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노컷뉴스 2007-05-18 11:55]
"행인가 불행인가? 아마 여기까지 달려온 것만도 행운일 것이다"
인천공항에서 비행기로 우르무치까지 5시간, 우루무치에서 쿠얼러까지 버스로 10시간, 쿠얼러에서 룬타이까지 다시 차로 5시간을 달리면 사막이 나온다. 여기가 탑하교. 문명의 끝이고 사막의 시작이다. 나는 타클라마칸 관문인 이곳에서 자전거 여행을 시작했다.
한달 전 등산 트래킹 오지 여행 전문 한진 티앤씨 여행사가 특이한 여행 이벤트를 마련하였다.‘타클라마칸 사막 자전거 종단 탐험대’를 모집한다는 내용이다.
“두드려라, 문이 열릴 것이다” 자전거에 대한 열정으로 자전거 세계일주를 계획하고 있는 나에게는 더없이 좋은 기회였다. 지난 4월 19일 드디어 선발된 17명의 한가닥하는 건각(?)들이 서울을 떠난 지 이틀 만에 타클라마칸 공로에 일렬로 늘어섰다.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사막인 타클라마칸은 면적이 약 37만 평방 km로 한반도의 1.5배나 된다. 중국에서는 타커라마간(塔克拉瑪干)사막이라고 한다.
높이 100m 안팎의 크고 작은 사구가 이어지고, 사구가 바람에 밀려 이동하기 때문에 예로부터 실크로드의 큰 장애가 된 유동사막이다. 자고 일어나면 지형이 바뀌며 지금도 일 년에 10cm씩 계속 남진을 하고 있단다.
D-데이
버스로 이틀을 달려와 채 피로가 가지기전에 겨우 자전거를 추스르고 무거운 출발을 한다. 500여m도 못 갔는데 공안(경찰)이 우리 팀을 제지한다.
산업도로이기에 자전거로는 통행이 불가하다는 것. 한시간 동안 협상(?) 끝에 그들이 우리를 관할지역까지 에스코트하는 조건으로 가까스로 출발하게 된다. 우리는 타클라마칸이란 거대한 대양 속에 쪽배처럼 허우적거리며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타클라마칸은 오랫동안 죽음의 사막이었다. 이백 년 전에사 스웨덴 사람 스벤 헤딘이 사상 처음으로 횡단에 성공했다. 그는 이곳을 ‘무덤 속 같은 고요함의 고향’ 이라고 불렀다.
낙타대신 자전거로 570km를 종단 한다니 그 기분 참 말로는 뭘로 표현해야할까? 경이, 신비, 두려움, 갈증 ....
오후 늦게 출발한 우리는 사막에 땅거미가 내리기 시작한 오후 9시 경까지 90km를 달려 하루의 여정을 접는다.
사막에서의 첫날 텐트 속으로 어린 시절의 아득한 안드로메다, 오리온, 카시오페아..별빛이 쏟아져 내리고 있다.
D +1
텐트에서 깨 보니 연일 계속되는 긴장으로 온 몸이 굳어버렸다.
가까스로 자전거에 몸을 싣고 끊임없이 계속되는 사막의 파도 속으로 뛰어든다. 600km의 긴 여정의 길은 200여개의 언덕을 넘어야 완성 할 수가 있는데 어제부터 MTB(산악자전거) 국가대표 이창용선수와 최종식씨가 선두를 교대로 끌고 있다. 자전거로 장거리 여행을 해 본 사람들은 선두에 선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 줄 안다.
선두는 바로 후위 보다 30%나 더 힘겹게 발질을 해야만 한다. 어떤 풍경이 펼쳐질지 모르는 낯선 곳에서 방향을 잡아야 하고 역풍을 뚫고 바람 속에 길을 헤쳐야 한다.
나와 오지 여행가 이희삼씨는 그러나 선두 못지 않게 힘들었다. 선두를 추월해 사진촬영을 하고 다시 후미에 붙기를 여섯 차례 하는 새 체력이 바닥나 버렸다.
사진을 찍은 뒤 카메라 장비를 정리하느라 2분만 지체해도 1km는 족히 떨어진다. 사막에서의 바람은 제멋대로다. 특히 역풍 속에 1km를 쫓아가는 데는 젖먹던 힘까지 페달을 밟아도 10분 이상이 걸린다.
