드는 반복된 일상이 지루하다 생각이 될 때가 있다면 나문희 여사나, 강태영이나, 게오그르 씨를 떠올려보자. 그냥 그런 무던하고 평범한 하루가 사실은 얼마나 행복한지, 살기 위해 악착같이, 혹은 눈물을 흘리며 목 메여 밥을 먹지 않은 것만으로도 얼마나 행복한지 생각해볼 수 있을 테니까.
거기에 먹고 싶은 것을 원하는 때 먹을 수 있고 그 음식을 먹으며 웃을 수 있다면 그것은 정말 해피한 인생. 그저 추운 겨울날 따끈한 호빵 한 개를 웃으며 먹을 수 있는 것만으로도 우리에겐 무릎을 꿇고 감사해야 할 행복인 것이다.
인간이란 변함없이 ‘이유를 불문’하고 ‘시도 때도 없이’ 배가 고픈 비참한 존재이지만 반면 호빵 하나에서 행복과 위안을 느낄 수 있는, 우리 생각보다 훨씬 많이 행복할 수 있는 존재이기도 하다. 아직까지는 살기 위해 먹는 날보다 먹기 위해 사는 날들이 더 많은 것이 안심이다. 너무나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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