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나얀™♡【여행】

영화제 핑계대고 전주를 즐기다

피나얀 2007. 5. 2. 18:40

 

출처-[프로메테우스 2007-05-01 18:15]

 

ⓒ 프로메테우스 유정우


2007 전주국제영화제에서는 지금

천변이 변했다. 깔끔해졌다. 다가동 주택들도 많이 변했다. 서점이 있던 자리에는 지물포가 들어섰고 미용실은 그대로였지만 ‘참 작구나’ 하는 기분이 든다. 용머리 고개를 넘어 삼천동으로 향하는 길은 여전했다. 아니 좀 바뀌었다. 모르는 아파트들이 빽빽이 들어섰다.
 
삼천동 막걸리 골목으로 향하는 길, 좀 오래되긴 했어도 아직 그 길을 기억 못할 정도는 아닌데 택시가 돌아 들어간다. 그냥 그러려니 했지만 택시비가 만만치 않게 나온 것을 보니 속이 좀 쓰리기는 하다. 그래도 막걸리 골목을 찾아들어갔다. 사실 내가 전주에서 학교를 다닐 적 그 골목이 있었는지 어땠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도 없었을 거라 치부했다. 그런데 40년 전통이란다.
 
기억? 추억? 그저 떠오르는 뭔가
 
싫었던 기억이 더 많았지만 그래도 그 곳에 닿는 시선은 어느새 그 때를 그리고 있었다. 전주에 도착해 가장 먼저 간 곳은 ‘영화의 거리’가 있는 팔달로 뒤편이었다. 아무래도 영화를 먼저 예매해야 했기 때문이다. 국민은행은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 골목은 크게 변한 것은 없었지만 좀 더 분주하고 부산했다. 건너편은 좀 변한 듯 하기도 하다.
 
‘한국단편의 선택 1’, ‘한국단편의 선택2’라는 섹션의 영화와 체코 영화 ‘가까이에서 본 기차’를 예매했다. 그리고 다시 고속버스 터미널을 찾았다. 지정한 숙소가 그 곳에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가장 많이 변한 곳은 그 주변이 아닌가 한다. 많이 번화해지고 전혀 모르는 뭔가가 자꾸 눈에 들어왔다. 터미널이 있는 동네는 변하지 않았다. 다만 외곽으로 나가는 길은 정말 몰라볼 정도다. 속으로 ‘이곳은 전주가 아닐 거야’라는 얼토당토않은 생각이 들었으니까.
 
동백장이라는 여관이 없어진 것이 못내 아쉬웠다. 깔끔하고 정말 ‘숙박업소’ 다운 풍모를 가지고 있었으니까. 남자들과 함께 자기에는 정말 부담스러울 정도로 야시시한 침대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형광등이 그렇게 그리울 수가……. 분홍빛 백열등은 아무래도 적응이 안 된다. 그래도 화장실은 그 전에 찾아간 곳(그 곳은 화장실 문이 불투명 유리로 되어 있었는데 무슨 용도인지 군데군데 투명하게 처리했다. 그리고 문이 안 잠긴다) 보다는 나았다.
△ 전주에서 이런거 빼먹으면 손해다. 프레임에 담지 못한 음식도 많다. (위)오원집과 그 집 주력인 고추장불고기와 양념족발 (아래) 왼쪽은 지연식당의 5천원짜리 백반, 오른쪽은 전주식당의 막걸리에 딸려나오는 반찬. ⓒ 프로메테우스 유정우

좀 늦게 출발한 친구들을 기다렸다. 나만 그런지 모르겠지만 웬 남녀가 주로 찾을 것 같은 그런 여관을 가면 꼭 나오는 채널이 하나쯤 있기 마련인데 유달리 그 채널이 신경 쓰이고 은근히 채널이 그 곳으로 향한다. 내가 그렇게 유달리 절제가 강하지는 않다. 몇 번 탐색을 거친 다음, 채널을 돌렸다. 그런데 다른 채널보다 유난히 소리가 컸다. 순간 TV에서 들려오는 남·녀의 그 적나라한 신음소리에 적잖이 당황했다. 장가못간 총각을 아예 애태워 죽일 셈인가? 그렇게 첫날이 저물고 있었다.
 
영화? 일단 ‘전주’ 부터
 
영화제도 좋지만 일단 ‘전주’ 하면 떠오르는 것은 ‘전통 문화’와 ‘맛’이다. 친구들이 저녁 10시에 도착하자마자 그들을 이끌고 중앙시장 어귀에 들어서서 찾아간 곳은 오원집 이라는 곳이다. 전주에서도 꽤 유명한 곳으로 이곳에서는 고추장구이를 저렴하게 즐길 수 있다. 단돈 3천원이면 된다.
 
영화와 상관없이 먹는 것으로만 말하자면 정말 영화 ‘황산벌’에서 이문식씨의 대사가 딱 이라는 생각이 든다. 진짜 그랬다. 점심 한 끼를 먹어도 반찬이 40가지(이건 좀 그렇지만)가 넘는 것 같다. 사실 세어본 바로는 20가지에서 25가지 정도가 나왔다. 옛 전북도청 앞 지연식당에서 먹었던 백반과 삼천동 막걸리 골목의 전주식당에서 먹었던, 막걸리 시키면 나오는 반찬의 가짓수가 그 정도였다.
 
