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나얀™♡【여행】

[펌] [여행]온 산 물들인 ‘단풍의 유혹’ 속으로

피나얀 2005. 10. 28. 18:11

                       

 

 

 


단풍이 절정이다. 세상을 푸르게 물들였던 쪽물은 가고 가을이 앉은 산자락마다 색들의 향연이 찬란하다. 설악산에서 시작된 단풍 릴레이가 이제 중부권을 지나 남부로 내달리고 있다.

 

‘색의 향연’ 영주 고치령·부석사

 

충북과 경북을 나누는 소백산 산줄기는 예부터 교통의 요지였다. 과거엔 서울로 가는 큰 길 중 하나였고, 또 백두대간을 타는 등산로 중 하나이기도 했다.

 

고치령은 소백산 끝자락 영주와 단양을 잇는 길. 반쯤은 콘크리트 포장이 된 길이지만 차량통행은 뜸하다. 영주 단산면 좌석리 부석사 못미처 꺾어지는 소백산 연화동 계곡 바로 옆으로 고치령 길이 놓여 있는데 첫머리는 강원도 심산의 계곡길 같다.

 

계곡을 가로지르면 호젓한 숲길이 터진다.

고치령길은 이깔나무 단풍이 아름답다. 원색의 단풍나무와 달리 파스텔톤의 이깔나무들이 푸른 침엽수와 대조를 이룬다. 화려하지 않지만 수채물감이 한지에 뚝 떨어져 은은하게 번진 것처럼 단풍이 곱고 환하다.

 

때론 쭉쭉 뻗은 낙우송 틈새로 아스라이 소백능선이 보인다. 파도처럼 일어섰다 다시 숨을 죽이며 꼬리를 겹치고 있는 수많은 산이 정겹다. 시작과 끝을 알 수 없는 그 많은 산들이 허리를 포개서 만든 능선이 바로 고치령까지 이어져 있다. 고치령 정상(770m)은 그리 높지 않다.

 

정상에는 이정표만 하나 덜렁 있다. 정상을 넘으면 마락리 마을. 계곡이 깊어 말이 떨어져 죽었다고 이런 이름이 붙은 곳인데 모두 12가구가 사는 오지다. 한때는 소백산을 넘는 지름길로 박가분을 파는 방물장수나 봇짐을 짊어진 부보상들이 들락거렸다지만 이제는 근동에 사는 사람들조차 마을이 있는지도 잘 모른다. 소백산(054)638-6196

 

부석사 단풍도 빼놓을 수 없다. 부석사는 은행나무길이 유명하다. 황금빛으로 물든 은행나무길은 남이섬 은행나무길, 정동 은행나무길과 함께 가장 걷고 싶은 길로 꼽힌다. 은행잎이 떨어져 카펫처럼 깔린 진입로는 여행자의 가슴을 달뜨게하기 충분하다.

 

무량수전 바로 앞 안양루에 서면 소백능선이 한눈에 들어온다. 무량수전 뒤편에는 부석사 유래를 간직한 부석(浮石)이 있다. 부석사를 세운 의상대사를 사모하다 바다에 뛰어들어 용이 된 선묘낭자가 거대한 돌을 띄워 나쁜 무리들을 물리쳤다는 전설이 내려온다. 부석사(054)633-3464

 

‘핏빛 단풍’지리산 피아골·뱀사골

 

지리산에서 이름난 단풍골은 대개 피아골과 뱀사골로 압축된다. 단풍색은 피아골이 더 진하며 곱고, 계곡은 뱀사골이 넓고 예쁘다. 지리산 북부에 있는 뱀사골이 피아골보다 3~4일 빨라 10월말이 절정이다.

 

지리산에 묻혀 꼿꼿하게 선비의 길을 걸었던 남명 조식은 ‘산도 붉고 물도 붉고 사람도 붉다’는 삼홍시(三紅詩)로 지리산 단풍의 화려함을 노래했다. 피아골 단풍은 연곡사를 지나 직전마을에서 시작된다.

 

직전마을은 산비탈을 깎아 만든 다락논이 아름다운 마을. 피를 많이 재배해 옛이름은 피밭골이다. 피아골이란 이름도 여기서 나왔다. 피아골 단풍코스는 임걸령을 지나 노고단으로 이어지기도 하고, 산 너머 뱀사골로 갈 수도 있다. 하루 나들이 길은 피아골 산장까지 3시간 코스가 가장 좋다.

