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나얀™♡【여행】

20리 능선… 섬도 바다도 가슴에 품었소

피나얀 2007. 5. 25. 20:34

 

출처-[문화일보 2007-05-25 16:02]

 

해명산과 낙가산이 이어지는 등산로에는 군데군데 노출 암반들이 있어 사방이 장쾌하게 조망된다. 해명산 정상을 오르는 능선 왼쪽으로 바다가 내려다보인다.


인천 강화도 외포리 항구에서 배를 타고 들어가는 부속 섬인 석모도. 연인들의 낭만적인 데이트코스로 알려진 석모도에는 부드럽게 솟은 낙가산(235m)이 있다. 석모도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는 해명산(327m)이지만, 외지인들에게 낙가산이 더 알려진 것은 이 산이 강원 양양 낙산사 홍련암, 경남 남해 보리암과 함께 3대 관음사찰의 하나로 꼽히는 유서 깊은 절집 보문사를 안고 있기 때문이다.
 
섬 산행은 능선을 타고 넘으며 바다의 풍광을 즐기는 특별한 묘미가 있다. 그러나 널리 알려진 섬 산행지는 밟기가 쉽지 않다. 경남 통영 사량도 망지리산이나 전남 진도의 웰빙등산로 등은 산을 타는 재미가 각별하기로 이름나 있지만, 수도권에서 워낙 거리가 멀어 쉽게 찾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해명산에서 낙가산을 넘는 석모도 종주산행은 어떨까. 당일로 부담없이 다녀올 수 있는데다 ‘꿩 대신 닭’이라기에는 가슴을 씻어내리는 풍광이나 산을 타는 재미가 만만치 않은 곳이다.
 
섬의 산은 일단 ‘높이’에 대한 위압감이 없다. 섬에서 솟은 산은 높이가 300m 안팎이 대부분이다. 그중 높다는 사량도의 망지리산도 해발 398m이고, 전남 신안의 비금도 선왕산도 255m다. 진도 웰빙등산로의 경우는 주봉이 164m에 불과하다. 높이만 보면 만만하다 못해 시시할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섬 산행은 높이 대신 ‘거리’가 만만찮게 다리품을 팔게 한다.
 
해명산에서 낙가산을 넘어가는 종주코스는 10개의 봉우리를 오르내리며 9㎞를 걷는 산행길이다. 20리가 넘는 산행은 4시간 정도 소요된다. 삼봉산(316m)까지 코스에 넣어서 더 멀리 가자면 5시간을 훌쩍 넘긴다. 만만치 않은 산행길이다.
 
강화군 내가면 외포리 부두에서 카페리를 타고, 석모도 석포리부두에서 다시 버스편으로 등산로정류장(전득이고개)에 내리면 종주산행의 출발점이다. 서북쪽으로 이어진 산길은 들머리부터 소사나무와 떡갈나무, 굴참나무 같은 활엽수들로 그득하다. 이 길을 따라 흙길을 밟고 오르다 보면 바위 길을 만나게 된다. 첫번째 230m 봉우리에 가까웠다는 신호다.
해명산에서 내려다본 석모도 서쪽 해안 풍경.

 
해명산을 거쳐 낙가산까지 이르는 종주코스에서 만나는 봉우리의 정상 부위는 대부분 암릉으로 돼있다. 그래서 이 구간의 어떤 봉우리에 오르든 시야가 트이지 않은 곳이 없다. 암릉지대에서 풍광을 즐기며 걷다가 능선의 숲터널 흙길로 들고, 다시 시야가 확 트이는 암릉으로 나오기를 반복한다.
 
암릉에서의 풍경은 내내 똑같을 것 같지만, 봉우리가 앉은 쪽에 따라 그 방향이 달라 내려다보이는 모습도 조금씩 달라진다. 가깝게 내려다보이는 석모도의 동남쪽 해안은 바다를 막아 일군 논들이 바둑판처럼 펼쳐져 있다. 지난해부터 소금 만들기를 멈췄다는 삼량염전이 폐허처럼 황량하다. 모내기를 준비하거나, 마친 논들에는 찰랑찰랑 물이 담겨 있다. 멀리 보이는 바다 위로는 주문도와 아차도, 볼음도가 그림같이 떠있고, 그 섬쪽을 향해 바다를 가로질러 송전탑이 이어져 있다. 이렇게 바다를 내려다보는 맛은 섬 산행이 아니고서야 어떻게 느껴볼까.
 
