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나얀™♡【건강】

디지털혹사증후군 ‘애써 모른 척’

피나얀 2006. 4. 28. 20:34

 

 


MP3 ‘끼고’사는 청소년들 청력장애 위험성… 제조업체·정부 무관심·무대책 일관

 

한영철씨(56·무직)는 며칠 전 지하철에서 겪은 일만 생각하면 울화가 치밀어 오른다. 지하철에서 옆자리에 앉았던 20대 초반의 한 젊은 청년으로부터 당한 수모 때문이다.

 

그 청년은 헤드폰으로 MP3플레이어(이하 MP3)를 듣고 있었는데 밖으로 흘러나온 소리가 신경이 적잖게 쓰였다. “소리가 크니 음량을 좀 줄여달라”는 한씨의 정중한 부탁에 이 청년은 “당신이 뭔데 참견이야”라며 반발로 화답한 것. 화가 치밀어 올라 몸싸움으로까지 번졌지만 다행이 주변 승객들의 만류로 사건화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한씨는 그날 일만 생각하면 지금도 분이 풀리지 않는다고 하소연했다.

 

“얼마나 기막히는 일입니까. 아들뻘 되는 젊은 사람에게 공중도덕 좀 지켜달라는 주문이 욕설과 주먹으로 되돌아오는 현실이…. 세상이 변했다고 하지만 정도가 심한 것 아닙니까.”

그날 있었던 일은 창피해서 주변 사람들한테 얘기도 못하고 속앓이만 했다는 한씨는 지금도 MP3만 보면 가슴이 떨리고 한숨만 나온다고 토로했다. 한씨는 그 일이 있은 후 두 딸의 강력한 반발을 무릅쓰고 MP3를 집안에서 모두 퇴출시켰다.

 

눈과 귀 신체특정기관 피로 누적

 

전문가들은 갈수록 개인주의가 팽배해지고, 여기에다 디지털 기기가 넘쳐나면서 생긴 하나의 후유증이라고 진단한다. 지하철에서 한씨가 겪은 사건도 결국 이런 경향에서 빚어진 사례라는 것이다.

 

최근 문명의 이기인 MP3를 비롯해 PMP(휴대형멀티미디어플레이어), PSP(플레이스테이션포터블) 등 디지털 첨단기기가 쏟아져 나오면서 이로 인한 폐해도 적지 않다. 낯선 이들과의 엉뚱한 시비나 싸움은 물론 눈과 귀 등 특정 신체기관만 집중적으로 이용하게 됨에 따라 피로가 누적되는 이른바 ‘디지털 혹사 증후군’이 열병처럼 번지고 있는 것이다.

 

ㄱ대학교 경영학과 3학년생인 이상구씨(22)는 최근 PMP로 인한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 그동안 이씨는 영화 등을 PMP를 통해 등·하교뿐만 아니라, 쉬는 시간에도 시청했다. 밤에도 불을 끈 채 PMP로 영화를 보며 잠들다 보니 아침에 눈곱이 많이 끼었고 눈도 충혈돼 병원을 찾기에 이르렀다. 이씨는 대표적인 디지털 혹사 증후군환자이다. 이화여대병원 전루민 박사(안과)는 “흔들리는 차 안에서 액정화면을 볼 경우 눈 피로감은 더 심해진다”며 “잦은 눈 혹사는 시력이 떨어지는 굴절 이상으로 발전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작은 화면과 충격적인 음향으로 신체에 이상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시력장애는 청력장애에 비하면 문제도 아니라는 지적도 있다. 전문가들은 MP3 등 지속적인 자극에 따른 ‘난청’은 보청기를 착용하는 등 치료수단도 있지만 영원히 원상회복이 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여기에다 성격까지 괴팍하게 만드는 등 심각한 후유증을 낳는다고 우려했다.

