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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In&out맛] 안산 '국경 없는 마을'

피나얀 2006. 2. 25. 18:45

 

 


[중앙일보 정찬민.변선구]

 

자신의 모습이 초라하다고 느낀 적이 있는가. 자신이 하는 일이 무미건조하게 여겨진 적이 있는가. 주위를 둘러싼 많은 것이 문득 의미 없는 존재로 다가 온 적은 없는가. 이런 느낌이 든다면 일상을 잠시 접어두고 안산으로 떠나 보자. 지하철 4호선 안산역에서 내려 역 광장 앞 지하보도로 들어가 왼쪽 출구로 나간다.

 

 '신흥길'이라는 이정표가 보이리라. 안산 '국경 없는 마을'이 시작되는 곳이다. 당신이나 당신 가족과는 조금 다른 얼굴의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는 조금 다른 골목길 풍경이 낯설지도 모르겠다. 천천히 걷다 눈에 들어오는 식당이 있다면 들어가 봐도 좋다. 운이 없다면 말이 통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큰 문제는 없으리라. 최악의 경우 입에 안 맞는 이국적 음식을 맛보게 될 뿐이니까.

 

글=정찬민 기자 chanmin@joongang.co.kr 사진=변선구 기자 dungle@joongang.co.kr

 

내부 장식은 허름하고 누추할 가능성이 크다. 자리를 차지하고 앉은 손님들의 행색도 그리 화려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곳에서 당신은 낯선 이들의 땀과 눈물, 그리고 그것들이 빚어내는 삶의 희망을 만나게 되리라. 그리고 당신은 안산행 지하철을 타기 전 당신이 머물던 자리가 얼마나 소중했으며 당신이 하던 일이 얼마나 가치있는 일이었는지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되리라.

 

*** 한자.아랍어.영문 간판 즐비 '다국적 거리'

 

경기도 안산시 원곡동. 한국인보다 외국인이 더 많이 산다. 특히 주말이나 공휴일 저녁 때는 여기가 한국인지 외국인지 헷갈릴 정도다. 그래서 국경 없는 마을이다. 국경 없는 마을은 사실상 반월공단이나 시화공단에서 일하는 중국.베트남.스리랑카.파키스탄.인도네시아.몽골.네팔.방글라데시 등 20여 개국 출신 외국인 노동자들이 이룬 마을이다.

 

한때 외국인 노동자가 4만 명에 육박했으나 정부의 불법 체류자 단속과 경기 침체 등으로 지금은 1만5000명 정도가 살고 있다. 그래도 한자와 아랍어, 영문 간판을 내건 아시아 각국 고유의 음식점들이 여전히 줄지어 늘어서 있다. 문자 그대로 '한국 속의 리틀 아시아'다. 마을의 상권이 커지면서 한국인들이 운영하는 PC방과 노래방, 비디오방, 게임방, 생필품 가게 등이 많이 들어섰다. 이런 곳은 대부분 한국인이 운영하는 곳이다.

 

오후가 되면 국경 없는 마을의 주도로인 신흥길에 노점상들이 줄을 선다. 턱수염을 기르고 하얀 모자를 쓴 무슬림들이 선 채로 왁자지껄 떠들며 매워 보이는 떡볶이와 어묵을 먹는다. 서툰 한국말로 "떡볶이뿐 아니라 김치찌개도 잘 먹는다. 이미 한국식 입맛이 돼버렸다"며 웃는다.

 

특히 20대 외국인 근로자들은 한국 음식뿐 아니라 생활과 문화에 적응하는 속도도 빠르다. PC방에서 인터넷 게임 리니지를 즐기고 노래방에서 가수 이효리의 노래를 따라 부르기까지 한단다.

 

*** 주말, 십중팔구는 외국인

 

토요일 저녁이나 일요일 오후 2시가 되면 약속이라도 한 듯 마을 도로는 아시아 각국의 젊은이들로 메워진다. 모두 인근 공업단지에서 일을 마친 외국인 근로자들이다. 요즘엔 인천 남동공단과 화성.군포 등지의 공단 외국인 근로자도 고향 친구들을 만날 겸 원정쇼핑지로 부상했다.

