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나얀™♡【여행】

베이징② 어제와 오늘을 표상하는 두 공간

피나얀 2007. 6. 14. 19:11

 

출처-연합르페르 2007-06-14 09:49

 


톈안먼(天安門) 광장은 중국인이면 누구나 가보고 싶어한다. 중국인에게 베이징은 세상의 중심이고, 톈안먼 광장은 그 베이징의 중심이다. 톈안먼 광장 중앙에 우뚝 솟은 인민영웅기념비는 대륙의 주인이 황제가 아닌 인민임을 말해준다. '태평천국의 난' 이래로 유토피아를 그리다 산화한 민초들의 꿈이 깃들어 있다.
 
◆차이나 오디세이, 톈안먼 광장에서 자금성까지
 
수년 전 한국 드라마가 베이징에서 기록적인 시청률을 낸 적이 있다. 대장금, 해신, 상도 등 사극이 인기몰이를 주도했다. 한국 사극이 선풍적인 인기를 모을 수 있던 연유는 리얼리티 때문이었다고 한다. 극적인 줄거리가 역사적 기록에 바탕을 두어 사실감을 더했는데, 이는 중국 사극에선 볼 수 없던 방식이었다. 중국 사극은 주로 역대 황실에서 일어난 사건을 뼈대 삼아 이야기를 전개한다. 하지만 100년 이상 시간 차이가 나는 역사적 인물들이 동시대에 등장하는 등 황당무계한 측면이 많다. 주인공은 10m 높이의 자금성(紫禁城) 성벽도 가볍게 타 넘기 일쑤다. 리얼리티보다 재미를 추구한다.
 
톈안먼 광장에서 자금성 북단까지 직선거리는 1.5km 남짓이다. 걸어서 30분이면 가로지를 수 있는 짧은 거리다. 하지만 이 구간은 더 없이 흥미진진하고 방대한 이야기를 품고 있다.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며 진행되는 중국판 오디세이다. 자금성만 해도 기초를 닦은 명나라 3대 황제 영락제부터 청나라 마지막 황제인 선통제까지 거쳐 간 황제만 24명에 이른다. 인민복 차림으로 톈안먼 위에서 중화인민공화국 수립을 선포했던 마오쩌둥까지 포함시키면 이야기는 그야말로 무궁무진해진다.
 
톈안먼 광장 주변 버스정류장에서 내려 중국판 오디세이의 여정을 시작했다. 인민영웅기념비 너머로 정면 9칸 팔작지붕의 톈안먼이 한눈에 잡혔다. 웅장하고 강성해 보였다. 톈안먼 뒤로는 크고 작은 금색 지붕의 건축물들이 연이어 솟구쳐 있었다.
 
광장을 가로질러 지하보도를 통해 톈안먼 바로 아래에 이르렀다. 광장과 톈안먼 사이에는 왕복 8차선 도로와 거대한 화단이 조성돼 있었다. 외금수교(外金水橋)를 건너 마오쩌둥의 대형 초상이 걸린 톈안먼 안으로 발을 들여 놓았다.
 
자금성의 남쪽 정문인 오문(午門)은 정면 9칸 중층 건물이다. 오문을 통과해야 비로소 자금성 내부로 들어서게 된다. 외부와 완전히 단절된, 전혀 새로운 세계로의 진입인 셈이다. 그래서인지 오문은 또 다른 차원으로 연결되는 통로처럼 다가왔다. 동굴 속을 통과하듯 빛이 희미한 성문을 지나자 찬란한 중화(中華)의 세계가 눈앞에 펼쳐졌다.


 
◆지상에 구현된 중화(中華)
 
자금성 안은 세계 각지에서 모여든 관광객으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형형색색의 깃대를 손에 움켜쥔 가이드들이 남쪽 오문에서 북쪽 끝 신무문(神武門)까지 경쟁하듯 패키지 여행단을 이끌었다. 웬만한 여유와 사전지식이 없다면 주마간산에 그치기 십상이었다. 자금성의 진면목은 유교적 이상정치인 왕도(王道)와 세상의 중심이고자 하는 중화(中華)가 합일을 이룬 지점에서 찾아야 했다.
 
