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나얀™♡【요리】

명태가 고마운 사람들, 축제를 열다

피나얀 2006. 2. 25. 18:55

 

명태의 고장 고성

참, 없이 살던 때가 있었다.

동네에 한두 집 빼놓고는 너나없이 똥구멍 찢어지게 가난했던 시절. 제사나 명절 등 무슨 때가 돼야 고깃국이라도 상에 놓고 먹을 수 있던 시절에 그나마, 명탯국만큼 맛있고 푸짐한 게 또 있었을까. 명탯국은 비교적 손쉽게 먹을 수 있는 특식이었다.

무조건 많이 먹어야 행복했던 그때, 내 국그릇에 두툼한 명태 두 토막이면 그런대로 부족함이 없었고, 시원한 국물에 밥을 말면 배가 불러 한동안 고구마 생각도 안 났다. 한마디로 알찬 맛! 그게 명태의 자랑이다.

명탯국에는 지금의 탕이나 찌개처럼 여러 가지 재료가 들어가지도 않았다. 명태 한두 마리에 썬 무와 파 마늘 고춧가루가 전부였다. 간도 소금 간장이면 끝! 그래서 그런지 지금도 국물 뻑뻑한 찌개나 탕보다 얼큰하면서 시원한 명탯국이 더 생각난다.

 

▲ 바다에서 바라본 거진항, 바닷속 명태는 알고 있을까? 기다리는 지역민이 많다는 것을.
ⓒ2006 맛객
그 시원함을 어떤 국이 따라갈 수 있을까? 심각하게 고민해 봐야 겨우 떠오르겠다. 버릴게 하나 없는 명태는 제한 몸 희생시켜, 여러 가지 음식으로 우리 입을 즐겁게 해 준다. 그러니 이 얼마나 고마운 생선인가?

 

▲ 수족관에 갇힌 명태, 잡히지 않은 지방태의 현주소를 보여주고 있는 듯 하다
ⓒ2006 맛객
그런데, 특히나 더 명태에게 고마워하는 사람들이 있다. 강원도 고성 사람들에게 있어 명태는 명태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60~70년대 먹고 살기 어려울 때에 명태 때문에 생계를 꾸려 나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명태에 대한 자부심과 애착은 타지역 사람들이 감히 엄두도 못 낼 정도다. 고성 거진 명태는 한때 전국 생산량의 60~70퍼센트를 차지하기도 했다. 나머지가 주문진과 속초 등지에서 잡힌 명태였다. 그만큼 명태 하면 거진, 거진 하면 명태를 떠올릴 정도로 명태를 대표하는 고장이 거진이다.

 

 

▲ 말린 명태, 제사와 고사등 민간풍습에 쓰임새가 많아 우리민족에게 사랑받고 있는 생선이다
ⓒ2006 맛객
지방태와 원양태

헌데, 그 많던 명태가 거진에서도 어획량이 크게 줄었다. 왜 그럴까? 씨가 마르기라도 했단 말인가? 모든 게 환경의 변화 때문이다. 동해 수온이 오르면서 냉수 어류인 명태의 서식밀도가 낮아졌기 때문이다. 대신, 부족한 어획량은 원양태가 채우고 있는 실정이다.

명태는 크게 지방태와 원양태로 구분한다. 강원도 고성을 비롯한 동해 연안에서 잡히는 명태를 지방태라 하고, 원양태는 북태평양 일대와 베링해 등지에서 잡히는 명태를 말한다. 우리가 냉동된 상태로 사서 먹는 동태가 원양태라고 보면 된다. 지방태는 원양태보다 크기는 작으나 맛은 훨씬 뛰어나다.

짭짤하고 구수한 맛이 명태의 참맛이다. 또 육질이 퍼져있지 않아 양념을 빨아들이는 힘도 세서 조리하면 원양태와는 비교가 안 된다. 실제로 현지에서 수분을 70퍼센트 정도 말린 명태포를 맛봤다. 씹으면 씹을수록 진 맛이 우러나면서 "오징어를 왜 먹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븍어가 되기 직전의 명태 포 맛을 이제야 알다니, 좀 억울했다.

 

▲ 명태를 손질하는 모습
ⓒ2006 맛객
지방태는 민간요법으로도 쓰이는데 특히, 해독작용에 뛰어난 효능을 자랑한다. 애주가들의 속 풀이 국으로 사랑을 받는 북어국도 따지고 보면 지방태여야 제대로 된 효과를 볼 수가 있다. 묵호, 부산항으로 들어온 원양태는 고성으로 운송해 와서 내장과 아가미를 분리한다. 취재를 위해 찾아간 그날도 고성수협 건물 안쪽에서 아주머니 10여 분이 바삐 손을 움직이고 있었다.

