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나얀™♡【여행】

최후의 사무라이, 여기서 잠들다

피나얀 2006. 2. 21. 19:35

 


 

 

 


[한겨레]

 

‘그레이 블루의 도시’ 하코다테는 일본 근대화의 상징적 명소
류머티스 치료하러 온천 들렸던 김옥균과 조선인 징용의 자취도

 

▣ 하코다테(훗카이도)= 글 김창석 기자 kimcs@hani.co.kr
▣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하코다테는 그레이 블루의 도시다. 역사와 낭만이 어우러진 이 항구도시는 ‘북국’의 전형을 보여준다. 메이지유신을 반대하던 최후의 사무라이들과 정부군이 싸웠던 전투현장이자, 나가사키·요코하마와 함께 일본 최초의 국제무역항이 된 역사를 지니고 있어 도시 곳곳에 ‘최초’ 또는 ‘최고’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닌다.

 

도시 곳곳에 ‘최초’‘최고’의 유물들

 

시내 안내를 도맡아준 이는 취재진을 만나자마자 다짜고짜 “하코다테의 야경을 보지 않고서는 하코다테를 들렀다고 할 수 없다”며 해발 334m의 하코다테산 전망대로 차를 몰았다. 승강장에는 관광객들이 줄지어 케이블카를 기다리고 있었다. ‘얼마나 좋기에 이렇게 난리를 치나’ 하는 의구심은 3분 뒤 정상 전망대에서 눈 녹듯이 사라져버렸다.

 

장구를 세워놓았다고 해야 하나, 한반도 모습을 빼닮았다고 해야 하나. 양쪽 허리가 잘록한 모양의 하코다테 시가지가 한눈에 쏙 들어왔다. 깨끗한 북국의 공기 덕분에 손에 잡힐 듯이 생생한 시가지 야경이 주연이라면, 양쪽 바다를 수놓은 오징어잡이 배의 환한 불빛은 조연이었다. 바다에 떠 있는 은하수 같다고 하면 너무 감상적 표현일까.

 

 


하코다테는 일본 근대화의 상징적 공간이다. 1858년 일본이 미국·네덜란드·러시아·영국·프랑스 등과 수호조약을 맺으면서 국제무역항이 된 이곳은 1871년 홋카이도 행정청이 삿포로로 옮겨질 때까지 홋카이도의 관문이자 중심이었다. 하코다테의 역사가 오롯이 남아 있는 곳은 쓰가루해협(홋카이도와 혼슈 사이)이 내려다보이는 하코다테산 언덕 모토마치의 산책로다.

 

외국인 묘지, 옛 하코다테 공회당, 하리스토스 정교회 성당, 페리 제독 동상 등이 4.7km의 산책로 주변에 흩어져 있다. 외국인 묘지에는 페리 제독이 1853년 이곳 앞바다에 전투함을 이끌고 나타났을 때 병사한 수병을 매장하면서 묘지가 조성됐다고 한다.

 

워터프런트의 붉은 벽돌 창고군 가까이에는 1923년 만들어진 일본 최초의 콘크리트 전신주가 있다. 홋카이도 개척 100돌을 기념해 만든 홋카이도 제1보 기념비도 있다. 다카다야 가헤이 자료관에는 일본 최초의 스토브가 복원·전시돼 있다.

 

유노카와 온천 근처에 있는 일본 최초의 여자수도원인 트라피스틴 수도원을 비롯해 일본 최고의 사진을 보관한 사진역사관, 일본 최고의 지방박물관이 남아 있다. 알려지지 않은 또 다른 ‘최초’들도 있어 보였다. 택시를 타고 하코다테역 근처를 지나던 순간 택시기사가 갑자기 “일본 최초의 유료도로”라면서 갑자기 주변 도로를 가리켰다.

 

한국과 관련된 역사적인 사료도 있다. 갑신정변에 실패한 뒤 일본에 망명했던 김옥균을 물심양면으로 후원한 일본 여성 스기타니 다마의 사진이 하코다테 도서관에 소장돼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시간이 없어 들러보지는 못했다. 일본으로 도피한 김옥균은 1886년 7월부터 2년 동안 오가사와라섬에 유배된 뒤 1888년 8월부터 홋카이도에 연금된다.

 

삿포로에 살던 그는 류머티즘을 치료하려고 종종 하코다테의 온천에 들렀는데 스기타니를 만나 애인관계로 발전했다고 한다. 하코다테에서 둘의 관계를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는 얘기도 있다.

 

김옥균과 그녀의 추억

 

 


하코다테는 일제시대 홋카이도에 징용으로 끌려온 조선 사람들이 해방을 맞아 고향으로 돌아가기 위해 일시적으로 모였던 장소이기도 하다. 1912명 홋카이도에 살던 조선인은 불과 41명이었지만, 1945년 8월15일 당시 홋카이도에 남아 있던 조선인은 11만498명이었다.

 

80% 이상이 남성이었던 이들은 주로 탄광과 제철소 등에서 노동을 하면서 일본 군국주의의 전시동원 체제에 희생당하고 있었다. 하코다테항은 당시로서는 한반도로 연결되는 유일한 끈이었다.

 

당시 돌아가지 못하고 이곳에 눌러앉아 살다가 숨진 동포 1세들의 유골이 모여 있는 시내 공동묘지를 찾았다. 동해가 바라다보이는 공동묘지 한켠에 위치한 유골안치소에는 동포 1세 16명의 유골이 모셔져 있었다. 영정 앞에 놓여 있는 소주잔에는 소주가 얼어붙어 있었다.

 

죽어서도 일본 땅에 묻히기 싫어한 그들의 삶이 가슴 한켠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하코다테 시내를 한눈에 볼 수 있는 동쪽 해안가에는 이국땅에서 살기 힘들어했던 조선 처녀들이 뛰어내렸다는 자살 바위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하코다테에서 역사만을 꼽씹고 앉아 있을 수는 없지 않은가. 기분 전환을 위해 좋은 것은 언덕과 시내를 오가는 예쁜 전차인 ‘로멘덴샤’를 타는 것이다. 하코다테의 온천 가운데는 바다와 직접 면해 있는 곳이 많다.

 

조금 고급스런 온천에는 방마다 야외 온천욕을 할 수 있도록 창문 밖에 작은 규모의 욕조가 만들어져 있고 온천물이 준비돼 있다. 조금 싼 온천 가운데서도 바다를 직접 볼 수 있는 야외온천이 종종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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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한겨레21 2006-02-21 11: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