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나얀™♡【패션】

“젊음과 품격을 한 꺼번에 입는다”

피나얀 2006. 3. 17. 00:38

 


청바지의 변신 | 프리미엄 진 시대


수십만원짜리 청바지를 없어서 못팔아... 스타가 입고 나와 브랜드 띄워


착 달라붙어 늘씬해 보이는 스타일 선호... 정장과 함께 입는 남성도 늘어

 

지난 2월 27일 서울 충무로에 있는 신세계백화점 본점 4층에 있는 ‘블루 핏’ 매장. 청바지를 입은 마네킹 앞에서 30대로 보이는 두 여성이 수다를 떨고 있었다. “스타벅스 커피도 비싸다고 안 마시는 내 친구 있잖아. 글쎄 걔가 이 ‘세븐 진’은 A포켓 라인, 물결 라인, 7자 라인 등 모델별로 세 벌이나 갖고 있대.” “세 벌에 100만원은 족히 줬겠네. 대체 그 청바지는 뭐가 다른 건데?” “너 설마 한 벌도 없는 건 아니겠지? 입으면 섹시하고 날씬해 보이는 ‘마법의 청바지’야. 한번 입어보면 중독이 돼 또 사게 될 걸?”(웃음)

 

‘블루 핏’은 다양한 고급 진(Jean) 브랜드 제품을 모아서 판매하는 ‘편집 매장’이다. 언뜻 보면 평범한 청바지 매장 같다. 하지만 안을 들여다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니콜 키드먼, 기네스 팰트로 같은 내로라 하는 할리우드 스타들이 즐겨 입는다는 고급 청바지들이 진열대에 놓여있다. 세븐 진, 허드슨 진, 락 & 리퍼블릭, 트루 릴리젼, AG, 시티즌 오브 휴머니티, 조스 진, 앤틱 & 데님, 제임스 진…. 브랜드 개수만도 10개가 넘는다.

 

청바지 한 벌의 가격이 최소 30만원 선. 포켓 부분에 징이 박혀있거나 자수가 놓여있고 스팽글 장식이라도 달려있으면 가격이 40만~50만원을 훌쩍 넘는다. 반짝거리는 스와르브스키의 크리스털이 바지 위에 수놓아진 세븐 진의 제품은 128만8000원이다. 국산 정장 몇 벌 가격이다. 요즘 뜬다는, 축구선수 데이비드 베컴의 부인 빅토리아 베컴이 디자인했다는 락 & 리퍼블릭도 있다. 포켓에 왕관 모양이 새겨져 있는 제품은 한 벌에 49만원이 넘는다.

 

세계적인 명성과 높은 가격으로 무장한 이들 제품을 ‘청바지’라고 부른다면, 이들이 서운해할 노릇이다. 진(Jean) 앞에 ‘프리미엄’을 붙여 ‘프리미엄 진’이라고 불린다. 터질 듯 꽉 끼게 입고 그래야 오히려 날씬해 보이는 청바지, 파티 갈 때 꽃무늬 블라우스에 받쳐 입고 예식장 갈 때 정장 재킷 아래에도 받쳐 입을 수 있는 ‘청바지 만능 시대’를 연 주인공이다.

 

2004년부터 대중에 널리 알려진 이들 프리미엄 진 제품의 인기는 사그라들 줄을 모른다. 프리미엄 진은 ‘젊음’과 ‘고급스러움’, 두 가지 아이콘으로 20~30대 젊은 멋쟁이들은 물론 중·장년층까지 공략하고 나섰다. 싸구려 청바지를 사서 아무렇게나 입기는 싫고, 청바지가 갖는 자유를 만끽하면서 고급스러움을 지향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민망할 만큼 딱 달라붙는 청바지에 몸을 맡기고, 팬티 선이 드러날 정도로 밑위(허리에서 엉덩이까지의 길이)가 짧은 것도 감수한다. 젊음을 입는 데다가 한술 더 떠 품격까지 입는다는데 그 정도야 감수해야 하는 것 아니겠나.

 

블루 핏 내 ‘쇼룸’의 숍 매니저 강미정씨는 “20~30대는 물론이고 운동으로 몸 관리를 잘한 50~60대 여성도 많이 찾아와 구입한다”고 했다. 인기 모델 제품은 판매대에 오르자마자 사이즈가 없어서 못 팔 지경이고 “제품이 들어오는 대로 구입하겠다”는 ‘예약 리스트’가 생겨날 정도란다.

