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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벌이 증가로 방임된 어린이 사고 잇따라… 1년에 1000명 이상
희생
어린이 대상 성범죄의 비중 늘어나는 추세… 보육대책은 수요 못 따라가
지난 2월 17일 저녁 7시. 어둠이 내려앉은 서울 용산구 용문동의 한 골목길. 혼자 집을 지키던 11살 허모양이 비디오 반납 심부름을 하러 길을 나선다. 골목길을 나와 수퍼마켓을 지나고 동네 어귀 상점들이 늘어선 곳까지 가는 동안, 밤에 혼자 다니는 작은 아이를 이상하게 여기거나 눈여겨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성폭행 전과가 있는 신발가게 아저씨를 제외하고는….
아이들이 잇따라 어이없는 사건·사고로 희생되고 있다. 저출산이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됐지만 방치된 어린이들이 죽어가는 현실은, 우리 사회가 과연 낳은 아이들이나마 제대로 키울 능력이 있는가 의문을 불러일으킨다.
14세 이하 어린이가 사고로 사망하는 수는 1년에 1019명(2004년 기준). 10만명당 10.7명이다. 1990년의 25명에 비하면 많이 좋아졌지만 영국 3.0명(2004년 기준), 일본 5.6명(2003년 기준)에 비하면 아직 OECD 국가의 명함을 내밀기 부끄러운 형편이다.
사망자 수는 빙산의 일각. 부상당하는 수는 집계조차 되지 않는다. 네덜란드의 한 보고서에 따르면 사망자가 1명이면 2000명이 부상을 당하고 그 중 160명이 입원치료를 받는 것으로 추정된다. 생명을 잃지 않더라도 완치되지 못하는 아이들은 결국 평생 장애의 고통을 안고 살아야 한다. 사고를 당하는 어린이 대부분은 보호자가 곁에 없었던 ‘나홀로 어린이’들이다. 사고는 우연이지만 어린이를 혼자 두면 사고가 나는 것은 필연인 것이다.
허양이 결국 살해돼 불태워진 채 발견되고 범인이 밝혀지면서 우리 사회는 경악했다. 성범죄자 신변공개와 전자팔찌 등 대책이 쏟아졌지만 범죄자를 사회로부터 완전히 격리시키는 것은 불가능할 뿐더러 초범의 경우 막을 길이 없기에 실효성에 대한 논란만 무성했다. 범죄자에 대해 증오를 표출하고 그들에게만 초점을 맞춘 대책을 쏟아내는 모습은 어린이를 보호하지 못한 사회가 책임을 회피하는 듯한 인상이다.
최근의 성범죄는 자기방어 능력이 없는 어린이에게 집중되고 있다.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성범죄는 1만3446건으로 2004년의 1만4089건보다 줄어들었다. 반면 7~12세를 대상으로 한 성범죄는 계속 증가하고 있다. 2003년에 492건이던 것이 2005년 584건으로 2년 동안 20%가 늘었다. 지난 4월 초 인천에서 검거된 어린이 연쇄 성폭행범 강모씨는 “왜 어린이만을 대상으로 범행했냐”는 질문에 “어린이는 힘들지 않아요. 애들이니까 쉽게 할 수 있어요”라고 말했다.
어른들은 성범죄가 증가하면서 경각심을 갖고 대비를 하지만 아이들은 그렇지 못한 것이다.
성범죄가 여자어린이에게만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지난해 11월에는 11살 남자어린이가 같은 태권도장에 다니는 고교생에게 성추행 당하고 살해되는 사건도 있었다.
아동 성폭력 관련 시민단체인 해바라기아동센터에 따르면, 작년 센터에 접수된 성폭력 사건 600여건 중 남자아이의 성폭력 피해 사례가 10%에 달했다. 남자아이들의 경우, 피해를 당해도 수치심 때문에 신고하지 않는 경향이 있으므로 실제 피해자 수는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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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자뿐만 아니라 동물도 ‘나홀로 어린이’를 만만히 보고 공격한다. 지난해 개에 물려
죽은 어린이는 보도된 것만 5명. 어른에게도 위협적일 만큼 큰 개를 기르는 사람이 많지만 관리에 대해 별다른 규제를 하지 않기 때문이다.
처벌이라고 해 보았자 경범죄로 5만원의 과태료가 고작. 공원에서도 목줄을 하지 않은 채 개를 몰고 다니는 사람을 흔히 볼 수 있는
이유다.
