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나얀™♡【여행】

하늘 공원하고 땅 공원, 어느 게 더 좋아?

피나얀 2006. 3. 20. 18:22

 

먼 옛날 중국이 중국이라 불리기 훨씬 이전에, 이 중국 땅에서는 하늘과 땅과 해와 달에게 제를 지냈다지요. 북경 중심부의 동서남북에는 이들 신에게 제를 올리던 제단이 있었고, 그 제단은 지금 천단공원, 지단공원, 일단공원, 월단공원으로 남아 있습니다.

취업 비자를 위해 건강검진 받으러 병원에 갔다가 근처에 있는 지단공원(地壇公園)에 들렀습니다. 그 옛날, 땅님에게 제사를 지내던 곳이죠. 생각보다 정말 깔끔하고 조용해서 참 좋았습니다. 북경은 엄청 시끄러운데, 이 안에 들어가니 바깥세상과는 격리된 듯한 고요함이 가득했지요.

▲ 지단공원 입구입니다.
ⓒ2006 윤영옥
어떤 건축물이 가득 들어서있기보다는 풀과 나무가 많아 산책하기에 딱 좋은 곳입니다. 곳곳에 벤치도 많고, 벤치 주위를 종종거리며 뛰어다니는 새들도 많고요. 온통 회색과 황토색뿐인 칙칙한 북경의 빛깔에 눈이 질릴 때쯤, 싱그러운 초록으로 눈을 편안히 해주기에도 좋습니다.

안쪽으로 깊이 들어가면 작은 호수(호수라기엔 너무 작아 ‘물웅덩이’라는 표현이 더 적합할지 모르겠습니다)가 하나 있고, 호수 주변을 따라 회랑이 하나 있는데 회랑 안쪽의 기둥과 벽면에 전부 그림이 그려져 있어 작은 미술관을 구경하는 기분도 납니다. 그 호수에는 낚싯대를 빌려주는 사람이 있어 원한다면 잠깐이나마 강태공이 되어 볼 수도 있지만, 여기에서 낚시질을 하느니 바닷가에서 산나물을 캐는 게 훨씬 낫겠습니다.

▲ 보기만 해도 기분 좋아지는, 지단공원의 초록빛
ⓒ2006 윤영옥
지단공원에는 웨딩촬영을 하는 신랑신부가 참 많습니다. 그런데 지단공원 곳곳에 퍼져 있는 게 아니라 어느 한곳에만 무리지어 있다는 게 좀 신기합니다. 저는 처음에는 정말 신랑신부가 아니라 어느 웨딩 에이전시 같은 곳에서 화보를 만드나 생각했으니까요. 촬영이 허가된 구역이 정해져 있는 건지…. 어쨌거나 우리 눈으로 보기에는 신부 화장이나 드레스, 턱시도 등이 매우 촌스럽지만, 그들의 얼굴에 가득 피어오른 행복만큼은 무척이나 부러웠습니다. 저도 얼른 화려한 드레스 입고 예쁜 화장하고 저들처럼 행복하게 결혼사진 찍을 날이 찾아왔으면 좋겠네요.

지단공원 안에서도 제를 지내던 곳을 구경하려면 또 별도의 입장권을 구입해야 합니다. 지단공원 입장료는 성인이 2위안이고, 제단 입장료는 성인이 5위안입니다. 하지만 제가 지단공원에 갔었던 2005년 9월에는 내부 공사 중이었습니다. 입장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었지만, 기껏 돈을 내고 들어갔는데 공사 중이라니 좀 황당했습니다.

▲ 공사 중인 제단에서 보는 황기실
ⓒ2006 윤영옥
제단 위쪽에 몇 개의 문을 지나면 가장 마지막에 위치하는 ‘황기실(皇祇室)’이라는 작은 전(殿)에는 지금 몇 개의 악기와 몇 개의 유물이 전시되고 있습니다. 전시는 다소 초라하지만, 제단 주변의 공사가 끝나고 나면 더 좋은 볼거리를 제공하겠지요.

조용하고 소담한 지단공원과 달리, 천단공원(天壇公園)은 매우 넓고 관광객들로 북적입니다. 중국에서 가장 큰 제단으로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천단공원 내부에는 원구단(圓丘壇), 황궁우(皇穹宇), 기년전(祈年殿), 남재생정(南宰牲亭), 남신주(南神廚), 신락서(神樂署) 등의 건물이 남아있는데, 이들을 모두 둘러볼 수 있는 통합권이 성인 35위안입니다.

▲ 천단공원 입구는 사람들로 북적입니다.
ⓒ2006 윤영옥
천단공원 정문을 들어가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면 바로 신락서가 있습니다. 신락서는 옛날에 제천 의식의 음악을 관장하던 부서였던가 봅니다. 현재는 각종 악기와 악보, 연주자들의 의상, 무용 등에 관한 갖가지 유물을 전시하고 있습니다. 전시물을 분류해 놓은 것이나 전시실 내부와 외부 인테리어, 관람객의 동선을 고려한 배치 등등, 제가 지금껏 중국에서 보았던 전시 중에서는 최고입니다.

