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나얀™♡【여행】

보석처럼 숨어있는 '하늘정원'

피나얀 2007. 5. 2. 19:42

 

출처-2007년 5월 2일(수) 오후 2:56 [문화일보]

 


# 만항재가 시작되는 정암사 적멸보궁에서 열목어를 찾다.

가장 높은 ‘하늘길’인 만항재를 넘는 길은 고한 쪽에서 시작하는 것이 낫다. 무릇 고개라는 것이 이쪽에서건 저쪽에서건 넘을 수 있지만, 풍경을 만나는 순서가 그렇다는 것이다.

사북, 고한은 탄광도시였지만, 이제는 어둠속 수백m의 탄도에서 석탄을 캐던 갱부의 고난의 삶을 떠올리는 풍경은 만날 수 없다. 대신 하이원리조트의 강원랜드 주위로 들어선 모텔과 식당들이 빼곡히 들어서 있다.

고한 시가지가 ‘개발’로 과거의 탄광도시 모습을 바꿔가고 있다면, 414번 지방도로를 따라 만항재 쪽으로 이어지는 길은 ‘자연’이 탄광촌의 모습을 지워가고 있다.

아직도 허름한 탄광마을의 모습이 남아있긴 하지만, 한때 탄가루로 물들었던 계곡은 사람의 손이 닿지 않으면서 조금씩 조금씩 자연의 모습으로 되돌아오고 있는 것이다.


고한에서 만항재를 오르는 길은 그리 가파르지 않다. 이미 해발 700m인 고한에서부터 고갯길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고갯길 초입에는 정갈한 절집 정암사가 있다.

1300년전, 선덕여왕 때 자장율사가 창건한 절로 뒤편 언덕 위 ‘수마노탑’에 석가모니 사리가 봉안된 적멸보궁이다. 수마노 탑은 어느 절집보다 더 간절한 기도가 깃들었을 터다.

가장을 탄광을 보낸 뒤 사고를 알리는 비상사이렌이 울리면 가족들은 이곳에서 두 손을 모으고 무사귀환을 기도했으리라.

상동의 꼴두바위. 평지에서 암봉이 불쑥 솟아있어 색다른 느낌을 준다.

‘적멸궁’이란 현판을 단 법당 건물은 한눈에도 오랜 세월로 잘 삭아있는 모습이다. 법당에서 독경을 외는 스님의 목탁소리가 산새소리와 청아하게 어우러진다.

적멸궁 앞의 주목도 수피가 벗겨져 껍질은 죽었지만, 안쪽에서 다시 가지가 나서 무성한 잎을 달고 있어 신비한 모습이다. 그러나 이보다 정암사를 더 신비하게 만드는 것은 열목어다. 계곡에는 열목어가 살고 있다는데, 절집을 들른 사람들은 모두 계곡 아래를 들여다본다. 정작 열목어는 보지 못했지만….


# 산상화원… 만항재 정상에 만발한 야생화들

만항재 정상이 가까워올수록 훌쩍 키가 큰 낙엽송들이 늘어난다. 빽빽하게 들어찬 낙엽송들 사이로 난 길을 따라 달리는 맛이 상쾌하다. 이 길에서는 곧바로 함백산 정상과 이어진다.


임도와 광산도로가 정상부근까지 나있지만, 걸어서도 30∼40분 정도면 정상을 밟을 수 있다. 정상에 서면 태백준령들이 발아래로 펼쳐진다. 만항재 정상부근에는 아름드리 낙엽송을 간벌한 녹지에 산책로가 만들어져 있다. 산책로에는 야생화들이 만발해 있다.

꿩의바람꽃과 괭이눈은 이미 활짝 만개했다. 산책로를 따라 괭이눈이 가득 펼쳐졌다. 이곳에서 가장 많은 것이 얼레지. 꽃대를 올리고 온통 화려한 꽃망울을 터뜨리고 있다.

만항재 정상임을 알리는 입간판에 쓰인 ‘산상의 화원’이란말이 꼭 어울린다. 정상에서 영월쪽으로 내려서는 길은 180도에 가까운 굴곡의 길이 굽이굽이 이어져 있다.

도로변에 차를 세우고 아래를 내려다보면 산허리를 감아도는 길이 조형적으로 펼쳐진다. 길이 저렇듯 아름답고 유려한 곡선을 그려내다니….

만항재를 내려서면 전혀 의외의 장소에 콘도미니엄이 있다. 깊은 산자락의 지방도로를 끼고 들어선 장산콘도. 모든 객실은 나무로 지은 세련된 독립건물로 이뤄져 있다. 서울이나 수도권에서 1박2일로 찾아오기란 만만찮은 거리. 따라서 3일이상 머무는 장기숙박객들이 대부분이다.

도로를 끼고 있다지만, 오가는 차량이 워낙 적어 번잡스럽지 않다. 이곳에서 맞는 함백산 자락의 새벽 풍경은 어떨까.

# 비밀스럽게 숨겨진 이끼계곡의 환상적인 아름다움

옥동천에서 동네청년이 나무를 꺾어 낚시를 하고 있다.

만항재를 넘다가 우연히 만난 이끼계곡은 탄성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숲길을 따라 야생화를 찾아나섰다가 우연히 만난 물길. 그 길을 따라 찾아들어갔다가 진초록의 이끼로 가득한 계곡을 만났다. 맑은 계곡 물이 부드럽게 흘러내리고, 이끼는 초록빛이 짙었다.

