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씻고 배설하는 단순한 욕실에서 느림과
휴식의 공간으로
마음 느긋하게 만드는 따뜻한 욕탕 안에서 대화 나눠볼까
▣ 김주원 (주)이몽기가 대표.소장 jwkim@imgg.co.kr
집에 대한 욕망도 진화하게 마련이다. 한 개인의 일생에서도 나이가 듦에 따라 필요에 따른 욕구가 변화하겠지만, 사회적으로 보아도 마찬가지란 점은 흥미롭다. 집이란 물리적 공간의 필요, 편리함과 기능성, 감성, 취향과 함께 현재와 경제적 여건, 미래의 투자가치, 요즘은 거주의 자부심(!)까지 많은 조건들이 얽혀 있는 복합 상품이라 한마디로 잘라 말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상품이란 욕망을 반영하는 것이다. 그래서 대한민국 주거의 보편적 상품인 아파트 모델하우스는 주거에 대한 당대의 욕망을 가장 트렌디하게 반영하게 마련이다. 짓기만 하면 팔리던 시대를 지나 상품으로서의 경쟁력이 요구되는 오늘날, 우리 시대 아파트는 어떻게 반응했을까.
욕실은 집에 대한 욕망의 종착점
필자의 주관적 관찰에 따르면, 아파트 모델하우스에서 볼 수 있었던 디자인 고급화는 거실에서 시작해 주방과 수납 공간, 안방을 거쳐 자녀 방에 이르더니 마지막 종착점이 욕실이 되는 형세다. 공적이고 사회적인 공간에서 사적이고 내면적인 공간으로 관심을 넓혀간 것이다.
소득이 1만달러가 넘으면 외식산업이 발달하고, 2만달러가 넘으면 그 전에 밖에서 즐기던 것을 집 안으로 끌어들여 즐기기를 원하게 된다고 한다. 호텔 같은 집을 원하게 된다는 뜻이다.
생각해보면, 예전에 집에서 하던 많은 일들이 사회화되어 집 밖으로 나갔다. 결혼식은 물론 돌잔치, 회갑연도 집 밖에서 하는 것이 상례이고, 고급 식당에서의 식사가 손님에 대한 후한 대접이었고, 목욕탕과 헬스클럽이 우후죽순처럼 생기면서 집에는 욕조를 없애고 샤워부스를 설치하는 것이 한때의 유행이었다. 이것이 현대인의 보편적 생활양식이다.
그러나 이런 일들이 이제 다시 집 안으로 들어오고 있다. 최고의 외교는 집으로 손님을 초대해 함께 식사하는 것이며, 집에서 파티를 열어 사교모임을 갖는 것이 더 이상 낯선 풍경이 아니다. 앞으로 10년을 장담하지 못할 사업 1순위가 영화관이라고 하는데, 그러면 영화관을 대체하는 공간은? 바로 집이다.
집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다시 많아졌고, 머무르는 시간이 늘어남에 따라 집은 점점 안락하고 세련되며 자아를 표현하는 훌륭한 수단으로 진화하는 중이다. 집은 이제 안전하고 재미있고 안락해 편안한 휴식과 즐거운 오락, 삶의 활기를 충전하는 나의 안전한 둥지다. 그 둥지의 가장 깊숙한 곳에 욕실이 있다.
욕실 공간은 덕분에 ‘씻고 배설하는 용무를 보는 곳’에서 거실과 마찬가지로 ‘머물면서 즐기는 곳’이 됐다. 거실 공간이 행위에 초점이 맞춰진 활동적인 공간이라면, 욕실은 휴식과 재충전을 담당하는 또 하나의 거실이다. 이것이 리빙 배스(Living Bath)의 개념이다.
침실과 합체… 방수성 나무패널로 혁신
욕실은 얼른 용무 보고 나오는 곳이라는 생각을 벗어나면, 의외로 우리 욕실 공간의 구태의연한 행태에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왜 이 공간은 고만고만한 넓이에, 고만고만한 타일로 바닥과 벽체를 마감하고 욕조나 샤워부스 하나, 세면대 하나, 변기 하나, 세면대 위에 조명 하나라는 이다지도 전형적인 모습을 띠게 됐단 말인가.