다행히 오늘은 행운이 겹치고 있다. 오후부터는 뒷바람이 나를 밀어주고, 몇 방울의 비가 더위를 식혀준다. 사막에서의 비는 상상할 수 없는 노릇인데 오늘 그 비가 내리고 있다. 우리는 행복한 여행자들이다.
아무래도 몸무게가 0.1t은 족히 나가는 최왕수(세계자전거여행 운영자) 씨가 힘에 겨운가 보다. 쉴 때마다 체면불구하고 노상에 몸을 던진다. 안타깝지만 뭘 해줄 도리가 없다.
점차로 선두와 후미 거리는 벌어져 30분이상이나 차이가 난다. 사막 언덕에서의 가시거리는 5km 정도인데 시야에 후미가 나타나길 기다린지 20분이니 족히 10여km는 떨어져 있었다.
“이래선 안돼” 모두 입을 모으고 저속이라도 선두가 후위까지 끌며 160km를 달려 둘째 날 라이딩을 완성한다. 오늘밤도 별이 발 아래 쏟아진다. 술잔에 별을 부어 마시며 사막의 노곤함에 젖는다.
D+2
타클라마칸사막 공로(公路)에는 대략 5km 마다 편의점(?)이 있다. 그러나 과자부스러기 따위를 연상해선 안된다. 이곳엔 마실 물조차 귀하다. 수정방(水井房)이 바로 그 '편의점'이다.
이 공로는 탑중지역 원유 채취를 위해 중국 정부가 개설한 도로인데 2003년 수정방(水井房)우물을 파서 도로 인근을 녹화하여 사막의 침범을 견디고 있다. 이곳에 주거하는 부부 월급은 고작 1000위안(한화 12만원)이다. 그러나 그들의 모습에서 어떤 곤궁의 표정도 읽을 수가 없다. 무소유의 삶을 사는 이들이다.
먹먹한 세월의 흔적이 실뱀처럼 띠를 틀고, 바람에 잊혀진 기억들의 무덤들이 바로 사구(沙丘)들이다. 오늘 이 모래언덕들을 넘어 150km를 달려야 한다.
자전거를 처음 타는 채경석(한진 티앤씨 여행사 사장) 씨는 이미 차에 몸을 실었다. 이번 탐험단의 여성 참가자 김현숙, 홍양미양의 눈매는 더 강렬하게 빛난다. 이곳에서도 한국 여성의 힘을 보여줄 기세로 발질이 단단하다.
사막의 변덕스런 기후는 오늘 내내 우리를 괴롭힌다. 아침부터 역풍이 불더니 기온도 30도를 넘어섰다. 땀은 나는 대로 증발해 버리고, 갈증을 달래기 위해 물을 몇 리터니 마셨는데도 소변 색깔은 샛노랗다. 드넓은 바다의 정지한 물결에 떠있는 범선 같이 열과 고독과 고통속의 몸짓에 시간마저 헐거워진 느낌이다.
한국서 공수한 라면이 그 허기에 힘을 부어준다. 이곳 위그르족 들은 양고기가 주식이다. 대원들 대부분은 토장국을 그리워한 지는 이미 오래다. 사막에서의 라면 맛은 뭘로 형언 할 수가 없다. 오후 들어 몇몇 대원이 힘에 겨워 차에 몸을 싣는다.
이번 탐험단의 최고령자인 의사 이병달박사 만은 예외이다. 오늘까지 모래바람 속에 400km를 묵직한 속도로 달려오며 노익장을 과시하듯 여행 내내 엷은 미소를 잃지 않는다. 참 귀감이 되는 라이더이다.
D+3
사막에서의 텐트생활은 그야말로 동물적이다. 씻지도 못하고 침낭에 들어가면 종일 흘린 땀이 다시 증발하듯 눅눅하고 밤의 한기는 코끝까지 싸하고 새벽에는 오들거리며 잠에서 깨어나야 한다. 헌데 오늘 새벽에는 드디어 그 무서운 사막폭풍이 불기시작 한다.