 

 


 

피아골단풍은 내장산단풍과 더불어 국내에서 가장 붉다. 그래서 곧잘 핏빛 단풍이라고 한다. 핏빛 단풍이란 피밭골 단풍이란 의미도 있지만 토박이들은 피아골의 슬픈 역사 때문이라고 한다.

 

 

지리산은 빨치산과 군인들이 치열한 격전을 벌였던 곳. 피아골 골짜기에서 수많은 사람이 목숨을 던졌다. 그들이 뿌린 피 때문에 단풍이 붉다는 얘기다.

 

뱀사골 단풍도 아름답다. 뱀사골 입구는 반선(半仙). 절반은 신선이 된다는 뜻이다. 수려한 암반이 어우러진 계곡의 초입만 봐도 탄성이 나온다.

 

12년 전 뱀사골에서 실족사한 지리산 시인 고정희는 ‘뱀사골에서 쓴 편지’에서 뱀사골을 이렇게 표현했다. ‘우리 일행은 뱀사골 계곡에 접어들자마자 감탄에 감탄을 거듭하면서 피곤 따위는 깡그리 잊고 말았습니다….

 

지리산 뱀사골의 웅장한 계곡은 오염의 티가 거의 없음은 물론 설악의 계곡처럼 바라다만 보면서 지나가야 하는 것이 아니라 어느 곳에서나 앉아서 쉬어가면서 즐기고 만져볼 수 있는 정다운 계곡이라는 데 새삼 놀랐습니다’

 

반선~와운마을~요룡대로 이어지는 코스는 담과 소가 어우러져 말 그대로 선경이다. 단풍 터널을 이룬 계곡은 뱀사골 산장까지 이어진다. 섬진강 언저리에서 태어나 지리산 자락을 보며 살다간 고 조태일 시인은 지리산 단풍을 이렇게 노래했다.

 

‘단풍들은/일제히 손을 들어/제 몸처럼 뜨거운 노을을 가리키고 있네/도대체 무슨 사연이냐고 묻는 나에게/단풍들은 대답하네/이런 것이 삶이라고’(단풍) 지리산북부(뱀사골)사무소(063-625-8911) 남부사무소(피아골)(061-783-9100)

 

‘애기단풍’ 진한 맛 내장산

 

호남 최고의 단풍 명산을 꼽을 때 첫손에 오르는 것이 내장산(763m)과 백암산(741m)이다. 현지 주민들은 백양사가 있는 장성 쪽이 백암산, 내장사가 있는 정읍쪽을 내장산이라고 이야기하지만 이름만 다를 뿐 한줄기 산이다. 내장산 단풍은 왜 그리 유명할까?

 

바로 국내에서 단풍나무의 종류가 가장 많기 때문이다. 단풍나무, 내장단풍, 아기단풍, 당단풍, 좁은단풍, 털참단풍, 중국단풍, 네군도단풍 등 모두 13종의 단풍나무가 섞여 있다. 샛노랑부터 핏빛까지 다양한 단풍에 현기증이 날 정도다. 10월 하순부터 시작해 11월 첫째주 절정을 이룬다.

 

단풍길은 백양관광호텔 앞에서 매표소까지 이어지는 약 1.5㎞의 산책로부터 단풍터널을 이룬다. 단풍나무로 둘러싸인 쌍계루는 관광엽서에 나오는 명소다.

 

쌍계루가 비치는 연못을 담기 위해 사진작가들이 새벽부터 삼각대를 받쳐두고 기다릴 정도. 어디 그뿐인가. 백암산의 하얀 기암과 어우러진 단풍숲은 ‘타오른다’는 말이 딱 어울릴 정도로 화려하다.

 

단풍을 보기 가장 좋은 곳은 약사암 오르는 길이다. 약사암은 자그마한 암자. 백양사 경내에서 30분이면 올라갈 수 있다. 약사암에서 내려다보면 고불총림 백양사를 한눈에 볼 수 있다.

 

단풍나무에 포위된 아늑한 절터를 보고 있으면 과연 ‘명당’이다싶어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백양사는 백제 무왕 때 세워졌다. 조선 선조 때 환양선사가 설법을 할 때 백양이 내려와서 설법을 들었다 해서 이름이 붙었다.

 

내장사는 백제 의자왕 때 세운 고찰. 한때 50여 동의 대가람을 이뤘다고 한다. 단풍길은 들머리 단풍나무터널부터 시작된다.

