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나얀™♡【여행】

봄바람 일으키는 마법의 부채를 아시나요?

피나얀 2006. 4. 2. 19:38

 

ⓒ2006 김민수
자연은
바람이 불면 바람이 부는 대로
비가 오면 비가 오는 대로
가장 자기다운 모습을 피워 낸다.
자연은
신이 자신에게 준 자신의 모습을
부끄러워하지 않기 때문이다.

- <자연이 부끄러워하지 않는 이유>(자작시)


ⓒ2006 김민수
올해 1월말 아니면 늦춰 잡아도 2월초로 기억이 됩니다. 야생화 사이트에는 눈 속에 피어난 올해의 '앉은부채'가 떡 하니 자리를 잡고 있었습니다. 그땐 긴 겨울로 인해 사철 푸른 남녘 땅 제주에서도 세복수초며 변산바람꽃 등을 기다리고 있었던 터라 경기, 강원도 이북의 산지에 봄이 왔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이었습니다.

언 땅을 뚫고 꽃부터 피워내는 앉은부채. 보이지 않는 뿌리의 힘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 것만 같았습니다. 보이지 않는 것들에 대해 감사하고 또 감사해야 할 이유를 보는 것 같았기에 육지에 올라가면 꼭 만나고 싶은 꽃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2006 김민수
이런저런 정보를 얻은 끝에 경기도의 어느 산에 앉은부채가 있음을 알았고, 학창 시절 갔던 곳이기도 해서 찬바람이 제법 차가웠지만 푸른 것이라고는 거의 없는 황량한 산을 올랐습니다.

아주 간혹 보이는 푸른 싹들은 곧 봄이 올 것을 예고하고 있었습니다. 앉은부채는 산지의 응달, 습지에 산다는 정보를 들었으니 계곡을 따라 올라가는 것이 좋을 것 같았지요. 등산로가 아닌 계곡을 따라 올라갔지만 서너 시간을 헤맨 끝에 만나지 못하고 돌아와야만 했습니다. 이것이 첫 번째 그를 만나기 위한 시도였습니다.

그리고 일 주일 후 두 번째 산행, 다양한 등산로 가운데 대학 시절 산행을 할 때 올랐던 곳을 더듬어 올라갔습니다. 그곳 역시도 계곡을 따라 올라갔지만 막 피어날 준비를 하는 몇 가지 들꽃들과 간헐적으로 피어난 제비꽃들을 만나고 돌아오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습니다.

삼고초려라고 세 번째 그를 만나러 갔습니다. 등산로가 아닌 샛길로 올라가면서 이곳이야말로 앉은부채가 있을 만한 곳이라고 내심 기대를 했습니다. 그러나 그곳에서도 그를 만나지 못했지요. 이렇게 삼고초려가 무위로 돌아갔으니 내년을 기약할 수밖에 없을 것 같았습니다.

ⓒ2006 김민수
봄바람이 불어오는 가운데 봄꽃들이 한창 올라오고 이미 어떤 꽃들은 지고 있었습니다. 앉은부채도 그 중 하나였지요. 내년에나 보리라 했던 앉은부채에 불을 지핀 것은 누군가 "이젠 앉은부채도 끝물이네요"하는 이야기였습니다.

이런저런 정보를 수집해서 그가 있는 곳을 알아내어 그를 만나러 가는 날, 날씨도 화창했습니다. 그런데 그곳을 가다보니 생소한 곳이 아닙니다. 도시생활을 접고 제주도로 가기 전 친구와 농사를 짓던 곳과 아주 가까운 곳이었습니다. 그땐 야생화, 들꽃 같은 것에는 관심이 없을 때였지요.

'그런 것이구나. 눈을 뜨고 나니 그 이전 삶의 터전 여기저기에 이렇게 소중한 것들, 내가 보고 싶어하던 것들이 지천이었던 것이구나!'

ⓒ2006 김민수
살이삭은 타원형이고 그 타원형 위에 불쑥불쑥 올라온 것이 꽃입니다. 그것을 조심스레 감싸고 있는 꽃차례는 아기를 감싸고 있는 담요처럼 보이고, 그 안에 작은 살이삭은 마치 철퇴처럼 보입니다.

어떤 분은 "겨울을 깨뜨리는 철퇴"라고도 하십니다. 푸릇푸릇 싱싱한 이파리가 크면 그 기세가 엄청납니다. 그래서 앉은부채라는 이름을 얻었을 것입니다. 아마도 앉은부채에 대한 사전지식이 없었다면 독성이 있는 줄도 모르고 먹었을지도 모를 만큼 먹음직스러웠습니다. 자기를 지키기 위해 독성과 악취를 지니고 있는 꽃이랍니다.

별로 예쁘지도 않은 꽃이라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 작고 못 생긴 꽃은 봄바람을 일으키는 마법의 부채입니다. 그가 피어난 후 푸릇푸릇 부채를 닮은 이파리 피어날 즈음이면 봄꽃들이 여기저기서 피어나거든요.


앉은부채(Symplocarpus renifolius Schott)

 
경기, 강원도 이북으로 산지의 응달에서 자라는 다년초이며 악취가 나며 독성이 있다. 잎보다 꽃이 먼저 피며 열매는 여름에 붉게 익는다.

그가 간직한 악성과 독성 때문에 서양사람들은 이 꽃을 'Skunk Cabbage'라고도 한다. 앉은부채는 천남성과의 식물인데 천남성과의 식물은 독성이 강하므로 조심해야 한다. 천남성의 경우는 열매를 만진 손으로 눈을 비비게 되면 안과를 가야할 정도이며, 재래식화장실에 넣어두면 구더기가 나지 않을 정도로 독성이 강하다.

앉은부채 꽃송이가 피어나면 봄은 온 것이며, 그가 피어나고 한 달 이내에 봄꽃들이 앞을 다퉈 피어난다.

[참고문헌-이유미<한국의 야생화>, 고경식, 전의식 공저<한국의 야생식물>]


덧붙이는 글


기자소개 : 자연과 벗하여 살아가다 자연을 닮은 책 <달팽이는 느리고, 호박은 못생겼다?>, <내게로 다가온 꽃들 1, 2>, <희망 우체통>, <달팽이걸음으로 제주를 보다>등의 책을 썼으며 작은 것, 못생긴 것, 느린 것, 단순한 것, 낮은 것에 대한 관심이 많다.

 

 

 

- ⓒ 2006 오마이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출처-[오마이뉴스 2006-04-02 12: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