 

신세계백화점 강남점에 있는 프리미엄 진 편집매장의 월 평균 매출액은 1억9000만원 선. 1년이면 이 매장에서만 24억원 가까이 청바지가 팔려나간다는 말이다. 프리미엄 진을 찾는 사람이 많아지니 이를 팔겠다고 나서는 곳도 많아졌다. 국내 디자이너 부티크들도 고급 자수를 놓고 징을 박은 외국 프리미엄 진을 따로 수입해 판매한다. 나비 모양의 천 조각이 바지 양쪽 허벅지에서 날고 있는 디자인 작품은 한 벌에 40만~50만원에서 100만원을 훌쩍 넘기도 한다.

 


인기가 이쯤 되니 ‘위즈위드’(www. wizwid.co.kr)처럼 해외에서 제품 구매를 대행하는 인터넷 쇼핑몰에 ‘프리미엄 진’ 섹션이 따로 생겨나고, 홈쇼핑에서 ‘프리미엄 진 스페셜’이란 코너를 편성해 다양한 브랜드를 소개하기도 한다. 30만~40만원짜리 제품을 본뜬 4만~5만원짜리 ‘짝퉁 프리미엄 진’ 제품까지 나오고 있다.

 

프리미엄 진은 주춤했던 일반 청바지 시장에까지 영향을 줘 프리미엄 진 분야로 사업을 확장하거나 아예 새로 청바지 시장에 뛰어든 의류 업체들이 속속 나오고 있다.

이들 제품이 국내에 소개되기 시작한 것은 1999년경. 이때만 해도 연예인이나 해외 유학파, 패션 관련업 종사자들이 주요 고객층이었다. 그러다가 2003~2004년 들어서면서 청담동이나 압구정동의 로드숍을 중심으로 팔려나가기 시작했다.

 

갤러리아백화점의 편집 매장인 ‘스티브 알란’에서 일찍이 프리미엄 진을 팔기 시작했다. 2004년 들어선 아예 ‘프리미엄 진 편집 매장’의 형태로 백화점 안으로 들어왔다. 2004년 봄 신세계백화점에 프리미엄 진 편집 매장인 ‘블루 핏’이 처음 문을 열었고 지난 1월 현대백화점 무역센터점도 기존의 편집 매장을 단장해 ‘데님 바’를 열었다. 청담동에 있는 고급 명품 편집 매장 ‘분더숍’의 캐주얼 섹션에 가봐도 7~8개의 프리미엄 진 브랜드 제품들을 만날 수 있다.

 

이들 편집 매장의 관계자들은 “그냥 청바지를 한 벌 사려고 오는 사람들이 아니라 프리미엄 진에 열광하는 진 매니아를 위한 전시장”이라고 입을 모은다.

 

그렇다면 프리미엄 진이 대체 뭐기에 30만~40만원 나가는 청바지를 사겠다는 행렬이 이어지는 걸까. 우선 프리미엄 진 매니아들은 입어서 늘씬해 보이는 모양새를 꼽는다. 다리는 되도록 길고 날씬하게, 몸은 최대한 섹시하게 보이는 게 관건이다. 신세계인터내셔널의 마케팅담당 신지연씨는 “여러 브랜드에서 여러 모델이 나오지만 구매하는 손님들을 보면 얼마나 날씬하고 섹시해 보이는지를 가장 중시하는 것 같다”며 “주머니를 어떤 위치에 어떻게 붙이고, 무릎 아래 부분의 품을 어떻게 했는지 등을 꼼꼼히 챙겨본다”고 했다.

 

실제로 지난 1~2년 간 무릎 아래로 약간 퍼지는 듯한 ‘부츠컷’ 라인이 인기였다. 기장을 약간 길게 해서 하이힐을 신으면 실제보다 다리가 길고 날씬하게 보이기 때문이다. 여기에다가 아랫배가 좀 나왔더라도 골반에 걸치듯이 입고, 팬티 선이 보일 정도로 밑위를 짧게 입으면 늘씬해 보이는 착시 효과를 일으킬 수 있다고 한다.

