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노컷뉴스 2007-04-28 12:52]
한반도(38선 이남) 최동단에 가면 흰빛으로 눈부신 등대가 하나 외롭게 서 있다. 그 이름은 호미곶등대. 이곳의 주소는 경북 포항시 남구 대보면 대보리. 호미곶(호랑이 꼬리)이란 애칭도 갖고 있다. 주말이나 간혹 행사 참여차 들러 그 곳의 등대를 볼 때면 가슴이 짜릿하다. 이 등대를 마주하면, 홀로서기를 느끼게 된다. 홀로서기라는 표현이 좀 애매한데 말하자면 홀로 섰을 때의 외로움과 망망함, 그러면서도 어쩔 수 없이 서야 한다는 불안이 섞인 의무감 등등이다.
어쨌든 흰 등대가 풍기는 인상이 묘하다. 왜 그럴까? 100살이 다 돼가는 등대의 나이 탓일까. 어찌보면 이 등대의 위엄과 역정이 보는 이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호미곶 등대가 처음 만들어진 것이 1908년 12월 20일이라고 한다. 약 100년 전 샛바람 불어는 차가운 초겨울, 크리스마스를 닷새 앞둔 겨울날 등대의 불이 켜졌다. 독일 건축가의 설계로 일본인들이 축조했다. 일본인들은 이곳 한반도 최동단의 호미곶에 등대를 설치해 동해 남부연안에서의 잦은 해난사고를 막을 수 있었다.
이 등대가 만들어지기 전까지는 이곳 영일만 대보 앞바다를 지나는 선박들이 좌초하는 해난사고가 잦았다. 그런데, 이 등대 내부 천장에 새겨진 꽃잎이 있는데 가만 들여다 보면 이화(李花)다. 오얏꽃 모양을 새겨넣은 것인데, 오얏꽃은 조선왕조의 상징 문양이었다. 일본인들이 축조한 등대 내부에 조선왕실의 상징인 오얏꽃이 의연하게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이유에 대해 궁금해진다.
이런저런 상상을 해본다. 일본인이 진두지휘한 등대 축조라면 이얏꽃이 아니라 사쿠라여야 하지 않겠는가? 이 문제에 대한 논의는 다음 기회로 미루자. 중요한 것은 이 등대에 대한 단상이니까. 호미곶등대는 백색 연와조로 축조된 8각형 구조다. 8각을 이룬 면이 하늘로 뻗어나간 자태가 예사롭지가 않다. 높이는 26m로 전체가 흰빛이다.
해가 비치는 한낮에 가면 눈을 뜰 수 없을 만큼 눈부시다. 등대 앞은 푸른 바다다. 흰 등대와 푸른 바다! 참 낭만적인 풍경인데 이 곳 등대 앞에 서면 낭만을 만끽하기 보다는 관조하는 마음이 강해진다. 등대는 낮이면 흰몸을 통째로 해상의 선원들에게 이정표로 내놓는다.
구름이 짙게 깔리고 안개가 자욱한 날이면 엄청난 음량의 무적을 울린다. '뿌~웅~' 하는 거대한 소리를 토해내 뱃사람들의 귀를 연다. 좌초할 수 있으니 돌아가라는 소리다. 밤이면 16마일(약 25㎞)까지 날아가는 강력한 불을 비춘다. 12초에 한 번씩 반짝이며, 밤 바다의 외로운 선원들에게 위험을 알린다. 오랫동안 수많은 선원들의 눈이 되어주었던 이 등대가 내년, 그러니까 2008년 12월 점등 100주년을 앞두고 대대적인 리모델링에 들어간다.
어떤 설계를 한다는 것인지 궁금하고 한편으로는 걱정도 된다. 1908년 처음 만들어졌 당시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이 등대는 건축학적 가치를 인정받아 등대시설로는 최초로 1982년 8월에 경상북도 기념물 제39호로 지정되었다. 어쨌든 여름의 태풍과 뜨거운 태양, 겨울의 습하고 차가운 동해 바닷바람을 친구 삼아 온 100살 된 호미곶 등대는 의연하다. 이 등대는 막막한 바다를 항해하는 선원들의 희망에 그치지 않는다.
세상사에 지친 사람들에게도 위로를 주고, 좌절한 사람에게는 용기를 주고, 실연한 청년에게는 희망을 준다. 홀로 쓸쓸한 등대지만, 육지에서 찾아온 사람들에게도 힘을 주는 등대다. 바다와 육지의 접경지대에 자리하고 서서 바닷사람과 뭍사람 모두를 위로하는 등대는, 그래서 볼 때마다 쓸쓸해 보이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등대는 쓸쓸하지만 우리는 행복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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