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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DAY 스크랩】"연봉잔치요? 어느 나라 얘긴가요?"

피나얀 2005. 12. 6. 18:10

 


 

 

▲ 영화 <고양이를 부탁해>의 한 장면. 증권사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하는 혜주(이요원 분)는 또래 친구 중에서는 유일한 직장인이지만 회사에서는 차별을 받고 있다.


 

잠깐 영화 이야기를 해보자. 상고를 졸업한 5명의 또래 여자들을 그린 <고양이를 부탁해>. 5명의 주인공 가운데 한 명인 혜주(이요원 분)은 증권사 비정규직으로 일한다. 그래도 또래 중에서 가장 '잘 나가는' 직장인이라고 뽐내지만, 비정규직원인 그녀는 실상 회사 내에서 온갖 설움을 겪으며 살아간다.

ㄷ증권사 여의도 본사에서 애널리스트들의 업무를 보조해 주고 있는 윤아무개씨(21). 익명을 전제로 취재에 응한 윤씨는 영화 속 주인공 혜주와 꼭 닮아 있었다. "이거 이름 안 나오는 거죠? 이름 나오면 저 바로 잘립니다." 지난 1일 저녁 7시 수화기를 통해 만난 윤씨는 인사도 하기 전에 불쑥 이 말부터 꺼냈다.

"정규직들은 성과급에 설레는데, 저희도 떡고물 떨어질지"

증시가 사상 최대의 활황을 보이면서 주변의 정규직원들이 연말 보너스를 기대하고 있지만 윤씨에게는 '그림의 떡'이다. 오히려 쌓여만 가는 일감에 힘만 더 부칠 뿐이다.

"정규직 직원들은 연말에 성과급이 나온다며 벌써부터 설레어 있던데, 저희에게도 떡고물이 떨어질 지는 모르겠어요. 지난 추석 때도 정규직원들에게만 명절 보너스가 나왔거든요. 정규직원들과는 밥도 매일 같이 먹고 회식도 같이 하는데 저희만 그런 대접을 받으니까 같은 직장에 근무해도 한 식구란 생각이 안 들어요."

한국증권업협회에 따르면 지난 9월말 현재 53개 국내 증권사의 계약직원은 전체의 20%선인 5400명이다. 이 가운데 윤씨처럼 '관리팀 직원'으로 근무하고 있는 비정규직원은 400여 명. 이들의 월급은 150만원 남짓이다. 증권사 대졸 초임 월급의 절반을 조금 웃도는 수준이다.

가뜩이나 증권주 상승으로 대박을 올린 증권맨의 얘기를 접할 때마다 윤씨의 설움은 더 깊어만 간다. 최근 강찬수 서울증권 회장은 스톡옵션 행사로 5억여 원의 평가이익을 거뒀다. 또 지난달 주가가 3만원선을 돌파한 키움닷컴증권 정규직원들도 스톡옵션과 우리사주로 대박을 터뜨렸다.

ⓒ2005 오마이뉴스 한은희

 

'비정규직의 백화점', 은행 직원 10명중 3명은 비정규직

그래도 증권사 비정규직원은 은행보다 나은 편이다. 은행권의 비정규직을 일컬어 흔히 '비정규직의 백화점'이라고 부른다. 그만큼 다양한 비정규직 근무형태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은행 내 비정규직은 지점 창구 텔러, 콜센터, 대출, 총무, 청원경찰, 마케팅, 전산, 운전, 여신상담, 시설관리 등 그 업무가 다양하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 6월말 현재 국내 은행 임직원은 모두 12만3660명으로, 이 가운데 정규직이 8만6527명인 반면 비정규직은 3만5700명에 달했다. 비정규직원이 전체의 30%에 육박한다. 은행에 다니는 10명 중 3명은 은행권의 '연봉 잔치'와는 무관하게 극심한 저임금에 시달리고 있다.

올해 2월 서울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ㅈ은행 청원경찰로 직장생활에 첫발을 내딛은 고아무개씨(27)는 자신을 화려함 속에 가려진 '그늘'에 비유했다. 최근 은행들이 사상 최고의 실적을 올리면서 정규직 은행원들은 화끈한 '돈 잔치'를 기대하고 있지만 고씨의 한숨은 오히려 깊어만 간다.

고씨가 지난 11월 한달 간 근무하고 받은 월급은 137만원. 하지만 이마저도 전부 고씨의 몫이 아니다. 세금을 빼고 고씨가 속한 용역회사에 각종 공제비 명목으로 33만원을 보내고 나면 고작 98만원에 그친다.

"시골계신 부모님은 은행 다닌다고 좋아하시는데"

"시골에 계신 부모님은 제가 은행에서 근무한다고 좋아하시지만 올해 취직한 뒤 부모님께 변변하게 용돈 한 번 못 드렸습니다. 은행권 실적이 사상 최대라느니, 평균 연봉이 6천만원이 넘는다느니 하는 얘기를 들을 때마다 제 속은 더 타들어갑니다. 혹시 모르겠네요. 올 연말엔 우리 같은 비정규직에게도 상여금이 좀 나오려는지…."

ㄱ은행 서울 잠실지점에서 창구 텔러로 근무하는 최모(32)씨는 요즘 들어 아침에 출근하는 것이 더 괴롭다. 일부 온라인 대출 상담 외에 정규직과 업무 차이가 거의 없지만 대우는 한참 뒤떨어지기 때문이다. 지난 추석 때는 정규직노조가 목소리를 내 얼마간 추석상여금을 받았지만 연말에는 이마저도 어려울 것 같다는 게 최씨의 푸념이다.

