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나얀™♡【여행】

쉿! 행여 수행에 방해될까 움트던 새싹도 숨을 죽이고…

피나얀 2006. 4. 28. 19:51

 

 


한 해에 단 하루만 일반인에게 산문을 여는 봉암사가 있고, 도예가들의 진솔한 삶을 엿볼 수 있다. 찻사발 축제에 흙길을 잘 다져놓은 새재길, 철로자전거와 석탄박물관, 온천 등 즐길 거리도 넉넉하다. 신록의 5월, 문경으로 향하는 여행길이 즐거운 이유다.

 

# 석탄일에만 개방하는 봉암사

 

문경의 자랑거리이기도 한 봉암사는 1년 중 석탄일(5월5일) 단 하루만 일반인의 발길을 허락한다. 1982년 6월 조계종에서 봉암사를 특별 수행처로 정하고 사찰은 물론 인근 희양산 일대를 성역화했기 때문이다. 봉암사 주지 함현 스님은 “전국에서 단 한 곳만이라도 수행에 전념할 수 있는 도량을 만들기 위한 것이니 이해해 달라”고 했다. 현재 대만에서 온 스님을 포함해 30여명의 스님이 정진하고 있다.

 

운 좋게 봉암사에 발을 들여놔 면면을 살며시 들여다봤다. 봉암사삼층석탑, 지증대사적조탑 등 5점의 보물과 백운대계곡 등 알려지지 않은 볼거리가 많다. 신라시대 석탑인 삼층석탑은 단층 기단 위에 3층의 탑신부와 머리장식으로 이루어져 통일신라시대의 다른 석탑과 차이가 있다. 현재는 보물로 지정돼 있으나 오래전엔 국보였던 탑으로, 함현 스님은 일찍이 “국보여야 할 문화재”라고 말했다.

 

20년 넘게 등산객의 발길을 허락지 않은 4월의 희양산은 희다. 전날 새벽부터 내린 눈 탓이다. 4월 말에 눈이라니…. 경내에 핀 개나리 진달래 벚꽃 철쭉 등 봄꽃들과 막 새싹을 틔우려던 이름 모를 식물들이 잔뜩 움츠렸다. 꽃이 피고 싹이 움트는 소리마저도 정진에 방해가 된 걸까.

 

백운대에 이르는 길 내내 눈 녹은 물이 흘러내리는 소리에 귀는 물론 마음까지 씻기는 듯하다. ‘아마 이런 환경에서 지낸다면 큰 뜻이 없더라도 깨달음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너른 바위로 흘러내리는 백운대의 물빛과 물소리는 한없이 맑다. 마애불이 내려다보고 있는 백운대에서는 28일 열릴 선다공양 준비에 한창이다. 백운대에서 내려오는 길, 성철과 향곡 등 큰스님들의 수행처로 잘 알려진 봉암사가 20년 넘게 간직해 가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054)571-9088

 

# 도요에 들러 차 한 잔 얻어 마시는 여유

 

문경에는 전통 망댕이가마로 도자기를 굽는 도요만 22곳이나 된다. 망댕이가마는 둥글둥글한 가마 대여섯 개가 마치 능선처럼 이어져 첫 칸에서 마지막 칸까지 열이 전달되도록 고안된 전통 가마다. 우리나라 도예명장 6명 가운데 중요무형문화재인 김정옥(영남요), 일본에서 더 유명한 천한봉(문경요), 이학천(묵심도요)씨 등 3명이 흙에 혼을 불어넣고 있다.

 

충주 미륵리와 문경 관음리를 잇는, 우리나라 최초로 뚫린 고갯길이라는 하늘재에 들렀다가 그곳에 위치한 포암요를 불쑥 찾았다. 포암요에 몸담고 있는 젊은 도예가 이동규(33)씨는 어릴 때부터 작은아버지 이정환(주흘요·53)씨가 흙 빚는 모습을 보며 자랐다. 그다지 큰 거부감 없이 자연스레 도요 생활을 접한 이씨는 1995년부터 작은아버지한테 도예 수업을 받다 4년 전 포암요를 열었다. 30여년째 찻사발(차완)에 혼을 불어 넣고 있는 이정환씨의 작품은 전문가들 사이에 명품으로 정평이 나 있다. 문경 찻사발의 자존심이다.

 

문경에는 이처럼 가족이나 친지가 대대로 도자기를 빚는 도요가 많다. 조선요를 운영하는 김영식씨와 관음요의 김선식씨는 7대째 도예가의 길을 걷고 있는 김정옥씨의 조카들이다. 김정옥씨의 아들 역시 도예가의 길을 걷고 있다. 오정택(월봉요)씨와 오순택(현암요)씨는 형제고, 천한봉씨의 딸 천경희씨가 아버지의 뒤를 잇고 있다. 이 밖에 대성사 주지 스님이 총괄하는 금우요에서는 일연 스님이 도예가의 길을 걷고 있다.

 

 

◇봉암사 3층석탑, 가마불을 지피는 도공, 찻사발을 빚고있는 이동규씨. (사진 위부터)

흙을 빚고 도자기를 구워내는 기술이 고스란히 전수되고 있는 것은 당연한 일. 문경 전통 도요지에서 젊은 세대에 속하는 이동규씨는 “도예가의 꿈을 품고 도요를 찾는 젊은이들이 많은데 대개 한두 달을 견디지 못하고 떠난다”며 “새벽에 일어나 흙을 준비하고 빚고 구워내는 과정이 쉽지만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4∼5칸 정도의 망댕이가마에서 찻사발을 굽는 데 대략 12시간이 걸리는데, 장작만 3∼4톤이 든다고. 장작과 흙을 마련하고, 불을 준비하는 과정 등 잔손이 많이 가는 일이 도요 일이라는 설명이다.

 

차 한 잔의 여유와 젊은 도예가의 진솔한 얘기가 발길을 붙잡아 이야기는 반 시간을 훌쩍 넘었고, 도요를 떠날 때에는 여유롭고 멋있어 보이기만 했던 도예가의 삶이 달라보였다. 그는 “문경의 어느 도요를 들르든 큰 방해가 안 된다면 차 한 잔 얻어마실 수 있을 것”이라며 “물론 마음에 드는 작품이 있으면 그 자리에서 좀 팔아 달라”고 밉지 않은 너스레도 떨었다.

 

문경에서는 4월 29일부터 5월 7일까지 ‘한국 전통 찻사발 축제’가 열린다. 김정옥씨와 천한봉씨를 비롯해 우리나라에서 내로라하는 전통 도자기 작가들의 명품전이 진행된다. 또 한국 중국 일본 대만 미국 캐나다 등 세계의 찻사발을 한곳에 모아 전시한다.

 

세계 가마모형 전시, 사진으로 보는 문경의 도자 100년사 등 볼거리도 다양하다. 이 밖에 둘러볼 곳으로는 문경새재길, 문경온천(054-571-2002), 문경철로자전거(054-550-6478) 등이 있다. 문경시청 문화관광과 (054)550-6394

 

 

 

 

 

 

 

 

 

 

 

 

 

문경=글·사진 정재영 기자 sisleyj@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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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세계일보 2006-04-27 2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