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나얀™♡【육아】

한국과학영재학교 학부모들 “우리아이 이렇게 키웠어요”

피나얀 2006. 5. 2. 18:22

 

 

 

《‘혹시 우리 아이가 영재가 아닐까?’ 아이를 키우는 부모는 누구나 한 번쯤 기대를 해봤을 것이다. 영재는 아니더라도 어떻게 하면 아이들의 특기적성을 살려줄 수 있을까 부모마다 야단들이다. 전국의 영재들만 모인다는 한국과학영재학교의 학부모들이 최근 자녀교육 체험기 ‘나는 아이를 이렇게 키웠다’(황소자리)를 펴냈다. 이중 3학년 학부모 4명을 초청해 영재 교육의 비결과 고충을 들어봤다. 이들은 한결같이 “아이들이 어릴 때 많은 책을 읽고 부모가 사랑과 관심을 쏟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영재는 어릴 때부터 뭔가 다르다

▽원하숙=어느 날 베란다에 밀가루를 잔뜩 뿌려놓은 아이를 야단쳤더니 ‘눈이 어떻게 내리는지 알고 싶어서 그랬다’고 말해 깜짝 놀랐다. 이때부터 과학적 호기심을 키워 주려 노력했다. 지푸라기 위에 계란을 깔고 앉아 바지를 버려도 혼내지 않았다. 아이의 타고난 재능을 부모가 없앨 수 있다. 사물과 현상에 대한 호기심을 존중해 줘야 한다.

▽도회덕=호기심과 재능이 부모를 힘들게 하고 따돌림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나는 아들의 친구관계를 생일파티로 풀었다. 초대된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춰 아들에 대해 설명해 보라고 하고 사이좋게 지내 달라고 부탁했더니 신기하게 따돌림이 없어졌다. 아이의 영재성을 죽이지 않으려면 부모, 특히 아빠가 관심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최고의 선생님은 독서

▽이숙자=아이가 책을 너무 좋아해 생활비의 절반을 책 사는 데 쓴 적도 있다. 한글을 깨치던 다섯 살부터 동화책을 하루에 한 권씩 읽고 줄거리를 이야기하도록 했다. 1년이 되자 책벌레가 됐다. 역사 과학 문학전집을 사들였다. 초등생 때는 혼자 시립도서관에 가서 책을 읽더니 어느새 아동도서는 다 읽었다고 어려운 책을 빌려왔다. 일기장에 독후감을 써서 정리하도록 가르쳤다.

▽박영남=5세 때부터 퍼즐 맞추기와 만들기를 좋아했다. 용돈이 생기면 조립완구 사는 게 취미였다. 초등생 때는 밥 먹는 시간과 잠자는 시간을 아껴가며 ‘과학상자’ 조립에 빠졌다. 처음엔 걱정이 됐지만 만들기도 공부의 한 과정이라 생각하게 됐다. 자연과 벗하게 한 것도 큰 도움이 됐다.

○영재는 부모가 함께 만든다

▽도회덕=초등학교부터 주말은 아들과 보내기로 결심했다. 낚시, 등산, 여행을 함께 다니며 많은 대화를 나누려고 노력했다. 전국 사찰 중 안 가본 곳이 없을 정도다. 엄마는 공부하라고 하고, 아빠는 내버려 두라고 하면 아이가 일관성을 잃는다. 아빠는 정보수집, 엄마는 교육 역할을 분담하는 식으로 부부가 함께 관심을 가지면 좋다.

▽원하숙=맞다. 아빠의 역할이 90점은 된다. 아이들을 데리고 놀이공원, 식물원 등을 다니며 꽃 이름이나 이야기를 들려줬다. 아빠가 다정다감해 스킨십을 많이 나눴다. 영재학교에 와 보니 아빠들이 적극적인 게 공통점이었다. 설명회 참석, 카페 운영, 과학 잡지를 보고 아이에게 설명해 주는 등 너무 열심이었다.

