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나얀™♡【여행】

‘봄망울’ 터지는 소리 들리시나요… 남해 ‘앵강만’

피나얀 2007. 3. 15. 20:00

 

출처-[국민일보 2007-03-15 15:42]

 


 
나비 한 마리가 수채화를 닮은 앵강만 유채꽃밭에서 화려한 봄꿈을 꾼다. 검은 갯바위를 수놓은 해초는 더욱 푸르고 햇살에 부서지는 봄바다는 더욱 눈부시다. 늙은 어머니를 향한 서포 김만중의 그리움을 실어 나르던 파도가 앵강만 해안선과 입맞춤을 한다. 그 때마다 파도에 닳아 반들반들한 몽돌이 춘정에 겨운 꾀꼬리 노랫소리로 맞는다.
 
서포 김만중의 마지막 유배지인 노도를 품은 앵강만은 ‘꾀꼬리의 눈물바다’로 불린다.
 
사면이 쪽빛 바다로 둘러싸인 경남 남해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바다로 꼽히는 앵강만은 마치 나비가 두 날개를 펼친 형상의 남해도 아래쪽에 있다. 서쪽의 설흘산과 북쪽의 호구산, 그리고 동쪽의 금산에 둘러싸인 앵강만은 호수처럼 잔잔한데다 활처럼 휜 해안선을 따라 띄엄띄엄 들어선 포구가 한 폭의 풍경화를 마주한 듯 정겹다.
 
앵강만은 꾀꼬리 앵(鶯)자에 물 강(江)자를 쓰고 있지만 어원에 대해 아무도 그 내력을 모른다. 원천마을에서 만난 한 노인은 비 내리는 밤에 꾀꼬리 울음소리가 나고 꾀꼬리 눈물 같은 빗물이 호수처럼 잔잔한 바다로 흘러내려 ‘꾀꼬리의 눈물바다’로 불렸다는 그럴듯한 해석을 내놓기도 한다.
 
남해의 여느 해안과 마찬가지로 앵강만도 나날이 초록빛을 더하는 마늘밭이 인상적이다. 가파른 등고선을 그리며 산비탈을 내려온 마늘밭은 층층이 앵강만의 푸른 바다를 향해 번지점프하듯 곤두박질한다. 석축을 쌓아 만든 다랑논에서 봄나물을 캐는 아낙과 지게를 지고 산비탈을 오르내리는 촌로는 해안도로를 달리다 만나는 익숙한 봄 풍경.
 
앵강만을 보듬은 포구에는 다랑논으로 유명한 가천마을을 비롯해 홍현, 숙호, 월포, 두곡, 용소, 화계, 신전, 원천, 벽련 등 비슷비슷한 풍경의 마을이 보물찾기하듯 고개를 넘을 때마다 발 아래 아스라하게 펼쳐진다.
 
그 중에서도 가장 인상적인 마을은 남해대교에서 여수만을 바라보는 해안도로를 타고 남쪽 끝까지 달리면 나타나는 가천마을. 앵강만 서쪽 입구에 자리잡은 가천마을은 설흘산과 응봉산이 만나 바다로 흘러내리는 급경사 중간쯤 있는 한적한 포구로 거대한 설치미술작품과 다름없다.
 
경사가 워낙 가팔라 밭 갈던 소도 한 눈 팔면 절벽으로 떨어진다는 가천마을은 바다가 지척이다. 하지만 파도가 워낙 드세 배를 정박할 수 없다보니 주민들은 여느 마을과 달리 밭농사와 논농사에 전념할 수밖에 없다. 농토를 한 뼘이라도 더 넓히려고 산비탈을 깎고 석축을 쌓아 계단식 다랑논을 일구기 어언 400년. 허리가 버들가지처럼 휠 정도로 만든 다랑논이 바닷가에서 설흘산 8부 능선까지 100층이 넘도록 촘촘한 등고선을 그린다.
 
‘삿갓배미’란 유명한 일화도 손바닥만한 다랑논에서 유래됐다. 옛날에 한 농부가 김을 매다가 논을 세어보니 한 배미가 모자라 포기하고 집으로 가기 위해 삿갓을 들자 그 밑에 논 한 배미가 숨어 있었다고 한다. 마을 안에는 발기한 남자의 성기와 애기를 밴 어머니의 형상을 한 암수바위 한 쌍과 영화 ‘맨발의 기봉이’ 세트장이 눈길을 끈다.
 
가천마을에서 홍현마을에 이르는 해안도로는 남해 최고의 절경. 까마득한 절벽 아래로 앵강만을 유유자적하는 낚싯배들이 뒷짐 진 선비처럼 한가롭고 구름 틈새로 쏟아지는 햇살은 무시로 황홀한 빛의 잔치를 펼친다.
 
이어 나타나는 두곡·월포해수욕장은 이름 그대로 두곡과 월포마을에 걸쳐 있다. 반원형의 해수욕장은 여인의 피부처럼 매끄러운 백사장과 크고 작은 몽돌이 파도에 쓸리는 소리가 꾀꼬리 울음처럼 아름다운 해안, 그리고 초록색 파래와 조개류에 뒤덮인 갯바위 해안으로 이루어져 있다.
 
신전리의 신전마을과 원천마을은 독살로 고기를 잡던 갯마을. 갯벌에 돌을 쌓아 만든 활 모양의 독살에 물이 빠지면 우럭과 학꽁치 등 온갖 물고기들이 은빛 비늘을 드러낸 채 파닥거린다. 기다렸다는 듯 갈매기를 비롯한 물새들이 날아들어 거울 파편처럼 반짝이는 갯벌에서 물고기와 숨바꼭질을 하는 풍경도 새삼스럽다.
 
바다와 맞닿은 홍현, 숙호, 신전, 원천, 벽련마을에는 방풍림을 겸한 어부림이 거대한 숲을 이루고 있다. 바닷바람과 파도를 막아 농사를 짓고 숲의 그늘을 이용해 어두운 곳을 좋아하는 어류를 불러 모으는 앵강만 사람들의 지혜가 만든 걸작품이다.
 
앵강만을 한바퀴 돈 해안도로가 벽련 마을에서 금산 자락으로 방향을 틀기 직전 만나는 삿갓 모양의 섬은 서포 김만중의 유배지인 노도. 서포는 3년 남짓한 노도 유배생활 중 한글소설인 ‘구운몽’과 ‘사씨남정기’ 등을 집필하고 눈을 감았다. 서포가 생을 마감한 지 300여년이 흘렀건만 노도에는 그가 직접 팠다는 샘터와 초옥터,그리고 허묘가 남아 그의 자리를 쓸쓸히 메우고 있다.
 
금산의 찬란한 해돋이와 설흘산의 장엄한 해넘이, 은빛 비늘처럼 빛나는 바다에서 음표처럼 춤을 추는 물새떼와 몽돌 구르는 소리가 봄의 교향악을 연주하는 곳. 앵강만에서 태어나는 봄은 그래서 더욱 눈부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