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나얀™♡【여행】

인도 라지기르·나란다

피나얀 2007. 5. 25. 20:28

 

출처-[세계일보 2007-05-25 10:15]

 


기원전 6세기경, 인도에는 소왕국들이 있었다. 현재의 네팔과 인도 접경 지역에는 부처가 태어난 카필라 왕국이 있었고, 근처에는 코살라 왕국, 그리고 동쪽으로 수백㎞ 떨어진 곳에는 마가다 왕국이 있었다.
 
마가다 왕국은 매우 강성했다. 출가한 싯다르타 왕자가 득도한 곳은 부다가야였는데, 이곳은 변방이 아니었다. 부다가야에서 북쪽으로 약 50㎞ 정도 올라가면 마가다 왕국의 수도였던 라지기르가 있었으니, 싯다르타는 오지가 아니라 세상의 중심에서 수행했던 것이다. 그 당시 마가다 왕국의 왕 빔비사라가 수행자로서 명성이 높았던 싯다르타 왕자를 찾아가 자기 왕국에서 일해 달라는 요청했다가 거절당하자, 깨달음을 얻거든 자신에게도 가르침을 달라고 부탁했다. 부처는 후일 약속을 이행했고, 빔비사라 왕은 불교도가 된다.
 
라지기르는 한국 불교 경전에서는 왕사성(王舍城)이라 기록되어 있는데, 산성으로 둘러싸인 구 왕사성 터와 평지의 신 왕사성 터의 흔적이 남아 있고, 무너진 성벽과 사원 터, 수행자들이 도를 닦던 손반다르 동굴, 빔비사라의 감옥 터 등이 보인다.
 
빔비사라 왕은 말년이 안 좋았다. 친아들인 아자타샤트는 반역을 일으켜 왕권을 잡고 부처의 사촌 동생 데바닷타는 부처를 죽이고 교단을 접수한다는 음모를 꾸몄다. 부처를 죽이겠다는 데바닷타의 음모는 실패했지만 아자타샤트의 반역은 성공해서 빔비사라 왕은 감옥에 갇히게 된다. 아들은 아버지를 죽이기 위해 음식물을 끊었고 왕비는 맨몸에 우유와 꿀을 반죽한 쌀가루를 바르고 면회를 가서 왕에게 먹게 했다. 그러나 이것마저 발각되어 아자타샤트는 어머니마저 가둬 버렸고 결국 빔비사라 왕은 죽게 되니 권력욕이 얼마나 무서운지 보여준다. 부처가 열반에 들기 8년 전의 일이었다.
◇나란다 대학 유적지.
 
부처는 왕사성 일대, 특히 영취산에서 많은 설법을 행했다. 현재 그 산으로 오르다 보면 빔비사라 왕이 닦았다 하여 ‘빔비사라의 길’이라 불리는 길이 나온다. 이곳을 오르다보면 데바닷타가 부처를 죽이기 위해 산 위에서 바위를 굴렸고 그로 인해 부처가 발을 다쳤다는 지점이 있으며, 부처와 제자들이 수행했다고 전해지는 작은 동굴들도 있다. 그리고 정상 부근에는 부처가 설법했다는 향실(香室) 터가 나온다.
 
주변에는 커다란 바위가 있는데 독수리처럼 생겼다. 신령스러운 독수리산이라는 뜻의 영취봉(靈鷲峰)이란 이름이 여기서 유래했다고 한다. 이곳의 풍경은 장엄하지만 수많은 대중이 모이기에는 협소하여 과연 여기가 불경에 나오는 영취산인가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도 있다.
 
라지기르에는 불교 최초의 절이라 할 수 있는 죽림정사(竹林精舍) 유적지도 있다. 빔비사라 왕이 부처를 위해 만든 사원으로 부처는 이곳에 자주 머물며 가르침을 폈다. 원래 대나무가 많아서 죽림정사라는 이름이 붙었지만, 현재는 대나무가 많지 않고 그나마도 근래에 일본 사람이 심은 것이라고 한다. 근처에는 경전에도 나오는 칼란다카 연못이 있고 온천도 있다. 그 시절에 부처와 제자들도 이용했다는 이 온천은 현재는 비눗물이 뒤범벅되어 혼잡한 공중목욕탕 같은 분위기다.
◇죽림정사 옆의 칼란다카 연못.
 