리빙 배스에 대한 아이디어는 몇 가지 측면에서 접근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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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실이 침실에 딸린 부속 공간이라면, 침실과 욕실의 경계를
완화하는 것이다. 최근에 디자인된 호텔에서 이런 경향을 볼 수 있는데, 혼자이거나 혹은 침실을 공유하는 사이에서 더욱 자유로운 공간을 보장하는
것이다. 이것은 욕실 공간에 시각적 확장감과 함께 침실의 ‘리빙’ 기능을 끌어들이는 가장 쉬운 방법이다.
아예 침실과 욕실의 경계를 없애서 하나의 공간으로 디자인한 파격적인 경우도 있는데, ‘왜 안 돼?’라고 생각하면 의외로 받아들이기 쉬워진다. 사진의 공간은 독일의 한 호텔이다. 침대 헤드보드 뒤편에 바로 욕조가 바닥으로 심어져 있으며, 침실과 욕실을 나누는 구분 따위는 없다.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근 채 TV도 보고, 책도 보고, 전화도 하고, 미니바에서 맥주도 한잔 꺼내 마실 수 있다고 상상하면 얼마나 즐거운가.
요즘 발코니 확장에 대한 관심이 높은데, 넓은 평형의 거실 혹은 부부침실에 급배수가 가능한 발코니라면 바닥을 높여 욕조를 설치하는 것도 고려해볼 만하다. 디자인은 물론이고, 욕조만으로도 예술작품이라 할 만큼 멋지다면 금상첨화겠다.
공간적으로 여유 있는 욕실이라면, 가족이 함께 즐기는 목욕 시간은 어떨까. 요즘은 2인용 욕조도 꽤 보편화돼 있는데, 짧은 시간에 일어날 수 있는 가장 친밀한 스킨십 중 하나가 함께 목욕하는 것이다.
목욕문화가 발달한 일본은 어릴 때부터 아버지나 어머니와 함께 나누는 목욕통 속에서의 친밀한 대화가 성장의 중요한 과정이라고 하는데, 육아지침서에도 아이와 함께 목욕하는 것을 적극 권장하는 것을 보면 가족 간의 친밀한 관계 형성을 위한 탁월한 해법인 듯도 하다. 따뜻한 물은 사람을 편안하고 느긋하게 만든다.
언젠가 내 집을 짓게 된다면, 조르다노사의 리빙 배스 제안을 수용하고 싶다. 이 공간은 말 그대로 거실 같은 욕실이다. 이 욕실의 가장 획기적인 면은 물을 쓰는 공간이라는 고정관념을 깨고, 특수 처리돼 방수 성능을 가진 따뜻하고 내추럴한 느낌의 목재 패널을 마감재로 사용해 거실의 느낌을 살렸다는 점이다.
더군다나 이 패널은 액세서리를 자유자재로 떼었다 붙였다 할 수 있어서, 욕실 공간이 필요에 따라 무궁무진하게 변한다는 점이 매력적이다. 책이나 잡지, CD 따위를 어느 벽면에든지 자유롭게 수납할 수 있으며, 와인셀러가 한쪽에 있다면 그대로 와인바가 된다. 물을 쓰는 공간이라는 한계 때문에 타일 이외에는 해결책이 없어 보이던 욕실 공간에 획기적인 감성 제안을 한 셈이다.
기껏해야 침실에 딸린 부속 공간의 지위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욕실이 어느 날 갑자기 주목을 받게 됐다. 시대의 대세인 ‘웰빙’을 몸으로 실천할 수 있는 대표적 공간으로 말이다.
밀란 쿤데라에 동의한다면, 작은 사치를
반신욕이 건강에 좋다는 사실을 불현듯 알게 된 대한민국 국민들은 저마다 욕조용 반신욕 덮개를 구매해, 전국은 반신욕 열풍에 휩싸이게 됐다. 짧게는 15분, 길게는 30분을 욕조 속에 앉아 있는 반신욕의 유행을 ‘건강에 좋기 때문’이라고 단순화하고 싶지는 않다. 다른 건강에 좋은 많은 것들이 반신욕만큼 생활에 근본적인 변화를 일으키지는 않으니까 말이다.
