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나얀™♡【여행】

봄맞이 느림보 꽃길 산행을 하다

피나얀 2006. 4. 1. 00:01

 

▲ 햇살을 향해 고개를 내민 노루귀꽃
ⓒ2006 유근종
지금 남녘에는 봄이 한창 무르익고 있다. 봄만 되면 몸이 근질근질한 것은 고질병(?)이 아닌가 싶다. 안 그래도 봄산을 가고 싶었는데 남해에 사는 지인의 초대로 남해군 남면에 있는 설흘산(해발 481미터)에 가기로 했다.

지난 금요일 일이 늦게 끝나 남해에 도착하자마자 잠을 청하고 아침 일찍 산행을 시작했다. 남해라 그런지 산과 바다에는 온통 봄기운이 완연했다. 바닷바람마저 이제 따뜻한 바람으로 바뀐 지 오래다.

설흘산에는 등산로가 여럿 있지만 그 중 사람들이 가장 적게 다니는 길을 택해서 오르기로 했다. 가장 인기 있는 등산로는 다랭이마을로 유명한 남면 가천마을에서 시작되는 등산로이다.

남해에 있는 산이라면 다들 금산(錦山)을 떠올리지만 남해에는 꽤나 아름다운 산들이 많다. 금산은 학창시절 엠티를 가면 빠지지 않는 코스이기도 했고 나 역시 신록으로 물들 무렵의 금산을 좋아해서 봄이면 잊지 않고 오르는 산이다. 하지만 설흘산은 마음속에만 있다가 이번에 처음 오르는 산이다.

▲ 현호색
ⓒ2006 유근종
설흘산은 누구나 쉽게 오를 수 있는 산이라 쉬엄쉬엄 말 그대로 우보산행(牛步山行)을 했다. 느릿느릿 걸으면 평소 보이지 않던 것을 보게 되니 시간만 허락한다면 꼭 이렇게 산을 오른다.

난 어딘가를 가면 두리번두리번 살피는 습관이 있는데 이게 다 사진을 찍으면서 생긴 버릇이다. 눈을 조금만 크게 뜨면 우리 주위에는 온통 사진을 찍을 소재를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봄산을 오를 때면 이 증상은 조금 심해진다.

▲ 얼레지꽃의 다소곳한 모습
ⓒ2006 유근종
이제 조금씩 흐르는 땀에 걸치고 있던 점퍼도 벗고 산길을 걸었다. 조금 가다보니 길가에 이파리 하나만 달랑 손바닥을 편 것처럼 나와 있어서 속으로 '참 희한한 이파리도 다 있네!'하면서 올랐는데 조금 더 가다보니 그제야 정체를 알 수 있었다.

몇 년 전 진양호 인근 야산에서 본 적이 있는 얼레지였다. 너무 반가운 마음에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서양 고전음악 중 '엘레지'라는 음악을 좋아하는데 좀 엉뚱하긴 하지만 얼레지는 발음까지 비슷해 다른 꽃들보다 더 반가운 존재다.

우리나라 야생화들은 하나같이 정말 예쁘다는 말 밖에는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다. 제 아무리 꽃집의 꽃들이 아름답다한들 우리 야생화에 비할 수 있을까?

▲ 두 가지 색깔의 노루귀
ⓒ2006 유근종
다시 쉬엄쉬엄 오르는 길. 이제는 연분홍빛 노루귀들이 객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 이웃에는 새하얀 노루귀까지 터를 잡고 있었다. 꽃들이 얼마나 많은지 발을 어디다 두어야할지 난감하기도 했다.

집사람과 나는 배낭을 냅다 팽개치고 사진 찍는다고 시간가는 줄도 몰랐다. 지인은 우리를 그저 신기한 듯이 물끄러미 바라보고만 있을 뿐이었다.

몇 년 전 진주반성수목원에서 노루귀를 보긴 했지만 이렇게 군락을 이룬 노루귀는 처음이었다. 그것도 연분홍색과 새하얀 색의 노루귀가 나란히 자라고 있는 곳을 만난 것은 정말 행운이다.