석모도의 주봉인 해명산 정상을 지나면 찬찬히 길을 찾아야 한다. 해명산까지는 뚜렷한 외길을 따라왔지만, 여기서부터는 갈림길이 나타난다. 자칫하면 석포리쪽으로 내려서는 하산길로 접어들 수 있으니 특히 주의해야 한다. 해명산을 넘어서자마자 좁은 관목숲 길이 이어진다. 이쪽에서 만나는 바위들은 기기묘묘한 모습을 보여준다. 바위가 서로 기대고 있는 부부바위가 있는가 하면 얼굴형상을 한 합죽이바위, 고인돌의 모습과 닮은 고인돌바위 등이 늘어서 있다. 이 바위 구간에는 바위에 돌이 마치 냄비뚜껑처럼 불쑥 솟아있는 곳이 많아 걸음을 조심해야 한다.
 
낙가산 눈썹바위 아래 새겨진 마애석불.

석모도에서 가장 유명한 산이지만 사실 어떤 봉우리가 낙가산인지는 불분명하다. 보문사를 끼고 있는 235m의 봉우리가 낙가산인지, 아니면 골짜기 너머 267m 봉우리가 낙가산인지 등산객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전득이고개의 산행 안내판에는 뜬금없이 낙가산의 해발고도가 245m라고 씌어있다. 하기야 안내판은 해발고도를 알리는 지적삼각점이 있는 해명산의 높이조차도 308m로 잘못 적어놓았다. 무신경도 이런 무신경이 없다. 급기야 일부 등산객들이 스스로 267m 봉우리에 이곳이 낙가산 정상임을 알리는 종이팻말을 비닐로 코팅해 걸어놓았다.
 
낙가산 자락을 따라가다 절고개에 못미쳐 만나는 너럭바위에 오르면 서해바다가 품안 가득 들어온다. 이쪽에서 보는 일몰 풍경은 석모도는 물론 강화도에서도 가장 아름답기로 손꼽히는 곳이다. 너럭바위 아래는 눈썹모양으로 튀어나온 눈썹바위가 있다. 너럭바위 위쪽에서는 보이지 않지만 보문사쪽에서 계단길을 올라 만나는 눈썹바위 아래 암벽에는 높이 9.7m의 마애석불을 조각해놓았다. 1928년 금강산 표훈사 주지와 보문사 주지가 함께 새겨놓은 것이라는데, 보문사를 찾은 신도들은 가파른 계단을 올라 이곳에 꼭 들른다.
보문사의 운치 있는 낡은 범종각.
 
능선에서 보문사로 내려서는 길은 곳곳이 철조망 등으로 막혀있어 길찾기가 어렵다. 절고개에 못미쳐 능선 길에 줄을 매달아 놓은 곳이 있는데, 잘 찾아보면 줄 아래쪽으로 뚜렷한 길이 나있다. 여기로 내려서면 보문사와 마애석불을 잇는 계단길의 중간으로 들어서게 되므로 마애석불을 들러보고 보문사로 내려갈 수 있다. 보문사는 나한석굴이 유명하지만, 유독 낡은 범종각에 눈길이 간다. 품격있게 세워진 종각에서는 매일 오전 3시와 오후 6시 무렵에 종을 친다는데, 낙조 전망이 일품이라는 너럭바위에서 해지길 기다리자면 산자락을 감아돌고 가는 종소리도 들을 수 있을 터다.
 
해명산과 낙가산자락을 이어붙여 넘는 석모도의 등산코스는 먼 데 눈 둘 곳 없는 도회지 생활에서 벗어나 바다쪽으로 거침없는 시야를 즐길 수 있는 곳이다. 20리가 넘는 산길을 오르내리면서 찬찬히 자신의 생활을 되짚어도 좋고, 그저 풍광을 즐기며 걷는 즐거움만을 만끽해도 좋다. 능선에 올라 점점이 떠있는 섬들과 바다위 고깃배의 모습을 내려다보는 것만으로도 청량한 기운이 한껏 충전되는 기분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