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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말없는 아버지, 힘없는 아버지, 때리는 아버지, 이혼한 아버지, 죽은 아버지
우리 시대 아버지가 그러하듯
아버지가 없는 풍경 역시 외롭고 높고 쓸쓸하다
▣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어쩌면 그는 외롭고, 높고, 쓸쓸했을 것이다. 가부장의 자리에서 아버지는 쓸쓸했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자식들은 아버지를 닮았다는 말에 화들짝 놀라기도 한다.
아버지의 존재가 반드시 행복의 조건은 아니듯 아버지의 부재가 반드시 불행의 이유는 아니었다. 그리고 세상의 아버지는 하나의 얼굴이 아니다. 기형도의 목소리를 빌리자.
시인 기형도는 “그해 늦봄 아버지는 유리병 속에서 알약이 쏟아지듯 힘없이 쓰러지셨다”(‘위험한 가계(家系)’·1969)고 썼다. 누군가의 아버지는 그렇게 일찍부터 부재했다.
어떤 아버지는 돌아오지 않았다. “이튿날이 되어도 아버지는 돌아오지 않았다. 아버지는 간/ 유리 같은 밤을 지났다.”(‘폭풍의 언덕’) 어떤 집에서 아버지는 유령 인간이었다. “살아서 헛것”(‘물 속의 사막’)이었다.
그리고 그는 말이 없었다. “아버지, 여전히 말씀도 못하시고 굳은 혀. 어느 만큼 눈이 녹아야 흐르실런지.”(‘위험한 가계(家系)’) 마침내 아버지의 존재는 “장마비, 아버지 얼굴 떠내려 오신다… 우수수 아버지 지워”(‘물 속의 사막’)졌다.
지워졌던 아버지의 얼굴을 다시 그려보았다. 아버지의 부재를 통해서 아버지의 존재를 확인했던 이들의 기억을 모았다. 아버지가 부재하는 풍경도 하나의 그림이 아니다. 처음엔 개었다가 때로 흐렸다가 마침내 비가 내리기도 한다.
아버지가 없는 풍경 역시 외롭고, 높고, 쓸쓸하다. 말없는 아버지, 힘없는 아버지, 때리는 아버지, 이혼한 아버지, 죽은 아버지. 아버지의 부재에 대한 다섯 개의 기억에 80년대생 소설가 김애란씨가 20대가 그린 아버지의 얼굴을 보탰다. 오늘의 광고는 노래한다. “아버지는 말하셨지 인생을 즐겨라~.” 아버지와 다시 그렇게 만나고 싶다.
당신도 눈물을 흘리셨나요
무뚝뚝한 아버지에 대한 고백… 돌아가신 뒤에
나를 괴롭히는 후회와 억울함
그의 꿈과 행복은 무엇이었을까 “아버지, 하늘나라에서 일촌 맺으실래요?”
▣ 김창석 기자 kimcs@hani.co.kr
인간관계에서 눈물은 때때로 소통의 실마리 구실을 한다. 측은지심이 발동하고, 마음의 벽이 허물어지고, 대화가 오가는 출발점이 되기도 하니까. 그런데 내 기억 속에 있는 아버지는 ‘내가 있는 자리에서’ 운 적이 한 번도 없다. 엉엉 우는 모습은커녕 찔끔 눈물 흘리는 모습도 없다.
<고향의 봄>을 부르던 아버지
눈물이 눈에서 나왔을 법한 ‘정황’은 있었다. 그러니까 1983년 한국방송 이산가족찾기를 온 가족이 함께 볼 때였다. 아버지는 텔레비전을 보다 말고 슬쩍 자리를 떠 다른 방으로 도피했다. 한국전쟁 와중에서 열아홉 살의 나이로 고향인 함경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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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청에서 아버지·어머니와 생이별을 해야 했던 당신의 처지인지라
가족이 생각나 눈물을 흘렸을 거라는 게 어머니의 짐작이었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엉엉 우는 장면을 몇 번 봤다고 하는 걸 보면 ‘남자의 눈물’보다 ‘아버지의 눈물’이 더 희소성이 있는 게 틀림없다.
우리 세대의 아버지들은 자식들에게 ‘속내’를 보이면 안 된다는, 사이비 종교를 믿는 광신도들이었는지도 모른다. 내 앞에서 눈물을 흘리지 못한 아버지와 나의 소통지수는 그래서 거의 최악이었다.
아버지는 50대 후반의 나이에 20대 초반이었던 나를 남겨두고 병으로 돌아가셨다. 숨이 멎는 순간까지도 그는 내게 인간적인 괴로움을 개인적인 어법으로 표현하지 않았다. 그날 이후 내가 제일 아쉽고 억울했던 건 아버지와 제대로 대화를 나눠본 적이 별로 없다는 사실을 반복적으로 깨달아야 한다는 점이었다.
인생에서 정말 이루고 싶은 꿈은 무엇이었는지, 세상을 살면서 제일 보람 있는 일은 무엇이었는지, 이성을 사귀는 일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했는지, 가장 기뻤던 일은 무엇이었는지, 가장 관광하고 싶은 나라는 어디였는지…. 나는 지금도 가끔 그런 게 궁금할 때가 있다. ‘아버지에게 말 걸기’가 세상 어떤 일보다 힘들었던 난 “나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고 변명해보지만 생애를 두고 끊임없이 후회하는, 일종의 정신적 외상을 피해갈 수는 없었다.
그도 태어날 때부터 무뚝뚝하지는 않았으리라. 나는 기억한다. 고향에서 북청사자놀음을 할 때마다 불었다는 퉁소 대신 피리를 잡고 흥겹게 연주하던 <아리랑>을. 첫째딸 결혼식 날 하객들의 요청을 뿌리치지 못해 고속버스 안에서 떨리는 목소리로 불렀던 동요 <고향의 봄>을. 감수성이 예민한 어떤 영혼이라도 아버지라는 외투를 입으면 무뚝뚝해지는 변증법.
만취 상태의 독백, 그것뿐
대학에 입학하자, 아버지가 제일 뿌듯해했던 건 나를 당신의 술자리에 참석시키는 일이었다. 주변 사람들에게 우리 아들이 이만큼 컸다는 걸 자랑하고픈 마음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그것도 그와 나 둘만의 커뮤니케이션은 아니었다. 만취 상태에서 어깨동무를 한 채 한 걸음 한 걸음 집으로 가면서 그가 아들에게 했던 말은 무의식이나 잠재의식의 공간에서 흘러나오는 독백이었다.
이제 여섯 살 된 아들이 가끔 “아빠, 내 얘기 못 들었어?” 하면 난 소스라치게 놀란다. 그에게는 내가 입었던 정신적 외상을 안겨주지 않으리라는 강박증 때문이다. 그는 글자를 쓸 줄 알게 되자마자 아빠, 엄마에게 보내는 한두 줄짜리 삐뚤빼뚤 편지쓰기를 즐긴다.
풀이 죽어 혼자 앉아 있는 내게 “아빠, 슬퍼?” 하면서 살갑게 말을 걸어주는 그는 소통에 소질이 있어 보인다. 천만다행이다. 하늘나라에 인터넷 인프라가 구축된다면 난 “아버지, 저랑 싸이 일촌 맺으실래요?”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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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한겨레21 2006-01-31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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