새벽 두 시경부터는 시속 30km가 넘는 강풍에 텐트가 휘어져 날아가기 일보직전 양발로 폴대를 받쳐가며 버티기를 2시간. 바람 보다 무서운 것이 황사이다. 공해물질은 없지만 모래폭풍 속의 황사는 3시간 만에 텐트 통풍구를 통해 거의 1cm나 쌓인다. 모래에 묻혀 버릴 지경이다.
버프(바람막이나 먼지막이로 쓰는 일종의 두건)를 차에 두고 와 삼각팬티로 코와 입을 막고 버텨보지만 어느새 입안에는 모래가 가득하다. 이 사막 폭풍은 그야 말로 제멋대로다. 며칠을 부는 경우도 있다고 하니 귀국일자가 다가오는데 무턱대고 바람 그치실 날만을 기다리고 있을 수만도 없다.
'행여' 하는 마음으로 모래에 밥을 비벼먹고, 몇 시간을 기다려 보지만 바람 잘 기색은 보이지 않고 점점 더 어두워진다. 한국에 돌아가기 위해 호탄에서 비행기로 우르무치까지 이동해야 하는데 비행기 탑승 한계시간까지 폭풍은 더 거세진다.
“차로 철수하기로 결정했습니다.”
행인가 불행인가? 아마 여기까지 달려온 것만도 행운일 것이다. 아쉬운 마음을 고쳐 먹고 민펑에 도착하니 시관계자들이 나와 우리 대원들을 열렬히 환영을 해준다.
40여년전 쯤 우리의 모습을 하고 사는 이들이 경외로운 눈빛으로 우리를 바라다본다. 머쓱하다. 환영차 나온 위그르족 꼬마 고적대의 나팔 소리는 저 넓은 사막으로 스며든다.
내 머릿속엔 일렁이는 사멸의 땅을 아우르며 아무런 표시도 정해진 방향이 없는 돛배 여정의 추억이 아주 작은 모래알 마냥 반짝거리고 있었다.
<실크로드 타클라마칸 자전거 여행안내>
나흘간 타클라마칸 사막을 이동하는 프로그램으로 총 570km를 달린다.
이 자전거 여행을 일정에 포함하는 서울~우루무치 8박9일 여행상품이 나와있다. 가격은 155만(10인이상 출발시)~199만원(6인이상 출발시)이다. 대한항공이 주2회 취항한다.
내년 봄 '제 1회 타클라마칸 사막종단 사이클대회(가칭)'도 예정돼 있다. 2박3일간 달리는 대회 참가비는 500달러선. 문의, ‘한진 TNC' (02-733-0125), www.tnctour.co.kr
<타클라마칸 위구르족>
19세기말 유럽의 강대국인 영국과 러시아의 식민지 팽창 정책이 외딴 이곳 중앙아시아에서 정면으로 부딪치게 된다. 남진하려는 러시아와 인도를 근거로 한 영국이 파미르 고원에서 팽팽하게 맞선 틈을 타 중국이 한발 앞서 이곳을 차지했다.
위구르(위구르어로 '단결'이란 뜻)는 20세기초에 현재 사용하는 이름으로 불리워지기 시작하지만 위구르족의 기원은 8세기 몽고 스탭 지역에 위구르 제국이 건립된 시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현재 중국 신강성 인구 2000여 만명 중 위구르족은 1000만명이 넘는다. 타클라마칸 인근에 살고 있는 위구르인들은 예전부터 중국을 외세로 여겨왔고. 오직 이슬람 문화를 아직도 고집하고 있다.
표준시간은 베이징과 같지만 이는 행정상으로 그럴 뿐이다. 우루무치, 쿠얼로, 민펑, 허텐등에 밀집한 위구르인들은 그들만의 시간을 갖고 있어 베이징시와는 실제로 3시간이나 차이가 날 정도로 삶에서의 전통을 고수하고있다.
타클라마칸 위구르인들은 이슬람족 거주지역이 초고속 성장을 하고 있는 도시 및 해안 지역과는 달리 경제성장에서 소외돼 낙후된 데 큰 불만을 품고 있다.
언젠가는 독립하고 말겠다는 의지를 수시로 드러내며 언어를 잃어버린 중국내 다른 이슬람문화권과 달리 위그르족은 고유 문자를 사용하고 있다. 모래폭풍을 코란과 양고기로 이겨낸 강한 민족 위구르인들의 영원한 마음의 고향은 베이징이 아닌 메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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