각종 북을 전시해 놓은 전시실에 사람들이 직접 북을 쳐볼 수 있도록 해놓은 것이 있어, 저는 그 북이 진짜 옛날 북인 줄 알고 조심스럽게 쓰다듬고, 안내원에게 이 북이 언제 만들어진 거냐고 물었더니, 허탈하게도 ‘새로 만든 것’이라고 하네요.

▲ 왼쪽 상단부터 시계방향으로 원구단, 원구단 위 황제가 제문을 태우던 받침돌, 회음벽, 황궁우입니다.
ⓒ2006 윤영옥
원구단과 황궁우는 서로 마주보고 있습니다. 우선 원구단에 가보았습니다. 원구단은 황제가 제천의식을 거행하던 곳으로, 흰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둥근 제단이 3단 케이크처럼 쌓여있습니다. 맨 위로 올라가면 정 가운데 커다란 바둑알처럼 둥그런 돌이 놓여있는데, 이 돌 위에 올라가 사진을 찍으려는 관광객들의 쟁탈전이 치열합니다. 사진을 찍고 내려오기가 무섭게 바로 다음 사람이 올라가서 사진을 찍지요. 바로 이 자리에서 황제가 제문을 읽고 태웠다고 합니다.

황궁우는 역대 황제들의 위패가 모셔져 있는 곳입니다. 푸른 고깔모자를 쓴 것 같은 둥근 건물이 인상적이지요. 황궁우 내에서 이 건물보다 더 인기가 많은 것은 황궁우를 둘러싸고 있는 벽돌담입니다. 회음벽(回音壁)이라고 불리는 이 담은 한쪽 끝에서 말을 하면 반대쪽 끝까지 전해진다고 하네요. 그래서 사람들은 이 벽에다 대고 계속 무슨 말인가를 하지만, 워낙 사람이 많아 어떤 말이 전해지는지, 정말 전달되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또 황궁우 중앙의 세 개의 받침돌은 삼음석(三音石)이라고 하는데, 첫 번째 돌에서 박수를 치면 메아리가 한 번, 두 번째 돌에서 박수를 치면 두 번, 세 번째 돌에서 박수를 치면 메아리가 세 번 들린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 역시 하도 여러 사람들이 너도 나도 박수를 쳐대는 바람에 확인할 길이 없습니다.

남신주는 옛날엔 음식을 만들던 곳이었지만, 지금은 ‘천단건축예술관’이라는 이름을 걸고 천단공원 내부 건축물들의 예술성을 설명하는 전시관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마당의 작은 우물만이 예전 이곳의 쓰임을 증명하고 있지요.

남재생정은 조금 무서운 곳입니다. 제사에 쓰이는 동물들을 잡던 곳입니다. 내부 한가운데는 깊은 구덩이가 파여 있고, 그 구덩이 속에서 동물을 죽여 구덩이 옆의 커다란 세 개의 가마솥으로 옮겼답니다. 예전 이곳에는 동물들의 피와 비명소리가 가득했겠지요. 이곳을 설명하는 안내판을 읽으며 조금 어이없었던 것은, 가마솥의 용량을 설명하는 부분에서였습니다. 이 세 개의 가마솥에 물을 가득 채우면 얼마의 물이 들어간다는 것이었는데, 그만큼 이 솥이 크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한 것 같았습니다. ‘큰’ 것을 강조하고 ‘큰’ 것에 집착하는 중국. 이젠 좀 안쓰럽기까지 합니다.

천단공원의 대표적인 건물인 기년전은 공사 중이라 입장이 금지되어 있었습니다. 넓고 넓은 천단공원 안을 하루 종일 헤매면서도 ‘기년전을 못 보고 나갈 수는 없다’는 강한 일념하에 지금까지 아픈 다리를 참아왔는데, 이게 웬일이랍니까. 허탈해지는 순간입니다.

▲ 기년전은 공사 중이라 들어갈 수 없습니다.
ⓒ2006 윤영옥
북경은 현재 온통 공사 중입니다. 이곳 천단공원의 기년전을 비롯하여, 이화원의 불향각, 공묘와 국자감, 글 서두에 말씀드린 지단공원, 대종사 등 곳곳에서 개보수 공사가 진행 중이지요. 아무래도 2008년 올림픽 때까진 북경 시내 유적지들의 온전한 모습을 보기란 어려운 모양입니다.

기년전을 보지 못했다는 아쉬움을 맛난 저녁 식사로 달래고 학교로 돌아왔습니다. 돌아와서 가만 생각해보니, 지단공원과 천단공원은 과거에 그 역할은 비슷했지만 그 규모와 분위기에 있어선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만약 이 중 한 군데만 둘러볼 수 있다면, 여러분은 어떡하시겠어요? 차분하고 아담한 지단공원과 크고 볼거리 많은 천단공원, 둘 다 놓치기 아까운 곳인데 말이죠. 만약 잠깐 북경에 왔다가는 관광객이라면 지단공원보다는 천단공원에 더 끌렸겠지요? 이럴 땐, 제가 북경에서 오랜 시간 머무를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행복한지요.


덧붙이는 글
중국에서는 다들 아시다시피 간체를 사용합니다. 그러나 기사에서는 가독성을 위해 우리가 사용하는 번체로 표기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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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오마이뉴스 2006-03-19 13: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