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나얀™♡【여행】

섬 산행의 묘미는 무엇일까?

피나얀 2006. 3. 3. 22:05

 

 

▲ 산 정상에서 내려다 본 보문사 전경
ⓒ2006 전갑남
6일이 경칩이다. 봄이 오는 길목에 시샘이라도 하듯 하얀 눈이 내렸다. 시골마을에 내린 하얀 눈꽃이 장관이다. 새움이 고개를 삐쭉 내밀다 숨어버리지 않을까 싶다. 아직 때가 아님을 알고서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면서 말이다.

부부동반 산행이 계획되었다. 커튼을 젖히며 소복이 내린 눈을 보고 아내가 걱정스런 표정을 짓는다.

"여보 해명산 가는 거 어쩌죠?"
"어쩌기는? 가야지. 얼마 내리지 않았구먼. 이런 날, 산에 오르는 것도 행운이라구."

아내는 산에 가는 것을 별로 달갑게 여기지 않는다. 눈을 핑계 삼아 집에서 쉬고 싶은 눈치이다. 내가 서둘자 마지못해 주섬주섬 짐을 챙긴다.

배짱이 맞는 사람들끼리 5년 전에 모임을 만들었다. 친목과 우의를 돈독히 하여 만나면 형제처럼 반가운 사람들이다. 강화도에 있는 섬 중의 섬인 석모도를 다녀오기로 했다. 때아닌 눈이 내려서 해명산의 산행에 운치를 더해줄 성싶다.

석모도에는 해명산이 있다

강화도에는 크고 작은 부속도서가 많이 있다. 유구한 역사의 고장으로 쌀이 많이 생산되는 교동도를 비롯하여, 천연기념물 저어새들의 서식지와 아직 오염되지 않은 섬으로 알려진 볼음도, 주문도가 있다. 또 보문사, 염전, 아름다운 해변이 있는 석모도가 있다.

사람들은 우리나라 3대 해양 관음사찰인 보문사를 찾기 위해 석모도를 찾는다. 그런데 해명산 산행과 함께 보문사 관람을 즐기면 여행의 묘미를 한껏 더할 수 있다. 석모도를 가려면 외포리 선착장에서 배를 타고 가야한다.

 

▲ 석모도 가는 길에 만난 갈매기 떼
ⓒ2006 전갑남
석모도 가는 뱃길은 갈매기 떼와 동행한다. 배 출발을 기다리기라도 한 듯 갯가에 쉬고 있던 갈매기 떼는 어느새 끼룩끼룩 소리를 지르며 뒤따른다. 사람들이 갑판에서 던져주는 새우깡에 길든 갈매기들이다. 녀석들에게 자생력이 있을까 생각해보지만 푸드덕거리며 새우깡을 낚아채는 모습에서 나름대로 살아가는 방식이 이것이 아닌가 싶다.

외포리에서 석모도 석포리까지는 배로 10분이면 간다. 마침 휴일이어서 배에서 내리는 차량이며 사람들로 꽤 북적인다. 보문사 관광을 떠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우리는 보문사를 왕복 운행하는 버스에 몸을 싣고 해명산 산행의 초입인 전덕이고개에서 내렸다.

간밤에 눈이 내렸다고 하지만 많이 쌓이지 않아 오르기에 큰 불편이 없다. 호젓한 산길이지만 운동 부족이어서 그런지 발걸음이 무겁다. 아내도 이마에 땀을 닦으며 따라오는 속도가 느리다.

 

▲ 금세 눈이 녹은 양지쪽의 해명산 능선. 봄이 이미 와 있을 것 같다.
ⓒ2006 전갑남

 

▲ 간밤에 내린 눈으로 눈꽃을 핀 음지쪽 해명산 줄기
ⓒ2006 전갑남
해명산은 327m의 나지막한 산이다. 얼마 오르지 않아 능선에 다다르고 발아래 펼쳐지는 서해 개펄과 바다가 시원하다. 주능선의 높이가 방개고개에서 150m 떨어진 것을 제외하고는 250m에서 300m를 오르내리는 산행이다. 9km를 걸어야 하는 3시간 30분 코스의 만만한 산행이 아니다.

섬 산행의 묘미는 무엇일까? 섬 산행은 좌우로 펼쳐진 산하를 오르내리며 사방이 뜨인 바다를 보며 이동하는 재미일 것이다. 높은 산을 오르는 것과는 사뭇 다른 맛이 있다. 능선에 다다르기까지는 앞이 가로막혀 시야가 답답하고 지루하다.

 

▲ 해명산 정상에서 내려다 본 평화로운 들녘과 서해 개펄
ⓒ2006 전갑남
산 능선에 올라 발아래 펼쳐진 들녘과 끝없이 드러난 서해 개펄이 한눈에 바라다보인다. 장대한 자연의 멋에 가슴이 벅차오른다. 해명산을 자주 올랐다는 일행이 내게 묻는다.

"왜 석모도를 삼산면이라고 하는 줄 아시나?"
"산이 세 개라는 뜻인가?"
"그렇지요. 석모도는 해명산과 상봉산(316m) 그리고 상주산(264m) 세 개의 산이 있다 하여 삼산면이지요."

세 개의 산 중 해명산과 상봉산은 능선으로 연결되어 종주 산행이 가능하다. 석모도 산행의 일반적인 등산 코스이다. 반면 섬의 북쪽에 있는 상주산은 상봉산과의 사이에 광활한 논으로 완전히 분리되어 있어 많이 찾지 않는다.