 

날이 어두워지면서 국경 없는 마을은 각국 젊은이와 화려한 네온사인이 어우러져 서울 강남 중심가 못지않은 활기를 보인다. 점퍼에 청바지 차림으로 데이트를 즐기는 네팔인, 술에 취해 콧노래를 부르는 인도네시아인, 담배를 빼물고 거리를 활보하는 베트남인 등등…. 피부색과 언어만 다를 뿐 서울 대학로나 신촌 일대를 거니는 한국 대학생들이 주말을 즐기는 모습이다.

 

 

 


아시아 전통 음식점은 파키스탄.인도네시아.몽골.베트남 등 모두 10여 곳에 이른다. 대부분 식료품점을 겸하고 있는 것이 특징. 중국 음식점이나 식재료 판매점까지 포함하면 100곳이 넘는다.

 

중국동포가 많은 탓에 역시 중국음식점이 가장 많지만 골목마다 두세 개씩 숨어있는 베트남.인도네시아.파키스탄 등 동남아시아 음식점들이 눈길을 끈다. 서울 도심의 레스토랑이나 호텔처럼 화려하진 않지만 현지인을 상대로 하는 만큼 현지 음식맛이 고스란히 살아 있다.

 

베트남 쌀국숫집 '고향'이 그런 곳이다. 쌀국수는 전국 어디서나 흔히 맛볼 수 있는 요리가 됐지만 다른 곳이 한국인의 입맛에 맞게 맛이 달라진 반면 이곳은 손님들의 90% 이상이 베트남인들인 만큼 철저하게 정통의 맛을 고수한다. 최을식(42).네티 하이투(한국명 이미현.34) 부부가 운영하는 곳으로, 베트남에 있는 장모가 식재료를 공급하고 있다.

 

파키스탄 식당 겸 카페 '파라다이스' 사장 압둘 살람(36)은 "요즘은 입소문을 듣고 찾아오는 한국 사람도 제법 된다"며 "싼 가격에 현지 그대로의 맛을 즐길 수 있는 곳"이라고 자랑한다.

 

*** 파키스탄.네팔.몽골.인도네시아…발 닿는 곳마다 맛집

 

■베트남 레스토랑 고향(031-492-0865)

 

5년째 성업 중이다. 주메뉴는 포(쌀국수).반다넴(만두).쭈비론(오리알) 등 10여 가지. 베트남에 있는 장모가 보내주는 음식 재료에다 아내의 손맛이 가미된 음식은 베트남 현지 못지않다.

 

■몽골리안 라이프(031-494-8413, 011-9680-1740)

 

양고기가 주류를 이룬다. 몽골 초원민의 식탁은 주로 가축을 도살하여 얻는 육류가 많다. 우리나라의 만둣국과 같은 반쉬타슌 5000원, 고기만두인 부으지에 5000원이며 우리나라의 자장면과 유사한 할목호러가가 6000원.

 

■평양옥(031-491-6929)

 

깔끔하고 실내도 넓어 150여 명의 단체손님을 맞아도 불편함이 없다. 5년 전 개업한 뒤 주로 평양식 냉면을 판매하고 있다. '냉면+갈비'를 찾는 손님이 많아 갈비도 곁들여 팔고 있다. 국경 없는 마을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친절한 곳이라는 게 주인의 자랑.

 

 


■컨트리하우스(031-494-9471)

 

공원을 끼고 오른쪽 골목으로 들어서 다시 좌회전하면 2층짜리 건물이 보인다. 양.닭.쇠고기 등 인도네시아 요리 전문점인데 파키스탄.방글라데시.스리랑카.네팔 음식도 맛볼 수 있다.

 

■아범 꼬치집(031-493-8281)

 

중국 정통의 꼬치구이집으로 조선족이 직접 조리하며 운영한다. 식탁에서 직접 숯불로 굽는 양.돼지 꼬치는 한 개에 600원, 중국식 물만두, 중국식 순대, 온면 각각 4000원.

 

■아시안 랜드(031-495-2242)

 

안산역 지하도 출구를 빠져나와 국경 없는 마을 첫째 집. 인도네시아 등에서 생산한 포장류.캔류 식품과 향료품 등이 깔끔하게 진열돼 있다. 외국인 노동자를 위해 동남아 말을 잘하는 숙련된 점원이 손님을 맞는다. 늘 외국방송을 틀어 놓아 쇼핑객의 시선을 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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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중앙일보 2006-02-25 06: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