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나얀™♡【여행】

석양을 입은 황궁은 양귀비보다 아름다워라

피나얀 2006. 2. 5. 22:11

 


 

 

 

▲ 황제와 신하가 국사를 논하던 심양고궁의 중심인 대정전.
ⓒ2006 김기
중국 심양. 도시 규모로는 중국 내 4대 도시이고 경제적으로는 10대 도시에 든다. 심양에는 서탑가라는 한국거리도 있고, 도선공항에는 영어나 중국어를 몰라도 안심할 수 있도록 출입국 서류에 한국어판이 구비되어 있다. 심양 시내는 과거와 현대가 급속하게 만나 시간의 급물살을 이루고 있다.

거의 십 년 만에 다시 찾은 중국은 말로만 듣던 무서운 변화의 속도를 실감할 수 있었다. 심양만 해도 최고급 자동차가 흔치 않게 보이고, 백화점 거리에 줄선 고급 백화점들의 수도 많거니와 그 안에는 명품매장이 속속 들어서고 있었다. 아직 호텔 난방을 석탄으로 한다는 말을 듣기도 했지만, 경제인이 아닌 입장에서도 중국의 급속한 변화는 몸을 오싹하게 만들었다.

심양을 가는 한국인이 거의 대부분 들르는 곳이 아마도 서탑가일 것이다. 서탑가는 코리아타운라고 부를 정도의 규모는 아니지만 한국거리라고는 불러도 될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서탑가 초입에는 식당들이 자연스럽게 모여 있는데, 그곳에는 남북한의 식당들이 허리를 맞대고 있다는 점이다. 한쪽에는 룸싸롱이라고 씌여진 간판이, 그 옆에는 천리마 동상을 배경으로 평양관이라는 간판이 붙어 있는 모습이 눈에 밟힌다.

 

▲ 심양 서탑가에 나란히 허리를 붙이고 있는 남북한 업소들.
ⓒ2006 김기
북한에서 직접 운영하는 그곳 식당들에서는 평양에서 직접 수송해오는 재료들로 만드는 음식맛을 볼 수 있다. 온반, 평양냉면, 숭어탕, 녹두지짐 등등. 중국의 다양한 음식을 자랑하는 나라이긴 해도, 아직 북한 왕래가 자유롭지 못한 입장에서는 북한 식당을 한번 들르는 것은 거의 본능적인 선택일 듯.

하늘 높이 치솟는 건물들을 보아서는 현대 어느 도시에 온 듯도 하지만, 그 건물들 사이로 오가는 사람들은 최소한 20년 전쯤의 풍경 속 주인공들과 닮아있다. 그리고 심양의 시간적 교차 혹은 공존을 더욱 실감케 하는 것은 아무래도 심양 고궁이다. 청(淸)조의 초대 황제인 누르하치와 태종이 건축한 황성으로 6만평 대지 위에 웅장하게 서있다.

우리나라 경복궁이나 덕수궁 등을 찾아가, 중심부에서 주변을 살피면 적이 실망하게 되는 요소가 하나 있다. 아름다운 전각지붕의 아취를 원경의 빌딩라인이 망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심양 고궁의 스카이라인은 대체로 깔끔하게 보존되어 있었다.

 

▲ 고궁 주변의 스카이라인이 시원하다. 너른 중국땅이 부럽기만 한 풍경이었다.
ⓒ2006 김기
땅이 넓은 중국이라 심양로를 비켜선 지점에라도 얼마든지 원하는 건물을 지을 수 있었겠지만, 단지 그 이유만이 아니라 문화유적에 대한 중국인의 경외와 자부가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막상 시내를 돌아보니 과거 청조의 건물들이 무참히 헐리고 그 자리를 거대한 빌딩들이 들어서고 있음은 아이러니한 현상이었다. 청조 때, 혹은 일제시대에 남겨진 유서 깊은 소소한 건물들도 아주 소중한 역사 흔적임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큰 아쉬움을 주었다.

 

 
▲ 숭전전의 화려한 모습
ⓒ2006 김기
중국의 그런 모습을 내놓고 비판할 입장도 아니다. 우리나라에서도 궁궐이나 대형 사찰의 보존은 어느 정도 하고 있으나, 민중들의 삶이 담겨 있는 일반 유적과 유물들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소홀하니 아시아 각국의 민속문화 보전에 대한 공감대 형성에는 아직도 시간이 많이 필요해 보인다.

북경의 자금성에 이어 규모면에서 두 번째에 꼽히는 심양 고궁은 2004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선정된 유적이다. 입장료는 50원으로 중국물가를 감안할 때 결코 싼 편은 아니다. 또한 영하 15도 아래로 내려가는 추운 날씨와 방문한 시각이 거의 문닫을 때여서 일반적으로 고궁에서 행해지는 이런저런 이벤트는 구경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한국의 고궁과는 다르고, 북경의 자금성과도 또 다른 청조 궁궐의 아름다움을 그대로 느낄 수 있었다. 오히려 이벤트가 없어 오로지 하나에만 집중할 수 있어 시간이 많지 않은 초행의 스케치에는 도움이 되었다. 카메라 앵글과 거의 수평까지 누운 저녁 햇살을 입은 황궁의 저녁은 중국이 자랑하는 미녀 양귀비가 저 멀리 지나친다 해도 발길을 뗄 수 없도록 아름다웠다.

오래된 풍경은 아무 말 하지 않지만 그 안에 놓이면 이제 그만 사람이고 싶게 만든다. 비록 스모그가 원경을 가렸지만 그것은 현대라는 거대한 위력에 신음하는 모든 문화유산들의 공통적인 속병을 숨기지 않는 솔직한 모습이었다. 진정 자신을 아끼는 사람에게는 아픈 상처를 드러내는 사람의 심정과도 같은 것이다. 그 아픔은 세계문화유산이라는 훈장을 가슴에 달아도 지워지는 것은 아니었다.

20세기에서 와서 21세기의 작은 일부를 살다 갈 우리들. 수 세기 전로부터 빌어온 아름다운 문화유산들에 대해 얼마나 큰 잘못을 저지르고 사는가 하는 생각이 새삼스럽다. 머나먼 이국의 황궁 속에서 고국 쪽을 향해서 소리를 지르고 싶었다. 우리들의 문화유산은 건강하십니까? 부디 건강하셔야 합니다!


 

▲ 저녁 햇살을 입은 고궁의 풍경은 절세미인의 자태보다 훨씬 더 곱다
ⓒ2006 김기

 

▲ 고궁 속의 작은 풍경들
ⓒ2006 김기

 

▲ 고궁 풍경
ⓒ2006 김기

 

▲ 한 전각의 지붕과 단청. 우리것과 닮은 듯 다르다.
ⓒ2006 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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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오마이뉴스 2006-01-25 09: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