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나얀™♡【여행】

폐사지엔 아직도 허균의 흔적이 남아있고

피나얀 2007. 3. 11. 19:22

 

출처-[오마이뉴스 2007-03-11 12:28]


 

▲ 법천사지에 아무렇게 놓여있는 도량석. 연화문 문양이 매우 아름답다.
ⓒ2007 강기희
발목이 덮이는 신발을 찾아 신고 신발끈을 조인다. 언제나 신발끈을 조일 때의 마음은 비장하다. 그 비장함 속에는 이번 여행에서 내가 버려야 할 것들과 잃어야 할 것들이 다 들어있다.

빈들에 섰을 때 바람이 잠시도 머물지 않고 내 몸을 관통하면 될 것이다. 그렇게만 된다면 신발끈 조여맨 보람이 있다.

신발끈을 조이는 것은 참 나를 찾는 일과 같아

어딘가를 향해 길을 떠난다는 것은 자신의 또 다른 모습을 확인하는 일이다. 낯선 도시의 어느 거리에서나 빈 들판에서나 자신을 확인시켜줄 마음의 거울이 있다. 그것은 길 모퉁이를 돌면 나타나는 아담한 흙담 위에 있을 수도 있고, 바람에 날리는 빈 과자 봉지일 수도 있다.

마음의 거울을 발견하는 것은 일상의 깨달음이다. 깨달음을 얻은 이의 발걸음은 낮고 조용하다. 마음이 평온함에 얼굴 표정도 자연의 일부가 된다. 여행지에서 그런 여행자를 만나면 반갑다. 있는 듯 없는 듯 그런 이의 곁에 머물다 어느 순간 사라져도 바람처럼 보낼 수 있어 좋다.

지난 4일 강원도 원주시 부론면 법천리에 있는 법천사로 가기 위해 애초 문막을 지나 부론면으로 가려던 길을 접고 귀래면 방향으로 가기로 했다. 조금 돌아간다고 느껴질 바람이 달라질 일 없을 것이며, 사라진 법천사의 대웅전이 세워지지도 않을 것이었다. 문막휴게소에서 가락국수로 점심을 때우고 다시 오던 길을 되짚어 흥업면으로 갔다.

귀래면을 지나 부론면 법천사지로 가는 길은 구불구불한 게 영락없는 촌사람들의 길이었다. 바쁠 일도 없으니 속도를 줄이고 한껏 여유를 부렸다. 지게 작대기를 목 뒤에 걸치고 아라리 가락 흥얼거리며 산길을 휘적휘적 올라가는 시골 노인의 걸음처럼 자동차 바퀴를 천천히 굴렸다.

속도를 줄이니 난데없는 개구리 울음소리까지 들려왔다. 신기한 마음에 가던 길 멈추고 논바닥을 들여다보니 개구리들이 와글와글 봄 노래 부르며 사람의 귀를 홀리고 있었다. 입에서 저절로 "이런, 녀석들하고는"이라는 말이 나왔지만 봄은 어느새 겨드랑이를 파고 들어왔다.

정겨운 시골 길을 스치듯 지나니 남한강이 모습을 드러냈다. 예전 같으면 남한강 상류인 정선에서 뗏목이나 소금배를 타고 내려왔을 것이지만 댐이란 게 생기면서부터 물길은 군데군데 동강이 났다. 언젠가 정선에서 강을 향해 길게 오줌발을 세웠던 일을 떠올리며 그 물이 언제쯤 이곳을 지나갔을까 짐작해보는 일도 여행자만의 즐거움이다.

강을 건너면 경기도 여주 땅이고 그 옆은 충청도 땅이다. 강원도 땅에서 경기도와 충청도를 바라보는 것도 색다른 재미를 주었다. 오래전 야간통행금지가 있던 시절 부론면 사람들은 통행금지 시간이 되면 통행금지가 없는 충청도 땅으로 가서 아침이 될 때까지 술을 마셨다는 웃지 못할 시절의 이야기가 전해지는 곳이었다.

▲ 법천사지 발굴 모습. 멀리 민가가 있는 곳까지 법천사지 땅이다.
ⓒ2007 강기희
▲ 법천사지 당간지주.
ⓒ2007 강기희
법천사지는 부론면 소재지에서 그리 멀지 않았다. 남한강 주변에 많은 절집이 있었다는 것은 뱃길이 좋았기 때문일 터인데 법천사도 그와 무관하지 않았다. 조선조 이전의 절집이란 게 단순히 불법을 위해 존재한 것보다는 불국토와 깊은 연관이 있어 유사시 전진기지 역할도 수행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허균이 다녀간 자리에 여행자의 발길이 머물고

겉으로 보이는 법천사는 폐허와 다름없었다. 긴 겨울을 나느라 발굴조사는 멈추어져 있고 발굴터는 천막으로 덮여 있었다. 법천사의 규모를 짐작할 수 있는 것은 천막이 덮여있는 정도였다. 발굴 현장에 있는 느티나무는 몸을 뭉텅 바람에 내어주고도 싹 틔울 준비를 하고 있었다.

법천사는 언제 지어졌으며 어느 때 사라졌는지 정확한 기록이 남아있지 않다. 법천사가 신라 성덕왕 24년인 725년에 창건되었다는 설이 있으나 정확한 기록이 없으니 그야말로 설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법천사가 신라 때 창건된 절이라는 설에 대해선 이론의 여지가 없다.

법천사의 소멸에 대해서도 정확한 기록이 없다. 법천사가 임진왜란을 맞아 소실되었다는 추측만 무성하다. 그 추측을 가능케 하는 것은 유교 사회에서 스스로 부처를 믿는다고 공언한 교산의 '유원주법천사기(遊源州法泉寺記)'에 나와있는 내용이 근거가 된다.