어린이는 범죄자나 동물의 공격을 당하지 않더라도 혼자 있는 것만으로도 위험에 빠질 수 있다. 화재가 대표적인 경우. 지난 2월 영월에서는 어린이들만 집에 있다가 불이 나 3명이 숨지는 사고가 있었다. 여섯 살밖에 안 된 어린이가 직접 119에 신고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구조되지 못해 더욱 안타깝게 했다.
아동안전 전문가들은 어린이가 빨리 대피하지 않고 불을 끄도록 하는 소방교육의 문제도 지적했다. 일부 유치원과 초등학교에서는 소화기 사용과 119 신고 요령을 가르치고 있는데 아이들에게 최우선적으로 가르쳐야 할 것은 대피와 자기보호 요령이라는 것이다. 소방동요의 내용도 대부분 막연하게 불을 조심하자는 내용일 뿐 몸에 불이 붙었을 때의 대처 요령처럼 자기를 보호하는 데 유용한 구체적인 내용은 빠져 있다.
영월의 화재사고에서도 어린이들로서는 빠져 나오기 힘든 상황이었겠지만 신고할 시간에 빨리 탈출을 시도했으면 상황이 달라지지 않았을까 아쉬움이 남는다. 결국 어린이들은 침대 밑에서 숨진 채 발견되었다. 어린이들은 불이 나면 구석으로 숨는 경향이 있어서 어른보다 더 목숨을 잃기 쉽다.
이런 사고들에 대해 부모에게 모든 책임을 물을 수는 없으나 우선 아동 방임(放任)을 학대의 한 유형으로 보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선진국에서는 어린이를 혼자 방치하는 것을 범죄로 본다. 집에 있을 때도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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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경우엔 얼마나 많은 아이들이 혼자 방치되고 있는지 통계조차 제대로 잡히지 않고 있다. 아동방임이 무엇인지, 어느 것이 불법인지 인식조차 안 돼 있으므로 신고가 미비할 수밖에 없다. 신고전화(1391)를 아는 사람도 별로 없다.
미국의 경우엔 공익 광고나 스티커를 활용해 아동방임에 대한 인식을 넓히고 누구나 신고 전화번호를 자연스럽게 알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국내 일부 보건소에서는 ‘찾아가는 아동보호 서비스’를 실시해 호평을 받고 있다. 신고를 기다리기 전에 아동방임 가능성이 있는 가정을 직접 찾아가 관리하는 방식의 적극적인 대처이다.
현행 아동복지법에선 ‘자신의 보호·감독을 받는 아동을 유기하거나 의식주를 포함한 기본적 보호·양육 및 치료를 소홀히 하는 행위’를 아동방임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를 어길 경우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되어 있다. 그렇지만 고의로 아동을 방치하는 것에만 국한시켜 법을 소극적으로 해석하는 경향이 있다.
외국의 경우 고의성 여부와 상관없이 아동의 발달을 치명적으로 손상할 수 있는 경우는 모두 아동방임으로 처벌한다.아동방임에 대한 인식이 낮음에도 지난해 신고된 아동학대 4636건 가운데 아동방임이 1673건 35%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가정 유형별로는 아버지만 있는 가정의 아동방임이 가장 많았다. 경제형편으로 보면 월수입 100만원 이하인 가정이 절반을, 국민기초생활보장수급권자 가족이 약 30%를 차지한다. 현재 기초생활보장수급권자는 143만명, 이 가운데 12세 이하 아동이 19만9000명에 달하는 것을 생각하면 잠재적 아동방임 인구가 상당할 것으로 예상된다.
아동방임이 가구 소득과 깊은 연관이 있다는 것은 보건사회연구원이 작년에 1만2000가구를 대상으로 한 보육실태조사에서도 드러난다. 이에 따르면 가구소득 150만원 미만의 경우, 방과 후에 보호자 없이 집에서 혼자 보내는 초등학생의 비율이 10%를 넘어선다.
소득이 높은 가정이라고 해도 안전한 것은 아니다. 이 조사에 따르면 초등학생의 80%
이상이 방과 후 학원이나 공부방에 다니고 있는데 이들 대다수는 보호자 없이 혼자 다닌다. 학원버스가 아이들을 데리고 다니니까 안전할 거라고
생각하지만 영세한 학원의 버스는 법규정을 무시하고 보호교사 없이 운전기사만 타고 운행하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 차문도 아이들이 열고 닫는
위험천만한 일이 비일비재하다.
