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퓨전사극 ‘궁’을 통해 본 또하나의 문화

피나얀 2006. 3. 23. 00:12

 


비단 위에 꽃을 더한다는 말이다. 요즘 뜨고 있는 드라마 ‘궁’이 많은 여성 시청자들을 설레게 하는 ‘배경’이 아닐까. 비록 상상력을 동원한 ‘현대적 공간’이지만 모처럼 우리 왕실문화의 화려하고 고급스러움을 보여줘 눈길을 사로잡고 있다.

 

그동안 우리나라의 실내 장식은 ‘남의 것’ 일색이었다. 클래식 스타일이 유행일 때는 중세 유럽가구가 주류를 이루었고, 동양풍이 유행할 때도 중국풍 가구가, 젠스타일이 유행일 때는 일본풍 문양과 도기, 침구류가 인기를 끌었다. 한국적 앤티크는 반닫이나 나비장 한두개를 장식장 대용으로 들여놓는 정도에 불과했다. 그런데 그런 전통 실내 장식이 드라마 ‘궁’을 통해 바싹 곁으로 다가왔다.

 

우리의 귀족문화는 풍류와 멋이 있었고, 품격이 있었다. 그런데 구체적으로 어떤 멋이 있었을까? 초등학교 때부터 배워 온 한국의 미란 절제의 미, 여백의 미였다. 그런데 ‘궁’에서 볼 수 있는 한국의 미는 화려하고 고급스럽다.

 

한국의 미를 큰 틀에서 보면 절제의 미, 여백의 미뿐만 아니라 한편으로는 고급스러움과 화려함도 담고 있다. 절제의 미, 여백의 미가 선비문화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고급스러움과 화려함은 왕실문화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런데 조선왕조가 외세에 무너지면서 역사의 뒤안길로 밀려나자 그 문화가 퇴색되었던 것이다.

 

결국은 현대화의 물결 속에서 우리 문화의 한 축이 유실되었다고 할 수 있다. 드라마 ‘궁’에서 보여주는 것은 잊혀졌던 우리의 귀족문화, 궁중문화의 한 부분이다. 비록 그것이 현대적으로 변형된 것이라고 해도 우리 옛 문화에 대한 감성을 떠올리기에는 충분하다.

 

인테리어의 발전은 흉내내기에서 비롯된다. ‘나도 저렇게 해봐야지…’ 하는 마음이 장식을 새롭게 바꾸게 한다. 궁중의 실내 장식을 오늘날 아파트 살림살이에 어떻게 적용해 볼까. 역사산책하듯 우리 옛 왕실과 한옥의 실내를 상상 속에서 거닐어보자.

 

양반집은 안채, 사랑채로 여자와 남자의 공간 구분이 엄연하듯이 가구도 안방 가구, 사랑방 가구로 나뉘어 있었다. 안방에는 부녀자들이 사용하는 바느질함이나 궤, 옷을 담는 이층롱이나 삼층장·반닫이, 경대를, 사랑방에는 옷을 담는 의걸이장, 문서를 보관하는 경축장, 책을 보관하는 서장, 소형 책상인 서안과 경상, 사방탁자와 문갑, 벼루를 보관하는 연상을 놓았다.

 

사랑방 가구는 드러나지 않는 아름다움을 격조 높게 생각하여 색채와 장식이 많지 않았다. 안방가구는 금구장식과 채색 및 나전칠기장으로 화려한 멋을 냈다. 궁중 가구는 공간 규모가 양반집보다 크므로 가구의 높이와 크기가 좀더 크고 궁중에서만 사용가능한 문양이나 장식, 색채의 차이 정도가 있을 뿐이었다.

황태자전. 청은 동쪽에 해당하고 만물이 생성하는 봄의 색으로 창조, 생명, 신생을 상징한다. 세자궁이 궁궐의 동쪽에 자리잡은 까닭도 같은 이치다. 영화학도인 황태자의 방은 오방색의 원리를 따라 진취적인 청색과 가장 고귀한 색인 황색을 주로 사용, 이지적인 품격이 묻어난다. 소가구의 아기자기한 배치보다는 큼직한 가구로 황태자의 위엄을 표현했다. 가구는 젊은 황태자의 분위기에 맞게 침대, 소파 등 서양식으로 꾸며졌다.