해명산은 바위의 여행?

오늘따라 내린 눈이 시야를 더 즐겁게 한다. 벌거벗은 겨울나무에 새 옷을 갈아입기 전 마지막으로 흰 옷을 입어 연출한 풍광이 아름답기 그지없다. 앞장서 가는 일행이 나에게 말을 걸어온다.

"이제 해명산에 있는 바위들을 잘 관찰해보세요. 여느 산에서 볼 수 없는 특징이 있을 거예요."

 

▲ 기기 묘묘한 모양을 뽐내는 바위들. 아내는 왼쪽 부터 부부바위, 합죽이, 고인돌, 흔들바위라 이름을 지었다.
ⓒ2006 전갑남

 

▲ 석성처럼 쌓여진 바위들
ⓒ2006 전갑남
특징 있는 바위들을 유심히 들여다보니 돌의 조화가 예사롭지가 않다. 해명산에서 상봉산으로 가는 능선에서 수도 없이 만난 바위들은 독특한 멋을 지니고 있다. 조각의 솜씨가 아닐까 착각이 들 정도로 이 모양 저 모양의 바위들이 많다. 모나지 않게 다듬어진 평평한 바위들은 걸터앉아 쉬기에 안성맞춤이다.

여러 개의 바위들은 하나로 서 있지 않고 포개져 있거나 나란히 서 있는 모양을 하는 것도 눈에 띈다. 고인돌 같은 형태의 거대한 기암들을 많이 만날 수 있다. 선사시대 문화유적인 고인돌이 많이 분포되어 있는 강화이기에 고인돌이라고 해도 믿을 성싶다.

돌부리에 넘어질 뻔했다. 내 몸을 붙잡으며 일행의 설명이 이어진다.

"조심하세요. 이곳 바위표면에는 혹이 달린 것들이 많이 있어요. 큰 바위에는 큰 혹이 작은 바위에는 작은 혹이 있는데, 아마 이곳도 기(氣)가 세서 생긴 것이 아닐까요?"

바위 표면에 주먹만 한 혹 같은 것이 솟아올라 와 있는 것을 보며 자기 나름대로 해석을 하는데 그럴 듯하기도 하다.

보문사 석굴사원과 마애불상

 

▲ 보문사 내려가는 길에 만난 너럭바위지대
ⓒ2006 전갑남
보문사가 있는 낙가산 너럭바위지대에서 아래로 하산을 하면 해명산 산행의 끝이다. 해명산이 위치한 석모도는 사실 산보다는 보문사라는 사찰로 더욱 유명하다. 오랜 역사에도 불구하고 예스러움을 찾아 볼 수는 없는 것이 조금은 아쉽다. 하지만 보문사에는 자연 상태로 있는 바위에 인간의 솜씨가 빚어낸 예술의 절정을 볼 수 있다.

 

▲ 천연동굴 속의 보문사 석굴사원
ⓒ2006 전갑남
신라 선덕여왕 4년(635) 회정대사에 의해 창건되고, 조선 순조 12년(1812)에 중건된 석굴사원은 보문사의 백미이다. 천연동굴을 이용하여 입구에 3개의 홍예문을 만들고 동굴 내에 감실을 설치하여 석가모니불을 비롯한 미륵, 제화갈라보살과 나한상을 안치하였다.

 

▲ 낙가산 중턱에 있는 마애불상
ⓒ2006 전갑남
또, 보문사를 더욱 유명하게 하는 것은 낙가산 중턱에 자리 잡은 눈썹바위이다. 눈썹바위에는 거대한 관음보살이 서해바다를 내려다보며 힘겹게 올라온 중생들을 환하게 맞이하고 있다. 불상이 있는 바위 위쪽에는 특이하게도 암석이 눈썹처럼 앞으로 삐죽 나와 관음보살의 우산 역할을 해주어 불상의 건강은 매우 양호하다.

보문사를 내려오며

보문사 일주문을 빠져나와 주차장으로 내려오면 인근지역 할머니들이 장사하는 조그마한 장터를 볼 수 있다. 밀고 당기는 흥정도 예스런 정취를 느끼게 한다. 할머니들의 주름진 얼굴에서 예전 어머니의 모습이 떠올라 마른 새우 한 되를 샀다. 꼭꼭 눌러 덤으로 얹어주는 인심에 정이 넘친다.

4시간 가까이 쉬지 않았던 산행이라 시장기가 돈다. 절 근처 가까운 음식점에서 비빔밥에 인삼막걸리 한 잔은 보약이 따로 없다. 산행에서의 노곤함이 다 녹아나는 것 같다.

돌아오는 길에 아내의 눈치를 살폈다. 매우 즐거운 표정이다. 산행도 좋았지만 널려 있는 바위를 보며 의미를 두고 관찰하고, 번뇌 많은 삶에 평안을 위해서 바위에 새겨 담은 깊은 뜻을 생각할 수 있어 좋았다고 한다.

아내가 기분이 좋은 듯 한마디 덧붙인다.

"좋은 분들 만나 재미나는 이야기를 주고받아서 좋았구. 가는 겨울을 붙잡고 싶을 정도로 눈꽃이 아름다웠어요. 찌뿌드드한 몸도 한결 가벼워졌네요. 다음 산행엔 마니산을 등산하고 우리 집에서 점심을 대접합시다."

 

 

 

 

- ⓒ 2006 오마이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출처-[오마이뉴스 2006-03-03 14: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