 

단풍잎으로 그늘막을 친 길은 혼례길처럼 화사하다. 내장산 단풍은 애기단풍이 많다. 작지만 색깔이 진하다.

내장산 (061)393-3088

 

 


‘한 편의 명화’ 주왕산과 주산지

 

청송 주왕산은 신비하다. 최고봉이래야 721m밖에 되지 않은 산이지만 기암이 잘 발달돼 수려하다. 진입로는 기암을 끼고 돌아야 하는데 마치 ‘신밧드의 모험’에서 나오는 돌문으로 들어가는 것 같다.

 

바위벽을 넘어서 이어지는 등산로는 전혀 딴세상. 폭포와 개울이 하나둘 시원스럽게 나타나고 한가운데 분지형의 전기없는 마을 내원동이 앉아있다.

 

이런 지리적 이점 때문에 주왕산은 한때 도둑떼의 소굴이 되기도 했다. 주왕산이란 이름은 주왕이 피난해 살던 땅이라는 뜻. 주왕은 신라말 중국에서 건너온 왕이라고도 하고, 헌덕왕 때 반란을 일으킨 김헌창이라는 설 등 두 가지가 내려온다.

 

주방산성 터와 무장굴 주왕굴 등이 남아 있다. 단풍은 이런 기암에 다닥다닥 붙어있다. 기암괴석과 어우러진 단풍나무가 일품. 병풍바위, 시루바위, 장군암, 급수대, 학소대 등도 단풍이 좋다.

 

3개의 폭포를 지나면 전기 없는 마을 내원동으로 이어진다. 전기는 들어오지 않지만 마을사람들은 발전기를 돌리며 전기를 만든다.

 

주산지 왕버들단풍도 아름답다. 주왕산 국립공원 남서쪽 끝자락에 있는 주산지는 조선 중기에 세워진 인공연못. 둘레 1㎞, 길이 100m에 불과하다.

 

연못 북쪽과 동쪽 가장자리에 왕버드나무 30여 그루가 물에 잠긴 채 자라는 광경이 일품이다. 물안개가 아스라이 깔리는 새벽녘엔 물과 나무가 어우러져 신비스럽다. 물속에 잠긴 왕버들의 단풍이 마치 관광엽서처럼 아름답다. 주산지는 사실 관광지는 아니었다.

 

부지런한 사진작가들에 의해 알려지기 시작했고, 김기덕 감독의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의 무대가 되면서 지금은 명소가 돼버렸다. 수상 암자(세트)는 촬영 직후 철거됐다. 주왕산(054)625-8911

 

‘영산의 조화’ 한라산

 

흔히 단풍을 이야기할 때 한라산은 쏙 빠진다. 보통 10월말까지가 절정인데 이때는 설악산 단풍이 설악동까지 내려오며 내장산도 서서히 물이 들기 시작하는 때.

 

결국 뭍사람들은 갈 곳이 많아 한라산까지 눈을 돌리지 못하지만 그렇다고 한라산 단풍이 다른 산에 비해 뒤진다고 얘기할 수는 없다. 한라산은 국내에서 식생이 가장 다양한 산 중 하나다. 산 아래는 아열대림이 숲을 이루고 산정은 고산식물이 자란다.

 

나무가 많다는 것은 단풍 색깔도 다양하다는 뜻. 붉은 단풍, 노란단풍, 주황단풍, 황록단풍, 파스텔 단풍 등 온갖나무들이 저마다의 색깔로 물들기 시작한다. 여기에 한국특산종이 구상나무까지 섞여 붉음과 푸름이 조화를 이룬다.

 

한라산 코스는 크게 2가지. 어리목~윗세오름~영실 코스와 성판악~백록담~관음사코스다. 어리목~영실코스는 6시간 정도로 비교적 쉽지만 성판악코스는 9시간 이상 걸려 전문가가 아니면 녹초가 되기 십상이다.

어리목코스는 산행기점이 해발 1100m인 1100도로(99번 도로)상이어서 그리 힘들지도 않다.

 

음에는 숲이 빽빽하고 더 올라서면 확트이는 윗세오름 지역이 나타난다. 윗세오름에서 백록담을 바라보노라면 한라산이 왜 영산으로 꼽히는지 알 수있다. 영실로 넘어오는 길목은 단풍나무도 많고 숲도 울창하다.한라산(064)713-9950

 

<매거진X부/최병준 기자 bj@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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