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연합르페르 2007-05-03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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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이 막힐 지경으로 아름다운 풍광이 존재할까? 노르웨이를 대표하는 여행상품인 '노르웨이 인 어 넛셀(Norway in a nutshell)'이라면 그 답이 될 수 있을지 모른다. '노르웨이 인 어 넛셀'은 이름 그대로 노르웨이의 모든 것을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빙하, 만년설, 폭포, 호수, 산악열차가 조합된 콤비네이션 투어다. 한 줌의 언어로는 설명하기 힘든, 지구상에 구현된 창조주의 미의식을 따라가는 여정이다.
◆노르웨이 인 어 넛셀(Norway in a nutshell)
노르웨이 서해안 항구도시 베르겐(Bergen)에서 '노르웨이 인 어 넛셀' 투어를 시작했다. 미명이 깔린 베르겐 중앙역에서 내륙의 보스(Voss)로 떠나는 열차에 올랐다.
열차가 시내를 빠져나가자 곧바로 동이 터왔다. 터널이 계속 이어지는가 싶더니 열차는 어느새 바닷가 협만을 파고들고 있었다. 피오르드가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협만은 해수면을 뚫고 거의 수직으로 솟은 봉우리가 굽이치며 이어지는데, 저마다 만년설을 이고 있었다. 산맥이 바닷물을 옹위하듯 감싸안은 형국이었다.
창밖으로 바라보이는 협만의 봉우리는 하늘과 바다의 중개자였다. 화선지에 먹물 번지듯 짙푸른 물빛이 산허리 아래로 스며들었다. 하늘빛 구름은 산마루 위로 내려앉았다. 구름이 산마루에 닿아 눈과 안개로 변하면, 그것이 햇볕에 녹아 폭포를 이뤄 바다로 흘러들었다.
협만 저지대에는 드문드문 집들이 자리 잡았다. 푸른 잔디를 배경으로 다채로운 색깔의 목조가옥이 마을을 이루었다. 마을 뒤로 병풍처럼 둘러싼 산을 돌아 나가면 양과 소를 방목하는 농장과 과수원이 나타난다. 세상 어느 곳도 배산임수(背山臨水)가 이처럼 뚜렷하진 못할 듯싶었다.
피오르드에선 또한 계절 감각을 잃기 십상이었다. 잔잔한 해수면 위로 죽순처럼 솟아난 산허리에 봄이 찾아들면 협만 양안(兩岸)에 쌓였던 눈은 기슭으로 밀려 올라갔다. 시선이 가까운 곳에는 초록이 펼쳐지고, 깎아지른 봉우리엔 눈꽃이 피었다.
열차는 오전 10시 무렵 보스에 닿았다. 이곳에서 다시 버스로 갈아타고 구드방겐(Gudvangen)으로 향했다. 협만에서 내륙으로 향한 도로는 기찻길과 달랐다. 열차는 구조상 직선을 선호해 산을 관통하고 골짜기의 다리를 건너간다. 반면, 버스는 산하의 결을 따라가며 구불구불한 능선과 계곡을 휘돌아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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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 다르니 풍경도 달랐다. 협만은 사라지고 숲과 호수, 강물과 폭포가 모습을 드러냈다. 얼마나 지나왔을까? 버스는 100m가 넘는 높이에서 굉음을 내며 떨어지는 폭포 앞에서 멈추었다. 겨우내 얼어붙었던 바위산이 묵혔던 심사를 토해내는 중이었다. 천지개벽의 소리였다. 폭포 옆으로 난 산길을 따라 전망대에 오르면 발아래로 빙하 계곡의 장엄함이 펼쳐진다.
산마루를 하나씩 넘을 때마다 동화 속 마을이 나타났다. 통나무집 히테(Hytte)도 쉽게 볼 수 있었다. 노르웨이인의 4분의 1이 갖고 있다는 여름별장으로 민박집으로도 활용된다. 농장이나 캠핑장에 딸린 히테는 호텔이나 모텔보다 요금이 저렴하면서도 침실, 욕실, 주방을 다 갖추었다.
렌터카로 노르웨이 구석구석을 여행한다면 한번쯤 이용할 만했다. 히테에서 북대서양 연어와 유럽 최고로 꼽히는 노르웨이 버터로 식탁을 차리고 촛불을 켜면 꽤 그럴싸한 만찬을 즐길 수 있었다.
버스투어 도중 만나는 노르웨이의 숲은 그리 울창하지 않았다. 녹음이 우거지려면 아직 몇 달을 기다려야 했다. 비틀스 '노르웨이의 숲'의 노랫말처럼 사랑하는 여인이 떠나간 날의 아침처럼 쓸쓸해 보였다. 물론, 여름이 오면 침엽수림은 불붙는 생명력으로 초록이 약동할 것이다.
