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나얀™♡【여행】

집앞 길 따라 끝까지 한번 가볼까?

피나얀 2006. 4. 25. 21:31

 


차에 텐트를 싣고 3번국도 남쪽으로 달려 마라도까지 간 캠핑여행… 어디로든 떠나기 좋은 계절, 문을 열면 당신 앞에도 길이 열린다

 

현관문을 열면 길이 시작된다. 길을 나서면서 여행은 시작된다. 그리고 다시 그 문 안으로 돌아올 때 비로소 여행이 완성된다. 돌아오지 못한다면 그것은 사고일 뿐이다. 젊은 시절 푸모리 남릉과 아마다블람을 동계 초등정하는 등 왕성한 등반을 펼쳤던 남선우씨는 종종 산악인에게 필요한 진정한 용기는 “산에서 내려와 다시 가정과 직장으로 돌아올 수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길 자체가 목적이 되는 여행

 

결국 여행이란 열고 나간 문과 닫고 들어온 문 사이의 시간과 길의 사연이다. 그런데 홍수처럼 넘쳐나는 여행 서적들만 봐도 길 자체가 여행자의 관심사는 아닌 것 같다.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처럼, 모두들 ‘어디’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다. 여행을 떠나려는 사람들 역시 목적지까지 어떻게 도달할 것인지는 부수적인 문제로 치부하기 십상이다.

 

여행자에게조차 길은 그렇게 수단이고 도구일 뿐이다. 물론 길이 목적인 여행도 있다. 영남대로나 춘향길 같은 우리 옛길이나 야곱이 예수의 복음을 전하기 위해 예루살렘부터 걸어갔다는 산티아고로 가는 길처럼 역사가 된 길들을 찾아 떠나는 차별화된 여행기들도 요사이 더러 눈에 띈다. 그런 경우조차도 주테마인 길에 도달하기까지 이름 없는 길들은 수단이 되기는 마찬가지다. 심지어 세계에서 가장 높은 길에 도전하는 산악인들조차 에베레스트를 오르기 위해 해발 2800여m에 있는 루클라까지 비행기를 타고 가는 게 일반화돼 있다.

 

여행이 꼭 어딘가를 찾아가 그곳에서 시작돼야 할까. 길 자체가 여행의 목적인 여행은 없을까. 태백 금대봉 검룡소의 물줄기가 골지천을 따라 흐르다 오대천을 만나고 남한강에 뒤섞여 한강에서 세를 불려 황해로, 다시 태평양으로… 그렇게 세계의 물과 만나듯, 집 앞에 닿아 있는 고샅길은 지구 어디로든 이어지는 모든 여행의 출발점이다.

 

지난 여름 한 달간 휴직계를 내고 조금 긴 여행을 했다. 더 늦기 전에 어린 딸들과 함께 길을 떠나고 싶었기 때문이다. 남들처럼 집을 팔아 세계일주를 떠난다거나 아프리카, 히말라야의 오지를 찾아가는 그런 거창한 여행은 아니었다. 그저 소박하게 우리 집 앞에서 이어진 길을 따라 끝까지 가보자는 것이었다.

 

우리 집은 교통방송에 자주 등장하는 3번국도 상습정체 구간의 하나인 경기도 광주 곤지암 근처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두 딸을 꼬드겨 3번국도 끝까지 가보자고 제안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다시 우리나라 남쪽 끝 마라도까지. 단, ‘차에다 텐트를 싣고 간다. 하루에 야영지에서 이웃 도시까지만 가고 나머지 시간에는 텐트를 치고 논다’는 계획을 제시했다. 길이 여행의 목적인 만큼 야영이야말로 ‘길 위의 여행’의 핵심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3번국도 끝에서 마라도까지 길을 연장한 것은 딸들을 설득하기 위한 일종의 ‘미끼’였다.

