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나얀™♡【여행】

마을버스 타고 가는 점심시간, 짧은 봄 소풍

피나얀 2007. 4. 5. 18:46

 

출처-[조선일보 2007-04-05 18:41]

 


종로2번 마을버스 종착지는 '봄'입니다
 
봄이라서 어쩌란 말인가. 술이 덜 깬 버석버석한 아침, 만원 버스 손잡이에 매달려 간신히 도착한 사무실은 여전히 무채색으로 가득할 뿐 봄 ‘나부랭이’를 즐기는 건 감정의 사치인 것만 같은데….

“차 잔뜩 밀려서 간신히 출근했구먼, 아침부터 부장은 왜 그렇게 짜증이냐.” “난 어제 야근하고 있는데 전무가 와서 책상 정리 좀 하라고 째려보더라, 참 내….” “얼마나 벌겠다고 이 짓인지 모르겠어요. 사람들은 꽃놀이도 다니고 그러던데, 우린 뭐냐고요.”

밥벌이가 고단하고 일상이 삐걱거린단 이유로 이 예쁜 계절은 없는 셈 치려던 종로 1가 ‘김 대리’들. 아침부터 컴퓨터를 꺼버리고 싶던 4월의 어느 햇살 좋은 날, 봄바람의 눈웃음을 뿌리치지 못하고 ‘게릴라 소풍’에 나섰다. 넥타이는 잠시 주머니에 접어 넣고 와이셔츠 단추도 물론 하나 풀었다. 점심시간. 평소보다 10분 먼저 사무실을 나섰다. 발걸음은 뻔하디 뻔한 인근 식당 대신 마을버스 정류장으로 향한다.
 

 

가볍게, 즉흥적으로 나서는 소풍에 집에서 본격적인 도시락 싸 들고 온다면 오히려 어색하다. 그냥 샌드위치와 커피를 테이크 아웃하면 딱 어울린다. ‘빵 쪼가리’로 만족하지 못한다면? 걱정 없다. 오므라이스부터 초콜릿케이크·비빔밥·냉면까지, 별의별 음식을 포장해 파는 식당이 생겨났다. 심지어 한정식 코스요리를 찬합에 담아주거나, 떡갈비를 숯불에 구워주는 고기집도 있다.

주차 걱정 없는 버스, 그 중에서도 종로와 삼청동 일대를 꼼꼼히 돌아다니는 ‘종로2번’ 마을버스는 일대 샐러리맨들의 잠깐 나들이에 고마운 동행이다. 지하철 1호선 종각역 및 3호선 안국역을 지나 가회동 길로 올라가는 이 연둣빛 버스는 앞마당이 예쁜 정독도서관, ‘겨울연가’의 배경으로 유명한 중앙고, 박물관 거리·삼청공원으로 이어지는 감사원을 지나 와룡공원 기착지인 성균관대 후문까지 간다.

노선은 끝에서 끝까지 편도 20분 남짓, 짧은 편이다. 밥 생각이 없다면 그저 버스에 올라 600원(카드 기준·현금은 700원)짜리 ‘드라이브’를 즐겨봄직도 하다. 안국역에서 감사원까지는 가지런한 한옥들이 인사를 한다. 감사원에서 성균관대 후문까지는 확 트인 서울 풍경이다. 도로변에는 개나리가 형광에 가까운 노란색을 발산하고, 창 밖으로 ‘N서울타워(남산타워)’가 내내 따라온다. 버스는 6~7분 간격으로 오전 6시~밤 11시40분까지 다닌다. 덕분에 자가용 없이도 봄 소풍 뿐 아니라 서울의 가장 멋진 야경을 즐길 수 있다. 단, 안락한 좌석이나 여유로운 공간이 언제나 보장되는 건 아니라는 현실을 감내할 준비가 돼 있다면.
 


 

시집 한 권 빌려볼까: 정독도서관
 
삼청동에 있는 정독도서관은 종로·광화문 등과 가까워 직장인들이 즐겨 찾는 곳이다. 나무가 많은 아름다운 앞마당으로도 이름나 있는데 특히 벚꽃 철이면 짬을 내 꽃놀이를 즐기려는 샐러리맨들의 모습이 더 자주 눈에 띈다. 벚꽃 길은 도서관 들어서자마자 왼쪽으로 보인다. 좌우로 늘어선 어린 벚나무들이 어깨동무를 한 모양새가 여느 벚꽃 명소 못지 않다. 아직(4월3일 기준) 꽃망울이 채 터지지 않았지만, 4월 둘째 주면 벚꽃이 활짝 필 예정이다.
 
도서관 앞마당 곳곳에는 벤치가 많다. 몇몇 벤치 위로는 등나무 그늘시렁이 있어 여름에 오면 시원함을 선물해준다. 도서관 옆에 있는 작은 연못에서 천천히 도는 물레방아마냥, 느릿느릿 앞마당을 산책하는 여유를 부려보자.
 
◆찾아가는 길: ‘정독도서관’ 정류장에서 내린다.
 

 
 

오래된 이야기를 찾아: 북촌 생활사박물관
 
오래된 골목을 누비는 발걸음이 산과 들을 찾아 떠나는 ‘정통’ 소풍 못지않게 즐거울 때가 있다. 깔끔하게 손질한 한옥 골목으로 이름난 북촌에 스스로 ‘고물쟁이’라 부르는 이경애씨의 ‘생활사박물관’이 이사해 7일 문을 연다. 북촌 한옥들에서 나온 손때 묻은 물건들을 전시한 박물관에 대해 이씨는 “조금은 촌스럽고 유치하고 그러면서도 한없이 정겨운 옛 물건들을 모아놓았다”고 했다.
 