정작 영화를 보게 된 당일 오전 영화는 숙취로 취소해야만 했다. 대신 술도 깰 겸 맑은 정신으로 갈 겸 해서 찾은 곳이 전주 교동이다. 한옥마을로 불리는데 전통가옥이 아직까지는 무리 없이 잘 보존돼있다. 이곳에서 오전 한때를 보내며 쓸데없이 참 새롭고 또 낯익다는 상념이 든다.
△ 성미당의 비빔밥과 왱이집의 콩나물 국밥, 둘 다 전시된 플라스틱 모형이 아니라 따끈 따끈한 음식이다. ⓒ 프로메테우스 유정우

남부시장을 조금 못 미쳐 있는 교동은 돈이 없어 집으로 가는 버스를 타기위해 긴 거리를 걸을 때 자주 지나치는 곳이었고 전동 성당은 그저 크기만 했다. 91년인가? 대학생들의 시위가 있었을 때 무심코 지나가다 최루탄을 뒤집어쓰고 학원에서 아이들에게 타박을 받아야 했던 좀 그런 기억도 있는 곳이다.
 
사실 교동은 내가 전주 있을 때도 찾아가보지는 못했던 곳이다. 단지 친구들이 이야기 할 때 교동 사람들이 전주시에 화장실이라도 고쳐달라고 따지고 난리가 아니라는 소리를 들었을 뿐이다. 그 곳이 한옥 보존 지구여서 그 때는 화장실도 마음대로 손보지 못했었다. 아무튼 그 곳에는 아직도 700가구 남짓 살고 있다고 하니까 아주 박물관이 되지는 않은 것 같다.
 
교동을 들어서기 전에 보이는 것은 전동성당이다. 이곳은 김대건 신부가 처형된 장소이기도 한데 그 장소를 기리기 위해 이 성당을 세웠다고 한다. 그리고 바로 그 앞에는 조선 태조 이성계의 어진이 모셔져 있다는 경기전이 나온다. 그 경기전 앞에는 모든 사람들이 그 앞을 지날 때 말에서 내려 걸어야 했다는 하마비가 있다.
 
그리고 그 뒤로 사람들이 사는 한옥이 즐비하게 늘어선다. 이곳은 서울의 북촌과는 다르게 그나마 아직 옛 규모가 남아있다. 좁지 않은 거리와 솟을 대문들이 있고 집과 집 사이는 그렇게 옹기종기 모여 있지 않고 적당한 거리를 두고 있다. 그리고 그 교동 위쪽으로 좀 더 오르면 이성계가 왜구를 소탕하고 잠시 머물렀다는 오목대가 나온다.
△ 전주 객사길 ⓒ 프로메테우스 유정우
 
영화제 거리는 축제 중
 
그래도 영화제를 보러왔으니 한옥의 정취를 뒤로하고 걸어서 영화의 거리로 향했다. 올 때는 팔달로를 곧장 지나왔지만 갈 때는 관통로를 선택했다. 민중서관은 관통로 사거리를 지키는 터줏대감이다. 적어도 내 기억으로는 말이다. 그 민중서관을 끼고 돌면 바로 객사가 나온다. 외국 사신이 묵었던 호텔 같은 곳이라는데 사실 객사는 그 옆의 쇼핑몰과 상가에 가려 주목을 잘 받지 못한다.
 
그 전에는 막아놨던 것 같은데 객사 안에 사람이 들락거린다. 그리고 그 옆으로 낯설지 않은 풍경이 펼쳐졌다. 객사길이라는 그 길은 각종 옷가게와 먹을거리가 풍부하다. 명동쯤 생각하면 된다. 그 객사길을 쭉 걸어서 가면 비로소 전주영화제가 열리는 영화의 거리에 도착한다.
 
거리에는 축제가 한창 이었다. 신나는 음악과 춤이 있었고 가지, 가지 아이디를 목에건 사람들이 분주히 돌아다니고 연인들은 여기 저기 두리번거리며 구경하기 바빴다. 사실 난 그들을 구경하는 게 더 좋았다. 어찌들 그렇게 하나같이 팔짱을 꼭 끼고 걸어가는지…….
 
영화관에서 드디어 영화를 볼 수 있게 됐다. 단편영화들의 재기 발랄함이 느껴지는데 개인적으로 기억에 남는 영화가 있다면 ‘10분간 휴식’이라는 작품이다. 영화 내용은 좀 그렇고 거기서 나온 대사 중 내 심금을 울린 대사가 있었으니 군대 고참이 후임병을 향해 “어쭈, 쪼그려 뛰기 죽을 때 까지”라고 외치는 말이었다. 다시 말릴 때는 “10만 년 전 위치로”였던가? 순간 군생활의 쓰라린 기억이 휙 하고 머리를 스치는데 ‘풉’하는 웃음이 났다.
 
그 다음 영화는 ‘가까이서 본 기차’라는 체코 영화였다. 영화가 끝나고 감독과의 대화 시간에 체코에서 오신 노(老)감독님을 뒤로 하고 조금만 앉아 계시라는 진행요원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황급히 자리를 떠났는데 개인적으로 그 감독님께 지면을 빌어 사과를 드리고 싶다. 변명을 하자면 영화 시작 전 마신 맥주 탓을 하고 싶다. “감독님 제가 그 때 정말 급했습니다. 무례를 범한 것, 사과드립니다”
△ 왼쪽 위 부터 시계 방향으로 오목대, 전동성당, 오목대에서 본 교동의 모습, 경기전 ⓒ 프로메테우스 유정우

축제의 분위기에 취해서 풍부한 먹을거리에 취해서 정신없이 돌아다니다 보니 내게 주어진 시간을 모두 써버렸다. 다가공원은 여전했고 예전 군것질을 일삼았던 동네 구멍가게는 폭삭 찌그러진 모습으로 아직도 버티고 있었다. 아직 축제는 한창이다. 1만원 주고 반찬만 무한 리필 해 먹었던 막걸리 골목과 향긋했던 전주의 전통주 모주가 눈앞에 아직도 아른거린다. 2007전주국제영화제는 5월 4일까지 진행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