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나얀™♡【여행】

새를 숭배한 ‘이스터 섬’

피나얀 2007. 6. 14. 20:14

 

출처-경향신문 2007-06-14 09:57

 


 
남태평양의 맨 끝에 언제, 누가 세웠는지 모를 거대한 조각상인 모아이(Moai)들이 바다를 향해 서 있는 신비로운 섬이 있다. 1722년 4월5일 이 섬을 발견한 네덜란드 선장 로헤빈과 선원들은 그 날이 부활절(Easter)임을 기념해 이 섬을 ‘이스터섬’으로 명명했다. 그러나 원주민들은 자신들을 ‘라파 누이(Rapa Nui)’라고 부른다. 칠레 해안에서도 서쪽으로 3700㎞나 떨어진 곳에 외로이 떠 있는 이스터섬은 많은 비밀을 간직한 채 우리의 발길을 기다리고 있었다.
 
새를 숭배한 라파 누이들
 
이스터섬 공항에 내리면 보통 공항과 다른 이색적인 모습에 놀라게 된다. 낮은 돌담으로 둘러싸인 공항 주변은 온통 ‘조인상(Bird man)’ 조각뿐이다. 옛날 라파 누이들이 신성하게 여겼던 마케마케(Makemake·두 개의 큰 눈이나 새의 머리를 하고 있는 모습으로 표현된 창조의 신)신을 현대 건물에 계승한 것이다. 주위 4000㎞ 이내에 육지가 없는 절대 고독의 섬에 살고 있던 라파 누이들은 자유롭게 하늘을 나는 새야말로 자신의 소원을 신(神)께 전달해주는 메신저 역할을 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이러한 염원은 섬의 남서쪽 끝에 위치한 라노카오(Rano kao·410m) 화산 근처 오롱고(Orongo) 마을의 탕가타 마누 축제(조인에 대한 의례)를 만들어냈다. 라노카오 화산은 제주 산굼부리처럼 분화구가 파여 있었다. 그곳을 넘어서자 탁 트인 초원과 바다를 배경으로 오롱고 마을이 나타났다. 이곳은 축제 준비를 위한 임시 거주지. 옆의 마타응가라우(Mata Ngarau) 전망대 바위에는 마케마케 신을 표현한 조인상과 해골 모양의 사람 얼굴이 곳곳에 새겨져 있어 그들이 얼마나 조인을 숭배했었는지 짐작이 갔다.
 
바다 건너편에는 모투 누이(Motu Nui), 모투 이티(Motu Iti), 모투 카오 카오(Motu Kao Kao)라고 하는 섬 세 개가 나란히 떠 있다. 가장 큰 모투 누이 섬은 검은 제비갈매기가 알을 낳기 위해 날아오는 곳이었다고 한다. 축제 때 이 새의 알을 먼저 찾아온 사람을 조인의 위치에 오르게 하고 1년 동안 왕과 같은 권위를 주었다고 한다. 절벽 아래 바다로 뛰어내리고 헤엄을 쳐서 그 섬에 가기까지는 목숨을 걸 정도의 용기가 필요했을 것이다. 지금 이곳에서 바라본 바다는 아름다운 쪽빛이지만 과거에는 라파 누이들이 극복해야만 하는 과제였던 것이다.
 
 
먼 곳을 응시하고 있는 장엄한 모아이
 
이스터섬에는 약 900개의 모아이가 서 있거나 쓰러져 있다. 모아이 석상은 2~20m로 다양하지만 대부분은 5.5~7m 사이다. 일곱개의 모아이 석상이 있는 서쪽 바닷가의 아후 아키비(Ahu Akivi), 15개의 모아이가 일렬로 세워져 있는 동쪽 바닷가의 아후 통가리키(Ahu Tongariki)가 유명하다. ‘아후(Ahu)’는 신성한 제단이란 뜻. 조상이나 선조의 모습을 한 인물 석상인 모아이를 세워 수호신으로 숭배하던 곳이다.
 
