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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리뷰> 임동민-임동혁 쇼팽 협주곡 연주회

피나얀 2006. 1. 13. 21:11

 


 

 

 

임동민


(서울=연합뉴스) 노승림 객원기자 =

 

한 형제가 같은 악기를 다루는 경우는 흔치 않다.

설령 처음에는 같은 악기로 시작하더라도 결국에는 서로 겹치지 않게 다른 종목으로 전향하게 마련이다. 정 트리오가 그러했고, 첼리스트 조영창의 삼남매가 그러했다.

 

서로서로 사이좋게 잘 지내는 화기애애한 실내악적 화목을 추구하는 부모의 권유도 있겠지만 실제적인 이유는 좀더 현실적이다. 같은 악기를 연주하는 경우 '보다 못하는' 쪽이 도태되기 때문이다.

 

단순히 아마추어로서의 유희를 넘어서 프로페셔널한 세계로 진입할 때 이 공식은 더욱 확실하게 적용된다.

때문에 피아니스트 임동민 & 임동혁 형제는 참으로 보기 드문 케이스다. 그 예외 성은 다만 같은 악기를 연주한다는 점에서 그치지 않는다.

 

네 살 터울의 이들 형제는 1996년 국제 영 쇼팽 콩쿠르에서 1, 2위를 함께 수상하며 공식적인 커리어를 동시에 시작했으며, 러시아에 건너가 같은 스승을 사사한 후 최근까지도 함께 하노버 국립음대에 재학했다.

 

결국에는 쇼팽 콩쿠르에서 형제가 2위 없는 공동 3위에 입상하는, 역대 그 어느 대회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유례없는 케이스를 기록했다.

하지만 이들 형제의 이름이 이번 쇼팽 콩쿠르에서처럼 언제나 동등하게 언급된 것은 아니었다.

 

형 동민은 2년 먼저 피아노를 시작하고 맨 처음 영 쇼팽 콩쿠르에서 동생을 제치고 우승을 차지하는 등 시작단계에서는 먼저 두각을 나타냈지만, 동혁이 프랑스 롱 티보 콩쿠르에서 최연소 우승을 차지하면서 상황은 역전되었다.

 

여기에 현존하는 '건반 위의 여제' 마르타 아르헤리치의 적극적 후원과 EMI 레코딩 데뷔, 2003년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수상 거부 파문에 이르기까지 이후 각종 센세이션을 동반한 동생의 커리어는 안타까운 일이지만 상대적으로 형의 이름을 위축시키기에 충분했다.

어느 틈엔가, 임동민의 이름은 독립적으로 불리지 못하고 '임동혁의 형'으로 세간에 각인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1월5일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열린 이들 형제의 쇼팽 협주곡 전곡 콘서트는 그들이 아예 비교 자체가 무의미하고 불가능한 개체라는 것만을 확인시켜주었다.

여기서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은 같은 악기를 다루는 형제라고 해서 언제나 경쟁이나 비교의 대상이 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이들 형제에게 이런 종류의 시선이 쏠리는 이유는 학업과 경력, 심지어는 레퍼토리에서도 나란히 거의 동일한 길을 걷고 있는 그들의 커리어에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다.

또한 이런 형태의 합동 콘서트가 세인들이 가지기 좋아하는 비교의 시선을 한층 더 자극하는 요인이 되었음은 물론이다.

 

국내 팬들에게 상대적으로 노출이 덜 되어 있었던 임동민은 임동혁과 매우 다른 성향의 피아니스트였다.

 

이날 콘서트 전반부에서 나와 협주곡 1번을 연주한 임동민은 무대에 나오는 것을 어색해하고 객석을 정면으로 바라보지 못할 만큼 내성적이고 소극적인 아티스트였다.

그런 그가 가지고 있는 음색은 만지면 부서질 듯 대단히 투명하고 순수한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었다.