상류 쪽으로 계곡은 끝없이 이어졌다. 혹시 이끼를 밟지 않을까, 발밑을 조심해가며 물길을 따라 올라가니 도무지 끝이 없다. 지난해 여름 수해 때 떠밀려 와 계곡에 걸린 커다란 나무둥치에도 초록의 이끼가 만발했다. 물길은 두 개로 나뉘었다가 다시 하나가 되고, 또다시 세 개로 나뉘어졌다가 또 하나가 된다.

계곡뿐만 아니라 주변에도 이끼식물들이 무성하다. 고개를 숙여 들여다보니, 독특한 모양의 이끼식물들이 현란하다. 또 다른 세상이다.

만항재를 다 내려서면 화방재의 정상. 여기서 다시 상동-영월 쪽으로 방향을 잡으면 칠랑이골을 만난다. 칠랑이라는 계곡의 이름은 같은 이름의 마을이름에서 따온 것.

도로를 따라 1.5km가량 이어진 제법 큰 계곡인데 물가에 진분홍 진달래가 이제 한창 피어나고 있다. 칠랑이골은 당초 첩첩산중이었지만, 10여년 전에 골짜기로 길이 난 뒤 비로소 외지사람들에게 알려진 곳이다.


# 시간이 서버린 곳. 광산마을 상동의 꼴두바위.

상동은 지금이야 내세울 것 하나 없는 산촌마을이지만, 한때 우리나라를 먹여살릴 정도였다는 엄청난 규모의 중석(텅스텐) 광산인 대한중석이 있던 곳이다. 대한중석은 아시아 최대의 중석광산으로 교과서에도 실릴 정도였다.

중석을 캐던 광부들은 석탄광산에서 일하는 광부보다 월급이 50% 정도 높았다는 게 마을 사람들의 설명. 그래서 매일 밤 상동의 술집이며 유흥업소들은 하루 일을 끝낸 광부들로 흥청거렸다고 했다. 광산이 문을 닫은 뒤, 상동은 빈집이 훨씬 더 많다. 가게들은 대부분 문을 닫아 마치 시간이 20여년 전에 멈춰진 것처럼 쓸쓸하다.

굳이 대한중석의 광산을 찾아들어간 것은 광산입구의 꼴두바위(고두암)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꼴두바위는 마을 한복판에 불쑥 솟아있는 거대하고 기괴한 바위. 금강산 만물상의 일부처럼 보이는데, 흙 한 줌 없어보이는 바위벼랑에 뿌리를 내린 소나무들이 인상적이다.

조선시대 송강 정철이 강원감사로 있을 당시, 이 바위를 보고는 목욕재계한 뒤 절을 올렸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주변 사람들이 ‘왜 바위에 절을 하냐’고 물었더니 ‘몇백년 후에 세상사람들의 숭배를 받을 바위’라고 예언했단다.

마을 사람들은 1923년 이곳에서 중석광산이 개광된 것이 바로 ‘예언의 결과’라고 입을 모았다.

# 상동에서 영월까지…. 봄의 물빛을 따라가는 길.

상동에서 중동, 하동을 거쳐 영월까지 가는 길은 옥동천을 따라가는 길이다. 굽이를 돌고 작은 고개를 넘으면서 왼쪽에 물을 끼고 달리는 길. 지명들이 모두 정겹다. 골어구, 들모랑이, 음지말, 웃양지, 삽짝모랑이…. 이런 정겨운 이름을 따라간다.

물가의 숲은 신록이 짙어서 어디에 내려서건 강변은 한폭의 그림과 같은 정경을 선사한다. 상동에서 중동 쪽으로 가자면 솔고개를 만나는데, 참 잘 생긴 소나무 한 그루가 언덕에서 길을 내려다보고 있다. 수령은 280년으로 그리 오래지 않지만, 힘차게 가지를 뻗어낸 소나무는 한눈에도 건강하고 싱싱한 모습이다.


강변길의 풍광은 옥동천이 남한강과 만나 영월읍내로 흘러들어가는 길이 가장 아름답다.

요즘은 어디서건 온전한 강변길을 만나기 어렵다. 서울근교의 강변길은 물가에 들어선 카페나 모텔들로 망쳐버렸고, 비교적 손을 덜탄 강들도 수해방지를 위해 강 양쪽으로 물길에 따라가며 돌제방을 쌓아놓아 마치 한강둔치와 같은 표정없는 길이 돼버렸다. 그러나 이곳만큼은 예전의 강변길 정취를 느낄 수 있다.

옥동천이 남한강과 만나는 쪽에서는 아직도 마을 주민들이 나무를 잘라 만든 낚싯대며, 큰 쪽대를 들고 천렵을 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길이 단지 ‘이동수단’이고, 그 효율성을 ‘속도’에서만 찾는다면, 만항재를 넘어 영월읍내까지 가는 길의 효율성은 0점에 가깝다. 하지만 질러가는 일이 언제나 능사는 아닐 터. 그것이 마음을 내려놓는 여행이라면 더 그렇다.

길의 효율성을 속도가 아닌 마음으로 잰다면, 빠른 길을 놔두고 굳이 굽이굽이 돌아가는 길이 더 효율이 높을 터다. 때론 삶에서도 그렇다.

만항재의 정상에 피어나고 있는 얼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