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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최고의 배우들, 도쿄에서 만나다<게이샤의 추억> 일본 기자 회견

피나얀 2005. 12. 17. 21:11

 


 

 

 


영화 <시카고>로 지난 2003년 아카데미상 6개 부문을 석권했던 롭 마샬 감독이 연출한 <게이샤의 추억>이 개봉을 앞두고 지난 11월 28일 도쿄에서 기자 회견을 열었다. 장쯔이, 공리, 양자경, 와타나베 켄, 야쿠쇼 코지 등 이름만으로도 아시아를 대표하는 배우들이 총집결해 그 규모를 과시했다. 국내에선 내년 초 개봉 예정이다.

일본은 지금 <게이샤의 추억>으로 술렁이고 있다. 하얀 벚꽃풍의 배경으로 입술을 붉게 물들이고 기모노를 다소곳이 차려 입은 주인공 장쯔이를 내세운 <사유리>(일본 개봉 제목)의 거대 광고판이 미일 동시 개봉일인 12월 10일에 맞춰 시부야역 광장에 걸렸다.

 

오가는 사람들은 일본 전통 문화의 주요 상징 가운데에 하나인 게이샤를 중국 배우가 연기한다는 사실, 그리고 그 미스터리한 세계가 할리우드의 대자본으로 완성됐다는 사실에 당혹감과 놀라움을 동시에 느끼는 듯했다.

그럼에도 미일 동시 개봉, 할리우드 제작, 와타나베 켄 출연이라는 점에서 <게이샤의 추억>은 여러모로 <라스트 사무라이>에 견줄 만하다.

 

에드워드 즈윅 감독, 톰 크루즈 주연의 <라스트 사무라이>는 137억 엔의 수입을 올리며 <해리포터와 아즈카반의 죄수>(135억 엔)를 제치고 2004년 일본 개봉 외화 중 최고의 성적을 올렸다.

 

에드워드 즈윅 감독만큼이나 평소 일본 문화와 영화에 관심이 많았던 롭 마샬 감독, <라스트 사무라이>에 이어 다시 한번 오스카 남우조연상 후보로 거론되고 있는 와타나베 켄 역시 <게이샤의 추억>도 그만큼의 성공을 거두리라 확신한 것으로 보인다.

월드 프리미어를 위해 장쯔이, 양자경을 비롯해 롭 마샬 감독이 속속 도쿄를 방문하면서 기자 회견 행사의 분위기는 고조됐다.

 

촬영 종료 이후 그들과 함께 할 수 없었던 와타나베 켄, 야쿠쇼 코지 등 일본을 대표하는 남자배우들 역시 모처럼의 해후에 들떠 있었다. 일종의 악역으로 최고의 연기를 선보인 공리가 마이클 만 감독의 <마이애미 바이스> 출연 차 방문하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웠다.

특히 같은 날 <미스터&미세스 스미스>의 뒤늦은 일본 개봉 차 브래드 피트, 안젤리나 졸리 커플도 도쿄를 방문하면서 매스컴은 유난히 들뜨기 시작했다. 둘 다 할리우드 영화이면서도 묘하게 아시아 대 미국의 묘한 대결 구도가 형성되기도 했으니, 도쿄는 이날 최근 들어 가장 뜨거운 문화적 이슈에 직면했던 셈이다.

하지만 <미스터&미세스 스미스>와 <게이샤의 추억>이 서 있는 지점은 전혀 다르다. <게이샤의 추억>을 바라보는 일본을 포함한 아시아의 시선은 단순한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를 대하는 것 이상이다.

 

이들에게 <게이샤의 추억>은 동아시아의 정세, 문화, 기호 등이 한데 녹아 있는 용광로와도 같다. 장쯔이는 “아시아 배우들의 재능을 전세계에 알릴 기회”라고 말했고, 일본의 국민 배우라 불리는 야쿠쇼 코지는 “일본 전통 문화를 다룬 <게이샤의 추억>이 세계 35개국에서 개봉된다니 무척 기쁘다”고 말했다.

그만큼 <게이샤의 추억>은 양조위, 기무라 타쿠야, 장첸 등이 출연했던 왕가위 감독의 <2046>에 이어 최근 몇 년간 아시아 배우들의 캐스팅에 관한 한 단연 빅 프로젝트다.

 

한국계 배우인 의사 역의 랜달 덕 킴과 극중 하츠모모가 사랑에 빠진 코이치 역의 칼윤이 단역 수준이라 아쉬움이 남지만 <카게무샤>(1980), <스왈로우테일 버터플라이>(1996), <이조>(2004) 등에 출연했던 대표적인 일본의 중견 여배우 모모이 카오리, 짐 자무시의 <미스터리 트레인>(1989)에 출연하며 국제 무대에 알려졌던 구도 유키, 그리고 유키사다 이사오의 <북의 영년>으로 데뷔했던 깜찍한 아역배우 오고 스즈카도 주연급 배우들에 뒤지지 않는다.

