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2007년 4월 16일(월) 8:51 [오마이뉴스]
▲ 해해년년 봄은 오고 꽃은 피건만 한 번 간 사람은 다시 오지 않습니다. 아버지의 뒷모습이 쓸쓸해 보입니다. |
ⓒ2007 이승숙 |
부모도 늙고 병들면...
봄비가 부슬부슬 내린다. 남편이 비를 맞으면서 마당을 가로질러 간다. 개밥 주러 가는 길인가 보다.
맑은 날엔 괜찮은데 비라도 오는 날이면 개 근처에만 가도 비린내가 난다. 비릿하고 느끼해서 욕지기가 올라온다. 비를 맞아서 털이 몸에 착 들러붙어 있는 개는 보기에도 꾀죄죄하다. 털이 감싸줘서 풍성해 보이던 몸도 비를 맞으면 앙상해 보인다. 그런 날, 개가 반갑다며 꼬리라도 치며 달려들면 반갑기는커녕 귀찮아서 발로 뻥 차버리기도 한다.
우리 아버지는 개를 싫어했다. 개 냄새가 싫어서 개 키우기를 좋아하지 않으셨다. 하지만 어린 날의 우리 형제들은 다 개를 좋아했다. 아버지 허락도 안 받고 강아지를 얻어 와서 키우곤 했다. 그러면 아버지는 할 수 없이 눈 감아 주셨지만 개 근처에는 가지 않았다.
아침밥을 먹고 커피를 마시던 참이었다. 비 오는 걸 보던 아버지가 뜬금없이 개 이야기를 했다.
"비 오는 날이면 개 비린내가 많이 나는 기라. 비에 젖어서 풀어헤쳐진 개똥하며 빗물에 퉁퉁 불어 있는 개밥 보면 속이 다 메슥거려. 김 서방은 개를 좋아하는가베? 비 오는데도 개밥 주러 댕기더라."
좀 전에 사위가 개밥 그릇 들고 다니던 걸 보신 모양이었다.
"전에 아부지 개 싫어했지요? 그래도 우리 개 키웠잖아요. 그 때 우에(어떻게) 참았심니꺼?"
"그케(그러게), 나는 개 냄새가 싫은데 너거 어메하고 너거가 좋다카이 할 수 있나. 개는 맑은 날에는 괜찮은데 비라도 오면 참말로 더러븐 기라. 근처에만 가도 개 비린내가 나서 속이 다 울렁거리더라."
▲ 겨울 삼동 동안 찬 바람 맞으면서 사과나무 전지하셨던 아버지. 전지하는 법을 사위에게 가르쳐 주시네요. |
ⓒ2007 이승숙 |
목욕탕에 다녀온 아버지, 박하향이 난다
개 비린내를 이야기하다 보니 아버지한테서 나던 냄새가 생각났다. 우리 아버지한테서는 노인 냄새가 났다. 아버지가 숨을 깊이 들이쉬었다 내쉴 때라던가 아니면 말을 할 때 근처에 가면 냄새가 났다.
아버지를 모시고 오던 날이었다. 아버지 근처에 가니 노인 냄새가 났다. 아버지를 모시고 우리 집으로 오는 길, 얼마 달리지 않아서부터 좁은 차 안에는 이상야릇한 냄새가 돌기 시작했다. 뭐라 설명하기 힘든 그 냄새 때문에 계속 창문을 내렸다 올렸다 하면서 우리 집까지 달려왔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아버지가 갈아입을 옷을 챙겨 드렸다. 그리고 아버지 옷을 빨았다. 물빨래가 안 되는 옷은 세탁소에 맡기고 손빨래가 되는 옷들은 다 빨았다.
그 다음 날 아버지를 모시고 목욕탕에 갔다. 목욕을 하고 나온 아버지에게서는 냄새가 안 났다. 목욕탕에 비치되어 있는 화장품을 바르셨는지 아버지에게서는 은은하게 박하향이 풍겼다.
목욕탕에 다녀온 지 삼일이 지나니 아버지에게서 또 냄새가 났다. 그래서 아침을 먹자마자 아버지를 모시고 또 목욕탕엘 갔다. 가는 길에 이웃에 사는 아는 언니도 같이 데리고 갔다. 언니는 며칠 째 감기에 걸려 고생하는 중이었다. 뜨뜻한 물에 몸 담그고 찜질 좀 하면 감기가 나을까 싶어서 이웃사촌 언니를 데리러 갔던 것이었다.
찜질을 하면서 언니에게 우리 아버지한테서 냄새가 난다 하였더니 언니가 하는 말이 노인들은 다 그렇단다. 나이 들면 신진대사가 원활하지 않아서 노폐물이 쌓이게 되고 그래서 냄새가 난다 하였다. 그러면서 언니네 친정아버지 이야기를 해주는 거였다.
▲ 심심파적으로 마당가 나무들을 전지하는 아버지. 나중에 아버지가 멀리 떠나셔도 나무들 보면 아버지가 생각나겠지요. |
ⓒ2007 이승숙 |
늙은 그 때 내 곁에는 누가 있을까?
언니네 친정아버지는 구순을 앞두고 있는 분이신데 몇 년째 치매로 자리보전하고 누워 계신단다. 한번씩 친정집에 아버지 뵈러 가보면 아버지 방에서 나는 냄새 때문에 오래 있기가 영 거북하다 하였다.
방문을 열고 환기를 자주 시키면 좀 덜할 텐데 언니네 친정 올케가 아버지 방의 문을 꼭꼭 닫아 버린단다. 아버지 방의 문을 열어두면 온 집에 냄새가 밴다면서 문을 닫아버린단다. 그래서 방에서 냄새가 더 난다 하면서도 자식이지만 그 냄새만은 맡기가 영 싫더라고 했다.
늙음을 막을 순 없다. 우리 아버지도 한때는 펄펄 날았던 시절도 있었다. 나무 짐을 몇 짐씩 해다 나르고 볏 가마를 번쩍 번쩍 들어 옮기시던 기골 좋은 장정이셨다. 하지만 세월은 아버지를 무너뜨리고 말았다. 힘 좋고 풍채 좋았던 우리 아버지는 이제 허리가 구부정하고 지팡이 없이는 걸음을 못 옮기는 노인이 되어 버렸다. 냄새가 나서 가까이 하기가 꺼려지는 노인이 되어버린 것이다.
아버지를 보면서 나중에 나에게도 찾아올 늙음을 생각해 본다. 나도 나이를 먹고 늙을 텐데, 그 때 힘 빠져서 내 몸 내가 간수하지 못하게 되면 그 땐 어떻게 하나 하는 막연한 생각을 했다.
영원히 젊을 거 같고 영원히 힘 있을 거 같지만 우리 모두에게는 늙음이 찾아온다. 냄새가 나고 추해지는 그런 때가 찾아온다. 그 때 내 곁에는 누가 있을까? 내 아이들이 나를 돌봐 줄까? 어쩌다 한번씩은 부모 걱정을 하겠지만 저 살기에 바빠서 못 챙기지는 않을까? 늙고 냄새나는 부모를 귀찮아하지나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다보니 쓸쓸해졌다.
하지만 그런 때가 나에게는 오지 않을 거 같다. 나는 늘 지금의 나로 있을 거 같다. 하고 싶은 거는 다할 수 있고 가고 싶은 곳엔 다 갈 수 있는 젊음과 힘이 나에게는 영원히 있을 거 같다. 늙음은 나와는 상관없는 일일 거 같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그리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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