 

▲ 북어가 되어가는 명태(거진)와 추위와 바람에 의해 맛이 완성되어 가는 황태(인제 용대리)
ⓒ2006 맛객
냉동 명태가 해동되면 내장은 창란, 명란, 곤지, 애 아가미로 분류해 낸다. 그것들은 하나 버리지 않고 다시 젓갈과 국이나 찌개용으로 쓴다. 이렇게 내장을 뺀 명태는 바닷가에서 빨리 말리면 딱딱한 북어가 된다. 추운 지역에서 낮에는 녹이고 밤에는 꽁꽁 얼리면서 3~4개월여 반복하면 구수한 맛이 나는 황태가 된다.

 

▲ 생태찌개 재료,무의 시원함과 명태의 담백함이 그대로 느껴진다
ⓒ2006 맛객
명태의 맛

명탯국. 명태맑은탕. 알탕. 아가미 젓. 등 자그마한 생선 한 마리로 이토록 다양한 요리를 만들 수 있을까? 명태기에 가능하다. 그렇다면 명태를 이용한 요리가 총 몇 가지나 될까? 놀라지 마시라. 고성군에서 나온 <명태이야기와 맛>이란 책자에 소개된 요리만 해도 36가지나 된다.

 

▲ 명란젓
ⓒ2006 맛객
그중 특히, 고성8미중 하나인 명태지리(지리는 일본 요리에 쓰는 말이므로 명태 맑은 탕이라 해야 옳다)는 이것저것 여러 가지 양념이 들어가지 않아도 비린 맛이 전혀 없는 게 특징이다. 야들야들 하얀 명태 속살을 먹는 맛도 좋지만 진짜는 국물에 있다. 맑은 국물에서 나는 시원하고 담백한 맛은 이 지역에서만 맛볼 수 있는 특권이다. 그렇기에 고성에 가게 되면 다른 음식 제쳐놓고 명태 맑은 탕부터 맛봐야 고성에 왔다 할 수 있다.

 

▲ 명태아가미로 담근 깍두기, 고성에서는 서거리김치라고 한다
ⓒ2006 맛객
고성에는 또, 명태의 고장답게 이 고장에서만 맛볼 수 있는 명태로 만든 향토 음식이 있다. 명태요리를 먹을 때 나오는 반찬 중 깍두기라고 무시하면 나중에 후회할지도 모른다. 그게 보통 깍두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소금물에 박박 씻어 잘 손질한 명태 아가미를, 깍둑 썰기해서 절여놓은 무와 함께 갖은 양념에 무쳐낸 게 명태아가미깍두기다. 잘 익은 명태아가미깍두기는 시원하면서 담백한 맛이 난다. 이 지역 사람들은 서거리 김치라고도 하는데 명태 아가미를 다른 말로 '서거리'라고 부르기 때문이다.

고성 명태축제한마당

고성에서는 해마다 명태축제가 열리는데 올해가 8회째로 2월 23일부터 26일까지 4일 동안 '거진항 일원에서 열린다. 사실 지역에서 나는 명태는 별로 없지만 그렇다고 명태를 잊어서는 안 되기에 축제는 계속된다고 한다.

명태가 나지 않을 때는 많이 잡히길 비는 기원의 축제이고, 많이 날 때는 기쁨의 축제가 될 것이다. 또 명태의 대표성은 고성 거진항에 있다는 것을 홍보하는 뜻도 있다.

지금은 동해연안에서 잡아 온 명태를 그물 채로 거진항 부두에 내려놓고 명태를 손질하는 모습은 사라지고 없다. 대신 건물 안에서 상자 안의 명태를 꺼내 손질하는 모습이 전부다. 지방태가 다시 풍어가 돼서 진정한 기쁨의 명태축제가 되기를 바라본다.

 

▲ 거진 앞바다에 희망찬 해가 솟아오르고 있다
ⓒ2006 맛객
우리 민족이 유난히 좋아했던 명태, 명태의 본 고장에서는 오늘도 언젠가는 돌아올 명태를 기다리고 있다. 명태를 고마워하고 잊지 않으려는 사람들이 있기에 명태풍어는 꿈이 아닌 현실이 될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고성사람들에게 명태는 명태가 아니고 삶 그 자체다.

덧붙이는 글
고향신문 www.sigoli.com 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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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오마이뉴스 2006-02-25 13: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