 

한양대부속병원 조석현 교수(이비인후과)는 “최근 디지털 기기가 범람하면서 적잖은 부작용이 속속 나타난다”면서 “실제로 높은 음량의 소리를 오랫동안 듣게 되면 자신의 청력손실은 물론 성격도 난폭하게 변한다”고 말했다. 그는 “난청 등을 오랫동안 방치할 경우 사소한 일에도 예민하게 반응하는 등 폭력적인 사람으로 변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세정난청연구소 박해정 소장은 “디지털 기기로 인한 청력장애는 당사자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에게도 고통으로 작용한다”면서 “청력이 약해 조직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는 경우가 우리 주변에 적지 않다”고 설명했다. 심할 경우 사회적으로 고립될 수 있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청력 손실은 육체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피해로까지 이어지고 사회적 비용으로 따지면 천문학적인 금액으로 환산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무엇보다 큰 문제는 이런 폐해에 대해 소비자는 물론 제조업체와 정부 등이 무관심하다는 점이다. 특별하게 나타나는 자각 증상이 당장 없다는 이유로 방치하고 있다. 결국에는 돌이킬 수 없는 상황에까지 이른다는 것이다. 더욱이 MP3 등 디지털 첨단기기는 타인에게 피해를 줄 뿐만 아니라 사용자에게도 활용방법에 따라 치명적인 피해를 준다는 사실이다.

 

청소년 청력 나빠지면 회복 어려워

 

장기간 헤드폰·이어폰을 끼고 음악을 들을 경우 청력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지적은 오래 전부터 국내외 전문가들로부터 끊임없이 제기돼왔다. 최근 ASHA(미국말언어청취협회)의 발표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ASHA는 지난 3월 14일(현지시간) 미국 내셔널프레스빌딩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성인과 고교생을 대상으로 휴대용 음향기 사용 실태를 조사한 결과, 미 고교생의 절반 이상이 청력 장애 증상을 보인다고 발표했다. ASHA는 MP3 등 휴대용 음향기를 너무 크고, 오래 듣는 게 그 원인일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들은 TV나 라디오 볼륨을 자꾸 올리고(고교생 28%, 성인 26%), 대화도중 무슨 말을 했는지 자꾸 되묻고(29%, 21%), 귀에서 이명이 들리는(17%, 12%) 등의 증상이 있다고 말했다. 이들 증상이 전혀 없다는 응답이 어른은 63%인 데 비해 고교생은 49%만 그렇다고 대답했다.

 

결국 동·서양을 막론하고 디지털 기기로 인한 폐해가 적지 않다는 것을 방증한다. 이런 점에서 한창 성장기에 있는 청소년들은 청력보호에 각별한 신경을 써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우리나라 청소년들은 미국 등지의 청소년들보다 MP3 등 디지털 기기에 노출 강도가 세기 때문이다.

 

실제로 MP3의 경우 우리나라 청소년들의 필수품이 된 지 오래다. 서울 강남의 한 여고 1학년 한 학급의 경우 전체 30여 명 중 MP3와 휴대전화 등이 없는 학생은 단 한 명이 없을 정도로 청소년 사이에서는 보편화한 지 오래다. 서울 ㅊ고교 2학년 강모군은 “MP3 등은 이미 청소년들의 필수품으로 자리 잡은 지 오래”라면서 “친구들은 이미 초등학생 때부터 MP3를 들어왔다”고 말했다.

 

또 서울 강북의 ㅇ여고에 재학 중인 진모양은 “상당수 반 친구들이 청력이 떨어져 큰 소리로 얘기를 해야 알아들을 정도”라며 “일부 학생들은 ‘사오정’으로 통할 정도로 청력에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진양은 “MP3 같은 디지털 기기 등을 과도하게 사용해서 나타나는 (난청)현상이 아닌가 의구심이 들 때가 많다”고 덧붙였다.

 

난청전문병원인 소리이비인후과 박홍준 박사는 “오랫동안 (귀가) 집중적으로 기계적 자극을 받을 경우 청각장애가 올 수 있다”면서 “특히 성장기에 있는 청소년들의 경우 떨어진 청력을 제자리로 돌려놓기는 현실적으로 매우 힘들다”고 말했다. 박 박사는 “청력이 떨어지는 것은 갑작스럽게 나타나지 않고 서서히 나타나 자각하기 힘들다”면서 “이상 징후가 있을 경우 빠른 대처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한 전문가는 “MP3 플레이어는 볼륨을 최대한 높일 때 100㏈ 수준까지 올라간다”며 “이런 상황에서 매일 15분씩만 음악을 들어도 소음성 난청 확률이 매우 높아진다”고 지적했다.