버스는 약 1시간을 달린 뒤에야 구드방겐에 이르렀다. 페리 선착장이 위치한 작은 마을이었다. 봄기운에 취해 게으름을 피우다가 미처 산 위로 오르지 못한 잔설이 그늘진 골짜기로 숨어들고 있었다. 속살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선착장 수면 아래로는 황금색 별 모양의 불가사리들이 납작 엎드려 있었다.
본격적인 피오르드 여행은 구드방겐에서 시작됐다. 노르웨이 국기처럼 배 아랫부분이 코발트 블루로 도색된 페리에 올랐다. 송네(Sogne) 피오르드의 지류인 아울랜드(Aurlands), 내로이(Nærøy) 피오르드를 친견하려는 이들로 갑판은 일찍부터 붐볐다.
뱃전에서 바라보는 협만은 기차나 버스와는 또 다른 세계였다. 수만 년 세월의 무게를 견디지 못한 빙하가 파행하며 바다로 흘러들어 피오르드를 빚어놓았다. 빙하가 밀려나간 자리로 바닷물이 밀려들었는데, 빙하의 소멸은 곧 피오르드의 탄생이었다. 만년설을 뒤집어 쓴 연봉들이 시선이 닿지 못하는 곳까지 이어졌다. 사선을 이루는 협곡 사이로 바닷물이 강물처럼 내륙 깊숙이 흘러들었다. 거대한 빙하와 태초의 바다가 교감을 이루는, 미당 서정주 시인이 경탄해 마지않았다던 풍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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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풍경
페리는 약 2시간 후 플롬에 도착했다. 아울랜드 피오르드 안쪽에 위치한 플롬은 선착장과 기차역, 우체국이 거의 전부인 작은 마을이었다. 주민은 450여 명에 불과했다. 기차역 뒤편에 자리잡은 유스호스텔은 여름 관광 성수기에만 붐빈다고 했다.
플롬은 피오르드 여행의 분기점이었다. 이곳에서 해발 867m 지점에 위치한 뮈르달(Myrdal)행 산악열차에 올랐다. 초록색으로 단장한 플롬 산악열차는 여름엔 하루 9~10번, 겨울에는 하루 4번씩 운행됐다.
전체 구간 20㎞의 산악열차는 세계 철도사를 다시 쓰게 만든 위대한 역작으로 꼽힌다. 1923년 시작된 공사는 20여 년이 지나서야 완공됐는데, 터널 1m를 뚫기 위해 한 달 동안 악전고투를 벌여야 했다. 철로 건설 당시 인부들이 겪어야 했던 '고난의 여정' 덕분에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산악열차가 탄생할 수 있었다.
플롬 산악열차는 단선 궤도로 가파른 협곡을 나선형으로 가로질렀다. 설산 봉우리까지 거의 대부분이 급경사였다. 최대 기울기가 55° 이상이었다. 절벽에 바싹 달라붙어 기어서 올라간다는 표현이 적절했다.
철로 주변으로는 곳곳에 마을이 자리했다. 룬덴(Lunden), 달스보튼(Dalsbotten), 베레크밤(Berekvam) 등 간이역을 지날 때마다 한두 명의 승객이 열차에서 내렸다. 산 아래 학교에 다녀오는 아이들이었다.
골짜기 사이를 가로지르는 교량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산악열차 여행의 백미였다. 폭포는 수량과 높이를 짐작하기 어려웠고, 빙하 호수는 햇살에 반사돼 금빛으로 물들었다. 열차가 위로 올라갈수록 계곡 아래 아늑하게 자리 잡은 마을과 양떼 목장이 시야에서 멀어졌다.
플롬 산악열차에는 관광객을 위한 배려가 곳곳에 배어 있었다. 플롬에서 뮈르달까지 모두 20개의 터널을 지났는데, 터널 벽면을 창문처럼 뚫어 산 아래 풍경이 한눈에 들어오도록 했다. 댐이 터진 듯 물줄기가 쏟아져 내리는 폭포수 앞에서는 지나온 감동을 잠시 식힐 수 있도록 한참을 기다려 주었다. 그를 통해 인간이 자연을 대하는 최상의 지혜와 미덕을 발견할 수 있었다. 노르웨이인들은 바이킹의 후예라는 사실이 무색할 정도로 성정이 부드럽고 섬세했다. 창조주의 섭리를 거스르지 않으면서 자연의 아름다움과 정취를 향유했다.
뮈르달에 도착한 산악열차는 잠시 숨을 고르는가 싶더니 승객을 태우고 곧바로 산을 내려갔다. 고원에 남겨진 이들도 다시 각자의 여정을 따라갔다. 피오르드 투어를 오슬로에서 시작한 이는 베르겐으로, 베르겐에서 시작한 이는 오슬로로 방향을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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