라지기르에는 500여명의 승려가 모여 집회를 가졌다는 칠엽굴도 있다. 기원전 483년, 부처가 열반에 든 지 3개월 후 말로 전해진 부처의 가르침이 제멋대로 퍼질 것을 염려한 제자들은 이 굴에 모여 ‘나는 이렇게 들었습니다 (如是我聞)’라고 말한 후, 서로 가르침을 확인하며 경전을 만들었다고 한다. 이것을 1차 결집이라고 하고, 100년 후 바이샬리에서 모여 다시 경전을 정리하는 것을 2차 결집이라고 한다.
 
이같이 부처의 가르침은 제자들의 노력에 의해서 널리 퍼졌고, 5세기경에는 라지기르에서 약 13㎞ 떨어진 나란다라는 곳에 거대한 불교대학도 생겼다. 7세기에 이곳을 방문한 당승 현장에 의하면 상주하는 승려들과 객승들이 1만여명이나 되었고 교수들이 2000명이나 되었다고 한다. 대학 내 100여곳에서 강의가 열렸으며 교실 외에도 연구실, 도서관, 회의실, 사원, 기숙사, 식당 등의 시설이 있었다고 한다.
◇나란다 대학을 방문한 티베트 승려들.
 
이같이 번성했던 나란다 대학은 12세기경 침입한 이슬람교인들에 의해 처참하게 파괴되어 지금은 성벽들만 폐허로 남아 있다. 당시 대학의 승복을 입은 승려들도 무사들로 오인받아 무참하게 살해됐다.
 
부처의 왕국도 망했고 그 법을 최초로 인정하고 받아들인 빔비사라 왕은 아들에 의해 죽었으며, 부처의 사촌 데바닷타는 부처를 죽이려고 했었다. 평생 이 같은 아픔을 겪었던 부처의 가르침은 세상의 흔적이 아니라 법을 통해서 남겨졌다. 그리고 기원전 3세기 최초로 북인도를 통일한 마가다 왕국의 아쇼카 왕에 의해 불교는 세계로 전파되었으니, 부처가 내린 씨앗이 크게 꽃피는 데 약 300년의 세월이 걸린 셈이다.
 
◇라지기르의 온천.
 
# 여행 에피소드
 
인도를 여행하는 불교 성지 순례자들이 가장 긴장하고 피곤해 하는 지역이 비하르(Bihar)주다. 이곳은 인도에서 가장 가난한 지역이고, 식량이 부족해 많은 사람들이 다른 도시로 이주한다. 콜카타의 빈민 중에서도 비하르주 출신이 가장 많다고 한다. 그만큼 사람들의 인심도 팍팍하며 가끔 무장 강도들도 나타나 버스를 통째로 털었다는 소식이 들려오는 곳이다.
 
그러나 불교인들이 들르지 않을 수 없는 까닭은 바로 이 비하르주에서 부처가 성도했고 많은 불교 유적지들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처음 이곳에 갔을 때 한국 단체 순례자들의 도움을 받아 버스를 같이 타고 다녔는데, 영취봉에 갈 때는 무장경찰관이 동승하기도 했다. 2500년 전 인도에서 가장 번성했던 지역이 현재는 가장 곤궁한 지역이 된 것을 보며 씁쓸하기 그지없었다.
 
# 여행정보
 
일단 기차를 타고 가야(Gaya)나 파트나(Patna)로 오면 라지기르나 나란다로 가는 버스를 탈 수 있다. 가야에서는 불미스런 일들이 많이 일어난다는 점을 주의해야 한다.
도둑과 강도는 물론 약물을 이용해 잠들게 만든 뒤 금품을 털어가는 이들이 있으니 이유 없이 친절한 사람들, 특히 먹을 것을 주는 사람들을 조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