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연합르페르 2007-05-03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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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겐(Bergen) 공항에서 시내로 들어가는 버스는 한산했다. 창밖으로 봄을 재촉하는 부슬비까지 내려 고즈넉한 정취로 채색됐다. 얼마를 달려왔을까? 버스는 수백 년 시간을 거슬러 온 듯 어느 중세도시에 사람들을 내려놓고는 다시 빗속으로 사라졌다.
◆바이킹의 재발견
베르겐은 아담하고 고풍스러운 항구다. 세계에서 가장 길고 깊은 송네 피오르드가 열리는 곳이기도 하다. 모세혈관이 무수히 뻗어나간 폐부처럼 수 갈래의 협만이 내륙 깊숙이 들어와 있다. 해안선이 본래 구불구불한데 수세기 전부터 계속된 매립으로 인해 지금은 직선으로 구획된 부두로 바뀌었다.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베르겐 성(Bergen Castle)은 베르겐 여행의 시발점이다. 예전엔 섬이었지만 매립으로 현재는 육지의 일부가 되었다. 베르겐의 옛 영화를 말해주는 호콘 왕의 홀(King Haakon's Hall)과 로젠크란츠 탑(Rosenkrantz Tower)이 우뚝 솟아 있다.
베르겐 성은 베르겐이 노르웨이의 수도로 정해진 13세기부터 약 600년 동안 국가의 대소사가 치러진 곳이다. 흰색 대리석과 흙갈색 벽돌로 쌓은 성문과 성벽에는 지금도 축조 당시 재위했던 왕의 문양이 황금 빛깔을 번뜩거린다. 육중하고 견고해 보이는 성채는 특히 창문이 인상적이다. 다양한 디자인의 창틀은 나무를 깎아놓은 듯 섬세한 미적 감각이 돋보였다. 창문 아래 외부 공격용으로 설치한 듯 여겨지는 좁고 작은 구멍과 묘한 대비를 이루었다.
바이킹 전사의 단단한 투구처럼 베르겐 성을 둘러싼 성벽은 어떠한 공격에도 무너지지 않을 듯 두터웠다. 크기가 제각각인 돌을 얼기설기 아무렇게나 쌓은 듯 보였지만 자세히 보면 미적 감각이 엿보였다. 기단과 기둥 역할을 하는 부분에는 크고 검은 바윗돌을 썼고, 창틀 위는 연한 색감의 작은 돌멩이를 사용했다. 성벽 방어는 물론 시각적인 효과를 고려한 흔적이었다. 가이드인 비아트(Beate) 씨는 "성벽 바로 아래까지 바닷물이 밀려왔던 반세기 전 이곳이 나의 놀이터였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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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겐 성에서 10분 정도 걸으면 베르겐의 상징으로 꼽히는 브리겐(Bryggen) 지구다. 중세풍 건축물이 밀집한 구역으로 1979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바다와 면한 폭 100여m 거리에 삼각지붕의 3~5층 목조건물이 어깨를 걸고 늘어서 있다.
브리겐은 예전 베르겐과 유럽 도시들을 오가던 무역선과 어선이 정박하던 장소였다. 18세기 초 대화재로 잿더미가 됐지만 곧바로 재건돼 지금에 이르고 있다. 무역상들로 넘쳐나던 옛 건물들은 현재 카페, 레스토랑, 펍, 기념품점, 예술가들의 작업실과 전시장으로 사용된다. 건물 사이로 좁은 골목길이 나있는데 나무판자와 포석이 촘촘히 깔려 있다. 그 안으로 들어서면 타임머신을 타고 중세로 돌아간 느낌이다.
브리겐의 거의 모든 건물은 기둥과 들보가 일체형인 바이킹 선박건조기법을 이용해 지어졌다. 설계구조가 단순하지만 수백 년 세월에도 버틸 수 있다고 한다. 또한 건물 표석과 벽면에는 저마다 내력을 지닌, 그림과 알파벳으로 형상화된 갖가지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그 중 일부는 바이킹 부족들과 수산물을 교역하던 독일상인들이 남긴 흔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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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킹에 대한 새로운 발견은 브리겐에서의 수확 중 하나였다. 바이킹은 노략질만 일삼던 야만족이 아니라 유럽 최고의 조선술과 항해술, 수산물 가공기법과 비즈니스 정신으로 무장한 문명인이었다.
브리겐을 거닐다보면 옛 한자동맹(Hanseatic League) 시절 베르겐의 영화가 되살아오는 듯하다. 중세시대 북유럽 일대 상업도시들은 서로 결속돼 공동의 정치ㆍ경제적 이익을 도모했다. 베르겐은 당시 북대서양에서 잡아 말린 대구의 집산지로 번영을 구가했다. 일찌감치 국제화가 이루어져 베르게니테(Bergenites)라고 불릴 만큼 개방성과 친밀감으로 정평이 났다. 베르겐 사람들의 친화력은 지금도 마찬가지여서 여름이면 브리겐 앞 넓은 인도는 주민과 관광객이 한데 어우러진 노천카페로 변모한다.
브리겐 지구 동쪽 끝에는 어시장(Fisketorget)이 자리했다. 부두 광장 대형 천막 안에 시장이 섰는데, 작은 새우부터 고래고기까지 갖가지 수산물이 즐비했다. 저녁 장을 보러 나온 주민들과 관광객들로 활기가 넘쳤다. 방금 잡아 온 바다가재와 훈제연어도 값싸게 구입할 수 있었다. 수백 년 세월을 건너 베르겐을 찾아온 여행객들이 생선 샌드위치와 수프로 시장기를 달랬다.
베르겐 나들이의 종착지는 시내 동쪽에 위치한 플뢰엔산(Mt. Fløyen, 320m)이었다. 플뢰엔산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야경이야말로 베르겐의 참다운 아름다움이었다. 100만 달러에 버금간다는 홍콩 야경보다 경이롭고 운치가 더했다. 한밤의 베르겐은 거대한 용암지대에 세운 도시처럼 불타오르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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