현재, 고궁박물관(故宮博物館)으로 불리는 자금성은 영락(永樂) 4년(1406)에 주춧돌을 놓았다. 난징(南京)으로부터 베이징으로의 천도를 결정한 영락제는 원(元) 황실의 기운을 누르기 위해 옛 황궁을 불태우고 72만㎡ 터에 다시 궁을 지었다. 대륙 각지에서 최고 재질의 물자와 장인을 끌어 모아 남북으로 긴 장방형을 이루는 중추선상에 전(殿)과 누각을 정연하게 배치했다. 중추선 좌우에는 각각 대칭되게 회랑을 만들어 크고 작은 성내 건물들과 연결시켰다.
 
자금성은 전조후침(前朝後寢) 원칙에 따라 외조(外朝)와 내정(內廷)으로 나누어진다. 건청문 앞에 위치한 태화전(太和殿), 중화전(中和殿), 보화전(保和殿) 등 외조는 황제가 정무를 펴는 공간이다. 특히, 외조의 중심이자 자금성의 정전(正殿)인 태화전에선 황제의 등극이나 군사 출정 등 국가적 대사가 치러졌다.
 
황제가 용상에 앉아 내려다보면 수만 명이 동시에 머리를 조아리는 드넓은 뜰이 한눈에 들어온다.태화전 추녀마루에 조각해 놓은 잡상(雜像)은 총 11개로 경복궁 정전인 근정전의 잡상과 비교해보는 것도 흥미롭다. 허리를 굽혀 엎드린 형국의 근정전 잡상과 달리 하나같이 기세 좋게 머리를 쳐들고 있다.
 
건청궁(乾淸宮), 교태전(交泰殿), 어화원(御花園) 등의 내정은 황제와 황후, 비와 태자들이 사적인 일상을 영위하던 공간이다. 황제와 태자를 제외한 정상적인 사내들은 함부로 들어갈 수 없었다.


내정의 각 건물 안은 청나라 말기 상황이 그대로 재현돼 있었다. 병풍과 괘종시계 등 화려한 중국 전통 양식의 소품으로 장식됐고, 황후와 궁녀들이 사용하던 가구와 집기들이 진열돼 있었다.
 
어화원은 내정 안에서 가장 특색 있는 공간이다. 자금성의 후원에 해당되는데, 사계절을 상징하는 정자와 봉우리로 꾸며져 있다. 인공으로 쌓아 올린 퇴수산(堆秀山)에는 기암절벽과 폭포까지 구현해 놓았다. 꼭대기에 어경정(御景亭)이 자리했다. 성 밖 출입이 여의치 않았던 황실 사람들은 이곳에서 여가를 보냈다고 한다.
 
어쩌면 황제에겐 어화원이 자금성 안에서 가장 머물고 싶은 장소였을지 모른다. 역대 황제들은 나무 한 그루 없이 삭막한 외조에서 정무를 펴다 지치면 새소리, 물소리 들리는 퇴수산에 올라 유희를 즐겼다. 자객의 시해를 피하기 위해 매일 밤 처소를 달리하며 잠자리에 들었던 황제들에게 이곳보다 마음 편한 곳은 없었으리라.
 
자금성을 둘러볼 때는 항상 숫자 9를 유념해야 된다. 9는 황제를 상징하는 숫자이면서 음양오행 중 양(陽)을 대표한다. 자금성의 모든 건축물에는 9가 반복적으로 사용되었다. 우선, 전체 규모가 9천999칸이며 기둥, 난간, 기단의 숫자는 모두 9의 배수로 이루어진다. 성문에는 상하좌우로 9개 금장식이 부착돼 있고, 오문과 태화문 사이에 놓인 내금수교에도 9개의 옥장식이 새겨져 있다.
 
'귀하고 길하다'는 의미에서 9에 대한 중국인들의 집착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봉건왕조가 사라지고 사회주의 국가가 열렸음에도 9에 대해 편집증적인 맹신은 여전하다. 톈안먼 마오쩌둥 초상화 양편에 걸어놓은 거대한 선전문구 역시 모두 9자였다. 중화인민공화국만세(中華人民共和國萬世)! 세계인민대단결만세(世界人民大團結萬世)!