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나얀™♡【여행】

북악산 올라보니 “서울이 별천지였네”

피나얀 2006. 3. 20. 18:23

 

“정말 별천지다! ”

 

출입 통제 38년만에 청와대 뒤편 북악산 기슭을 오른 답사객들의 이구동성이었다. 푸른 죽순 모양 솟아오른 한양 도성의 주산 북악산과 성벽, 주위 서울 도심이 어루어낸 절경에 그들은 놀라움과 기쁨을 감추지 못한다.

 

“답답했던 서울에 이렇게 장엄한 풍경이 숨어 있었군요.” “북악산이 이렇게 도심과 가까울 줄 몰랐어요.” “자연 그대로의 서울 모습이 남아있다니…”

 

18일 낮 문화재청 시범답사에서 금단의 지역이던 북악산은 장엄하고 단아한 자태를 드러냈다. 그동안 청와대 권력자들과 군인들만 누빌 수 있었던 북악산 성벽길과 등산로가 4월 시작되는 단계 개방을 맞아 전문가, 시민대표들의 발길을 맞아들인 것이다. 2월12일 대보름 때 노무현 대통령과 인근 주민 150여명이 북악산을 오른 이래 두번째 시범답사다. 68년 북한 무장 간첩단 침투 사건 이래 군인들의 순찰로로 은둔해야 했던 북악산 등산로는 깔끔한 시설로 탈바꿈해있었다.

 

답사객들은 유홍준 청장을 비롯한 문화재청 관계자들과 출입기자, 궁궐지킴이 등의 시민단체 회원, 인근 주민 등 300여명. 날씨는 다소 흐리고 쌀쌀했으나, 자연·역사 문화유산을 골고루 살펴볼 수 있는 알찬 발걸음에 참가자 대부분은 한눈을 팔지 않았다.

 

삼청터널 옆 홍련사에서 시작

”문 열리면 아낙네 바람난다” 잠가둔 숙정문 활짝 열려

 

오후 3시20분 삼청터널 옆 홍련사에서 설레임 속에 답사행렬이 시작되었다. 첫 기점은 지난 9월 언론에 한 차례 공개된 바 있는 한양성 북문 숙정문. 들머리 출입 관리시설에서 신원 조회를 하고 등성이를 오르니 나무 부재로 짠 새 등산로 시설이 나타난다.

 

초소를 따라 좁고 구불구불하게 이어졌던 기존 산길 대신 폭 1m의 발판과 나무 난간으로 만든 `나무 데크'가 설치되어 숙정문 오르기가 한결 편해졌다. 넉넉잡고 10분여 만에 숙정문에 도착했다. 조선시대 문 열리면 도성안 아낙네들이 바람이 난다고 하여 굳게 닫아놓았던 이 북문은 이제 활짝 열려있다. 등산객들은 옛 사연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무렇지도 않게 문을 통과했다. 따라온 아이들은 엄마, 아빠들과 누각에 올라 기념사진을 찍기에 바쁘다.

 

숙정문 다음부터는 한양성 성곽 옆 계단길을 따라 능선을 타고 올라간다. 계단을 통해 성곽길을 올라가던 관객들은 옆의 성곽을 만져보기도 하고 성벽에 뚫린 구멍으로 아련하게 깔린 성북동과 서울 도심부 전경을 디카로 찍느라 여념이 없다. 성곽을 오는 계단 길 곳곳에 경계 근무중인 병사들의 초소와 철조망 등이 따라 이어져 긴장감을 자아낸다.

 

1968년 1월21일 북한군 특수부대원들이 청와대로 침투하려다 우리 군과 교전할 당시 총탄 흔적이 여전히 남은 `1·21사태 소나무'가 눈길을 끈다. 경치에 빠져 사진을 찍던 등산객들을 군 당국이 가로막는 모습도 종종 눈에 띄었다.

 

“아빠, 여기 왜 철책선이 있어?” “으응…군사적으로 중요한 곳이란다” 손잡고 오르던 아이의 물음에 아버지는 난처한 기색으로 답한다.

 


`1·21 사태’ 때 흔적 전해주는 총탄 흔적 간직한 소나무 그대로

 

숙정문에서 0.5km 더 올라간 촛대바위는 서울 도심의 전망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길목. 지난 9월과 달리 널찍한 전망시설이 설치되어 등산객들로 북새통이다. 바로 눈앞에 안겨오는 경복궁과 광화문, 세종로 등 색다른 각도의 도심 풍경에 “정말 좋다”“떨린다”는 탄성이 잇따른다. 한 할아버지는 현 광화문과 세종로가 경복궁의 원래 방향과 다르게 축이 비뚤어져있는 전경을 손으로 가리키며 아이들과 청년들에게 열심히 설명을 하기도 한다.

 

다시 재게 발을 놀려 계단길을 오르니 어느새 움츠렸던 몸에 활기가 돌고 얼굴에 땀이 맺히기 시작한다. 이윽고 출발 40분만인 오후 4시 한양 성곽의 북편 관측지점인 곡장에 이르렀다. 동서남북의 서울 산세가 가장 잘 보이는 곳이라고 한다. 청와대를 품에 안은 북악산 동쪽 기슭과 닭알 바위 등 특유의 기암이 멀리 인왕산의 자태와 함께 손에 잡힐 듯 다가온다.

