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나얀™♡【여행】

뽀드득 뽀드득 비켜나세요~

피나얀 2006. 2. 21. 19:40

 


 

 

 


[한겨레]

 

 ‘화이트블루의 도시’ 삿포로는 눈과 얼음으로 지은 거대한 메트로폴리스
녹을 새 없어 지저분하지 않은 도심의 눈을 밟고 눈축제의 황홀경으로

 

▣ 삿포로(홋카이도)= 글 김창석 기자 kimcs@hani.co.kr
▣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삿포로는 화이트 블루의 도시다. 도시의 중심인 역을 나서면서부터 포스트모더니즘의 향기가 솔솔 난다. 도회적이고 세련됐지만, 메트로폴리스에서 으레 풍겨나오는 천박함과는 거리가 멀다.

 

삿포로는 홋카이도에서도 한국인에게 가장 많이 알려진 곳이다. 이곳을 방문했던 이들이 반드시 가는 곳이 도심 중앙에 위치한 오도리공원(폭 65m, 길이 1.5km) 입구에 있는 90m 높이의 TV탑이다. 전망대에서는 오도리공원뿐 아니라 삿포로 시내 전체가 한눈에 들어온다.

 

평야에 세워진 계획도시여서 더욱 전망이 좋다. 물론 눈이 내리는 날에는 시야가 좋을 리 없지만, 눈이 왔다가 그쳤다를 계속하기 때문에 조금만 기다려도 다양한 장면을 즐길 수 있다.

 

삿포로는 도시 전체가 2월6일부터 시작하는 눈 축제인 ‘유키마쓰리’ 준비에 한창이었다. 삿포로의 눈은 도시의 눈이지만, 지저분하지 않다. 워낙 양이 많은데다 기온이 낮아서 미처 녹을 새가 없기 때문이다. 도로 옆에 쌓인 눈이 자연 상태의 소음 방벽 구실을 하기 때문인지 도심을 걸어도 자동차 소음보다 뽀드득거리는 자신의 발자국 소리가 더 크게 들린다.

 

오도리 공원의 200개 눈조각

 

 


오도리공원에는 200개가 넘는 거대한 눈조각들이 관광객들을 맞고 있었다. 맨 앞에 만들어놓은 문어 모양의 눈 조형물은 문어인지 알아보기 힘들게 변해가고 있었다. 만들어놓는 것보다 쌓이는 눈을 치우는 게 더 큰 고역인 것처럼 보였다. 각각의 조형물은 삿포로 시내에 있는 각종 모임과 단체들에서 하나씩 책임을 지고 만드는 방식으로 운용되고 있었다.

 

삿포로 BBS(Big Brothers and Sisters movement·불우 청소년과 1 대 1 결연을 맺어 그들의 친구나 형, 부모로서 도와주는 운동) 모임은 만화 캐릭터를 조형물로 만들었다. 회원 한 명에게 조형물의 의미를 묻자 “1년 내내 웃어야 행복해진다는 뜻으로 만들었다”고 말했다.

 

눈 축제와 별도로 열리는 얼음 축제도 있다. 도쿄 이북 지역에서 가장 번화하다는 삿포로 최대 유흥가인 스스키조 입구에서는 얼음 축제를 준비하는 인부들의 손길이 분주했다. 전기톱으로 대형 얼음을 자르고, 깎고, 다듬으면서 다양한 형태의 얼음 조형물을 만드는 작업이었다. 대형 맥주캔이 들어 있는 얼음 조형물도 있다.

 

겨울 삿포로의 밤은 오후 5시부터 시작된다. 눈까지 오면 밤은 더 빨리 온다. 맥줏집을 찾았다. 홀짝홀짝하는 일본식 주점과는 달리 이곳에는 마치 한국에서 마케팅 전략을 배운 듯한 맥줏집이 있었다. 1인당 980엔만 내면 90분 동안 마음껏 맥주를 마실 수 있는 곳이었다. 우리에겐 제격이었다.

 

맥줏집에서 만난 젊은 직장인 후쿠자와 다쿠는 홋카이도 역사에 조예가 깊었다. 예를 들어 홋카이도에 양고기를 구워먹는 칭기즈칸이 유명하게 된 것은 일본 중앙정부가 홋카이도를 개척하면서 유럽풍의 목축을 권장했는데 이로 인해 양의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데 따른 현상이라는 설명이었다. 일본인들이 혼슈에서 홋카이도로 옮겨오면서 천연두를 옮겨놓은 바람에 원주민인 아이누족들이 집단 사망하는 일도 있었다고 그는 목소리를 높였다.

 

“그렇다면 홋카이도 사람만의 정체성이 있느냐”는 질문에 그는 중앙정부가 홋카이도를 차별하는 실태에 대해서 거론하기 시작했다. “일본에서 유일하게 먹을거리를 자급할 수 있는 곳이 홋카이도다. 일본 전체에 그런 도움을 주는 곳이 홋카이도인데도 중앙정부는 이 지역 다쿠쇼큐은행 등이 연쇄적으로 부도가 날 때 결국 도와주지 않았다.

 

” 그렇다고 해서 홋카이도가 정치적인 독립으로 나가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었다. 오키나와 사람들은 자신들을 ‘일본인’이라고 하기보다는 ‘오키나와인’이라고 부르지만, 이곳 사람들은 ‘홋카이도인’보다는 ‘일본인’이 더 자연스러워 보였다.

 

 


“홋카이도는 차별당하고 있다”

 

일본에서 8년째 살고 있는 임문택(33)씨는 이 지역에서 일본인을 상대로 한국어를 가르치는 한국어 선생님이자 일본 회사를 다니는 직장인이었다. 임씨한테서 한국어를 배우는 학생인 사사키 스즈키(66)의 집은 삿포로 외곽인 기타히로시마에 있었다. 한국말을 한창 배우느라 하루 일과를 한국어로 직접 써 벽에 붙여놓은 그는 취재진에게 음식을 내왔다.

 

스모 선수들이 살을 찌우기 위해 매일 먹는다는 ‘장코나베’라는 음식이었다. 한국 식당에서도 파는 샤브샤브의 일본판이라고 할까. 튀김까지 배불리 먹고 나니 이곳이 한국 가정인지 일본 가정인지 헷갈릴 정도였다.

 

사사키는 “홋카이도 사람들은 혼슈 사람들처럼 작은 일에 신경쓰지 않는다”면서 “넓은 땅에서 여유 있게 살아서 그런 것 아니겠느냐”며 호탕하게 웃었다. 그가 한국어를 배우기 시작한 것은 한국 드라마 때문인 것 같았다. 그는 <겨울연가>를 35번이나 봤다고 털어놨다.

 

한류가 북국의 끝까지 전달됐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그는 “가장 좋아하는 배우는 첫 번째가 권상우, 두 번째가 이병헌 그리고 배용준”이라고도 했다. 사사키의 집에서 나온 시간은 밤 11시30분이었다. 여전히 눈이 내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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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한겨레21 2006-02-21 11: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