허균이 법천사의 이웃마을인 손곡리에 있던 스승인 손곡 이달의 집에 머물며 손곡 이달과 함께 법천사를 찾았다. 이때 남긴 기문에 법천사는 난리통에 불타 없어졌다고 밝히고 있으며 그때가 1609년 가을이었다.

애초 절집의 입구가 되는 당간지주는 마을의 끝에 자리 잡고 있었다. 예전 사람들이 오고 간 길은 당간지주 너머의 소로길이었다. 불타 없어진 법천사터엔 언젠가부터 민가가 하나 둘 생기기 시작했으며, 그 땅이 얼마나 큰지 하나의 마을을 형성할 정도였다.

문화재 발굴이 시작되면서 민가들은 철거되어 다시 법천사터로 바뀌고 있지만 6미터가 넘는 당간지주만 보아도 절집의 규모가 짐작되고 남았다. 법천사 앞으로 흐르는 개울물이 쌀뜨물로 가득 찼다니 설악의 미천골이 따로 없었다.

법천사지에 남아있는 문화재로서는 당간지주와 국보 59호인 법천사지 지광국사 현묘탑비뿐이다. 11세기를 대표할만한 걸작으로 평가받고 있는 부도탑비는 오랜 세월이 흘렀음에도 멋스러움을 간직하고 있었다.

▲ 법천사지 지광국사 현묘탑비. 이수에 새겨진 문양이 극치.
ⓒ2007 강기희
▲ 귀부는 거북이지만 머리는 용 머리를 하고 있다.
ⓒ2007 강기희
부도탑비와 함께 있어야 할 지광국사 현묘탑은 국보 101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일제강점기 일본 오사카로 반출되었다가 돌아온 후 경복궁 뜰에 머물고 있다. 현묘탑 또한 현묘탑비와 함께 당시의 부도탑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부도로 기록될 정도다.

법천사의 소멸을 지켜보았을 느티나무는 말이 없는데

현묘탑과 현묘탑비는 지광국사가 법천사에서 입적한 지 18년 만에 완성되었다고 하니 그 정성이 시대의 걸작을 만들어낸 것이라 할 수 있다. 허균의 법천사지 기문에 의하면 현묘탑비가 두 동강이 나 잡초 속에 뒹굴고 있다고 기록했지만 지금은 당당하게 옛 법천사터를 굽어보고 있었다.

비신에 있는 용문양이나 용 머리를 한 귀부머리는 살아있는 듯 생동감이 넘쳐 흘렀다. 현묘탑과 탑비를 지켜주던 탑전은 흔적만 남아있고 주변엔 짝을 잃은 부도들이 제멋대로 모여있다. 도량석의 연화문 문양은 사람들의 손을 탔는지 반질반질하고 광배는 홀로 바람을 맞고 있었다.

광배의 주인인 석조불상은 지난 2000년 도난당했다가 되찾은 후 현묘탑처럼 제 자리로 돌아오지 못하고 원주시립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500여 년 전 허균이 그랬듯 애잔한 마음에 도량석과 광배를 어루만지며 지난 시절의 풍상을 물어보지만 돌아오는 답은 없다.

어스름 해가 저물고 법천사지를 떠나야 할 시간이 되었다. 법천사의 아픔을 확인하려면 차라리 느티나무에게 물어봄이 빠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느티나무의 나이를 짐작건대 법천사가 불탈 때 그 모습을 온전히 지켜보았을 듯싶었다.

700여 년의 역사를 이어오던 법천사가 하루아침에 폐허로 변하게 된 연유를 느티나무는 알고 있을 터였다. 느티나무가 수백 년을 살아오면서도 여전히 생명을 움 틔우고 있는 이유는 법천사의 역사적 진실을 증언하려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내게 법천사가 소멸하던 순간을 말해주지 않겠니?"

느티나무를 감싸 안고 그 많은 전각과 불상들이 불타 없어질 때의 광경을 물어보았다. 귀를 나무 가까이 대고 한참을 기다렸지만 느티나무는 끝내 입을 열지 않았다. 느티나무는 수백 년이 흐른 지금까지 당시의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듯 말이 없었다.

힘들 것이다. 누가 불을 질렀고 누가 불타 죽었고 하는 이야기를 어찌 쉽게 할 수 있을까 싶다. 어느 시간 간직했던 이야기를 털어놓고 싶을 때가 되면 다시 여행자를 불러달라고 부탁한다. 부르기만 하면 다시 신발끈을 조여매고 법천사지에 있는 느티나무를 찾아오리라 약속한다.

역사적 증언 대신 바람소리만이 귓전으로 윙윙, 파고드는 저녁 무렵 여행자는 한결 가벼워진 발걸음으로 법천사지를 떠난다. 여전히 개구리 울음소리가 나는 들엔 손곡 이달이 능청능청 어린 허균의 손을 잡고 걷는 듯하다. 여행자도 그들처럼 버느나무 가지가 바람에 흔들리듯 능청능청 그들을 따라 걷는다.

▲ 귀부에 새겨진 '王' 문양. 오랜세월이 흘렀지만 뚜렸하다.
ⓒ2007 강기희
▲ 법천사의 소멸을 지켜보았을 느티나무. 말이 없다.
ⓒ2007 강기희

 

▲ 아무렇게나 놓여있는 부도와 광배. 광배 앞에는 팔이 떨어진 석조좌상이 있었다.

 

ⓒ2007 강기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