부모들이 직접 아이들을 챙기지 못하는 주된 이유는 맞벌이 부부의 증가 때문이다. 특히 IMF위기 이후 형편이 어려운 맞벌이 부부 가정에서 어린이 방임으로 인한 사고가 부쩍 늘고 있다. 경제활동에 참여하는 여성의 비율이 전반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가운데 무엇보다 기혼여성의 증가율이 두드러진다.
미혼 여성의 경제활동참여율은 1980년 50.8%에서 2004년 53.5%로 소폭 늘어난 반면 기혼여성은 40%에서 48.8%로 크게 증가했다. 어머니들이 아동을 돌보기 힘든 상황이 된 것이다. 초등학교 1~2학년의 하교시간은 1시쯤이고 3학년은 2시쯤인 데 반해 학부모의 44.8%가 오후 3시 이후에 귀가한다. 학부모의 33.3%는 6시 이후에 귀가하며 11.6%는 8시 이후 귀가한다.
아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부모들이 맞벌이를 중단하고 아이들에게 매달릴 수는 없을 것이다. 맞벌이를 하는 이유도 아이들의 미래를 위한 일이기 때문이다. 보육시스템으로 뒷받침하는 방법이 유일한 대안이다.
노무현 정부는 출범 직후 ‘아동안전 원년’을 선포했지만 스쿨존 사업에 6000억여원의 예산을 배정한 것 말고는 이렇다 할 실효성 있는 정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정부의 아동보육을 위한 정책은 4개 부처가 개별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교육부는 ‘초등학교 방과 후 교실’을, 보건복지부는 ‘지역아동센터’를, 청소년위원회는 ‘청소년 공부방’을 운영하고 있고 여성부는 ‘방과 후 시간연장형 보육사업’을 지원하고 있다. 이들 사업을 통해 돌보는 아동은 모두 12만명 정도. 급속히 증가하고 있는 보육수요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한 형편이다. 여성부 조사에 의하면 부모들 중에 당장 보육서비스가 필요하다고 응답한 인원은 158만명이다.
4개 부처가 각각 정책을 수립하고 집행하면서 정책의 중복과 일관성 부족의 문제도 드러난다. 각 부처에 따라 시설기준, 교사 자격기준, 운영기준이 다르고 프로그램도 미흡한 실정이다.
또 대부분의 보육시설이 6시 전후로 운영을 끝내기 때문에 늦게까지 근무를 하는 부모의
아이는 맡길 곳이 없다. 운영시간의 연장이나 집으로 방문하는 보육서비스도 필요한 것이다.
과거 반공교육시간에 “북한에선 부모들은 강제노동을 해야 하고 아이들은 탁아소에 맡겨진다”는 얘기를 듣고 아이들은 탁아소를 공포의 대상으로 여겼다. 역설적으로 21세기의 한국 사회에선 부모들은 실업의 두려움에 시달리고 어린이들은 맡길 곳이 없어서 위험에 방치되어 있다.
지난 4월 18일 낮 서울의 한 초등학교 앞. 1시가 가까워오자 1학년 아이들을 데리러 나온 학부모들이 하나 둘 늘어난다. 3월에는 학부모들이 많이 나왔지만 이달 들어 그 수가 크게 줄었다고 한다.
교문을 빠져 나온 아이들 중 10여명만 부모 손에 이끌려 간다. 실내 놀이터와 학원으로 향하는 버스를 찾아 오르는 아이들을 제외하고 많은 아이들이 혼자 집으로 향한다. 20여명의 아이들은 집에 가지 않고 운동장을 뛰어다니며 놀고 있다. 대부분은 집에 가도 기다리는 사람이 없는 아이들이다.
1학년 1반의 명찰을 단 여자아이도 이 무리에 섞여있다. 낯선 아저씨인 기자가 말을
거는데 경계의 기색이 없다. “엄마는 일하러 가서 집에 아무도 없어요.” 집에 가면 혼자 컴퓨터를 하거나 가끔은 옆집 친구에게 놀러 간단다.
배고프면 가스불을 켜서 직접 음식을 데워 먹는다.
30분쯤 더 뛰어 놀더니 다른 아이들이 하나 둘 떠나자 집으로 향한다. 먼 발치에서 따라가 보았지만 그 작은 소녀를 눈여겨보는 어른은 아무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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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동 주간조선 기자(jdpark@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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