"노조 소식란에 들어가 보면 저희들 연말 성과급에 관한 건 아예 교섭내용에도 끼지 못했습니다. 아무리 사상 최대의 흑자를 내면 뭐 합니까? 남의 얘기인걸…. 정직원들은 지난달 급여에 보너스 그리고 이번 달에 연말보너스 또 받겠죠? 한 달 지나고 설 되면 또 보너스에 성과급까지…. 이런 얘기 해봤자 달라지는 건 없지만 요즘 같은 땐 정말 아침에 눈떠서 출근하는 게 너무 싫습니다."

전국은행연합회에 따르면 국내 은행에서 근무하는 비정규직 사원의 연간 급여는 1500만~2000만원으로 조사됐다. 금감원 분기보고서에 기재된 은행권 정규직 평균 급여는 6200만원 수준. 대부분 은행 비정규직이 도시 근로자 가구 월 평균소득(331만원)보다 200만원 가까이 덜 받는 반면 정규직은 200만원이나 더 받고 있는 셈이다.

비정규직 은행원, 십중팔구 월급 150만원 이하... 둘은 100만원 이하

 
▲ 민주노총이 비정규직 권리보장 입법 쟁취를 위한 총파업에 돌입한 가운데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1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비정규직철폐를 요구하고 있다.
ⓒ2005 오마이뉴스 남소연

최근 전국금융산업노조가 작성한 '2005 금융산업 비정규직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비정규직 은행원들의 처지는 더 참담하다. 조사 대상 비정규직 은행원들 가운데 20%가 은행 청원경찰 고씨처럼 100만원 이하의 월급을 받고 있으며, 89.9%가 150만원도 채 받지 못하고 있다.

비정규직의 설움은 이것으로 끝이 아니다. 언제 해고될 지 모르는 고용불안은 비정규직원들을 하루하루를 두려움 속에 떨게 한다. 이같은 불안은 은행 간 합병을 앞둔 비정규직원들 사이에서 더 크다.

최근 ㅈ은행 청원경찰들 사이에선 급여이체 통장을 ㅈ은행에서 ㅅ은행으로 옮기는 일이 한창이다. 내년 초 두 은행 간 통합을 앞두고 자신들의 목소리에 힘을 싣기 위해 청원경찰들이 먼저 치고 나온 것.

ㅈ은행 청원경찰로 근무 중인 조아무개(29)씨는 "통합되기 전에 우리의 급여와 복지 수준이 ㅅ은행만큼은 돼야 통합 이후 우리의 고용상태도 안정적으로 보장될 수 있다"며 "현재로선 우리가 은행에 맞설 수 있는 일이 계좌이전이나 카드해지 뿐이다"고 말했다.

일부 은행들은 비정규직에게 '고용연한제'를 적용해 3년 이상 근무하면 계약직 직원들을 업무 성과에 관계없이 교체해 고용불안을 더욱 부추기고 있다.

"정규직은 욕 한번 들으면 되지만 비정규직은 쫓겨날 수도"

임금이나 고용상태는 정규직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열악하지만 영업실적에 대한 압박은 정규직원 이상이다. ㅅ은행 창구 텔러로 근무하고 있는 김아무개(21)씨는 이를 간단하게 "계약직의 비애"라고 말했다.

"정규직과 똑같이 일해요. 상품도 같이 팔고요. 모두에게 실적에 대한 압력이 들어오지요. 그러나 실적이 저조할 때 정규직은 욕 한번 들으면 되지만 비정규직은 쫓겨날 수 있다는 겁니다. 실적 압박으로 하루하루가 긴장의 연속입니다."

금융노조의 최근 조사결과는 이 같은 비정규직원의 '비애'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 조사결과에 따르면 비정규직원의 58.1%가 정규직과 업무의 내용이 거의 같다고 답했다. 또 근무시간, 업무의 양과 관련해서도 정규직과 동일하다는 비중이 각각 69.4%, 63.3%에 달했다. 그러나 비슷한 자격, 경력의 정규직 임금수준과 비교했을 때 정규직보다 50% 이하의 임금을 받고 있다는 답변이 45.9%를 차지했다.

은행 정규직전환제도, 있으나마나

 
ⓒ2005 오마이뉴스 한은희

각 은행은 이같은 비정규직 차별을 막기 위해 노사 합의로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제도를 시행하고 있으나 정규직 전환자가 극소수에 불과해 사실상 실효성이 없다. 은행연합회에 따르면 지난 2004년부터 올해까지 우리, SC제일, 하나, 국민, 외환, 신한은행의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비중은 3.5%에 불과했다.

권혜영 금융노조 비정규지부 위원장은 "인건비를 절감할 수 있고 해고가 쉬워서 갈수록 은행의 비정규직 고용 비중이 늘어나는 추세"라며 "일부 은행의 경우 징계에 준하는 처분에 대해 정규직에게는 항변의 기회를 주고 있지만 비정규직에게는 담당 부서장의 요구만으로 처분이 이루어질 정도로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이 심하다"고 밝혔다.

올해 들어 지난 3분기까지 국민, 우리, 외환은행이 1조원 이상의 순이익을 올리는 등 대부분의 시중은행들이 사상 최고의 실적을 달성했다. 그러나 전체 은행 직원의 30%에 해당하는 비정규직원에 대한 처우는 거꾸로 가고 있다.

비정규직원들 사이에서 "은행의 막대한 이익을 과연 누가 이룩한 것인가?"란 푸념이 새어 나오는 것도 이같은 이유에서다.

 

[오마이뉴스 김연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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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오마이뉴스 2005-12-05 14: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