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나얀™♡【여행】

베이징③ 왕푸징, 쇼핑과 식도락의 천국

피나얀 2007. 6. 14. 19:13

 

출처-연합르페르 2007-06-14 09:50

 


베이징에서 가장 번화한 상업 중심가 왕푸징(王府井)에는 관광객을 위한 기념품점이 밀집해 있다. 가히 중국 문명과 대륙의 축소판이라고 부를 만하다. 진시황릉 병마용 모형부터 마오쩌둥 배지까지 중국 역사에 등장한 수많은 인물과 이야기를 진열해 놓았다. 변검의 가면과 판다 인형도 엑스트라로 출연한다.
 
◆중국 문명과 대륙의 축소판
 
왕푸징은 자금성 동쪽에 인접한 상업지구다. 남북으로 길게 보행자 전용거리가 조성돼 있다. 거리 양편으로 백화점, 호텔, 레스토랑, 대형노래방 등이 위치해 있으며 먹자골목과 포장마차촌도 형성돼 있다. 올림픽 손님맞이를 앞둔 잔칫집 분위기가 느껴진다.
 
왕푸징은 청나라 시대부터 베이징의 중심 저잣거리였다. 왕푸(王府)는 황제의 혈족이나 귀족들이 사는 대저택을 뜻하는데, 그들이 길어 마시던 우물이 있던 자리라는 뜻에서 이름이 유래했다. 차(茶) 전문점 오유태차장(吳裕泰茶莊)은 1887년부터 영업을 시작해 올해가 개업 120년째이다. 중국 유명 차 생산지에서 올라온 각종 차를 마실 수 있으며, 중국 전통 도예와 관련된 다기 물품도 관람할 수 있다.
 
1937년 문을 연 중국조상관(中國照相館)도 왕푸징의 명물로 꼽힌다. 중일전쟁이 터지던 해에 개업해 사회주의 중국 수립, 문화대혁명, 덩샤오핑의 개혁ㆍ개방, 톈안먼사태 등을 지켜보았다. 쇼윈도에는 마오쩌둥, 저우언라이(周恩來), 류사오치(劉少奇) 등 중국 현대사를 일궈온 인물들이 금색 액자에 끼어져 진열돼 있다. 디지털사진이 대세로 자리 잡은 지금도 사진을 찍으려는 손님들로 문턱이 닳는다. 국가에 제출해야 하는 결혼증명사진을 찍기 위함이다.
 
 
◆사회주의 몽상가의 원대한 꿈


중국 개혁ㆍ개방의 설계자인 덩샤오핑(鄧小平)은 철저한 실용주의자인 동시에 몽상가였다. 격렬한 권력투쟁과 냉혹한 국제사회의 링 위에서도 그는 항상 꿈을 잃지 않았다. '중국식 사회주의 시장경제'라는 동서고금에 존재하지 않던 새로운 나라를 열고자 했다.
 
왕푸징에 들어서면 덩샤오핑이 꿈꾸던 새 중국을 목도하게 된다. 풍경과 분위기가 서울 도심과 별반 다를 게 없다. 중국 전통 양식이 가미된 현대적인 건물이 즐비한 거리에서 최신 상품과 유행이 유통된다. 서울의 명동과 인사동이 겹쳐지는 듯한 느낌이다.
 
 
현재, 왕푸징엔 국영업체는 물론 화교와 외국자본으로 세워진 쇼핑몰들이 성업 중이다. 신동안플라자, 동안백화점(東安市場), 베이징백화점(北京市百貨大樓) 등 대형 쇼핑몰은 명품브랜드를 비롯해 다채로운 상품 라인업을 갖추고 있다. 개체호(個體戶)라고 불리는 자영업자들이 운영하는 상점에선 흥정만 잘하면 실크와 자기 제품을 아주 싸게 살 수 있다. 물론, 진품이 아닌 가짜를 살 위험은 언제나 도사린다.
 
왕푸징 거리가 끝나는 지점에 위치한 먹자골목도 100여 년의 역사를 지닌다. 알록달록한 단청으로 장식된 패루에 왕푸징소흘가(王府井小吃街)라고 적혀 있다.
 
패루 안으로 들어서면 공중에 걸린, 커다란 흑백 사진이 눈에 들어온다. 20세기 초 이곳의 모습을 담은 기록사진이다. 상인들과 행인들의 옷차림만 바뀌었을 뿐 100년 전이나 지금이나 사고파는 것은 거의 차이가 없다. 귤, 키위, 파인애플 등 과일을 먹기 좋게 쪼개고 잘라 나무에 꽂은 후 얼음같이 투명한 설탕옷(糖衣)을 입힌 빙탕호로(氷糖葫蘆)가 대표적이다. 산사나무 열매로 만든 빙탕호로가 가장 인기가 높은데, 방울토마토처럼 입 안에서 '툭' 터진다.


 
 
꼬치 포장마차는 왕푸징의 백미였다. '중국스럽다'는 말이 실감날 정도로 꼬치의 향연은 상상을 초월한다. 닭고기, 양고기는 물론이고 도마뱀, 전갈까지 꼬치 재료로 사용되었다. 굼벵이와 지네, 해마와 불가사리도 기름에 튀겨 꼬치에 끼어 판매대 위에 죽 늘여 놓았다. 신선함을 유지하기 위해 일부 재료는 기름 솥에 들어가지 전까지 살아 있었다. 혐오감을 뛰어넘어 경이로움을 느끼게 했다. 사람을 제외한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물은 꼬치에 꽂을 수 있다는 게 그네들의 생각 같다.
 
빙탕호로 하나를 입에 물고 왕푸징을 빠져나오던 길에 거리 곳곳에 설치한 장미꽃 화단을 보았다. 붉은 장미가 탐스럽게 피어 있었다. 그런데 이게 웬걸, 꽃잎을 만져보니 촉촉함이 없이 뻣뻣했다. 조화(造花)였다. 중국인들의 솜씨와 천연덕스러움에 다시 한 번 놀랐다. '우리에게 불가능은 없다'는 중국인들의 자부심은 다양한 방식으로 구현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