 


요즘은 히프에서부터 허벅지, 종아리, 발목에 이르기까지 바람이 들어갈 틈이 없을 정도로 달라붙는 ‘스키니(Skinny) 라인’이 또 다른 화두다. 다리에 딱 달라붙는 레깅스 같은 이 디자인은, 몸매가 받쳐주지 않는 사람들이 소화하기에 어려운데도 역시 인기다.

 

프리미엄 진 매니아들은 ‘워싱(탈색)’ 기법이 어떻다느니 ‘피트(fit)’가 잘 빠졌다느니 같은 얘기를 끊임없이 늘어놓는다. 브랜드의 모델별 특징도 상세하게 꿰뚫어보고 있다. 광고업체에 다니는 한 30대 중반 여성은 “세븐 진의 A 포켓라인은 엉덩이를 받쳐줘 다리가 긴 느낌이 들게 하고, 물결 무늬라인은 엉덩이가 처진 사람이 볼륨 있어 보이고 싶을 때 입으면 된다”며 “진한 회색, 진한 청색 등 색깔별로 다른 느낌을 낼 수 있다”고 했다. 디자이너 부티크의 프리미엄 진을 파는 편집 매장 ‘스튜디오 블루’의 직원은 “이곳에 오는 50~60대 여성도 날씬해 보이는 디자인, 화려한 자수나 장식을 쓴 디자인을 선호한다”며 “다만 입어서 편안한 제품을 찾기 때문에 밑위가 짧은 골반 바지는 피한다”고 했다.

 

세계적인 보석업체 ‘티파니’에서 다이아몬드 반지를 살 때는 반지를 사는 게 아니라 티파니를 산다고 말한다. 티파니가 갖는 이미지를, 그 브랜드를 산다는 것이다. 프리미엄 진도 실용성이나 제품 기능보다 브랜드를 판 덕분에, 쏠쏠한 재미를 봤다. 이들 브랜드는 할리우드 스타들을 내세워 소비자의 마음을 자극했다. 실제로 각종 패션 잡지에선 몇 년 전부터 청바지에 하늘하늘한 블라우스나 티셔츠를 받쳐 입은 스타들 사진이 많이 실렸다. 물론 그 사진 캡션엔 어디 브랜드라는 설명이 따라 붙는다.

 

패션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허드슨 진’은 미국의 인기 시트콤 ‘위기의 주부들(Desperate housewives)’ 여주인공들이 즐겨 입고 ‘블루 컬트’는 기네스 팰트로가 즐겨 입었다고 해서 ‘기네스 팰트로 진’이라고까지 불렸다는 것쯤은 알고 있다. 미국 시트콤 ‘프렌즈’의 제니퍼 애니스톤이 즐겨 입었던 ‘디젤(Diesel)’, 테니스의 요정인 마리아 샤라포바가 입었다는 ‘파라수코 진’… 이런 식이다. 신세계백화점 본점의 프리미엄 진 바이어인 노재영 과장은 “디젤, 가스(GAS)… 이탈리아 제품도 있지만 대부분 미국산으로 할리우드가 있는 캘리포니아 쪽에 본사를 두고 있다”며 “셀리브리티(유명 인사) 마케팅으로 브랜드 이미지를 키웠다”고 했다.

 

국내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트루 릴리젼’은 드라마 ‘봄날’에서 조인성이 이 브랜드 제품을 입으면서 입소문을 탔다. ‘시티즌 오브 휴머니티’란 제품 중엔 바지 밑단에 노랑, 오렌지색 실을 지그재그 모양으로 꿰매놓은 게 있다. “기장을 줄여야 하는 사람들은 이 부분을 잘라내야 하겠다”고 판매 사원에게 묻자 “변정수씨 같은 (다리 긴) 모델들이 특히 선호한다”는 답이 되돌아왔다.

 

옷이 주는 자유를 만끽하고 싶은 욕망이야 남성이라고 다를 바 없다. TV나 영화에서도 청바지 위에 정장 재킷을 멋드러지게 입고 나오는 남성 배우들이 많아졌다. “어떻게 점잖은 자리에 청바지를 입고 가느냐”던 사람들이, 청바지가 고급스런 패션 코드로 바뀌면서 과감히 청바지를 입기 시작했다.