 

스케일 면에서는 다분히 밀리는 면이 없지 않았지만, 특히 느린

 

임동혁


2악장에서 그 음색은 세종문화회관이라는 열악한 환경에도 불구하고 찬연히 빛을 발했다.

 

임동민은 매우 성의있는 피아니스트였다. 같은 프레이징 안의 같은 음 하나도 그는 다른 소리로 표현하는 섬세함을 보여주었고, 빠른 패시지 안에서조차 재차 생각을 한 뒤에 건반을 누르는 듯한 신중함과 집중력을 가지고 있었다.

 

몇 번의 커튼 콜 끝에 나와 앙코르로 연주한 '녹턴 Op.49-1'은 본 연주보다도 더욱 인상깊게 다가왔다.

자칫 선율의 아름다움만 추구하며 겉멋으로 끝날 수 있는 이 소품을 통해 그는 아름다움 그 이상의 슬픔이라든가 상처가 연상되는, 다분히 모성애를 자극하는 메시지를 전달했다.

 

인터미션 이후 협주곡 2번을 연주한 임동혁은 훤칠하게 성장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거침없이 피아노 앞으로 걸어 들어와 건반을 섭렵하는 그의 타건에서는 신중함 이라든가 주저함이 전혀 엿보이지 않았다.

 

여전히 타고난 직관으로 밀어붙이는 스타일은 연주를 하는 가운데에도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여 음악적 요소를 엮어내는 형 동민의 신중한 스타일과 180도 다른 모습이었다.

 

다만, 자신의 직관을 확신하는 임동혁의 자신감과 여유가 더욱 자라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느린 악장에서 부각된 음색 역시 형 동민과는 다른 아름다움을 내포하고 있었다.

 

하지만 역시 형과 마찬가지로 스케일을 장악하지 못하는 스태미너의 부족은 여전한 숙제로 남아 있는 듯 했다. 이는 아마도 도통 체중이 늘지 않는 신체적인 한계 때문일 것이다.

워낙 음악 자체가 그렇게 작곡되긴 했지만, 이날 콘서트는 거의 피아노가 모든 전권을 위임받았다. 솔리스트들을 최대한 배려한 지휘자 이대욱의 배려가 이들의 피아니즘을 한껏 음미할 수 있었던 요소로 작용하긴 했다.

 

하지만 함께 무대 위에 올라선 서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의 협연은 많은 아쉬움을 남겼다.

현악 파트는 뭉개어져 음의 고저가 도통 구분이 되지 못하는 수준이었고 목관의 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았으며, 악보에 없는 음을 불어대는 금관의 몰락은 거의 참담한 수준이었다.

협주 이전에 연주한 모차르트의 '피가로의 결혼' 및 '마술피리' 서곡 또한 별다른 개성이나 생기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 무색무미한 연주에 그쳤다.

 

이날 형제의 콘서트는 지난해 쇼팽 콩쿠르에서 함께 일군 개가가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이들의 합동 콘서트가 이번 한 회로 끝났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들은 피를 나눈 형제일지는 모르지만 성격적으로나 음악적으로 완전히 판이한 아티스트임이 이번 공연을 통하여 더욱 확실하게 드러났다.

 

독립하여 각자 다른 길을 걸어가야 하는 이들을 무리하게 하나로 묶어 가치판단을 하게끔 조성하는 분위기는 아직 지나온 길보다 나아가야 할 여정이 훨씬 더 많이 남은 젊은 예술가들에게 썩 좋은 영향을 끼치지 못할 것 같다(심지어 그들은 예술가치고도 별스러운 예민함의 소유자들이다).

 

더 이상 누구의 형, 누구의 동생이 아니라 '임동민' '임동혁'이라는 각자의 이름으로 온전히 자신 만의 무대를 누리는 날이 오기를 기대해 본다.

 

 

 

alephia@hotmail.com (끝) <저 작 권 자(c)연 합 뉴 스. 무 단 전 재-재 배 포 금 지.>

출처-[연합뉴스 2006-01-06 15: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