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경향신문 2007-03-29 1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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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대에 서면 내가 어부가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다. 하루 이틀 정도 등대에서 머물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도 그랬다. 섬에서 배를 타고 나와, 지방국도의 어두운 도로를 벗어나 서울로 진입하면 환하게 불을 밝힌 가로등이나 한강변의 불빛들이 마치 등대의 불빛처럼 보이곤 했다. 그 불빛을 보면 비로소 집으로 돌아왔다는 생각에 마음이 안정되었다.
불빛은 인간이 만들어낸 문명이다. 동양 신화에서는 수인씨가 태양이 없는 마을에 들어가 새들이 나무등걸을 쪼아 불빛을 만들어내는 것을 보고, 나무를 비벼 처음으로 불을 발견한다. 그 것은 신호이면서 어둠을 밝히는 제2의 눈이기도 하다. 인간은 이것으로 참으로 많은 것들을 만들어냈다. 호롱불 밑에서 인간은 잠자는 시간을 아껴 무엇인가를 공부하고, 만들어 낸다.
도시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것이 깊은 어둠이다. 도시에는 진정한 어둠이 없다. 어두운 것들만이 있는 것이다. 깊은 산속이나 바다에서 어둠을 만난다면 이것이 무엇인가 하는 생각이 들 것이다.
어부들은 나침반이 발명되기 전에는 하늘의 별을 보고 항해를 했다. 전기 등대가 발명되기 전에는 생선기름을 태워서 해안에 배가 들어오는 길을 밝혔다. 인생을 고통의 바다, 즉 고해에 비유한 불교는 해인이라는 깨달음의 경지를 말한다. 화엄경의 해인삼매가 그것이다. 거친 파도와 비바람이 잠잠해지면 바닷물 속에 떠오르는 그 무엇, 깨달음은 더러운 물에서 연꽃이 피는 것이고, 거친 바다 위에 해인이 떠오르는 것이다. 이 해인이 등대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부들은 등대를 바라보고 밤 항해를 한다. 비유하자면, 우리는 모두 밤바다에 떠있는 어부들이다. 한 달에 한 번 정도라도 멀리 갈 수 없다면 집안의 모든 불을 끄고 밤하늘을 바라보라. 그리고 그 밤하늘에 떠 있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라. 밤하늘은 바로 밤바다이다. 그 하늘에 떠 있는 별빛들은 우리가 언젠가는 기어이 가야 할 그 어느 곳인지도 모른다.
우리나라의 역동적인 산업현장의 한가운데에도 별은 떠 있었다. 화암추 등대를 찾았다.
화암추 등대는 육지에 있다. 울산 방어진이 그 곳이다. 이 곳은 울산항의 문이기도 하다. 문을 열면서 바다로 나아가는 배들은 화암추 등대의 높은 불빛을 받으면서 나아간다. 등대에서 하루를 머물고 다음날 아침, 화암추 등대 앞에 나갔다. 방파제에서 낚시를 하는 사람들이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그 방파제의 끝에도 작은 등대가 있다.
화암추 등대는 우리나라에서 제일 높은 등대이다. 45m의 높이로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어 있다. 등대를 많이 돌아다녔지만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기는 처음이었다.
등대원이 처음 안내한 곳은 전망대였다. 화암추 등대에는 전망대가 따로 운영되고 있었다. 사방이 유리로 되어 있어, 울산항과 시가지를 한눈에 볼 수 있었다. 마치 서울의 63빌딩 전망대에서 서울을 내려다보는 심경과 비슷했다. 전시실에는 항로표지, 항만, 수산에 관한 자료와 바다에 관련된 사진이 가지런하게 전시되어 있었다. 선박 모형을 보면서 청소년들은 학습효과도 얻을 수 있다. 등대원은 바로 옆에 있는 현대중공업사의 크레인을 가리켰다.
“저기 보이는 것이 1500t의 골리앗 크레인입니다. 현대중공업에서 건설한 것인데, 바다가 아닌 맨땅에서 배를 만들어내는 기적을 탄생시키는 곳이죠. 이 곳은 섬에 있는 등대와는 달리 부산합니다. 이 곳에서 보면 울산항의 선박이 들고나는 것을 한눈에 볼 수 있죠. 그리고 저 크레인에서 뭔가 역동성이 느껴지지 않습니까. ‘우리나라는 대단한 나라’라는 자부심도 들고요.”
