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나얀™♡【여행】

베이징① 과거로 떠나는 후통 투어

피나얀 2007. 6. 14. 19:09

 

출처-연합르페르 2007-06-14 09:47

 


자전거를 개조해 만든 인력거는 베이징 뒷골목 여행, 즉 후통(胡同) 투어의 충실한 안내자 역할을 한다. 흘러가면 돌이킬 수 없는 게 시간이지만, 후통의 인력거는 그 물리적 한계에서 자유롭다. 경쾌한 바퀴소리와 함께 여행자를 수백 년 전 황제가 다스리던 베이징으로 데려간다. 얽히고 설킨 옛 시간의 궤적을 따라 좁은 골목을 바람처럼 누빈다.
 
◆시간을 잃어버린 골목길
 
후통은 베이징의 좁은 골목이자 최소 단위의 행정구역을 말한다. 원(元)이 베이징을 수도로 정한 이래로 700여 년간 고유한 형태로 존속되었다. 회색 벽돌로 지은 빛바랜 단층 건물들이 골목 양편에 도열해 있는데 고풍스럽기 그지없다. 그 골목 안에는 인간의 존엄함과 지리멸렬함이 공존하며 늘 기쁨과 슬픔이 포개진다. 베이징 토박이들의 일상이 이곳에서 완성된다.
 
현재, 베이징에는 3천여 개의 후통이 있다. 저마다 특정한 이름이 부여돼 고유한 표정과 풍경을 드러낸다. 어느 후통에선 삼삼오오 모여 차 마시며 장기 두는 모습을, 어느 후통에선 귀뚜라미 싸움 내기를 벌이는 모습과 마주치게 된다. 고무줄놀이 하는 소녀들과 세상모르게 뛰어다니는 사내아이들도 만날 수 있다. 작은 식료품점과 만두가게, 이발소와 옷가게도 빠지지 않는다.
 
명, 청대 고관대작들의 집이 밀집된 어느 후통의 어귀에서 군고구마 장수를 만났다. 중국산은 항상 왜 이리 큰지, 고구마가 아니라 차라리 무에 가까웠다. 잘 익어 노란 속살을 드러낸 고구마는 값은 헐했지만 하나를 다 먹을 엄두가 나지 않아 살 생각을 접었다.
 
흥정을 걸어오는 군고구마 장수를 뒤로 하고 연대사가(煙袋斜街)로 향했다. 베이징에서 손꼽히는 후통 투어 지역으로 여러 골목이 파생돼 나가는 대로다. 예부터 담배 파이프 제조 지역으로 정평이 난 곳인데, 입구에 홍살문처럼 높은 패루(牌樓)가 세워져 있었다.
 
청색 단청으로 단장된 패루를 지나 포석이 깔린 연대사가 안으로 들어섰다. 길 양편으로 청(淸)대에 지은 벽돌 건물들이 서로 어깨를 걸고 이어졌다. 관광지로 개발된 후통이어서 주택은 거개가 바, 커피숍, 레스토랑, 앤티크가게, 기념품점으로 변모해 있었다.


사룡(沙龍)커피숍은 패루 바로 뒤에 위치했다. 금세 무너져 내릴 듯 위태로워 보이는 목조건물 입구에 인터넷 웹사이트(www.coffeesalon.com) 주소가 걸려 있었다. 격세지감이 따로 없었다. 연대사가의 패션 부티크 앞에 가지런히 쌓아 놓은 연탄, 바 앞에 내걸린 오색 등불도 시대를 넘나드는 후통만의 면모였다.
 
 
◆베이징 토박이들의 일상 속으로
 
사합원(四合院)은 어느 후통에서나 볼 수 있는 베이징 전통 건축 양식이다. 건물 4채가 동서남북에 배치돼 'ㅁ'자 형태를 이룬다. 대뜰이 넓고 중앙에는 작은 정원이 자리한다. 사면 가옥이 제각기 독립해 있으면서도 복도가 서로 이어져 있다. 밀폐형 주택으로 대문만 걸어 잠그면 그야말로 작은 성(城)이 된다. 베이징 토박이들은 그 안에서 새와 물고기, 화초를 기르고 교자를 빚으며 살아간다.
 
사합원은 집 밖에서도 주인에 대해 어느 정도 파악이 가능하다. 대문까지 오르는 계단의 숫자부터 집주인의 신분에 따라 나뉜다. 품계에 따라 계단의 숫자가 다른데, 황실 일가친척은 계단을 7개까지 놓을 수 있다.
 
대문 좌우에 세워 놓는 석조각인 문돈(門墩), 상인방(上引枋)에 박힌 별 모양의 장식인 문당(門當)도 집안의 내력을 말해준다. 돌사자(獅子) 문돈은 왕족, 네모난 서책 모양은 문신, 둥근 북 모양은 무신을 뜻한다. 문관은 글을 읽고, 장군은 전장에서 북소리를 듣는다는 데서 기인한다. 문당은 그 개수가 관직의 품계를 말해주는데 2개는 당상관 반열, 4개는 재상이나 황실의 혈족이다.


후통의 사합원은 아무 곳이나 불쑥 대문을 열고 들어갈 수 없다. 베이징 시당국이 관광용으로 지정해 놓은 곳만 방문이 가능하다. 베이징 토박이들의 일상을 체험해볼 수 있도록 차 마시기, 교자 빚기, 베이징 요리 맛보기 등의 후통 체험 프로그램이 운영 중이다.
 
 
치엔징(前井) 후통에 위치한 작은 사합원을 방문했다. 17세기 중반에 지은 주택으로 관광객을 위해 연중 개방해 놓는 곳이다. 집주인이 차까지 내오며 사합원에 대해 설명해주었다. 그에 따르면 남향, 즉 북쪽 건물에 가족 중 최고 연장자가 기거하고 아들은 동쪽, 딸은 서쪽 건물에서 생활한다. 남쪽 건물은 하인이 살거나 창고로 썼다고 한다.
 
사합원으로 대표되는 베이징의 원류(源流)를 앞으로도 계속 지켜볼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현재, 베이징 시당국은 올림픽을 앞두고 후통을 철거하는 도시 정비 사업을 추진 중이다. 소털(牛毛)처럼 많다던 후통도 하나 둘 역사의 뒤안길로 밀려나고 있다. 자금성 주변의 구시가지에 산재하던 후통은 이미 상당수가 헐렸다.
 
지금 후통을 지키는 이들은 대부분 노년층이다. 후통의 노인들은 아파트로 이주하는 대신 소박한 일상 속에서 이웃들과 정을 나누며 살기를 원한다. 베이징 시당국은 이들에게 다른 재개발 지역보다 2배 정도 많은 보상금을 제시하고 있지만 반응은 시큰둥하다. 세상엔 돈으로도 어쩔 수 없는 것이 존재하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