‘아후 아키비’는 해안에서 2㎞쯤 떨어져 있는데, 모아이들이 한 방향을 응시하고 서 있다. 호투 마투아(Hotu Matua·전설 속의 라파 누이의 선조) 왕이 처음 이 섬에 도착했을 때 일곱 명의 신하를 거느리고 왔다는 데서 유래한다. 섬 주민들을 바다로부터 지키려는 듯 바다 한 쪽을 엄숙히 지키고 있는 모아이의 모습에서 신성한 기운이 느껴졌다. 동쪽 해안의 라노 라라쿠(Rano Raraku) 화산은 모아이 재료를 구할 수 있는 최고의 채석장이다. 화산 기슭을 걸어 올라가면 땅에 파묻히거나 이제 막 다듬으려는 듯한 여러 가지 모양의 모아이를 만나게 된다. 돌망치와 정으로 깎은 모아이들은 땅 속의 작업용 홈을 따라 분리된 뒤 통나무에 실려 산기슭으로 옮겨졌다. 이어 나무로 만든 로프로 모아이를 묶어 굴림대에 실어 현재의 위치까지 운반했다고 한다.
 
실제로 모아이를 굴렸던 지점으로 여겨지는 미끄럼 장소가 지금도 남아있는 것으로 봐서 이러한 학자들의 추측이 확실한 것 같다. 이렇게 산자락으로 옮겨진 모아이는 멀게는 20㎞ 떨어진 곳까지 운반돼 세워졌다. 엄청난 대 토목 공사였음이 틀림없다. 그 결과 지금 섬에는 나무가 거의 없다. 모아이를 만들면서 계속된 벌목으로 섬은 점차 황폐해졌고 환경이 변한 것이다. 자연을 황폐하게 만든 대가가 모아이였다니 아이로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모아이 너머로 지는 노을을 바라보며
마케마케신을 표현한 조인상이 새겨진 바위. 라파누이들이 목숨을 걸고 제비갈매기의 알을 찾으러 간 모투 누이 섬이 보인다.

 
이스터섬에서 잊을 수 없던 풍경은 바람에 실려오는 파도소리를 들으며 모아이 사이로 지는 저녁노을을 바라보는 것이었다. 선홍빛 태양이 점점 작아져 모아이 사이로 떨어지면 빛의 광채가 퍼져나가면서 검은 실루엣만 보인다. 그 신비로움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다. 우주라는 공간 안에 자연과 내가 만나 하나가 되는 순간인 것이다.
 
이렇듯 섬에 대한 환상을 갖고 있는 나에게 그들은 말했다. “너는 이 섬에 갇혀 지내야만 하는 우리들의 삶의 단조로움을 아느냐”라고. 우리가 꿈꾸던 곳에 살고 있는 그들은 반대로 우리의 현대 사회를 그리워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우리가 바라는 이상향은 도대체 어디 있는 것일까?
 
▲여행정보
 
국내에서 이스터섬으로 가는 직항은 없다. 란칠레 항공(02-775-1500·www.lan.com)을 이용해 미국 로스엔젤레스를 경유, 칠레 산티아고를 거쳐 이스터섬에 들어간다. 산티아고에서 이스터섬까지는 약 4시간30분 걸린다. 섬 내의 대중교통은 발달되어 있지 않다. 택시나 자전거, 말을 이용하거나 여행사의 일일 투어를 신청해 둘러봐야 한다. 섬 중심지인 항가로아(Hanga Roa)의 관광 안내소(세나투르·Sernatur)에서 섬 지도와 유적 안내 정보를 얻을 수 있다.
 
매년 2월에는 ‘타파티(Tapati) 축제’가 열린다. 섬주민들은 물감으로 몸에 그림을 그리는 ‘타코나(Takona)’를 하고 거리로 쏟아져 나와 거의 옷을 입지 않은 원시 모습 그대로 축제를 즐긴다. 여성은 흰색 바탕에 갈색 무늬, 남성은 갈색 바탕에 흰색 무늬를 그려넣는다. 축제 때가 아닌 평상시에는 아후 타하이 유적 근처 야외무대에서 오후 9시쯤 타파티 축제가 재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