그렇다. 이 곳은 우리 산업이 불꽃을 튀기고 있는 생생한 삶의 현장이었다. 1970년 이후 울산항이 우리나라의 본격적인 공업단지로 성장하면서, 울산항을 드나드는 선박들의 안전 항해을 위해, 80년께부터는 등대의 필요성이 절실했다. 특히 울산항의 진입항로 인근에 암초가 있어 여러 선박들이 사고를 겪었다. 그래서일까? 필자가 이 곳을 방문하기 위해 오는 길에 작은 차량사고가 있었다. 바로 곁에 있는 차를 보지 못하고 후진하다가 꽝. 누군가 보았더라면 이런 일이 없었을 텐테. 비가 내리고 어두운 일기 탓이었다. 등대의 필요성은 이런 작은 차량사고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화암추 등대는 83년 울산항을 출입하는 선박들이 거북이처럼 천년동안 안전항해를 하라는 기원의 의미로 거북이 모양으로 건립됐다. 그러다가 울산항이 계속 발전하면서 등대 주변 해역에 항만 축조 등을 위한 매립공사가 시행되어 등대 위치를 1㎞ 정도 옮겨 높게 지었다. 이 곳의 등대는 마치 저 건설현장의 크레인처럼 당당한 위상으로 우뚝하다. 등대원의 이미지 역시 해양수산부의 공무원답게 산업의 현장에서 움직이는 일꾼처럼 보였다.
“화암이란 바다 위의 돌에서 꽃이 피었다는 의미죠. 이 곳 방어진의 제1 절경은 아침해가 떠오를 무렵 바닷물에 출렁이는 꽃무늬 바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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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고독한 등대를 의도적으로 다녔다. 옹도, 어청도, 하조도. 섬에 있는 등대는 섬이 크건 작건 섬이라는 이유만으로도 외로웠다. 어떤 섬에서는 마치 내가 배에 떠있는 것 같은 착각을 하곤 했다. 주민이 없는 섬도 있었다. 그 섬에서는 하루만 지나도 뭔가 허전한 것을 느낀다. 오랫동안 도시생활을 한 탓도 있지만, 산속의 고립감과 섬의 고립감은 그 질감이 다르다. 깊은 산속에서의 하룻밤은 마치 알에서 태어난 것 같은 느낌이 들 때가 있었다. 그러나 섬에서의 하룻밤은 마치 알로 들어가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화암추는 그러한 나의 등대기행에 카운터펀치를 날렸다. 봐라, 등대는 이렇게 거대한 문명의 상징이기도 하다. 현대중공업의 크레인 역시 등대처럼 보이기도 했다. 누군가 저 위에 올라가 모닥불이라도 놓는다면 밤에 해안의 등대 역할을 할 것이다.
화암추의 등대는 백색과 더불어 적색 빛도 발사한다. 대부분의 등대는 백색의 불빛을 내보낸다. 그런데 왜 화암추만 붉은 색을 추가한 것일까?
“그 것은요. 항로 입구에 암초가 있다는 표시입니다.”
그렇다. 만약 배로 여행을 하다 등대에서 흰색과 붉은 색이 나온다면 그 곳에는 암초가 있다는 신호이다.
“이 등대는 하늘에서 보면 바다를 향해 중앙에 등탑이 있고, 왼쪽과 오른쪽에 각각 사무실과 숙소가 있어요. 그래서 마치 갈매기가 날개를 펴고 바다로 날아가는 것 같은 모양이랍니다. 그건 울산항이 열려진 바다로 세계를 향해 뻗어나간다는 상징성이기도 하지요.”
앞 방파제에 모여든 사람들의 모습이 햇살에 반짝이고 있다. 등대는 이렇게 그 위치에 따라 사람들이 많이 모여드는 곳이기도 하다. 섬에 있는 등대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근육의 힘이 느껴졌다. 다 사람 살자고 한다는 말이 있다. 등대 역시 사람이 안전하게 바다에서 살아나기를 기원하는 문명이다.
배를 타고 나아가 화암추를 보았다. 낮이어서 불빛은 나오지 않았지만 아름다운 조형작품 같았다. 배는 울산항의 역동적인 움직임으로 출렁거렸다. 밤이 되면 사람들은 화암추의 불빛에서 눈뜬 거인의 거대한 눈동자를 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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