 

유홍준 청장이 꼭 보라고 추천해 바로 옆 북쪽 초소의 쪽창을 들여다보았다. 백악산과 뒷편 북한산 보현봉 기슭의 산세가 마치 풍경화 그림처럼 창문 안으로 들어왔다. 아빠를 따라온 초등학교 2년생 김성연(9)양은 “책 사진에서 보던 답답한 서울과 달리 서울이 이렇게 크고 좋은 풍경인 줄 몰랐다”며 “다음에도 꼭 오고 싶다”고 웃었다. 촛대바위에서 700m 더올라간 동산 쉼터에서는 발 밑 숲 아래로 경복궁 후원과 민속박물관, 청와대 동편 건물군 등이 색다른 각도로 들어온다. 특히 경복궁 전각들은 더욱 손에 잡힐 듯 발밑으로 들어오는 모습이다.

 

유홍준 문화재청장 “북 초소 쪽창을 놓치지 말아라” 한폭의 동양화

 

이제 산행은 절정으로 치닫는다. 북악산 인근 청운동에서 유년기를 보낸 유홍준 청장의 구수한 입담이 한창이다. “67년 대학 입학한 뒤에도 올라오곤 했는데 군대 가서 68년 무장간첩단 침투 사건이 나는 바람에 35개월이나 복무했다”고 말해 주위를 웃겼다.

 

오후 4시 30분 마침내 북악산 정상에 도착했다. 아직 꽃이 피지는 않았지만 막 몽우리가 맺히기 시작한 진달래밭과 구불구불한 노송이 답사객들을 반갑게 맞아주었다. 정상 부근 바위에는 30년전 산이 폐쇄되기 전까지 등산객들이 새긴 이름과 각종 낙서가 여전히 남아있어 미묘한 느낌이 들게 했다. 정상부 남쪽으로는 청와대 내려가는 작은 오솔길도 보였다.

 

북악산 정상까지 자주 오른다는 노 대통령은 지난주까지 이곳을 43번이나 올랐다고 귀띔해주었다. 백두산에서 뻗은 산맥이 금강산을 거쳐 도봉, 북한산을 일으키고 다시 뻗은 남맥이 기를 모아 멈춘 곳이 이곳이라는 표지판이 보인다. 뜻밖에도 무장간첩단 침투 뒤 70~80년대 운영된 대형 발칸포 진지터를 철거한 표석도 보여 눈길을 끌었다. 지상 2층에 120평이나 되는 이 대형 시설은 2000년에야 서울시가 철거한 것으로 북악산에 얽힌 역사적 곡절을 극명하게 증언하고 있었다.

 

정상에서 만난 이인순(61·서울 쌍문동)씨는 “단순한 등산이 아니라 역사를 조명하고 관심을 가질 수 있는 계기가 되는 답사라는 점이 좋다”고 말했다.수원 매산로에서 온 윤주현(53)씨도 “경치도 경치지만 성곽 부근의 살아있는 듯 꿈틀대는 노송들과 새롭게 발견하는 서울 도심 풍경이 굉장히 인상적이었다”면서 “개방 뒤 훼손되지 않도록 각별한 관리대책도 필요할 것 같다”고 조언했다.

 

"원래 한양성 성벽은 정교하게 짠 것…20세기 조악한 복원과 금세 구별”

 


답사의 종착지인 창의문까지 내려가는 길은 경사도 70도가 넘는 더욱 가파른 계단길. 맞바람도 거세져 땀에 절었던 몸에 다시 슬근슬근 냉기가 스며든다. 서울 한양 성곽과 바싹 붙어 내려가므로 이 성곽의 역사적 흔적을 더욱 가까이서 체감할 수 있었다. 멀리는 조선 숙종 때 개수한 지붕돌·벽돌부터 70년대 초중반 서울시에서 대충 땜빵하듯 채워넣은 신 부재까지 성곽 돌의 다양한 역사를 돌빛이나 쌓은 부재의 구조를 통해 알 수 있다.

 

유홍준 청장은 “원래 한양성 성벽은 단순히 맞물리는 것이 아니라 모를 내어 이가 들어맞도록 짰기 때문에 20세기 조악하게 복원한 성벽과 금세 구분이 된다”고 말했다. 옛 성벽돌 곳곳에 축조시기와 부역한 백성의 출신지와 이름을 새긴 글씨들도 볼 수 있어 성곽 조성에 동원된 선인들의 애환 등이 절로 느껴진다.

 

시대에 따라 각양각색의 색깔을 지닌 성벽 부재들이 물결치듯 산 기슭을 타고 내려오는 장관을 보면서 오후 5시10분 38년전 무장 간첩단이 침투했던 통로인 북악산 기슭의 창의문에 도착했다. 답사의 종착점이다. 참가자들은 숱한 민중이 봇짐 멘 채 지나다녔을 창의문 통로 바닥의 닳은 박석들을 밟으면서 답사의 의미를 새삼 되새김하는 모습이었다.

 

이날 답사코스는 홍련사-숙정문-북악산 정상-창의문으로 빠지는 약 3km짜리 코스로 전체 종주에 약 2시간 가량 걸렸다. 문화재청은 24일에도 일반시민과 서울시 직원 270여명을 상대로 시범답사를 추가로 진행할 예정이다. 신청은 문화재청 홈페이지(www.cha.go.kr)로 하면 된다. 한편 북악산은 오는 4월부터 홍련사~촛대바위 구간을 시작으로 단계별 개방이 확대되지만, 완전 개방되는 내년 10월까지는 하루 세차례 입장이 제한되며 사전예약을 마쳐야 한다.

 

 

 

 

 

글·사진 <한겨레>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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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한겨레 2006-03-20 13: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