 


3번국도 끝엔 미조항 쪽빛 바다가…

 

3번국도는 나의 일상이었다. 출퇴근을 위해 매일 오가야 했지만 한 번도 그 끝이 어딜까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우연히 2년 전 남해 금산을 가던 길 미조항 근처에서 ‘국도3호선 시점’이라고 쓰인 표지판을 만난 것이다. 순간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이 먼 남쪽 바다 끝에서부터 뻗은 길이 우리 집까지 이어져 있었구나! 모든 길이 이렇게 이어져 있는데 나는 그 한 토막에만 매달려 아옹다옹 살고 있었구나 생각하니 서글프기까지 했다. 아무튼 그때부터 3번국도 끝에는 한국의 나폴리라 불리는 남해의 미조항 쪽빛 바다가 있다고 생각하니 남모르는 비밀을 간직한 것 같았다. 어쩐지 내 집 앞마당까지 푸른 바다가 출렁 밀려들어올 것도 같았다. 그게 여행의 발단이었다.

 

하지만 주변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직장까지 쉬고 떠나겠다는 사람의 계획이 너무 소박해 보였나 보다. 남편은 동해안을 따라 이어지는 ‘7번국도’는 도로 이름을 딴 여행 책자가 나올 만큼 유명하지만 ‘3번국도 여행’이란 너무 뜬금없다고 했다. ‘내륙을 관통하는 3번국도변에 뭐 볼 게 있냐’는 식이었다. “글쎄, 남들이 안 가는 데니까 오히려 남다른 게 있을지도 모르지.” 이렇게 읊조리며 짐을 꾸렸다.

 

그러나 출발까지의 과정은 녹록지 않았다. 떠나기 전날 밤에는 북상하는 태풍이 폭우를 쏟아붓기까지 했다. 괜한 짓을 시작했다는 후회가 밀려왔다. 딸들만 데리고 여자 셋이서 야영장을 찾아다닐 일을 떠올리니 심란했다.

 

우여곡절 끝에 시작된 여행은 이천~장호원~충주~괴산~문경~상주~거창~진주~사천~남해까지 이어졌다. 3번국도는 이화령에서 백두대간을 관통하고 남하해 경남 사천에서 연륙교를 타고 남쪽 바다 미조항까지 길을 잇는다. 그러나 그 길은 끝이 아니라 또 다른 길들과 이어져 있었다. 우리도 남해에서부터 남해안을 훑어 전라남도 고흥까지 갔다.

 

그리고 녹동항에서 육지의 길을 버리고 차와 함께 제주도 가는 배에 올라타 바다를 건넜다. 남제주군 모슬포항에서는 차마저 두고 마라도까지 텐트만 매고 갔다. 비행기를 타면 마라도행 뱃길을 합쳐도 한나절이면 갈 수 있는 거리를 근 보름에 걸쳐서 간 것이다.

 

일부러 돌아간 그 먼 길에서 나는 무수한 길들을 만났다. 옛사람들이 백두대간을 넘던 문경새재 옛길도 걸었다. 그 곁에서 숨 가쁘게 이화령 고개를 넘던 3번국도가 빠르게 시속 80km의 4차선 도로로 곧게 펴져 있었다. 오로지 빠른 속도가 목적인 직선의 도로는 산을 뚫고 허공에 다리를 놓아 곧장 나아간다. 자연과 조응한 곡선의 길이 아니라 거두절미하고 목적지를 향해 직진하는 폭력적인 길, 길손의 필요가 아니라 길을 공급하는 사람들의 이익을 실현한다고밖에는 여겨지지 않던 길들….

 

전에는 눈에 보이지 않던 길도 보이기 시작했다. 사춘기 문턱에 들어선 큰딸이 겪게 될 질풍노도의 길, 본래 한 몸이었던 우리가 자궁 문을 열고 나온 뒤로 점점 멀어져온 그 길.

 

때로는 딸을 부둥켜안고 ‘신파’연출도

 

출장을 가도 여관보다는 산에서 텐트 없이 비박을 하는 일이 익숙했지만 그래도 혼자 딸들만 데리고 야영을 한다는 게 쉽지 않았다. 폭우가 쏟아지던 지리산 대원사 계곡 앞 대포 숲에서는 행여 텐트가 떠내려가지 않을까 밤새 뜬눈으로 새웠다. 순천에서 고흥까지는 마땅한 캠프 사이트를 찾지 못해 밤이 깊도록 불빛 하나 없는 낯선 시골 길들을 초조하게 달려야 했다. 캠핑장의 가족들은 남편이 빠진 우리를 무슨 기구한 사연이라도 있는 모녀처럼 쳐다보았다.