개관 특별전으로 열리는 ‘어느 할머니의 보물건 이야기’는 지난해 11월 돌아가신 할머니의 ‘보물 같은 물건’으로 꾸며졌다. 알록달록한 넥타이들은 먼저 세상을 뜬 남편 물건을 모두 처분한 후에도 끝내 버리지 못한 것들이란다.
 
박물관 마당에는 옛날 걸상과 중국집의 오래된 도마 등으로 만든 벤치와 상이 놓여있어 가져온 음식을 먹을 수 있다. 툇마루에 앉으면 담 너머로 청와대와 총리 공관이 아주 가깝게 보인다. 입장료 성인 5000원, 학생·단체 3000원. 관람시간 오전 10시~오후 7시. 월요일 휴관. (02)736-3957
 
◆찾아가는 길: ‘감사원’ 정류장에서 하차, ‘베트남 대사관’ 쪽으로 내려온다. 대사관과 경남대극동문제연구소 사잇길로 들어가 첫 번째 삼거리에서 오른쪽으로. 100m쯤 가다가 나오는 ‘화개1길’ 이정표를 따라 오른쪽 언덕 아래로 내려가면 분홍 대문과 노란 주차장 문을 지나 왼쪽에 있다. 박물관 맞은편 돌계단으로 내려가면 바로 삼청동으로 연결된다. 생활사박물관이 있는 ‘하늘재길’은 실크로드 박물관, 장신구 박물관, 티베트 박물관 등 작은 박물관들이 많아 ‘박물관 길’로도 불린다. 길 끝은 정독도서관과 연결된다.
 

 
 

시원한 약수, 즐거운 산책: 삼청공원
 
공원 입구부터 쭉쭉 뻗은 나무들이 펼쳐지고 흙으로 된 산책로도 산자락을 사이사이로 나 있어 자연을 최대한 배려했다. 아직은 파릇파릇한 기운이 도는 정도지만 4월 둘째 주면 곳곳에 벚꽃이 터져 공원은 화려함으로 치장한다. 공원 곳곳에 벤치가 놓여있어 도시락을 ‘까먹어도’ 좋겠다.
 

약수터는 물맛 좋기로 유명하다. 작은 물병 하나 준비해 약수를 받아 가면 사무실에 돌아간 후에도 상쾌한 소풍의 여운을 느낄 수 있을 듯.
 
◆찾아가는 길: ‘감사원’ 정류장에서 내린다. 정류장은 삼거리에 있는데 버스가 올라온 길 말고 반대쪽으로 난 내리막을 따라 10분 정도 걸어가면 ‘도반’이라는 음식점 간판이 보인다. 그 오른쪽이 삼청공원 입구다. 광화문에서 삼청동 길을 지나는 종로11번 마을버스도 공원 입구에 선다.
 

 
 

답답한 마음에 숨구멍 하나: 와룡생태공원
 
와룡공원 입구는 꽤 가파른 내리막 돌계단으로 시작해 잘 보이지 않는다. 커다란 간판도 없어 그저 여느 골목으로 이어지는 길인가 싶다. 그러나 1분만 계단을 따라 내려가면 공원을 감싸고 있는 서울성곽 뒤로 서울의 전경이 펼쳐져 마음이 뻥 뚫린다. 시원한 도시 풍경보다 더 고마운 것은 구불구불한 길을 따라 피어있는 꽃들이다. 즐거운 노랑 개나리와 유난히 향이 짙은 매화 등 형형색색의 꽃들이 봄 풍경을 활짝 풀어놓는다.
 
공원 사이사이 여러 길이 나있는데, 돌계단 아래로 이어진 길을 죽 따라 내려갔다 올라오기만 해도 가벼운 운동이 된다. 왕복 20분 정도. 산책로에는 벤치가 없고 공원 입구와 내리막 끝에 벤치가 몰려있다. 꽃 향기 따라 산책을 하다 보면 어느새 불룩한 배와 무거운 발걸음이 가벼워진다.
 
◆찾아가는 길: ‘성균관대 후문(학교 들어가기 전)’ 정류장에서 내린다. 구불구불한 오르막을 따라 10분 정도 간 후 오른편에 배드민턴장과 운동기구들이 보이는 곳이 와룡공원 입구다.
 
 
 
 

▲ 와룡공원으로 봄소풍 가요 / 태그스토리 동영상

 

활기 200% 캠퍼스의 봄: 성균관대
 
‘대학 캠퍼스’ 하면 흔히 떠올리는 넓은 잔디밭이 없는 것이 약간 아쉽지만, 삶의 ‘봄’을 펼쳐내고 있는 풋풋한 스무살내기들의 발걸음을 보는 것만으로도 피로가 풀린다. 버스에서 내려 언덕 아래로 내려오다 보면 오른쪽에 ‘수선관 별관’이 나오고 왼쪽에는 돌계단이 보인다. 높지 않은 계단을 오르면 작은 숲으로 둘러 쌓인 공간에 벤치 10여 개와 두 개의 나무 정자가 자리잡고 있어 준비한 도시락을 먹기 좋다.
 
◆찾아가는 길: 마을버스는 성균관대 후문을 지나 교내로 들어가 회차(回車)한다. 회차 지점에서 내리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