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나얀™♡【육아】

이백 원 병아리, 생명이 장난감 될 수 있나

피나얀 2006. 4. 8. 20:22

 

 

유치원에 간 아이를 마중하러 나갔다. 수업이 끝났는지 인도는 초등학생 아이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그런데 여느 날의 풍경과 뭔가 다른 흥분이 길거리에 가득했다. 약간 여유롭고 들뜬 여느 주말과는 다른 분위기에 주위를 둘러보니 짐작될 만한 물건들이 내 눈에 들어왔다.

삼삼오오 짝을 지어 걸어오는 아이들 중 한 명의 손에 노란 비닐봉투가 들려있었다. 그 안에서 들려오는 소리는 ‘삐약 삐약’. 안쓰러울 만치 여리게 들려오는 병아리들의 울음소리였다.

"야!! 너는 몇 마리 샀냐?"
"나는 두 마리!!너는?"
"나는 다섯 마리!!"
"와~~~ 좋겠다!!"

그러고 보니 골목마다 병아리를 자랑하느라 아이들의 입이 쉴 새가 없었다. 아이들은 병아리를 손에 올려 만지기도 하고, 시합을 시키기도 했다. 더 큰 병아리를 갖기 위해 가위바위보를 한 뒤, 바꾸는 아이들도 있었다.

한 아이에게 다가가 병아리를 어디서 샀냐고 물었다.

"학교 앞에서 어떤 아저씨가 팔아요. 한 마리에 이백원이예요, 되게 귀엽죠?"

뽐내듯 대답하는 그 순수함이 병아리만큼이나 안쓰러웠다.

어릴 적 엄마를 따라 육지에 나갔던 동생이 병아리 두 마리를 사가지고 왔다. 동생은 슈퍼마켓에서 커다란 상자를 얻어와 병아리 집을 만들고, 종지기에 물을 담아 그 안에 넣어주었다.

‘물 한 모금 마시고, 하늘 한 번 쳐다보고…’

한걸음 내 디딜 때마다 그 작은 모가지를 주억거리는 모습이 얼마나 귀여웠는지 모른다. 밤에는 추울까봐 엄마가 귀한 손님 올 때만 내 주시던 방석을 몰래 꺼내 깔아주기도 했다. 하루 종일 ‘삐약’거리면서 머루알 같은 눈으로 내게 눈을 맞추던 병아리. 잠자는 시간이 아까울 만큼 내게 많은 기쁨과 생명의 신기함을 가르쳐주었다.

그런 병아리에게 나는 내 막내 동생 자리를 서슴없이 내어주었다. 그런데 병아리가 막내 동생이 된지 일주일 되던 날. 학교를 끝내고 집에 돌아오는데 마을 들머리에서부터 들리던 병아리 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이었다. 그리고 집에 들어선 나는 축 늘어진 병아리를 보았다. 왜 죽었는지도 모른 채, 나는 병아리를 하얀 손수건에 싸서 뒷산에 묻어주었다.

그리고 병아리를 묻어준 그때로부터 어느새 십수 년 세월이 흘렀다. 그런데도 나는 축 처진 채 눈을 감지도 못한 병아리의 모습을 여전히 잊지 못하고 있다. 병아리가 죽고난 뒤 애완동물을 길러본 적이 없고, 병아리를 귀엽다고 느낀 적도 없다.

그리고 움직이는 모든 것에 호기심을 갖는 아이들에게 단 한번도 움직이는 생명체를 자연학습이라는 이유로, 생태관찰이라는 명목으로 사준 적이 없다. 그것들은 장난감이 아니기에…. 아니 그저 장난감 삼아 그것들을 대하기에는 장난감이 죽거나 사라진 뒤 아이들이 받을 충격을 막아줄 힘이 나에겐 없기 때문이다.

골목 안 아이들은 이제 병아리를 날리고 있다. 채 날개를 퍼덕거려보지도 못한 채 땅으로 떨어지는 병아리를 아이들은 두 번이고, 세 번이고 하늘로 던져 올렸다. 애써 고개를 돌려야했다.

아이가 유치원에서 돌아왔다. 그리고 형들이 갖고 노는 병아리에 호기심을 보인다.

"엄마!! 나도 저 병아리 갖고 놀고 싶은데…."

‘욱’하는 마음에 아이를 쥐어박을 뻔 했다. 아이를 집으로 데려와 병아리가 장난감이 될 수 없는 이유를 설명하면서 어린 시절 추억을 끄집어냈다.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했다. 병아리야.'

아이들의 코 묻은 돈 몇 푼을 뺏기 위해 아이들 가슴에 생채기가 생기는 걸 주저하지 않는 어른들. 나와 같이 또 하나의 부모인 그들이 봄날을 핑계 삼아 아이들의 가슴을 더 이상 얼룩지게 하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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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오마이뉴스 2006-04-08 14: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