<게이샤의 추억>은 1999년 출판되자마자 장기 베스트셀러 대열에 올랐던 아서 골든의 원작을 충실히 재현하고 있다. 신비로운 눈을 지닌 소녀 치요(오고 스즈카)는 가난 때문에 언니와 함께 교토로 팔려간다. 홍등가로 가게 된 언니와 생이별한 치요는 게이샤가 되기 위한 수업을 받게 된다.

당대 최고의 게이샤 하츠모모(공리)의 괴롭힘을 당하면서도, 어느 날 운명처럼 마주친 남자 체어맨(와타나베 켄)에 대한 불같은 감정으로 꼭 멋진 게이샤가 되리라 다짐한다.

 

이후 치요는 하츠모모의 라이벌과도 같은 또 다른 최고의 게이샤 마메하(양자경)의 도움과 혹독한 훈련을 거쳐 사유리(장쯔이)란 이름으로 성공적인 게이샤 데뷔를 한다. 하츠모모 역시 사유리의 오랜 친구인 펌킨(구도 유키)을 계속적으로 지원한다. 이즈음 사유리는 다시 체어맨을 만나게 되지만 그는 이미 마메하의 후원자이기 때문에 자신의 감정을 숨길 수밖에 없다.

한편, 체어맨의 친구이자 은근히 그녀를 사모하는 기업가 노부(야쿠쇼 코지)도 접근해 오지만 사유리의 마음은 오직 체어맨에게로 향해 있다. 사유리는 자신만의 단독 공연을 멋지게 성공시킴으로써 이제 노부뿐 아니라 수많은 남자들이 선망하는 교토 최고의 게이샤로 거듭난다.

 

하지만 2차 세계대전의 포화는 모든 것을 물거품으로 만들어 버린다. 그렇게 게이샤의 세계는 전화에 휩쓸리지만 사유리의 마음은 언제나 변함없다.

게이샤는 화려하지만 슬픈 이름이다. 게이샤는 일본을 대표하는 주요한 상징 중 하나지만 여전히 베일에 가린 세계다.

 

샤미센(三味線, 기타를 닮은 일본 전통 악기) 가락과 기모노에 슬픈 운명을 숨기고 찬란한 개화(開花)의 꿈을 품고 사는 그들의 삶 뒤에는 예(藝)의 향기로 스스로를 채우려는 고결한 지향이 있다.

5살에 게이샤의 세계에 입문해 29살의 나이에 은퇴했던, 당대 가장 성공했던 실제 게이샤 이와사키 미네코가 랜디 브라운과 함께 쓴 자서전 <게이샤 A Life>에서 그는 카류카이(花柳界)와 게이샤(藝者)에 대해 이렇게 얘기한다.

 

“화류계는 ‘꽃과 버드나무의 세계’라는 뜻이다. 게이샤 개개인이 나름의 아름다움을 표출한다는 점에서는 꽃을 닮았고, 공손하고 나긋나긋하면서도 강하다는 점에서는 버드나무와 비슷하다.

그것은 또한 전문 교육을 받은 게이샤들이 함께 살면서 일하는 공동체이기도 하다.” 말하자면 게이샤의 세계는 닫힌 공동체다.

 

롭 마샬 감독은 그들의 화려한 ‘예’의 세계를 시각적으로 재구성하는 한편으로, 제약 조건이 많은 공동체에서 살아가면서 겪게 되는 좌절과 한숨을 짙게 담아낸다.

흥미로운 것은 <게이샤의 추억>의 대부분은 거의 ‘작은 일본’과도 같은 LA의 세트장에서 촬영됐다는 점이다. 일본 역사학자의 고증과 감수를 거쳐 1920년대 일본 시대상을 완벽하게 재현해낸 것이다.

 

흩날리는 벚꽃 사이로 이야기를 나누는 사유리와 체어맨, 휘몰아치는 눈보라를 헤치며 종종걸음을 걷는 게이샤들의 모습 모두 4계절을 전부 담아낸 초대형 세트에서 완성됐다.

일본 전통 문화를 정면으로 다루면서도 실제 일본 촬영 분량은 20% 정도밖에 안 된다니, 중국 로케이션으로 촬영됐던 할리우드 영화 <와호장룡>과는 또 다른 묘한 감정이 들게 한다.

 

결국 그것은 ‘보편적인 러브스토리’를 갈구했던 롭 마샬 감독의 의지다. 서양인의 몸으로 실제 게이샤가 돼 <게이샤>라는 책을 썼던 리자 댈비로부터도 아낌없는 조언을 구하며 혹시라도 생겨날지 모를 오류를 막고자 했다. 그렇게 그는 완벽주의자로서의 면모를 과시했다.

중국 배우가 게이샤를 연기하는 것, 일본의 기존 세트를 충분히 활용할 수 있음에도 LA에 굳이 새로운 세트를 마련한 것 모두 그만의 독자적인 무대를 완성하기 위해서였다. 하나의 무대에서 모든 것이 이루어지는 브로드웨이의 베테랑 연출자였던 것처럼, 그는 <게이샤의 추억>도 온전한 자신만의 세계로 완성했다.

사진 제공 소니 픽쳐스 릴리징 코리아
도쿄=주성철 기자

출처-[필름 2.0 2005-12-16 21: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