안방에 놓이는 옷장만해도 직선의 조형미 외에도 이층롱, 일층장, 이층장, 삼층장, 반닫이 등으로 다양했다. 이런 옷장은 좌식 생활과 잘 조화된 알맞은 높이와 아담한 규격 및 면 분할로 나란히 놓았을 때의 비례도 아름답다.

 

가구의 장식문양도 사용하는 사람의 나이와 신분에 따라 달리해 미적인 감각뿐 아니라 행복과 건강을 기원하는 상징적인 요소를 담았다. 국화문양은 귀족적 취향인 고결함을, 나비와 칠보문양은 길함을, 매화문양은 정절을, 모란문양은 부귀를, 고기문양과 연꽃문양은 장수를, 구름문양은 위엄을, 봉황문양은 상서로움을 의미한다. 색은 또 어떠한가. 흑, 백, 황, 적, 청으로 구성된 오방색은 우리나라 음식과 옷, 건축물, 관혼상제 등 생활 곳곳에 사용돼 왔다.

 

우리 문화엔 가구 하나에만도 숨은 아름다움과 상징성이 수십가지다. 용도, 크기, 높이, 장식, 문양, 사용하는 사람의 신분, 색 등에 따라 다양하게 나뉘어진다. 그렇다고 오늘날 식탁 대신 소반을, 화장대 대신 문갑을, 침대대신 보료를 사용할 필요는 없다. 이미 보편화된 서양식 주거문화에 우리 멋을 가미하는 것이 인테리어의 매력이다. 식탁 위 러너를 조각보로, 소파 위 쿠션을 비단 소재로, 액자 대신 부채를 이용한 벽면 장식만 바꾸어도 멋스럽다.

 

황태후전. 문 입구의 대형 모란도는 규모가 크지만 궁중유물전시회에서 본 것을 그대로 재현한 것으로 궁중의 가구나 장식물은 양반집과는 규모의 차이가 컸다. 대궐내에서 결실과 가을을 뜻하는 서쪽에 자리잡는 태후전과 부귀와 번영을 상징하는 모란도의 이치가 알맞다. ?/font>

황태자비전. 벨벳, 자카드, 오간자 등 다양한 서양 패브릭과 장식 커튼과 가구를 사용한 가장 현대적인 공간. 적(赤)은 만물이 무성한 남쪽이며 태양, 불, 피 등과 같이 생성과 창조, 정열과 애정, 적극성을 뜻한다. 새 신부의 사랑스러운 공간임을 나타내기 위해 채도가 강하고 짙은 진홍색을 주로 사용했다.

좀더 넓게 벽지를 선택할 때도 서양꽃보다는 한국 꽃 문양을, 실내 전체 색을 계획할 때도 오방색을 기준으로 하면 현대적인 풍류를 만들어낼 수 있지 않을까. 뒤주나 궤짝 위에 TV를 올려 놓는다거나, 반닫이를 거실 탁자로 사용하거나, 약장을 장식장으로 사용하는 것만이 전통적인 인테리어의 현대적인 변형이 아니다.

 

이제는 가끔씩 잡지에 등장하는 주한외국대사관저의 이색적인(?) 동서양 혼합 인테리어를 흉내내지는 말자. 동양적인 인테리어를 대표하듯 세계를 휩쓴 일본풍 인테리어처럼 우리의 멋이 세계적인 멋으로 사랑받는 것은 집 꾸미기에 관심있는 모두의 몫이다. 대장금을 이을 한류 드라마로 주목받는 퓨전 사극 ‘궁’을 보며 잊혀졌던 한국 문양과 색, 소재로 꾸며진 실내 공간의 아름다움을 찾아보자.

 

 

 

 

〈글 김영남기자 jacks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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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경향신문 2006-03-22 16: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