○재능 조기발견 지적 욕구 채워줘야

▽박영남=아이의 재능을 몰라 좀 더 일찍 지적 욕구를 채워 주지 못한 것이 너무 아쉽다. 책과 과학만 좋아하는 줄 알았지 영재교육이나 특별교습은 생각도 못했다. 중학교 1학년 2학기부터 과학고 준비 학원에 보냈지만 선행학습하기에도 벅차 경시대회는 꿈도 꾸지 못했다.

중2가 돼서야 30분 거리의 경시대회 학원에 다녔다. 매일 밤 10시에 데리러 가는 것이 힘들어 집 근처 학원으로 옮기라고 하자 전철로라도 다니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자신의 수준에 맞는 수업에 대한 만족감과 고집 덕분에 영재학교에도 입학한 것 같다.

▽이숙자=구미에는 영재교육을 할 만한 곳이 없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NASA 청소년우주과학자 선발대회’에 지원한 것이 계기가 돼 과학에 흥미를 갖게 됐다. 중1 때부터 주말마다 구미에서 대구의 경북대 과학영재센터에 다니면서 물리학자의 꿈을 키웠다. 어디서나 저렴한 비용으로 아이들의 특기 특성을 키워줄 수 있는 기관을 전국에 골고루 세웠으면 좋겠다.


▼ 좌담 참석 학부모들 ▼
원 하 숙 (신은석 군 어머니)
도 회 덕 (도우진 군 아버지)
이 숙 자 (윤종민 군 어머니)
박 영 남 (한민성 군 어머니)


수줍은 시골소년 명문 MIT생 됐네

지난달 16일 경남 고성군 고성읍 성내리에서는 한국과학영재학교를 졸업하고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에 합격한 신종우(19·사진) 씨를 축하하기 위한 마을잔치가 벌어졌다.

신 씨는 변변한 학원 하나 없는 시골에서 태어났지만 유별난 과학적 호기심으로 미국 명문대 유학 꿈에 부풀어 있다.

그는 초등 4학년 때 꼬마전구와 배터리를 공부하면서 과학에 흥미를 느꼈다. 그 뒤 틈나는 대로 스탠드를 몇 번씩 분해해 가며 전기의 원리를 터득했다.

초등학교 담임교사는 “이렇게 머리 좋은 아이가 시골에 있기는 너무 아깝다”며 그의 부모에게 강권해 이모가 사는 마산의 중학교로 ‘유학’을 보냈다. 도시 아이들 틈에서도 두각을 나타냈다. 도 대표로 3년 동안 경남대 영재교육센터에 다닌 것이 과학적 재능을 키운 계기가 됐다.

신 씨는 때마침 부산에 개교한 한국과학영재학교 수리과학 분야에 수석으로 입학했다. 수학 과학은 뛰어났지만 영어는 학원을 다닌 적이 없어 100등까지 미끄러진 적도 있다고 한다.

그러나 신 씨는 컴퓨터 프로그래밍 실력은 최고였다. 친구와 함께 학교의 학과등록 시스템과 축구로봇 등을 설계했고 세계적 권위지인 IEEE 등 국내외 학술지에 4편의 논문을 발표하기도 했다.

한국을 방문한 한 하버드대 공대 교수는 신 씨의 전기전자회로 구성 실력을 보고 “대학원생도 하기 힘들다”며 인턴십을 제안하기도 했다.

대학 진학을 놓고 고민하다 유학을 결심했지만 집안 형편 때문에 낙담하기도 했다. 그러나 3학년 때 연간 5만 달러까지 지원받는 ‘이건희 장학생’으로 선발돼 유학의 꿈을 이룰 수 있게 됐다.

신 씨는 “학교나 부산에서는 유학 준비를 할 만한 여건이 안돼 너무 힘들었다”며 “방학 때 서울에 올라와 토플과 대학수학능력시험(SAT)을 어렵게 준비한 결과 듀크 버클리 코넬 등 8개 명문대에서 입학허가를 받았다”고 말했다.

신 씨는 “전기·컴퓨터공학을 전공해 한국의 컴퓨터공학계를 세계 수준으로 끌어올리겠다”고 말했다.


 
 
 
이인철 기자 inchu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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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2006년 5월 2일(화) 2:59 [동아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