상황이 이러한데도 제조업체들은 소비자들이 알아서 할 일이라고 뒷짐만 지고 있다. 청소년 덕분에 급성장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일부 기업들은 “제품만 잘 만들면 됐지 제조업체가 청소년 건강에 무슨 책임을 져야 하느냐”는 반응이다. 제품 성능이 뛰어난데다 소비자가 잘만 이용하면 난청 등은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는 주장이다.

 

국내 최대 MP3플레이어 제조업체 (주)레인콤 고위 관계자는 “일부 질낮은 제품을 사용할 경우 부작용이 있을 수 있지만 레인콤의 대표 제품인 아이리버는 기술력이 뛰어난데다 성능이 좋아 일부에서 지적하는 난청 발생 등은 있을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또 다른 기업의 한 간부는 “사용설명서만 꼼꼼히 읽어보고 사용하면 일부에서 우려하는 난청 등의 문제는 발생하지 않는다”면서 “난청은 소비자의 부주의에서 온다”라고 주장했다.

 

소비자들이 알아서 자신의 건강을 챙기라는 논리다. 이들 업체들은 사용설명서상에 ‘청력보호를 위해 이어폰의 큰 음량을 사용하지 말라’ 등 지극히 형식적인 문구만 적시할 뿐, 정작 실태파악이나 관련연구에는 관심을 거의 기울이지 않고 있다. 천문학적인 매출성장세에도 청소년들의 건강에는 관심을 두고 있지 않았다는 것이다.

 

 


유럽은 디지털기기 음압 강제규정

 

회사원 강상두씨(40)는 “일반 성인들은 나름대로 분별력을 갖고 사용설명서대로 MP3를 듣지만 청소년들은 스스로 제어하는 능력이 떨어진다”면서 “이런 점에서 금연 캠페인 같은 범국민적인 활동이 이젠 필요한 때”라고 지적했다.

 

소비자문제를연구하는시민의모임 김정자 소비자권익 실장은 “디지털 기기 등에 따른 난청 등 피해사례와 연구결과가 전무해 구체적인 실태를 현재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면서 “(난청해결을 위해) 특정 기업이 나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며 차제에 정부와 기업, 소비자가 함께 공동으로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 실장은 이번 기회에 공론화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현재 디지털 기기로 인한 청소년의 난청문제를 연구한 보고서는 5년 전 세정난청연구소 최순희 객원연구원이 쓴 석사학위 논문 등 몇몇 학위논문 등이 전부다. 세계시장 점유율 상위를 휩쓸고 있는 우리 기업들은 정작 자체적으로 난청피해 등을 연구한 경우가 전무한 실정이다. 최 연구원은 당시 논문을 통해 “특별한 조치 등을 마련하지 않을 경우 디지털 기기로 인한 청소년들의 소음성 난청은 앞으로 사회적 문제가 될 소지가 크다”고 우려했다.

 

전문가들은 유럽과 같이 음압을 제안하는 규정을 도입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유럽지역 국가들은 디지털 기기에 대해 음압 등을 일찌감치 강제규제하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현재 특정 기기에 대한 음압을 규제하는 내용은 없다”면서 “유럽과 같은 규제도 필요할 경우 마련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현재 유럽은 전자기기뿐만 아리나 소음공해 등에 대해서도 엄격한 제한을 두고 있다.

 

청력저하로 인한 장애인 지정도 해가 갈수록 늘고 있다. 보건복지부 자료에 따르면 2005년 말 기준으로 17만4302명이 청각장애인으로 지정받았다. 10년 전인 1997년 4만3875명에 비하면 무려 4배 가까이 증가한 셈이다. 청소년층의 증가율도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학부모들의 무관심과 정부의 무대책, 돈벌이에 급급한 기업들의 무책임 등 경제논리에 내몰린 청소년들의 미래가 그리 밝아 보이지 않는다. 일부 전문가들은 현재 상태를 방치할 경우 멀지 않아 ‘청소년 사오정’ 수가 세계 최고 수준에 달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김재홍 기자 ato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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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뉴스메이커 2006-04-28 10: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