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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DAY 스크랩】늙고 힘 빠지면 누가 내 곁에 있을까?

피나얀 2007. 4. 16. 23:29

 

출처-2007년 4월 16일(월) 8:51 [오마이뉴스]

 

▲ 해해년년 봄은 오고 꽃은 피건만 한 번 간 사람은 다시 오지 않습니다. 아버지의 뒷모습이 쓸쓸해 보입니다.
ⓒ2007 이승숙


부모도 늙고 병들면...

봄비가 부슬부슬 내린다. 남편이 비를 맞으면서 마당을 가로질러 간다. 개밥 주러 가는 길인가 보다.

맑은 날엔 괜찮은데 비라도 오는 날이면 개 근처에만 가도 비린내가 난다. 비릿하고 느끼해서 욕지기가 올라온다. 비를 맞아서 털이 몸에 착 들러붙어 있는 개는 보기에도 꾀죄죄하다. 털이 감싸줘서 풍성해 보이던 몸도 비를 맞으면 앙상해 보인다. 그런 날, 개가 반갑다며 꼬리라도 치며 달려들면 반갑기는커녕 귀찮아서 발로 뻥 차버리기도 한다.

우리 아버지는 개를 싫어했다. 개 냄새가 싫어서 개 키우기를 좋아하지 않으셨다. 하지만 어린 날의 우리 형제들은 다 개를 좋아했다. 아버지 허락도 안 받고 강아지를 얻어 와서 키우곤 했다. 그러면 아버지는 할 수 없이 눈 감아 주셨지만 개 근처에는 가지 않았다.

아침밥을 먹고 커피를 마시던 참이었다. 비 오는 걸 보던 아버지가 뜬금없이 개 이야기를 했다.

"비 오는 날이면 개 비린내가 많이 나는 기라. 비에 젖어서 풀어헤쳐진 개똥하며 빗물에 퉁퉁 불어 있는 개밥 보면 속이 다 메슥거려. 김 서방은 개를 좋아하는가베? 비 오는데도 개밥 주러 댕기더라."

좀 전에 사위가 개밥 그릇 들고 다니던 걸 보신 모양이었다.

"전에 아부지 개 싫어했지요? 그래도 우리 개 키웠잖아요. 그 때 우에(어떻게) 참았심니꺼?"

"그케(그러게), 나는 개 냄새가 싫은데 너거 어메하고 너거가 좋다카이 할 수 있나. 개는 맑은 날에는 괜찮은데 비라도 오면 참말로 더러븐 기라. 근처에만 가도 개 비린내가 나서 속이 다 울렁거리더라."

▲ 겨울 삼동 동안 찬 바람 맞으면서 사과나무 전지하셨던 아버지. 전지하는 법을 사위에게 가르쳐 주시네요.
ⓒ2007 이승숙


목욕탕에 다녀온 아버지, 박하향이 난다

개 비린내를 이야기하다 보니 아버지한테서 나던 냄새가 생각났다. 우리 아버지한테서는 노인 냄새가 났다. 아버지가 숨을 깊이 들이쉬었다 내쉴 때라던가 아니면 말을 할 때 근처에 가면 냄새가 났다.

아버지를 모시고 오던 날이었다. 아버지 근처에 가니 노인 냄새가 났다. 아버지를 모시고 우리 집으로 오는 길, 얼마 달리지 않아서부터 좁은 차 안에는 이상야릇한 냄새가 돌기 시작했다. 뭐라 설명하기 힘든 그 냄새 때문에 계속 창문을 내렸다 올렸다 하면서 우리 집까지 달려왔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아버지가 갈아입을 옷을 챙겨 드렸다. 그리고 아버지 옷을 빨았다. 물빨래가 안 되는 옷은 세탁소에 맡기고 손빨래가 되는 옷들은 다 빨았다.

그 다음 날 아버지를 모시고 목욕탕에 갔다. 목욕을 하고 나온 아버지에게서는 냄새가 안 났다. 목욕탕에 비치되어 있는 화장품을 바르셨는지 아버지에게서는 은은하게 박하향이 풍겼다.

목욕탕에 다녀온 지 삼일이 지나니 아버지에게서 또 냄새가 났다. 그래서 아침을 먹자마자 아버지를 모시고 또 목욕탕엘 갔다. 가는 길에 이웃에 사는 아는 언니도 같이 데리고 갔다. 언니는 며칠 째 감기에 걸려 고생하는 중이었다. 뜨뜻한 물에 몸 담그고 찜질 좀 하면 감기가 나을까 싶어서 이웃사촌 언니를 데리러 갔던 것이었다.

찜질을 하면서 언니에게 우리 아버지한테서 냄새가 난다 하였더니 언니가 하는 말이 노인들은 다 그렇단다. 나이 들면 신진대사가 원활하지 않아서 노폐물이 쌓이게 되고 그래서 냄새가 난다 하였다. 그러면서 언니네 친정아버지 이야기를 해주는 거였다.

▲ 심심파적으로 마당가 나무들을 전지하는 아버지. 나중에 아버지가 멀리 떠나셔도 나무들 보면 아버지가 생각나겠지요.
ⓒ2007 이승숙


늙은 그 때 내 곁에는 누가 있을까?

언니네 친정아버지는 구순을 앞두고 있는 분이신데 몇 년째 치매로 자리보전하고 누워 계신단다. 한번씩 친정집에 아버지 뵈러 가보면 아버지 방에서 나는 냄새 때문에 오래 있기가 영 거북하다 하였다.

방문을 열고 환기를 자주 시키면 좀 덜할 텐데 언니네 친정 올케가 아버지 방의 문을 꼭꼭 닫아 버린단다. 아버지 방의 문을 열어두면 온 집에 냄새가 밴다면서 문을 닫아버린단다. 그래서 방에서 냄새가 더 난다 하면서도 자식이지만 그 냄새만은 맡기가 영 싫더라고 했다.

늙음을 막을 순 없다. 우리 아버지도 한때는 펄펄 날았던 시절도 있었다. 나무 짐을 몇 짐씩 해다 나르고 볏 가마를 번쩍 번쩍 들어 옮기시던 기골 좋은 장정이셨다. 하지만 세월은 아버지를 무너뜨리고 말았다. 힘 좋고 풍채 좋았던 우리 아버지는 이제 허리가 구부정하고 지팡이 없이는 걸음을 못 옮기는 노인이 되어 버렸다. 냄새가 나서 가까이 하기가 꺼려지는 노인이 되어버린 것이다.

아버지를 보면서 나중에 나에게도 찾아올 늙음을 생각해 본다. 나도 나이를 먹고 늙을 텐데, 그 때 힘 빠져서 내 몸 내가 간수하지 못하게 되면 그 땐 어떻게 하나 하는 막연한 생각을 했다.

영원히 젊을 거 같고 영원히 힘 있을 거 같지만 우리 모두에게는 늙음이 찾아온다. 냄새가 나고 추해지는 그런 때가 찾아온다. 그 때 내 곁에는 누가 있을까? 내 아이들이 나를 돌봐 줄까? 어쩌다 한번씩은 부모 걱정을 하겠지만 저 살기에 바빠서 못 챙기지는 않을까? 늙고 냄새나는 부모를 귀찮아하지나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다보니 쓸쓸해졌다.

하지만 그런 때가 나에게는 오지 않을 거 같다. 나는 늘 지금의 나로 있을 거 같다. 하고 싶은 거는 다할 수 있고 가고 싶은 곳엔 다 갈 수 있는 젊음과 힘이 나에게는 영원히 있을 거 같다. 늙음은 나와는 상관없는 일일 거 같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그리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