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오마이뉴스 2007-01-10 11:21]
길은 시작부터 가팔랐다. 무릎까지 빠지는 눈은 가파른 산을 더 가파르게 느끼게 했고 랜턴으로 비춰지는 세상은 좁은 시야를 더 좁아 보이게 했다. 산은 고요하고 지나는 등산객 하나 없어, 네 중늙은이는 서로의 랜턴 빛에 의하여 존재를 교신하며 산행을 계속했다.
열 몇 번을 올라보는 대청이지만 늘 올라보면 그곳엔 작은 실망이 눈잣나무처럼 부복해 있었다. 대청은 그 자체가 미미하다. 기껏해야 배배 꼬여 땅 위를 벌벌 기는 키 작은 나무들과 한 무더기의 대청봉이라 새겨진 바위와 바람뿐이었다. 그럼에도 사람들이 한사코 대청을 기어오르는 이유는 대청이 갖는 위치, 1708m의 높이와 그 높이에서 조망 되는 여러 경관들, 아득히 바라보이는 동해의 푸른 물과 기암괴석이 용트림하는 이리저리 뻗은 능선들, 유리알 같은 계곡들을 발아래 거느렸기 때문이리라. 세상 어느 것이나 높이 선 자는 그 자체보다 더 위대해 보이는 법인가 보다.
오늘 일출 보기는 그른 모양이다. 동녘 하늘에 구름이 짙게 깔려있고 대청봉 주변으로 운무가 싸고돌아, 기다려 본다 해도 해 보기는 난망할 것 같았다. 허망했다. 천릿길을 달려 왔는데... 노력하는 것은 인간의 몫이지만 이루어지게 하는 것은 하늘의 몫이란 걸 새삼 느꼈다. 위로를 하고자 함인지 돌아보니 서녘에 달이 떠 있었다. 짙은 운무 속에서 창백한 얼굴을 하고 있는 달....우리를 보고 있었다. 나 아직 지지 않았다, 그가 말하는 듯하였다.
산천경개를 구경하고 사진을 찍어가며 쉬엄쉬엄 하산길에 접어들었다.
눈이 푸근히 쌓인 소청에서 양 폭까지 엉덩이 썰매를 타고 하산하는 사람도 더러 보였다. 나도 몇 번 즐겼으나 바지 가랑이 속으로 눈이 들어와 그만 두어야 했다. 휘운각 부근의 잘 생긴 눈꽃 나무아래에서 양갱으로 아침 요기를 때우고는 하산을 계속했다. 소공원에 도착하니 12시를 조금 지났다. 목욕을 하고 식사를 하고 차를 몰아 서울로 돌아왔다. 저녁 7시였다.
우리는 그곳에 무얼 보러 갔을까? 뜨는 해? 지는 달? 눈 덮인 산? 1708m라는 높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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