 

오래전부터 청바지를 즐겨 입고 있는 남성패션 전문지 GQ코리아의 이충걸(41) 편집장은 “어머니로부터 ‘어른은 정장을 입어야 한다’는 잔소리를 숱하게 들어왔었다”며 “이제는 청바지도 정장 셔츠, 재킷과 어울리는 하나의 정장 아이템이 됐다”고 했다. 패션업계 사람들은 청바지를 자신감 있게 입는 건 자기관리를 잘 했다는 증거라고 본다. ‘젊음’의 아이콘이던 청바지가 고급스러워지면서 이제 ‘멋’과 ‘능력’ ‘품위’ 같은 컨셉트까지 갖게 됐다는 말이다.

 

 

얼마 전부턴가 골프 클럽에선 라운딩을 마친 뒤 재킷 아래 청바지 같은 바지를 입은 남성이 간혹 보이기 시작했다. 자세히 보면 청바지가 아닌 것도 같다. 색깔은 정장 바지같이 짙은 색인데, 자세히 보면 청바지의 컬러와 질감을 강조한 소재다. 중·장년층 남성을 공략, 경쾌한 느낌을 주면서도 입어서 편안한 ‘진 라이크 룩(Jean-Like Look)’ 제품이다.

 

청바지를 입는 남성이 늘어나면서 LG패션 마에스트로 캐주얼 라인은 지난해 봄 30~40대 중년 남성을 대상으로 한 청바지를 생산했다. 첫선을 보인 제품이 다 팔려나가 지난 겨울엔 물량을 두 배로 늘려 제작했다. 올 봄엔 아예 데님 소재를 주로 한 라인을 선보일 예정이다. 마에스트로 캐주얼 라인 디자인실의 엄윤경 실장은 “밑위가 짧은 진이 아니라 밑위가 길면서도 맵시가 살아나도록 했다”며 “자연스럽고 편안한 색으로 워싱 가공을 썼고 팔꿈치나 무릎엔 신축성 있는 스트레치성 원단을 섞어 썼다”고 했다.

 

프리미엄 진 시장의 인기가 계속 높아지면서 고급 진 분야에 뛰어드는 곳이 잇따라 나오고 있다. ‘청바지의 아버지’랄 수 있는 리바이 스트라우스가 세운 진 업체 ‘리바이스(Levi’s)’도 최근 30만~40만원대 프리미엄 진 제품을 적극 내놓고 있다. 무릎에 흙이 묻은 것 같거나 파란색 물감을 묻힌 듯한 제품이 38만~39만원에 팔린다. 1950~1960년대의 워싱 방법과 수공 작업으로 만들었다는 리바이스 빈티지 클로딩 제품도 40만~50만원에 팔린다.

 

프리미엄 진이 인기를 모으면서 10만~20만원 하던 기존의 청바지도 더 잘 팔리는 추세다. 캘빈 클라인을 비롯한 게스, 톰보이 등에서 나오는 청바지는 꾸준히 20대 초·중반 남성의 사랑을 받고 있다.

 

1980년대 한창 인기를 누렸지만 1990년대 말 위기를 겪었던 청바지 업체 ‘뱅뱅’도 최근 다시 기지개를 켜고 있다. 뱅뱅은 지난해 190개 매장에서 1700억원 매출액을 올려 중저가 캐주얼 부문에서 매출액 1위를 달리고 있다. 뱅뱅은 최근 ‘젊음, 신선, 진실’을 코드를 내세우면서 영화배우 권상우와 하지원씨를 모델로 썼다. 화려한 장식과 빛 바랜 듯한 워싱 가공을 한 디자인으로, 수십 년 전 이 브랜드와 젊은 시절을 보냈던 중년층을 공략한다는 전략이다. 속옷업체 ‘좋은 사람들’도 최근 세계 톱 모델 지젤 번천을 모델로 기용, ‘터그 진(Tug Jean)’이란 청바지 캐주얼 브랜드를 내놓았다.

 

 

 

 

 

황성혜 주간조선 기자(coby0729@chosun.com)

※본 기사 작성에는 이정은 인턴기자(caroline84@empal.com)가 참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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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주간조선 2006-03-15 09: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