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쿠키뉴스 2007-03-29 11:07]
그 섬에 가면 현기증이 난다.
쪽빛 하늘을 머리에 인 푸른 지붕과 하얀 등대, 검은 돌담에 둘러싸인 초록 마늘밭과 노란 유채밭, 젊은 해녀의 눈동자를 닮은 하얀 모래와 검은 모래…. 푸른 도화지에 색색의 물감을 쏟아 부은 원색의 섬, 우도에 가면 배 멀미보다 지독한 현기증이 난다.
‘저 섬에서/한 달만 살자./저 섬에서/한 달만/뜬눈으로 살자./저 섬에서/한 달만/그리운 것이/없어질 때 까지/뜬눈으로 살자.’
30여 년 전 이생진 시인은 제주도 성산포 일출봉
에 올랐다 건너편에 떠 있는 한 섬을 보고 문득 떠오르는 시심을 짤막한 시에 담았다. 시인에게 그 섬의 이름은 별로 중요하지 않았나보다. 그래서 시의 제목도 ‘무명도’였다.
소가 누워 있는 형상의 섬, 시인이 무명도로 명명한 그 섬은 바로 우도(牛島)였다.
성산포에서 3.8㎞ 떨어진 우도는 가랑잎 하나가 쪽빛 바다에 떠 있는 가녀린 모습이다. 하지만 날개를 접은 갈매기들이 현무암 갯바위를 수놓은 우도항에 발을 디디면 섬 속의 섬은 바다에서 바라볼 때와 전혀 다른 느낌으로 가슴을 설레게 한다.
섬 둘레가 17㎞에 불과한 우도는 애써 비경을 찾아 나서지 않아도 된다. 유채꽃 만발한 밭담 사이를 터벅터벅 걷거나 자전거를 타고 해안도로를 달리다 만나는 그 곳이 바로 한 달만 살고 싶도록 아름다운 곳이기 때문이다.
우도팔경 중 제8경인 서빈백사
(西濱白沙)는 우리나라 유일의 산호모래 해수욕장. 눈이 부실 정도로 하얗다 못해 푸른빛을 띠는 모래를 접한 시인은 ‘파도에 부서진 영혼의 분말’이라고 노래했다. 옥색에서 크리스털 블루로 짙어가는 물빛과 밀어를 나누는 연인들 모습이 타히티의 무인도를 무척 닮았다.
전형적인 해녀마을인 우도는 영화 ‘시월애’와 ‘인어공주’를 촬영했던 곳. 상우목동 하우목동 등 바닷가 마을은 끝없이 펼쳐지는 유채밭과 바다 사이에서 처마를 맞댄 채 옹기종기 모여 정담을 나눈다. 해녀의 고장답게 바닷물이 뚝뚝 흐르는 해녀들과 맞닥뜨리는 좁은 고샅을 걷다보면 불현듯 스크린 속으로 들어온 것 같은 착각에 빠지게 된다.
답다니탑으로 불리는 전흘동 북쪽 바닷가 망대에서 하고수동 해수욕장까지 이어지는 한적한 해안도로는 우도가 숨겨놓은 절경. 얼기설기 쌓은 돌담 틈새로 흘러나온 유채꽃 향기에 취해 나비도 고깃배도 너울너울 춤을 춘다. 물질하던 해녀가 내뿜는 숨비소리가 휘파람처럼 낭만적으로 들리는 것도 짙은 유채꽃 향기 때문이리라.
우도에는 서빈백사와 정반대로 검은 모래 해변도 있다. 우도에 딸린 무인도인 비양도에서 해안선을 따라 3㎞ 정도 동남쪽으로 달리면 우도봉 아래 검멀래가 나타난다. ‘멀래’는 ‘모래’라는 뜻의 제주 방언으로 모래가 검기 때문에 검멀래로 불린다.
검멀래를 감싸고 있는 후해석벽(後海石壁)은 우도 제2경. 높이 20m, 폭 30m 정도인 절벽은 부안 적벽강처럼 수많은 책을 켜켜이 쌓아놓은 모양새다. 스피드보트가 검멀래를 향해 질주하다 급회전할 때마다 관광객들의 비명이 절벽에 부딪쳐 산산이 부서진다.
검멀래 끝에 위치한 동굴은 우도 제3경인 동안경굴(東岸鯨窟). 동굴 속의 동굴로 이루어진 이곳은 썰물 때나 입구를 찾을 수 있다. 들어가는 입구 쪽의 굴은 작지만 안에 있는 굴은 매우 넓어 글자 그대로 고래가 살았음직하다.
검멀래에서 우도등대가 있는 우도봉(132m)까지는 걸어서 20분 정도. 섬에서 가장 높은 우도봉에 오르면 발 아래로 섬 전체의 아기자기한 풍광이 내려다보이고, 눈 앞에는 성산 일출봉과 한라산이 에메랄드색 바다를 배경으로 우뚝 솟아 있다. 제6경인 지두청사(地頭靑莎)는 이곳에서 바라본 우도의 풍경을 말한다.
우도봉 정상의 등대공원은 이국적인 분위기가 물씬 묻어난다. 1906년에 세워져 97년 동안 불을 밝힌 구 등탑은 은퇴한 노인처럼 묵묵히 추억을 반추하고, 빨간색 지붕이 인상적인 16m 높이의 새 등탑은 홀로 멸치잡이 어선의 어화가 꽃처럼 피어나는 우도의 밤바다를 지키고 있다. 팔미도 등대와 파로스 등대 등 세계 각국의 등대 모형이 설치된 야외전시장도 볼거리.
우도봉 북쪽의 광활한 초원은 섭지코지
를 떠올리게 한다. 러일전쟁 당시 일본 해군초소가 있던 남쪽 해안은 깎아지른 절벽으로 오금이 저릴 정도로 아찔하다. 하지만 고개를 돌리면 드문드문 푸른 잔디가 돋아나기 시작한 초원이 부드러운 곡선을 그린다. 어머니의 젖가슴보다 포근한 초원, 눈을 감아도 느껴지는 우도의 정겨운 풍경들….
‘우도는 느끼러 오는 곳이지 보러 오는 것은 아니다’는 시인의 말이 새삼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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