 

힘든 만큼 서로에게 많이 의지했지만 그만큼 충돌도 잦았다. 결국 뙤약볕이 쏟아지는 문경새재 옛길과, 비 오는 섬진강변 둑길에서, 노을 지는 마라도 해안 절벽 길 위에서… 때로는 눈물까지 흘리며 부둥켜안고 ‘신파 영화’ 같은 장면도 찍어야 했다.

 


집으로 돌아온 뒤 아이들은 “다시는 여행 안 갈 거야. 캠핑은 싫어!” 이렇게 투덜거렸고, 나는 “다음엔 3번국도 북쪽 끝까지 가보자”고 했다. 3번국도는 경상남도 남해군 미조면에서 평안북도 초산군 초산면까지 이어진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불쑥불쑥 그 여름의 여행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오히려 아이들이다. 나는 무작정 떠난다고 현실의 문제들이 해결되지 않는다고 조용히 가슴을 쓸어내리는 편이라면, 아이들은 길에서 용기를 얻은 듯했다.

 

새로운 도로 표지판만 보아도 “이 길로 가면 어디가 나올까?” 하고 묻는다. 나는 아이들에게 길을 보여준 것으로 만족한다. 문을 열면 일상의 길은 얼마든지 새로운 세상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힘들게 확인시켜준 셈이다. 그 다음부터는 딸들의 몫이다.

 

올해부터는 아이들 학교마저 월 2회 주 5일 수업을 시작했다. 학부모들에겐 이제 여행이 숙제처럼 되었다. 해외여행이 일반화된 뒤 주변에는 생활을 다음 여행을 위한 경비와 체력 보충의 장으로 여기는 듯한 여행 중독자들도 많아졌다. 일상의 모든 길이 그대로 여행이 될 수 있는 고수가 아닌 이상, 새로운 눈과 마음을 얻기 위해 우리는 어디든 떠난다.

 

카드회사 광고의 부추김대로 당신이 열심히 일했든 그렇지 못했든 간에 길은 그 위에 서는 것 자체로 많은 선물을 안겨준다. 다만 여행의 목적을 ‘어디’로만 한정하면 자기가 처한 현실이 답답할 따름이다. 그러나 ‘어떻게’에 초점을 맞춘다면 얼마든지 창조적이고 즐거운 경험을 할 수 있다. 당장 내 집 앞에 있는 길이 어디로 뻗어가는지 지도책을 펼쳐보자. 그 길을 걸어서 갈 수도 있고, 자전거를 타고 갈 수도 있다. 매일 차를 타고 다니는 길을 걸어보는 것만으로도 새로운 여행이 된다. 물론 속도가 느릴수록 풍경은 깊어진다.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길을 찾는다

 

등산은 곧잘 인생에 비유되는 여행이다. 산으로 가는 여행은 길 자체가 목적이다. 흔히 ‘피크헌팅’(peak hunting)이라 부르는 과거의 등산은 오로지 정상을 목적으로 가장 쉽고 빠른 최단거리를 택해서 올라가는 것이었다. 그러나 등정이 더 이상 불가능한 일이 아니게 되면서 어려운 길을 택하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일명 ‘머메리즘’(mummerism)의 길을 택하는 사람들은 같은 산이라도 겨울에, 완만한 능선보다는 가파른 벽으로, 혼자서 또는 산소통 없이…. 이처럼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어려운 길을 찾으려고 한다. 그러면 길은 더 이상 산길이 아니라 저마다가 추구하는 삶의 경로가 된다.

 

에덴 이룩(Erden Eruc)이란 미국인은 2004년, 6개 대륙 최고봉을 자기 집에서 자전거 페달을 밟고 보트의 노를 저어 가는 것 외에는 모두 걸어서 오르겠다며 아콩카구아로 떠났다. 2003년 이미 시애틀의 집에서 알래스카까지 자전거를 타고 간 다음 북아메리카 최고봉인 매킨리산의 베이스캠프까지 걸어가 등반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떠날 때와 똑같은 방법으로.

 

지구가 평평하다고 생각해 길이 끝나는 곳엔 천길 낭떠러지가 있다고 믿었던 시절, 그 두려움을 이기고 뚜벅뚜벅 걸어갔던 고대의 선지자만큼, 그의 꿈이 원대해 보였다.

문을 열면 당신 앞에도 길이 있다. 그리고 어디로든 떠나기 좋은 계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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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한겨레21 2006-04-25 08: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