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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없이 흘러가는
일상의 컨베이어벨트 위에서
‘나’를 잃어버리고 살지는 않는지요.
사람과 일에 치여 짜증이 나고 지칠 때면
자신만의 공간에 들어가 향을 피우고
눈을 감아 보세요. 하얗게 타들어 가는 향연을 바라보면서
그 내음을 크게 들이마셔 보세요.
눈 감고 향기를 맛보고, 듣고, 그리고 느껴 보세요.
오감으로 냄새를 느끼게 될 때, 작은 세상 속에 갇혀 찾지 못했던
넓은 세상을 경험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곳이 바로, 우리의 자연입니다.
그 자연의 곁에 서게 될 때 당신은 스스로 향기가 됩니다.
한민족은 향기를 사랑하는 민족이었습니다. 형형색색의 유리병에 담긴 서양 향수처럼 톡 쏘는 자극적인 맛은 없지만, 우리의 전통 향은 은은하게 전해지는 향기를 자랑합니다. 향나무 문지방이 문을 여닫을 때마다 그윽한 향내를 내고, 활짝 열어놓은 창문으로 산들바람이 불어오면 향을 머금은 발이 움직이며 방 안을 향기로 가득 채웠습니다.
어디 그뿐인가요. 밥상 위의 갖가지 나물에는 향이 없는 것이 없을 정도입니다. 각종 나물의 천연 향이 사라진 비빔밥에 인공 조미료로 그 맛을 대신하고 있는 현대인에게는 빠르고 편리한 것 대신 한 줄기 자연의 빛이 필요합니다.
자신을 돋보이게 하기 위한 서양의 향은 지극히 개인적이지만, 열어놓은 창문처럼 다같이 나눌 수 있는 향, 그것이 우리의 향입니다. 빽빽한 빌딩 숲 속에서 우리의 조상이 즐겼던 그 운치를 가져올 수 없다면, 인위적 화학물을 첨가하지 않은 자연 내음을 맡아보고 싶다면 향을 피워 보세요. 종교의식이 아닙니다. 전통 향을 사찰이나 분향소 혹은 제사에서만 피우는 것이라는 선입견은 버리셔도 좋습니다.
선향(線香), 환향(丸香), 권향(卷香), 분향(粉香), 편향(片香), 각향(角香)…. 다양한 형태만큼이나 전통 향은 여러 가지 자연의 향을 담고 있습니다. 전통 향은 꽃과 나무 혹은 동물의 분비물에서 추출해 만듭니다. ‘향의 제왕’이라 불리는 침향은 팥꽃나무과에 속하는 침향나무의 뿌리 또는 목재 부분에서 수액을 채취하여 그늘에 말린 것입니다. 침향과 함께 잘 알려진 전통 향 중 하나인 사향은 천연기념물로 보호되는 사향노루의 생식기 근처에 있는 향낭입니다.
국화과에 속하는 목향의 뿌리를 말린 목향, 옻나무과에 속하는 유향나무의 진액을 말린 유향, 흔히 방아라고 하는 배초향을 말린 곽향 등도 대표적인 전통 향으로 꼽힙니다. 이 외에도 그 향이 백리까지 간다는 백리향과 약재로도 쓰이는 계수나무의 두꺼운 껍질로 만든 육계 등 모두 자연의 모습 그대로 만날 수 있습니다. 평소 접했던 향을 선호한다면 솔잎 향이나 녹차 향 등도 익숙하게 만날 수 있는 향입니다. 깊은 산속 소나무가 우거진 곳에서 깊은숨을 들이마시는 듯한 기쁨을 누릴 수 있을 것입니다.
전통 향은 달콤하게 유혹하지 않습니다. 맵고 쓰고 차고 뜨겁습니다. 자연이 우리에게 무엇을 해준다는 효능의 측면은 이기적인 발상일지도 모릅니다만, 과거 우리 조상이 향료들을 민간요법으로도 썼던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전통 향은 향기 이상의 향기를 품고 있습니다.
향을 태우는 다양한 향로는 그 신비감을 더해줍니다. 열쇠고리처럼 들고 다닐 수 있는 작은 향로, 백자·청동·옥 향로 등 재질과 모양과 형태가 실로 다양합니다. 비슷한 용기에 담겨 분사되는 서양의 향수와는 다른 멋스러움이 있습니다. 책상 위에 놓은 앙증맞은 향로에 은은한 향을 피우고 그 위로 아스라이 피어오르는 연기를 바라보고 있자면 풍류를 즐기던 선조의 여유가 부럽지 않습니다. 운치 있지 않습니까?
‘문향(聞香)’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머릿속을 비우고 숨을 고르면서 들숨과 날숨 사이에서 문득 향기를 듣는 경지를 비유적으로 표현하는 단어일 겁니다. 아무리 바쁜 일상이라도 가끔 한 번쯤은 향을 피우고 사색적이고 고요한 성찰의 분위기를 누리면서 자신과 세상을 돌아보라는 옛 선조의 지혜로운 가르침이 배어든 표현이 아닐까요? 누렇게 찌든 삶의 기름기를 거둬줄 향긋한 전통 향과의 만남, 진한 서양 커피 향과 인위적인 향수보다 훨씬 풍요로운 하루를 만들어 줄 것입니다.
글 정진수, 사진 이종덕, 그래픽 김수진 기자 yamyam1980@segye.com
〈장소 협찬:삼청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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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세계일보 2006-04-14 01:24]![](http://www.xn--910bm01bhpl.com/gnu/pinayarn/pinayarn-pinayarn.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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