느긋하게 오르는 길이지만 어느새 정상이었다. 정상에는 봉수대가 있는데 진주에 있는 봉수대와는 달리 아주 원시적인 형태였다. 아마 설흘산 봉수대는 남해 금산의 봉수대와 연락을 하는 역할을 하지 않았을까 싶다.

▲ 설흘산 정상에서 바라 본 가천 다랭이마을
ⓒ2006 유근종
봉수대에서 보니 온 사방이 바다다. 발아래에는 가천다랭이 마을이 보이고 그 곳의 마늘밭이며 유채밭이 봄색을 더해가고 있는 풍경이 어렴풋이 보였다.

▲ 정상에서 차 한잔을 마시고
ⓒ2006 유근종
정상에서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챙겨간 따뜻한 차 한 잔을 들이켰다. 정상에서 맛보는 차 한 잔은 여태까지 마셔 본 그 어떤 차와는 비교할 수 없었다. 남해바람과 함께 녹아드는 차의 맛, 느껴보지 않은 사람들은 그 묘한 맛을 알지 못할 것이다.

▲ 샛노란 생강나무꽃
ⓒ2006 유근종
차 한 잔의 여유를 즐기고는 하산 길을 재촉했다. 하산길 역시 꽃길이었다. 특히, 인상적인 것이 생강나무꽃이었는데 남해에 이렇게 많은 생강나무가 있을 줄 몰랐다. 처음 보는 이들은 산수유꽃과 비슷해서 착각하기도 하는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많은 차이가 있다. 생강나무꽃은 그 향기가 강하지는 않지만 가지를 부러뜨리면 생강 냄새가 난다는 것에서 이름이 유래했다.

▲ 춘란도 꽃을 피웠다
ⓒ2006 유근종
정상 부근에는 산자고꽃도 피었더니 조금 내려와서는 춘란(春蘭)도 보였다. 여기 춘란들은 특이하게도 사람들의 손에서 살아남기 위한 방편인지 사람들의 손길이 잘 닿지 않는 곳에 피어있었다. 산의 낮은 쪽에는 진달래들이 사람들을 유혹하고 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온 산을 진달래빛으로 물들 것이다.

▲ 산 아래쪽에는 진달래가 만발했다
ⓒ2006 유근종
산악인들은 산에 오르는 이유를 그냥 산이 거기 있기 때문이라 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저마다 다른 이유가 있을 것이다. 난 산에 오르면 그냥 기분이 좋아진다. 기분 좋게 땀을 흘리고 나면 머릿속의 찌꺼기들까지 빠져나가는 것 같다.

이번 산행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재미나는 산행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남해 금산이 아름답기는 하지만 단지 정상에 올라 조망하는 즐거움만 있다고 생각하는데 설흘산은 온갖 게으름을 피우며 천천히 오를 수 있는 산이라 더할 나위 없이 좋다.

▲ 정상 부근에서 만난 제비꽃
ⓒ2006 유근종
꽃이 만발하면 다시 오자며 아내와 약속하고 둘만 보기에는 너무 아쉬워 다음번에는 '느림보산악회' 친구들과 함께 하기로 했다. 정상에 오르지 않더라도 산속에서 꽃길트레킹을 하고 싶다. 벌써 다시 갈 날이 기다려진다.

덧붙이는 글
* 찾아가는 길

설흘산에 오르는 길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 남면의 가천 다랭이마을에서 시작할 수도 있고, 남면의 홍현마을에서 시작할 수도 있다.

가천마을과 홍현마을로 가는 길은 남해읍에서 상주해수욕장 가는 국도로 가다가 읍을 지나 10여분 가다보면 오른쪽으로 남면 가는 길로 다시 10여분을 가면 홍현마을이 나오고 조금 더 가면 가천마을이 나온다.

남해에는 거의 포화상태에 가까울 정도로 펜션들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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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오마이뉴스 2006-03-31 08: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