비약일지 모르겠지만, 반신욕은 건강에 좋을 뿐 아니라 삶에 대한 태도를 변화시킨다. 조금 철학적으로 말하자면, 현대사회의 속도에 반발해 생긴 최신의 트렌드 ‘느림’의 미학을 쉽게 체득할 수 있는 생활 속의 습관이다. 반신욕이 그토록 인기를 끄는 이유는 그것이 건강에 좋을 뿐 아니라 느림과 휴식의 실천이기 때문이다.
밀란 쿤데라가 10년도 전에 <느림>이라는 제목의 소설을 발간한 것을 보면 예지력이 넘치는 소설가임이 분명하다. 그가 안타까워한 ‘민요 속 게으른 주인공들, 이 방앗간 저 방앗간을 어슬렁거리며 총총한 별 아래 잠자던 방랑객들, 시골길, 초원, 숲 속의 빈터, 자연과 더불어 사라져버린 그들의 고요한 한가로움’을 현대인들 역시 그리워하는 것이다.
리빙 배스에서 보내는 시간이 무료할 수도 있다. 이런 사람들을 위해 작은 TV나 인터넷, 현대적 문명의 편의들이 리빙 배스의 곳곳에 세련되게 장착될 것이며, 그것이 리빙 배스를 더욱 매력적으로 만들 것이라는 데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리빙 배스의 본질과 효용은 우리가 잃어버린 ‘고요한 한가로움’을 되찾게 해주는 데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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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도를 낮추고 보송보송하게
나의 ‘리빙배스’를 만드는 간단한 팁 몇 가지
1.조도를 낮출 수 있는 조명
욕실에서 밝은 조도가 필요한 것은 면도할 때 정도? 특히 욕조에 몸을 담그고 있는 시간에는 조도가 낮은 것이 휴식에 도움이 된다. 욕실에 조도를 조절할 수 있는 조명을 설치하고, 조절 스위치를 욕실 내부 공간에 두어서 필요에 따라 조도를 조절해보자. 혹은 간접조명을 부분적으로 사용해 필요할 때 전반조명을 끌 수 있도록 하자. 낮은 조도에서 훨씬 릴랙스해질 것이다.
2. 욕실에 액자를 두면 안 되는 법은 없다
욕실에 간단한 선반을 설치하면 갖가지 필요한 소품을 수납할 수 있고, 디스플레이 효과도 노릴 수 있다. 거실에 두는 아기자기한 액자가 욕실에 있으면 왜 안 되는지 곰곰이 생각해보라.
3. 수납장은 벽에만 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대부분 벽에 걸려 있는 욕실 수납장을 가구로 바꿔 생각하자. 욕실 분위기도 살리고 수납량도 늘릴 겸, 바닥에서부터 올라오는 가구 타입의 작고 높은 수납장은 리빙 배스에 제격이다.
4. 길이가 짧고 대신 높은 욕조를 사용하면 공간 활용에 융통성이 생겨
좁은 욕실 공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려면, 길이가 짧고 대신 높이가 높은 욕조의 사용을 권장할 만하다. 남는 공간에는 욕실에 머무는 동안 필요한 각종 물건과 장치들을 설치할 수 있다.
5. 샤워부스를 확실히 분리해 보송보송한 공간으로
욕실이 항상 물이 넘쳐나는 공간이라는 것은 편견이다. 독립형 샤워부스를 설치하고 세면대 높이를 조금 낮춘다면, 바닥에 물을 흘리는 일은 거의 없다. 욕조 역시 몸을 씻는 곳이 아니라 몸을 담그는 곳이라고 생각한다면, 욕실은 보송보송해지고 할 수 있는 일이 더 많아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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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한겨레21 2006-03-21 14:24]![](http://www.xn--910bm01bhpl.com/gnu/pinayarn/pinayarn-pinayarn.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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